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501)

***

야외 전투 수업을 시작할 때쯤, 중선도 상호가 가르치는 곳에 도착했다. 상호는 학부모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특별할 거 없어. 알지?”

그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팰 거니까 진짜로 피해. 오늘은…… 나빛이 제일 먼저 하자.”

“네.”

나빛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각인형이 그녀와 함께 운동장 가운데로 걸어갔다. 상호의 옆에서 봉진이 초조해했다.

“진짜 때릴 건가?”

“예.”

상호는 목각인형을 나빛에게 돌진시켰다.

나빛은 삼각형 방어막을 만들어 모서리로 목각인형의 명치를 찔러들었다. 인형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나빛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방어막의 옆면으로 인형을 밀어 넘어트렸다.

넘어진 인형은 그대로 한 바퀴 굴러 다시 자세를 잡고 달려들었다. 봉진이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어잇! 뭐가 저렇게 빨라?”

“아이들 수준에 맞춰준 겁니다.”

나빛이 방어막을 회수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달려오는 인형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인형은 펄쩍 뛰어올라 방어막을 딛고 나빛을 향해 도약했다.

“윽…….”

나빛은 서둘러 방어막을 없애고 몸 앞에 다시 새로운 삼각형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인형은 몸을 푹 수그려 나빛의 발목을 걷어차고 넘어지는 그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커흑……!”

쓰러진 나빛의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간신히 땅을 짚고 일어났다. 예전 같았으면 울상을 짓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제법 날카로운 표정으로 인형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울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봉진 쪽이었다.

하지만 고통이 심한 건 어쩔 수 없었는지, 나빛이 아랫배를 잡고 연신 비틀거렸다.

상호는 목각인형으로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됐다. 나빛이 돌아와.”

나빛이 배를 문지르며 그의 앞에 섰다.

“느낀 거 있지? 항상 말해주는 거.”

“네.”

“말해 봐.”

“공격하는 물건이 무기가 아니면 상대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그래. 그래서 성창이 훨씬 유리한 거야. 그리고 방금처럼 없애고 만들면 반응이 느려지니까, 동시에 여러 개를 만들어서 조종하는 연습도 필요하고.”

“네.”

“많이 아파?”

나빛이 웃었다.

“쌤한테 맞으면 안 아파요.”

봉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 딸 도둑놈…….”

상호는 속으론 식은땀이 흘렀지만 못 들은 척하고 태화를 보았다.

“다음, 태화.”

태화는 살짝 멍한 표정으로 걸어나갔다.

대련을 할 때면 늘 자신만만하게 살랑거리던 꼬리가 오늘은 축 늘어져서 걸음에 따라 흐느적거렸다.

의욕이 없어 보였다.

그는 내공을 뻗어 태화의 뺨을 살짝 집었다.

‘정신 차리고, 기운 내.’

그런 뜻을 담아서.

그녀는 흠칫 몸을 떨고는 상호를 돌아보며 살며시 웃었다.

‘왜 또 웃냐…….’

상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목각인형을 조종했다.

인형이 태화를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태화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상호는 그녀가 순간이동으로 피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맞을 생각인가?’

인형의 주먹이 태화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태화의 코끝이 눌리는 그 순간까지 고민했다.

‘멈춰야 하나?’

하지만 수업이 최우선이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억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아주 작은 신음도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세희가 검을 질끈 부여잡을 뿐이었다.

“후우…….”

얼굴을 얻어맞은 태화는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진 채로 피식 웃었다.

빨간 눈동자가 중선을 향해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상호는 중선의 눈빛이 딸과 닮아지는 것을 보며 나지막하게 태화를 불렀다.

“……태화야. 와 봐.”

그녀는 터벅터벅 걸어서 그의 앞에 섰다.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네.”

“그러면…… 앉아서 쉬고 있어.”

“네.”

태화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스탠드에 가서 앉았다.

상호는 세희를 부르며 태화의 눈빛을 떠올렸다. 무슨 뜻일까.

그저 자신을 때린 아버지에 대한 반항일까. 당신이 날 이렇게 때리지 않았느냐고, 기억을 건드린 걸까.

그에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세희.”

***

한 명씩 개인지도를 해준 후에는 아이들끼리 대련을 붙였다. 보호 마법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대련까지 다 마친 후 공개수업이 끝나자 상호는 아이들을 교실로 올려보내고 학부모들과 함께 운동장에 남았다.

봉진이 상호의 곁에 다가왔다.

“강 선생.”

상호는 그를 돌아보았다.

“예. 아버님.”

“암만 봐도 위험해 보여.”

봉진이 상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호는 속으로 한탄했다. 또 무슨 인증이 필요한가.

“……그렇습니까.”

“음. 근데 뭐…… 자네가 아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아끼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봉진이 헛기침을 했다.

“나도 아들은 그런 식으로 키웠으니까. 이해해. 오늘 수업 잘 봤어.”

의외의 반응에 상호는 얼떨떨해하며 뒷목을 긁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있잖아.”

봉진이 목소리를 낮추며 중선을 슬쩍 가리켰다. 중선에게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저 양반은 왜 저렇게 우중충해? 딸도 좀…… 분위기가 안 좋고.”

“집안 사정이 좀 있습니다.”

“그래? 뭐 그거는 내가 뭐라 할 수 없지만……, 애는 착한가? 다른 애들은 괜찮은데 저 애만 치마가…….”

봉진은 태화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나쁜 애 아닙니다. 치마는 저도 좀 늘렸으면 좋겠는데……, 하여튼 나빛이한테 나쁜 물 들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믿어도 되지?”

“예. 만약 나빛이가 치마 줄이면 제가 패겠습니다.”

“아니 그러지는 말고…….”

상호의 말에 봉진은 답답해하다가도 쓴웃음을 지으며 상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기왕 맡은 거 끝까지 책임져 보라고. 난 가네.”

“예. 들어가십시오.”

상호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봉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중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중선도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렇게 보기만 했다.

‘쉬바, 내가 쫓아내야 하나…….’

상호는 중선에게 다가가 말했다.

“수업 어떠셨습니까?”

중선은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되돌려 주었다.

“강 선생님.”

“예.”

“선생님이 보기에는 저하고 저쪽 부모, 누가 더 운이 좋은 것 같습니까?”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그새 낮술을 했나.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저쪽이죠.”

중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 질문의 속뜻이 저쪽은 부당한 행복을 누리고, 아버님은 부당한 불행 속에 살고 있다는 뜻이라면, 동의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데려와서 비교한다면 몰라도…… 적어도 아버님은 아닙니다.”

그 말에 중선의 눈 밑 근육이 꿈틀했다.

그는 말없이 몸을 돌려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쌀쌀한 바람이 바짓단을 휘날렸다.

상호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기엔 늦었지. 그래도 잠깐이라도 행복하려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 법인데…… 그게 쉽나.’

그도 중선과 같은 상황에 뚝 떨어진다면 견딜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기에 처음부터 잘했어야 하는 법이다.

업보는 역시 무서운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며, 상호는 교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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