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화야.”
다음 날 조례시간. 교실 앞 복도에서 상호와 태화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상호의 부름에 태화가 대답했다.
“네.”
“아버님이랑 이야기를 해 봤어.”
그녀가 실쭉 웃었다.
“말이 통해요?”
“많이 후회하고 계시더라.”
“그래서요?”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야기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
태화는 다리를 건들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꼬리는 그저께부터 축 늘어진 채였다. 그는 그 꼬리가 힘없이 흔들리는 것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역시 싫다고 말하지 않을까. 상호는 그렇게 예상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태화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순간 상호는 귀를 의심했다.
“응?”
“알았다구요. 뭐, 한 번쯤은.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태화가 씩 웃었다.
그게 그녀의 결정이라면야. 상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혼자서 다 잘 해내는 애니까. 걱정 안 해도 되지?”
“그럼요.”
“그런데 태화야.”
“네.”
“웃기 싫으면 안 웃어도 된다.”
그녀의 웃음이 흔들렸다.
그 웃음은 상호가 봤던 사진 속의 웃음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네가 힘들게 웃으면 나도 힘들어. 좀 솔직하게…… 표현해도 된다는 뜻이야. 평소처럼.”
그래도 태화는 또 웃을 뿐이었다.
“쌤은 제가 웃는 것만 보면 돼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지금 해볼까요?”
“응. 하고 들어와.”
상호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한부 아버지와의 원한을 청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시간이 지나 버리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문을 닫기 직전 태화의 공허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 그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그렇게 다짐하고 출석부를 펴는데도 여전히 마음속이 복잡했다.
‘잘 해내겠지……, 잘 할 거야. 암.’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부서진 인간
그날 저녁. 태화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상호는 이화관 입구에서 트렁크를 끌고 나오는 태화에게 물었다.
“안 도와줘도 되겠어?”
“네.”
태화는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옷밖에 없는데요, 뭐. 가벼워요.”
“태워다 줄까?”
“괜찮아요.”
“버스는 오래 걸리고 택시는 돈 들잖아. 태워다 줄게.”
상호가 아무리 말해도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쌤한테 제가 그 인간 만나는 거 보여주기 싫어서 그래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별 수 없다. 상호는 착잡한 마음으로 멀어지는 태화를 지켜보았다.
태화는 교문을 나가서 좀 걷더니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어느 쪽이 정류장인지, 어느 쪽에서 택시를 잡아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잠시 헤메다가, 이내 방향을 잡고 쭉 걸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상호의 옆에 누군가가 다가섰다.
“쟤 어디 가요?”
세희였다.
이걸 세희에게 말해줘도 될까. 상호는 잠시 고민했다.
“아버지가 같이 살자고 해서. 집에 돌아간대.”
“……집이요?”
세희는 쓸쓸한 눈빛을 지었다.
여태 부모가 없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을 텐데. 친구가 훌쩍 떠나버리는 것에 상심이 큰 듯했다.
상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지윤이랑 많이 놀아.”
“그럴게요. 그런데 선생님.”
“응?”
세희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좀 이상해요.”
“뭐가?”
“태화 쟤…… 물건 다 안 챙겼어요.”
“나중에 가져가겠지. 차를 가져오든 택배로 보내달라 하든.”
“그게 아니라…… 제 방에 다 던져놓고 갔어요. 보물이니까 잘 지켜달라면서. 선생님이 사준 옷이랑, 편지 같은 거 든 상자…… 다 놓고 갔어요. 이상하잖아요. 보물이면 집에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상호는 답을 알아도 말하지 못했다. 속으로만 대답할 뿐이었다.
‘……집이 아닌가 보다.’
“사정이 있겠지. 잘 보관해 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한테 부탁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별일 없겠죠?”
세희는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 표정이었다. 평소에 티격태격해도 상호도 같은 마음이긴 했다.
“내일이 되면 알 거야. 내일 태화랑 이야기해 봐.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그땐 언제든지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주고.”
“네.”
그 답으로 해결이 되었는지, 세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들어갈게요, 선생님.”
“응.”
상호는 세희를 보내고 태화가 떠난 자리를 멀거니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만약 내일 태화가 안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
다음 날.
세희는 옆에 앉아 있는 태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태화가 뭘 보냐는 듯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물었다.
“왜? 같은 여자가 보는데도 예뻐?”
“아니, 그냥.”
걱정과는 달리 태화는 멀쩡하게 등교했다. 개소리를 하는 것도 평소와 같았다.
몸에도 딱히 흔적이 없는 걸 보니 어제 상호와 그녀가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던 듯싶었다.
지윤과 나빛은 매점에 갔고, 교실엔 둘뿐이었다. 세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집에 갔다며.”
“응.”
“좋아?”
태화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쑥 들이밀며 되물었다.
“부러워?”
또 먹이려고 하나. 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난 그럴 일이 없잖아.”
“별거 없어. 딱히 해주는 것도 없고. 내가 밥을 해야 하니까 귀찮아 죽겠더라.”
“그럼 왜 갔어?”
“다~ 생각이 있습니다. 신경 끄세요.”
태화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귀찮다는 듯이.
그러자 세희의 손이 태화의 꼬리를 잡아챘다. 날카롭던 태화의 눈빛이 흐물흐물해졌다.
“아, 아 또 왜 그래…….”
“너 이거 좋아하잖아.”
꼬리를 잡으면 솔직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희는 꼬리 끝을 슬슬 문지르며 물었다.
“기숙사보다 집이 좋아?”
태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버지랑 화해하려고 좀 불편해도 참는 거야?”
또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갔어?”
“……그냥, 부러워서.”
태화가 그렇게 웅얼거리며 몸을 기대왔다. 세희는 그녀의 머리를 무릎에 뉘이며 물었다.
“지윤이랑 나빛이가?”
“다. 너만 빼고 다.”
태화의 검지가 허공을 빙 둘러 가리켰다. 교실뿐만이 아니라 학교 전체를 말하는 것 같았다.
“딱히 뭔가를 기대하고 간 건 아니야. 난 그 인간 안 믿어. 그렇지만……
내가 원하던 삶이랑, 조금이라도 가까워 보고 싶어서. 그래서 간 거야.”
“원하던 삶이 뭔데?”
“넌 알잖아.”
붉은 눈동자가 세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말이 맞았다. 세희도 태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어지는 태화의 질문도 그걸 상정하고 묻는 것이었다.
“너는 나 부러워?”
“응.”
세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당연히 낫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러워.”
“그럴 줄 알았어.”
태화는 키득거리며 굵게 땋인 세희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 때 교실 문이 열리고 지윤과 나빛이 들어왔다.
“세희야, 태화야~. 빵 사왔어~. 헤헤헤…….”
“아따~ 징하구마잉. 점마들 또 만지네. 느이들 둘만 있을 땐 맨날 그러나?”
세희와 태화는 재빨리 떨어져서 고개를 휙 돌렸다.
“얘, 얘가 마음대로 잡은 거야.”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그러지. 참나…….”
“둘만 내비두고 가믄 꼭 이라네. 난 뷔페 아니면 축의금 안 줄기다.”
“빵 먹어, 빵.”
둘은 반대편으로 돌아앉고는 나빛이 준 빵을 깨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