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501)

***

그렇게 모두가 수학여행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선생과 학생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잤고, 몇몇은 이따금씩 한가로이 교정을 돌아다녔다.

상호는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협회의 무공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하는 중이었다.

지윤에게 알려줄 권법 겸 기공, 반탄강권공의 공부를 위해.

그는 앞에 펼친 공책에 필기를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는 되는데, 실전에서 어떤 깊이를 가질지는…… 잘 모르겠네.’

남의 무공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처음이라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반탄강권은 외부의 충격을 고스란히 되받아치는 특이한 강기를 기반으로 짜여진 무공이라서, 권법의 형태가 여타의 평범한 무공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예전에 성철이 싸우는 모습을 자주 봤고, 허공섭물을 이용하면 반탄강기도 흉내를 낼 수 있다. 상호는 손바닥에 주먹을 부딪히며 머릿속으로 반탄 강권의 형태를 그려나갔다.

‘반탄, 반탄……, 방어가 곧 공격. 대충은 알겠어. 그런데 이러면…… 치는 공격엔 강해도, 잡는 공격엔 더 약해질 텐데.’

지윤은 중간평가 때 유술을 쓰는 아이에게 패배했다. 반탄강기는 충격을 튕겨내는 강기. 유술을 쓰는 상대로는 또 다른 대비책을 강구해야 했다.

상호는 공책에 막대기 인간 그림을 끼적이다가 시계를 보았다.

오후 4시. 1시에 학교에 돌아와 밥을 먹었으니 아이들도 두 시간쯤 쉬었을 터였다.

‘지금 불러서 가르치자. 내일 또 놀 거니까…….’

그는 핸드폰을 꺼내 지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윤아.

-넵!

-수업 조금만 할까? 내일도 놀고 할 거니까.

-어디로 가면 돼요? 어떤 수업이에요?

-별관. 심법 가르쳐 줄 거야.

-지금 가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지윤도 수련을 더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상호는 컴퓨터를 끄고 공책을 챙겨 별관으로 향했다.

***

별관의 체력단련실에는 지윤과 세희가 도착해 있었다. 상호가 안으로 들어서 자 그녀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쌤!”

“안녕하세요.”

둘 다 손에 아령을 들고 있었다. 세희는 5kg짜리, 지윤은 12kg짜리.

한바탕 운동을 했는지 지윤의 팔에 잔근육이 올록볼록하게 올라왔다. 반면에 세희의 부러질 듯 얇은 팔은 매끈한 상태 그대로였다.

“운동하고 있었어?”

“네. 끄응…….”

상호는 세희가 안간힘을 쓰며 아령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 진땀을 흘렸다.

‘너는 칼 쓰는 애가 5키로도 힘들어하면 어쩌냐…….’

“세희야. 무게를 좀 올려 봐.”

“5키로도 힘들어요…….”

“원래 무게는 최대한 올려서 드는 거야. 그리고 5키로로 손 풀었으면 이제 6키로가 더 가벼울걸.”

옆에서 그의 말을 듣던 지윤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런게 어디 있냐는 듯이.

그래도 상호는 뻥을 쳤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5키로를 들면 거기 적응하고, 6키로를 들면 또 거기 적응하는 거야. 6키로 들어 봐.”

세희는 그의 말대로 6kg짜리 아령을 들어올렸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그렇지?”

“진짜네요.”

“적응하면 된다니까. 다 그런 거야.”

상호는 허공섭물로 그녀의 아령을 들어주며 능청을 떨었다. 사정을 모르는 지윤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세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상호가 부르자 정신을 차리고 아령을 내려놓았다.

“지윤아. 이리로 와봐.”

“아, 네.”

그들은 세희에게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상호는 지윤의 앞에 공책을 펼쳤다.

“네 아버지가 익힌 심법이야.”

지윤의 눈이 반짝였다.

“이름은 반탄강권공. 쉽게 말하면 상대의 공격을 반사하는 강기를 무기로 쓰는 무공이야. 내공 소모가 심하긴 하지만…… 쌓는 속도도 빠른 편이니까, 부지런히 축기하면 평범한 사람도 무리없이 쓸 수 있어. 다만 좀 빠르게 지칠수는 있다. 기를 많이 쓴다는 것 자체가 몸에 무리가 많이 가서.”

“그럼 얼마나 셉니꺼? 아부지 거면 세상에서 제일 세겠네예?”

“너 하기 나름이지.”

그는 공책에 혈도 순서를 적은 부분을 가리켰다.

“지윤이 너 혈도 볼 줄 알지?”

“네.”

“이거 나중에 보면서 외우고, 일단 몸으로 한 번 가르쳐 줄게. 뒤돌아 봐.”

그는 지윤의 등에 손을 얹고 내공을 한 자락 집어넣어 혈도를 하나씩 짚어나갔다.

“여기가 천추혈. 기해혈. 그리고…….”

