소설리스트

66화 (66/501)

***

다음 날.

상호는 아침을 먹으러 방금 막 급식실에 도착한 참이었다. 문을 열자 고소한 빵 냄새가 훅 풍겼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선생님.”

“쌤!”

상호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아침부터 세희가 태화의 곁에 붙어 다니고 있었다. 태화는 손을 머리 위로 붕붕 흔들었고, 세희는 상호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 안대 어디 갔어요?”

“으음, 그게…… 잠시만.”

상호도 태화의 얼굴을 보며 진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태화가 쓰고 있는 안대에 유아들이나 좋아할 법한 고양이 캐릭터가 수놓아져 있어서.

“얌마…….”

“헤헤, 귀엽죠? 이쁘죠? 사랑스럽죠?”

태화는 안대를 쭉 당겨 상호에게 들이밀며 웃었다.

“이잉~ 기엽징~.”

“너 그거……. 그 상태로 나한테 돌려주려는 거야?”

“안 돼요? 어차피 뒤집으면 안 보이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옆에서 듣던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얘 안대 선생님 거예요?”

“응. 태화 눈 다쳐서.”

상호가 대답했지만 세희는 그 내용에는 관심이 없는 듯싶었다.

세희의 시선이 상호의 상처난 눈에 향했다.

그녀가 한참을 빤히 바라보자 상호는 멋쩍어하며 오른쪽 눈을 가렸다.

“많이 흉해?”

“아뇨.”

세희가 살짝 볼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때 태화가 툭 끼어들었다.

“세희 얼빠라서 그래요. 안대 벗으면 얼굴 더 잘 보인다고.”

“아니라고!”

세희는 분통을 터트리며 태화의 뿔을 잡고 왼쪽 눈을 검지로 꾹꾹 눌렀다.

“아야! 아야야야! 아파, 썅년아!”

“내가! 내가 니 걱정 얼마나 했는데! 이 웬수야!”

“얘들아, 남들 밥 먹는데 소란 피우지 말고…….”

상호는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도, 곧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태화의 꼬리가 예전처럼 활기차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다행이네. 잘 이겨내서.’

그는 아이들을 배식대로 밀어붙였다.

“먹고 싸워. 먹고. 밥 먹고 대련하면서 소화시키면 되잖아.”

“선생님, 잠시만요. 얘랑 오늘 결판을…….”

“메롱~ 난 어제 쌤이랑 술먹었다~. 부럽지부럽지부럽지~.”

“……야, 인마!”

정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스승의 은혜

월요일.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야, 그 다음에 뭐냐?”

태화의 팔꿈치가 세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세희가 핀잔을 주었다.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음이 뭔데? 불러봐.”

“그…….”

세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몰라.”

“부르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됐어, 그만해. 고맙다.”

상호는 교탁을 똑똑 두드리며 아이들을 주목시켰다.

조례시간에 그가 들어오자마자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이 입을 딱 다물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오전 정상수업이고. 오후에 세족식 있는 거 알지?”

“네.”

“세족식 어디서 해요?”

“운동장에 돗자리 깔고. 전교생이 다같이 할 거 같은데.”

“얼마나 해요? 다른 반은 1교시 동안 못 끝낼 거 아녜요.”

“2교시 동안 하나 봐.”

“그럼 저흰 한 사람당 25분씩 씻겨주면 안 돼요?”

“……발을?”

그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발을 어떻게 25분씩 씻겨?”

그러자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발가락 하나에 2분씩이예.”

“정성들여서요.”

“각질 관리도 해주세요.”

“끝나고 나면 마사지도…….”

상호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상황 봐서 해 줄게.”

“아싸~!”

아이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성을 질렀다.

***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운동장에 학생과 선생이 모였다. 마침 날씨도 좋았다.

넓게 깔린 돗자리 위에는 학생이 앉을 의자와 물을 담을 대야가 놓여 있었다.

그 주변을 물의 정령들이 돌아다니며 대야에 물을 담았다.

상호의 옆에서는 설미가 소매를 걷고 있었다.

“상호 씨. 나 이거 좀 접어 줘.”

그녀가 양 팔을 상호에게 내밀었다.

그는 소매를 접어주다가 설미가 자신의 오른쪽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왜요?”

“그냥.”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렇게 보던데…… 많이 이상해요?”

“아니, 신기해서. 한번 만져 봐도 돼?”

“굳이요? 뭐 별로 상관 없긴 한데.”

상호는 키가 작은 설미가 편하게 만질 수 있도록 허리를 숙였다. 설미의 손이 그의 눈두덩에 닿았다.

그러자 주변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강쌤은 임쌤한테만 말 걸더라.”

“임쌤도 강쌤 앞에서만 웃고…….”

설미도 분위기를 느꼈는지 얼굴을 붉히며 금방 손을 뗐다.

“소매 줘 봐. 나도 접어 줄게.”

