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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헤헤.”
나빛이 손패를 든 채로 웃었다.
상호는 그런 그녀의 손에서 어떤 카드를 뽑을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종목은 도둑잡기. 조커를 뽑지 않아야 하는 게임.
그의 눈동자가 나빛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헤헤헤.”
그러나 해맑게 웃기만 해서 도저히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나빛에게 조커가 넘어온 것만은 확실한데.
‘……진짜 포커페이스구나.’
그는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카드를 뽑아 자신의 패로 가져왔다.
결과는 조커.
“아싸~.”
나빛이 손뼉을 짝 쳤다.
이후로도 나빛만이 상호의 눈을 속였고, 덕분에 항상 벌칙을 피해갔다. 상호는 이불 위에 엎어져서 등을 구타당하며 생각했다.
‘나빛이는 도박하면 사람 여럿 죽이겠네…….’
태화가 카드패를 던지며 말했다.
“에이, 많이 했다. 이제 딴 거 해요.”
“뭐하게?”
“이거!”
그녀가 다섯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하나씩 접는 그거요!”
상호도 알고 있었다.
“벌칙은? 또 인디언밥이야?”
“제일 먼저 떨어진 사람이 제일 오래 살아남은 사람 소원 들어주기요.”
“그래. 해.”
그는 별 생각없이 오른손 손가락을 펴 내밀었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나니 순서가 태화, 상호, 지윤, 나빛, 세희였다. 태화가 씩 웃으며 다른 아이들과 눈길을 주고받았다.
“남자 접어요.”
‘?’
상호의 뇌가 순간 정지했다.
그는 곧 이 게임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 무조건 나 먼저 조지는 거구나…….’
그냥 그에게서 소원권 따내는 게임이다. 애들끼리는 소원을 들어줄 게 없으니까.
상호는 당황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차례가 되자 입을 열었다.
“여자 접어.”
“에~. 치사해~. 자기만~. 우우~.”
태화가 손가락을 접으며 야유를 퍼부었다.
이어서 지윤이 말했다.
“검 쓰는 사람 접으라.”
그는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고, 세희도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다음은 나빛.
그녀가 빙긋 웃었다.
“안대 쓴 분 접으세요.”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어도 되는 걸까. 상호는 세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이번엔 세희.
“머리카락 어깨까지 안 내려오는 사람…… 접으세요.”
“아, 내까지 보낼라 카네.”
지윤이 키득거리며 하나를 접었다. 상호는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다.
한 바퀴 돌아 다시 태화. 태화는 꼬리를 살랑이며 마지막 일격을 먹였다.
“꼬리 없는 사람 접어요.”
상호의 펼쳤던 손이 끝내는 주먹이 되었다. 그는 살짝 오기가 솟는 것을 느끼며 다음 판을 기다렸다. 아이들의 집중공격을 피해 보고 싶었다.
그가 죽은 후로도 게임은 계속 이어졌다. 태화가 4, 나빛이 3, 지윤과 세희가 2.
지윤은 태화를 견제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뿔 있는 사람 접어.”
태화가 하나를 접었다. 다음은 나빛.
“머리 까만 사람 접어.”
나빛을 제외한 모두가 접었고, 다음은 세희.
“눈동자 안 까만 사람 접어.”
태화와 나빛이 접었다. 이제 나빛만 2개, 다른 아이들은 전부 1개.
상호는 태화가 바쁘게 눈알을 굴리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광역공격을 잘못 쓰면 나빛이만 남고, 그러면 다음 나빛이의 공격에 태화가 죽는다. 태화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나빛만 공격해서 전부 1로 만들고, 지윤과 세희 둘 중 한 명이 실수하길 기다리는 것…….’
그녀가 자력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태화도 그걸 알았는지 벌렁 드러누우며 소리쳤다.
“아이씨, 몰라! 오늘 똥 싼 사람 접어!”
“미친년아!”
세희와 지윤이 벌떡 일어나서 태화를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나빛은 상호의 눈치를 보더니 쑥스러워하며 살며시 손가락을 접었다.
상호는 보다못해 한 마디 했다.
“거 사람이 당연히 먹고 싸면서 사는 거지……. 너무 그러지 마라.”
“으…….”
하지만 세희와 지윤은 접지도 못하고 펴지도 못하다가 그냥 게임을 포기해 버렸다.
최종적으로 나빛의 승리. 상호는 다시 손가락을 폈다.
“자, 나빛이 나중에 소원 말하고. 다시 하자. 전판에 썼던 거 안 쓰기야.”
그들은 다시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번 순서는 지윤, 태화, 세희, 상호, 나빛.
상호는 지윤을 바라보았다. 쓸 만한 광역공격은 다 나온 상태에서 어떤 공격을 할까.
“이름에 히읗 들어가는 사람 다 접으라. 성씨까지.”
“앗.”
상호는 아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다가 살짝 감탄했다. 히읗이 안 들어가는 사람은 지윤 한 명 뿐이었다.
지윤을 뺀 나머지가 다 접었고, 다음은 태화.
태화가 상호의 가랑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으으음……. 아, 오줌 서서 싸는 사람 접…….”
상호는 결국 손을 내리고 뒤로 굴렀다.
“나 안 해.”
“아잇, 쌤! 죄송해요, 안 할게요! 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