세희에게 천색창염강기공을 전수할 때는 이름 없는 혈도나 애매한 위치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외울 때까지 반복해 주었지만, 반탄강권공은 공개심법이라서 혈도의 위치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덕분에 지윤이 혼자 독학해도 틀릴 걱정은 없었다.

상호는 한 번 더 혈도를 짚어주며 입을 열었다.

“대답 안 해도 돼. 듣기만 해. 반탄강권은 심법만 배운다고 끝이 아냐. 강기의 특성이 워낙 특이해서 전용 권법을 배워야 해. 그런데 문제는 그 전용 권법이 강기가 있어야 쓸모가 있어. 즉 네가 강기를 뽑아낼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강해지긴커녕 전보다 약해질 거란 소리야.”

지윤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낮게 침음했다.

“그리고 반탄공이라는 것 자체가 잡는 공격에 약해. 네가 저번에 만났던 그 아이처럼 유술을 쓰는 상대에겐 이기기 힘들어져. 물론 싸움에는 언제나 방법이 있지만…… 전보다 훨씬, 훨씬 더 노력해야 할 거야. 싸우는 방식 자체를 뜯어고치고, 전보다 더 부족해지는 부분을 더 열심히 메꿔야 하니까.”

“각오는…… 했습니더.”

그녀가 힘겹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상호는 혹시 또 힘조절을 못 했나 싶어 물었다.

“아파?”

“괜찮아예.”

지윤의 턱에서 땀이 한 방울 떨어졌다.

“지는 충분히 참습니더. 아부지 심법 배우는 거니까예.”

상호는 두 번째 운기 안내를 마치고 손을 거뒀다.

“대충 알겠지? 공책 줄 테니까 헷갈리면 읽어 봐.”

“네.”

“힘들어?”

“아뇨.”

지윤은 그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하나도 안 힘들어예. 더 할 수 있심더.”

“그럼 권법도 배울 수 있겠어?”

“물론이지예.”

상호는 지윤과 함께 링 위로 올라갔다. 세희는 이제 20kg짜리 원반을 한 손으로 들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물론 상호의 허공섭물 덕분이었다.

그가 양 주먹을 들어올리자 지윤도 따라서 자세를 잡았다.

“내가 반탄강권을 따라해 볼게. 너는 평소대로 공격해 봐.”

지윤이 그의 오른쪽 허리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상호는 들어올렸던 오른손을 슬쩍 내려 그녀의 발을 막았다.

터엉

“엇!”

지윤은 자신의 발이 튕겨져 나오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무슨 용수철이라도 달린 듯했다. 상호는 그저 손을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

그렇게 다리가 날아가 버리니 몸도 따라서 휘청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재밌다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반탄강깁니꺼?”

“대충 따라해 봤어. 내가 반탄강기를 쓰는 건 아니고, 허공섭물로 밀어낸 거야.”

상호는 검지를 까닥였다.

“이번엔 주먹으로 와 봐.”

지윤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역시 상호의 손에 닿자마자 튕겨나갔다. 자세가 무너진 그녀의 빈틈으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주먹은 갈비뼈 바로 앞에서 멈췄다.

“이런 식이지. 수비가 곧 공격이 되는 무공이야.”

“그럼…… 약점은 유술밖에 없는 긴가예? 그 강기를 온몸에 둘러뿔면 무적 아닙니꺼?”

“온몸에 두를 수 있다면 확실히 강해지겠지. 그런데 너희가 그러기는 어렵고…… 양 팔에 두르는 정도로 끝일 거야. 그리고 반탄강기도 더 강한 강기에 공격당하면 깨진다.”

상호는 세희를 힐끔했다.

세희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강한 무공인 건 확실해. 잘 배우면 충분히 네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려면 제일 중요한 건 강기를 뽑는 일이고. 그러니까 운기 조식 열심히 해.”

“네!”

지윤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지켜보던 세희가 20kg짜리 원반을 내려놓고 링 옆으로 다가왔다.

“끝나셨어요?”

“응.”

“그럼 저 선생님이랑 권투 해볼래요.”

“……스파링을 하자고?”

상호는 당황했다. 이거 저번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너 선생님 다리 아픈 거 알지?”

“물론이죠.”

세희는 링 위로 훌쩍 뛰어올라와서 상호 앞에 섰다. 아무래도 20kg을 한손으로 들고 나니 뭔가 호기가 솟은 모양이었다.

지윤이 그녀의 권투 자세를 보고 키득거렸다.

“마, 세희야. 발 반대다야.”

“아, 그런 거야?”

세희가 재빨리 발을 바꿨다. 그는 세희의 어설픈 풋워크를 보며 쓰게 웃었다.

“보법 열심히 가르쳤는데 다 소용이 없네.”

“이, 이건 권투 전용이에요.”

“다 같은 원리로 하는 거야.”

상호는 주먹을 들었다.

“해 보자. 내공 안 쓰고. 이기면 소원권 하나 줄게.”

“정말요?”

“응.”

“그럼 진지하게 할게요.”