상호의 소매도 차근차근 접혔다.

곧 세족식 준비가 끝나고 아이들이 의자에 앉았다. 상호는 자신의 반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는 나빛이었다. 가장 느린 그녀가 어떻게 제일 빨리 순서를 차지했는지 의문이었다.

상호는 그녀의 발치에 앉으며 물었다.

“다른 애들은?”

나빛이 무릎에 담요를 덮으며 웃었다.

“발 씻으러 갔어요.”

“……응?”

세족식을 하려고 발을 씻다니. 그야말로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기웃하며 나빛의 양말을 벗겼다.

“뭐…… 깨끗이 하는 데 의미가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대야 옆에는 비누와 수건이 놓여 있었다.

상호는 우선 대야에 손을 넣어 물의 온도를 확인하고 나빛의 발치를 향해 밀었다.

그리고는 나빛의 발을 잡고 물에 담갔다.

“괜찮아? 안 뜨겁지?”

“네. 따뜻해요.”

그녀가 방긋 웃었다.

그는 그녀의 발을 느긋하게 주물럭거렸다. 시간이 넉넉하니 때를 좀 불리고 씻겨도 괜찮을 터였다.

그런데 딱 만져보니 씻을 게 없었다. 때가 쌓인 것도 아니고, 각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들보들한 것이 아기 피부와 같았다.

아직 비누엔 손도 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물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너도 발 씻고 왔어?”

“아니요.”

오전에 분명 미친 듯이 뛰어다녔는데 발이 왜 이렇게 깨끗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상호가 발가락 사이사이를 문지르자 나빛이 몸을 배배 꼬았다.

“앗, 선생님, 간지러워요…….”

그는 장난기가 동해서 그녀의 발바닥을 손톱으로 슬쩍 긁었다. 나빛이 흠칫하며 발을 첨벙 구르자 물방울이 튀었다.

“꺅! 선생님!”

“미안, 미안.”

상호는 얼굴에 튄 물을 손목으로 닦으며 킥킥거렸다.

옆에서 다른 학생들이 시선이 쏟아졌다. 대부분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시선을 느낀 그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그녀의 발을 주무르는 데 집중했다.

“요즘 고민 같은 거 있어?”

“아니요.”

나빛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있던 거는 다 해결돼서…… 기숙사 살고 싶긴 한데, 그거는 고민은 아니니까요.”

“그래. 열심히 해서 네가 이뤄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호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나빛아.”

“네.”

“나효은 수녀 있잖아.”

“네.”

“걔한테 들었는데…… 너 병이 있다며.”

나빛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상호는 그녀의 발을 살짝 힘있게 잡았다.

“말해도 돼. 무슨 병이야?”

“절대로 말하지 말랬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말하는 순간 치료할 방법이 없어진대요.”

“그러면 선생님이 언제쯤 물어보면 대답해줄 수 있어?”

“죄송해요.”

상호는 나빛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더 캐묻기를 포기했다.

“알았어. 그 질문은 이제 안 할게.”

시간이 꽤 흘러 발의 피부가 살짝 불었지만, 아무리 비벼도 때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비누를 잡고 거품을 내어 나빛의 발 구석구석을 문질렀다.

그리고 나서 물로 발을 헹구자 물의 정령이 날아와 물을 계속 갈아주었다. 비눗기가 싹 사라질 때까지. 처음 시작할 때처럼 투명한 물에 하얀 발이 담겼다.

상호는 대야를 치우고 그녀의 발을 수건으로 닦았다.

“다 됐다.”

“선생님, 저어…….”

나빛이 쑥스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어서 말하지는 못했다.

상호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다른 애들 올 때까지 발 마사지 해 줄까?”

그러자 나빛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그녀의 발에서 물기를 싹 닦아내고 꾹꾹 힘주어 주무르기 시작했다. 검지의 관절 부분으로 발바닥을 눌러서.

거기다 내공 한 자락을 집어넣어 혈까지 자극하자 나빛의 몸에서 긴장이 쫙풀렸다.

“으…….”

“아파?”

“아니요, 좋아요…….”

그들을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각자의 담임들에게 소리쳤다.

“쌤~, 저 집은 마사지도 해준대요~.”

“왜 저희는 대충 씻고 끝이에요?”

“에헤이, 그렇게 부러우면 저기 가! 강 선생, 얘들 좀 데려가!”

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빛의 발을 꼼꼼하게 안마해 주었다.

얼마 가지 않아 세희와 태화도 본관에서 달려나왔다. 지윤은 살짝 뒤에서 달려나오고 있었다.

“야! 이거 안 놔!”

“출석순이야, 바보야.”

세희가 태화의 꼬리를 잡은 틈을 타 지윤이 쏜살같이 추월했다. 그녀는 쌩하니 달려와 나빛을 의자에서 번쩍 들어올렸다.

“꺅!”

