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501)

***

1학기 중간평가는 다음주 수요일. 이젠 정말로 코앞이라고 할 수 있었다.

1학기, 그것도 학기 초이기 때문에 상호의 반과 다른 반의 수업 내용은 아직 큰 차이가 없었다. 딱 하나 눈에 띄게 다른 것이 있다면, 대련의 횟수. 아무 래도 보호 아티팩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상호였기에 대련의 양이 차원이 달랐다.

거기에 중간평가가 코앞이라 교양 과목도 전부 빼버렸고, 하루 종일 전투 수업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악!”

지윤이 갈비뼈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땀에 젖은 몸에 흙이 잔뜩 묻어났다.

공격을 명중시킨 세희는 당황하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으, 응…… 괜찮아.”

지윤은 엎드린 채로 멍하니 땅바닥을 바라보다가 상호의 눈치를 살폈다. 상호도 그녀와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몇 주 동안 백 번은 싸웠는데, 한 번도 세희와 태화를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실력에 차이가 있으면 몇 번을 싸워도지는 게 당연하지만, 수준 차이가 너무 심했다.

상호는 그런 그녀가 한심하거나 밉지는 않았다. 세희와 태화가 유별나게 강한 탓이었다. 그 둘은 굳이 그가 가르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특출난 아이들이었다.

천재는 가르치지 않아도 천재다.

지윤 같은 평범한 학생이야말로 상호가 교직을 잡은 이유였다.

“지윤아.”

그가 부르자 지윤은 벌떡 일어났다.

“네.”

“너는 싸우는 이유가 뭐야?”

상호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지윤은 성철이 국가유공자라서 학비가 전 액 면제다.

즉 10등 안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동기가 부여 되지 않으면 한계가 오는 법.

그의 질문을 들은 지윤이 당황했다.

“어…….”

“중학교도 무예 가르치는 곳 나왔잖아. 특별한 이유가 없었어?”

“저는…… 운동이, 좋아서…….”

상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을 준다고 해야 열심히 할까. 아니면 벌을 준다고 해야 열심히 할까.

‘……그냥 구라를 까자.’

“얘들아. 다 와 봐.”

상호는 아이들을 향해 손짓했다.

혼자서 연습 중이던 태화와 나빛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네 명이 다 모이자 그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말을 안 한 게 있다.”

“뭔데요?”

“너희 10등 안에 못 들면 나 짤려. 이번 중간평가에서.”

세희와 태화는 눈을 퉁방울만하게 떴고, 지윤과 나빛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특히 지윤은 갈색 피부 밑으로 핏기가 싹 빠진 게 보일 정도였다.

세희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정말요?”

“응. 선생님이 좀 억지로 교사가 된 거라서. 실적을 내지 않으면 짤려.”

“거짓말이죠?”

태화는 믿지 않으려 했지만, 상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진짜야.”

상호는 철면피를 깔았다.

사실은 1학기 중간평가가 아니라 연말 학년평가고, 전부 10위권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한 명을 1등으로 만들어야 했지만, 어쨌든 실적이 안 나오면 짤린다는 것만은 진짜였다.

“너희가 날 위하거나 내 걱정을 해줄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나한테서 계속 배우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나빛이 그 말을 듣고 눈빛이 흔들렸다.

“서, 선생님. 저한테 중간평가 10등은 너무…….”

“약한 소리 하지 마. 너도 1등이 목표잖아.”

“그건…… 1년 내로 생각한…….”

“지금 10등할 자신 없으면 앞으로도 1등은 못 하는 거야. 다른 애들이 너보다 1년 더 배웠어? 다른 반 애들도 고등학교 올라온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애들이야. 걔들을 이길 자신이 없어? 그러면서 1등을 하겠다고?”

“저…….”

지윤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상호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1학년이…… 몇 명이에요?”

“285명.”

그 말을 들은 나빛과 지윤은 더 기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세희와 태화는 충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태화가 지윤의 등을 두드렸다.

“오늘 왜 그래? 평소 같았으면 제일 자신있다고 했을 거면서.”

“나는…….”

지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부들거렸다.

“재…….”