세희가 그에게 잽을 날리며 다가왔다. 눈빛이 아주 날카로웠다.

지윤이 링 가장자리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지가 심판이라예.”

상호는 멀쩡한 오른쪽 발에 무게중심을 싣고 조금씩 뛰어 뒤쪽으로 물러났다.

등을 기습당하면 내공 없이는 반응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링의 기둥까지 물러나서 세희가 뒤를 잡지 못하도록 했다.

세희는 계속 어설픈 잽을 날리며 그에게 조금씩 걸어왔다. 애초에 닿을 거리가 아닌데도 잽을 했다.

상호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귀여워 죽겠네, 정말.’

하찮은 주먹질이 참으로 애틋했다.

그는 카운터를 살짝 먹여주기 위해 세희가 제대로 주먹을 날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세희가 팔을 뻗지 않고 몸으로 확 달려들었다.

“윽……!”

주먹을 날리려던 그는 깜짝 놀라 팔을 휘두르지 못했다. 그대로 날렸으면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을 테니까.

당황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희가 그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세희야?”

“클린치.”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허용이죠?”

“그런 것도 알아?”

“그럼요. 기본이죠.”

“갈려! 갈려!”

지윤이 사이에 끼어들어서 둘을 밀쳤다. 살짝 약이 오른 얼굴이었다.

“다시 시작!”

하지만 이번에도 세희는 상호에게 달려들어 꽉 끌어안았다. 결국 지윤이 폭발했다.

“쌤요! 이 기지배 이길 생각 없심더!”

“내가 선생님 안았다고 그러는 거야? 이거 기술이야, 기술. 클린치 몰라?”

“백날천날 클린치만 하고 자빠졌구마! 그리고 그기 머가 클린치고, 부비부비지!”

“아니야, 기술이야. 선생님, 이거 클린치 맞죠?”

“비키바라. 내가 진짜 클린치 보여 주께!”

“싫어. 은근슬쩍 뺏으려는 거잖아!”

상호는 옥신각신하는 둘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싸움은 세희랑 태화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이 둘도 싸우나……. 곁에 조용히 있어주는 건 나빛이밖에 없구나…….’

편애

“나는 내가~ 하얀 백조인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내가 진짜로 오리 새끼란 걸~.”

상호는 노래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저 슬픈 노래를 저렇게 밝게 부르는 것도 능력이다…….’

가사는 처절한데 부르는 사람은 신이 났다. 목소리의 주인은 태화와 지윤이었다.

태화가 마이크에 대고 빽 소리를 질렀다.

“쌔애앰! 좀 들어와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여자 넷, 그것도 어린애들 노는 곳에 끼어서 뭘 하겠는가. 딱히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띄우는 유행가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냥 머리가 아프단 핑계를 대고 밖에 나와 앉아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애들마다 특징이 있었다. 태화는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4차원적인 노래, 지윤은 유명한 걸그룹이나 트로트 노래, 세희는 잔잔한 옛날 발라드에 나빛이는 더 옛날의 동요 비슷한 노래.

상호는 나빛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신앙인들 목소리는 어째 다 맑고 청아하다고. 성력이 목소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방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아싸~ 30분 추가~!”

‘또?’

그는 당황하며 카운터를 돌아보았다. 젊은 여자 알바생이 그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매만졌다.

이번이 세 번째 보너스. 한 시간어치만 냈는데 두 시간 반을 쓰는 마술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방이 많이 남아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휴일 낮이라 학생들이 계속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중인데도.

‘내가 무섭게 생겨서 그런가?’

상호는 손에 든 검과 오른쪽 눈의 안대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뭐. 세 시간씩 줄 리는 없겠지……, 그나저나 애들도 몇 시간째 지치질 않는구나. 목 다 쉬겠다…….’

오가는 손님들 중에는 예현여고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 근처라서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이 많이 오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앗! 강쌤 계신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선생님 누구랑 오셨어요?”

“우리 애들이랑.”

그는 최대한 살갑게 대답했다. 알바생이 긴장을 풀을 수 있도록. 다행히 알바생의 안색은 어둡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서 아이들이 그만 나오길 기다리는데.

태화가 또 소리쳤다.

“우와! 한 시간 추가!”

상호는 어안이 벙벙해하며 알바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흠칫하며 카운터 아래로 얼굴을 숨겼다.

‘이러다 여기서 살게 생겼네. 말을 해야겠다.’

너무 많이 줄 필요 없다고 말을 하려 하는데, 갑자기 알바생이 다가와 그의 앞 탁자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종이컵.

안에는 따끈한 커피가 담겨 있었다.

“드시면서…… 천천히 기다리세요.”

알바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뺨을 붉히며 카운터로 총총 걸어 돌아갔다.

상호는 당황하며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주면 고맙게 먹겠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나 보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별 생각 없이 커피를 마셨다.

종이컵 한쪽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맛 좋네. 근데 어떻게 한 시간을 더 기다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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