“쌤요! 발 씻고 왔심더!”

발 씻고 왔으니까 발 씻겨 달라는 말을 당당히 한다.

상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적인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지윤의 양말을 벗겼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련 많이 했네.’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혀서 울퉁불퉁했다. 특히 엄지발가락 쪽에.

상호가 그곳을 가만히 보고 있자 지윤이 발가락을 움츠리며 얼굴을 붉혔다.

“흉하지예?”

“아니.”

그는 그녀의 발도 조물조물거리면서 때를 불렸다.

“굳은살 신경쓰지 마. 싸우는 사람한텐 있는 게 좋으니까.”

“쌤도 있어예?”

“난 훨씬 심하지.”

지윤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쌤이 여기 앉으셔예. 지가 씻겨 줄랍니더.”

상호는 당황했다.

“뭘 씻겨, 인마. 너희 좋으라고 하는 건데…….”

“야, 세희야! 태화야! 빨리 온나. 쌤 잡아라. 담가뿔게.”

지윤이 벌떡 일어나서 상호의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멀리서 세희와 태화도 달려왔다.

상호는 당황하며 그녀를 떼어내려 했다.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게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왼쪽 다리의 상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됐어 인마! 빨리 앉아.”

“저희가 다 알아서 할깁니더. 가만히 계이소.”

상호는 결국 아이들에게 붙들려서 의자에 앉혀졌다. 주변의 학생과 선생들의 눈길이 쏟아졌다.

‘하…… 씨바, 아침에 발 안 씻었는데…….’

그는 왜 아이들이 발을 씻고 발을 씻으러 오는지 절절히 깨달으며 오른쪽 다리를 내밀었다.

“그럼 이쪽만 해. 왼쪽은 닿기만 해도 아프니까.”

“에이, 살살 해 드릴게예.”

“안 돼. 아프시잖아…….”

사정을 아는 나빛이 지윤을 말리며 그의 양말을 벗겼다.

아이들이 그의 발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굳은살 많네요.”

“돌이네, 돌.”

원래도 전장에서 구르느라 굳은살이 많았지만, 절름발이라서 몸의 불균형 때문에 더 많이 박힌 것이기도 했다.

상호는 자신의 발에 얼굴을 들이대는 태화를 보며 식겁했다.

“얌마, 뭐 하는 거야!”

“킁킁…….”

냄새를 맡던 그녀는 검지와 엄지로 코를 집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냄새나요.”

“그럼 발이 냄새나지 안 나냐? 아니 얘들아, 너희는 또 왜 맡냐 그걸!”

상호는 코를 갖다대려는 그녀들을 피해 대야에 발을 담갔다.

‘무서운 애들이네, 진짜…….’

“빨리 끝내. 너희도 해야 하잖아.”

그의 말에 아이들이 다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덟 개의 손이 하나의 발에 달라붙었다. 상호는 발을 문지르는 40개의 손가락을 느끼며 몸을 움찔거렸다.

안 그래도 간지러운데 누군가가 집요하게 발바닥을 공략하고 있었다.

“태화야, 계속 그러면 네 차례 때 똑같이 돌려줄 거야.”

“저요? 뭐가요?”

태화가 눈을 끔뻑였다. 그 옆에서 세희가 태평하게 말했다.

“얘 맞아요.”

“……세희 네가 하고 있는 거야?”

“아니요. 태화예요.”

“쌤! 얘 구라까요!”

하지만 상호는 발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의 개수가 20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범인 찾기를 포기했다. 발등 위에 올라온 엄지손가락들을 빼면 최소 세명이 간지럽히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그는 발을 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됐어! 그만해. 지윤이 빨리 앉아.”

“저흰 어차피 다 씻었습니더. 쌤이나 곱게 앉으시지예.”

“아니……!”

지윤이 그를 다시 의자에 자빠뜨리자 상호의 발이 대야에 빠지며 물을 사방에 튀겼다.

첨벙

앞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상호는 푹 젖은 그녀들을 보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다른 물도 아니고 발 씻던 물인데.

“얘, 얘들아, 미안…….”

“괜찮아요, 헤헤…….”

방굿 웃는 나빛의 턱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별안간 태화가 대야를 움켜잡더니.

“이얏!”

세희의 얼굴에 물싸대기를 갈기고는, 순식간에 신발을 신고 도망쳤다.

그녀가 방방 뛰며 웃었다.

“꺄하하하! 멍청이!”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은 세희는 어안이 벙벙해하다가 상호의 칼을 뺏어들었다.

눈에 살기가 그득했다.

“죽여버릴 거야…….”

그녀는 진검을 뽑아들고 태화를 쫓기 시작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추격전이 펼쳐졌다.

상호는 나빛과 지윤의 얼굴을 새 수건으로 닦아주며 입맛을 다셨다.

“지윤아, 이제 진짜 앉아. 발 주물러 줄게.”

“알겠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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