“재능이 없다는 말은 하지 마라.”

상호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1등은 재능의 영역으로 쳐줄 수 있어. 근데 10등은 아냐. 절대로 아니야.

285명 중에 10등은 니가 열심히 하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등수야. 그리고 니가 뭘 안다고 네 재능을 평가해? 너흰 아직 그럴 수준도 아니야.”

“윽…….”

지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울 것처럼 눈썹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상호는 그녀들을 쓱 둘러보았다.

“아직 시간은 있어. 나도 당연히 중간평가까지 계속 가르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희 최선을 다해.”

더 몰아붙여 봤자 역효과다. 동기부여는 결국 스스로 해야 의미가 있으니까.

선생이 혼내서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칭찬도 자제해야 했다.

상호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계속해. 세희랑 지윤이 대련하고. 태화 나빛이 연습하고.”

중간평가까지, 앞으로 9일.

1학기 중간평가

그 날 밤이었다.

저녁 여덟 시부터 어떤 소리가 교정을 울렸다. 딱. 따악. 목탁처럼 어딘가 청량한 기운이 느껴지는 소리.

무언가 단단한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방에 누워 있던 상호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세희의 목소리가 섞여 있어서였다.

‘안 가볼 수가 없지.’

그는 검을 챙기고 문을 나섰다.

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역시 세희와 지윤이 대련을 하고 있었다. 둘 다 머리 호구를 썼고, 세희는 목검을 들었다. 그럼에도 공격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긴게 느껴졌다. 그간의 가르침이 허사는 아닌 셈이었다.

상호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보이지 않는 곳에 숨었다.

세희의 목검이 지윤의 어깨를 내리쳤다.

“악!”

“일어나!”

지윤이 쓰러지자마자 세희가 일갈했다.

“너 때문에 선생님 짤리시는 거 볼 거야? 아니잖아!”

“당연하지, 가시나야…….”

지윤이 툴툴거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내도 참…… 주먹싸움은 자신 있는디, 하필 칼인기라. 맞으면서 하는 싸움은 참말로 자신 있는디…….”

“어쩔 수 없어. 스포츠가 아니라 헌터잖아. 아니면 너도 그냥 무기를 들던가.

애초에 몬스터 상대로 손으로 싸우는 게 바보인 거야.”

“무기……?”

지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강철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세희 니는 내가 왜 주먹 쓰는지 아나?”

“왜?”

“아부지가 주먹 썼댄다, 쌤이……. 나는…… 아부지가 왜 맨손으로 싸웠는지 알아낼기다.”

세희는 지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희 아버지…… 저승부대시지?”

지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니가 그걸 우째 아노? 너도…… 아는 기가?”

“추모관 사진 보고 알았어. 그리고 알아. 선생님도 저승부대신 거.”

“나는 내 혼자 아는 줄 알았네.”

지윤은 멋쩍어하며 뒷목을 긁었다.

“태화도 알고 있나?”

“모를걸. 걔는 딱 보니까 하나도 모르는 것 같던데.”

“나빛이 가는 확실히 모르드라. 같이 쌤 친구 보러 갔는디 그런 눈치드만.”

“그럼 우리만 아는 거네.”

“그런갑다.”

둘은 키득키득 웃었다. 상호에겐 세희가 그렇게 웃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는 웃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세희는 곧 웃음을 거두며 진지한 눈빛으로 목검을 들어올렸다.

“이제 널 더 열심히 패야겠어.”

“……와 그렇게 되는 기고?”

“선생님도 너도, 계속 보고 싶으니까.”

목검이 지윤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지윤은 머리 위로 팔을 교차시켜 목검을 막고, 양 손목으로 목검을 잡았다.

눈썹을 치켜뜨는 세희에게 지윤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 좀 보이는갑다.”

지윤의 발차기가 세희의 옆구리에 꽂혔다.

“……윽!”

세희가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지윤은 그 후로 세희에게 한 방도 먹이지 못했지만, 아침에 보인 모습과는 달리 의지가 넘쳤다.

상호는 어둠 속에서 그녀들의 대련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10시가 되어 기숙사에 들어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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