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501)

***

마지막 교시가 끝나기 전, 상호의 앞으로 교무실에 택배가 도착했다. 허리 정도까지 오는 길쭉한 상자였다.

그는 종례를 끝낸 후 택배를 들고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에는 태화가 남아 있었다.

“으햐~.”

태화는 신이 나서 택배를 끌어안다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상호를 향해 말했다.

“뒤돌아 계세요.”

상호는 군말없이 뒤돌며 고민했다. 리액션을 어떻게 해 줘야 할까. 놀라야 하나. 기뻐해야 하나.

테이프 북북 뜯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안 가 태화가 그를 불렀다.

“쌤!”

상호는 일부러 뚱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앞에 무언가가 들이밀어졌다.

“짜잔!”

태화가 자랑스러워하며 웃었다.

그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내민 물건을 받아들었다.

역시나. 딱 봐도 다리에 차는 물건이었다. 보행 보조 도구라고 해야 할까. 꼭 로봇의 발을 반쪽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고마워.”

“에이…….”

상호의 반응을 본 태화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다예요? 좀 더…… 읏.”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상호가 그녀의 머리를 살짝 껴안았기 때문에.

태화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푹 묻었다.

“딸 셋 아들 셋.”

“얌마. 니가 이러니까 쌤이 잘해주질 못하는 거야. 나빛이랑 지윤이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상호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밀어냈다.

그리고 보행기를 한번 써 보려고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셔츠에 빨간 입술자국이 묻어 있었다.

“너 화장하냐?”

“틴트는 다들 하는 거라구요.”

묻어있는 틴트를 털어 보았지만 번지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보행기를 차기 시작했다.

“쌤. 그거 바지 벗고 차야 되는데요.”

“뭐? 야, 그러면 어떻게 차고 다녀?”

“뻥이예요.”

반 갈라놓은 로봇 슈트 같은 보행기를 왼쪽 다리에 채웠다.

그러자 태화가 보행기에 손을 얹었다. 마나가 들어오며 보행기 여기저기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무중력 마법이에요.”

들어오는 마나의 총량이 어마어마했다. 상호도 살짝 놀랄 정도였다.

중력마법이란 것들은 전부 엄청난 양의 마나가 소비된다. 학생 수준에서는 중력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주 많은 양의 마나를 다룰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악마 융합체가 마나를 다루는 데에 통달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태화가 물러서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기계 안쪽은 무중력이라 아예 부담이 없을 거고, 기계 바깥쪽의 힘은 작용하는 방향을 꼬아서 엉덩이로 가게 했어요. 아마 엉덩이로 걷는 느낌이 날 걸요. 한번 걸어 보세요.”

상호는 왼발을 살짝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면서도 짚고 있는 검은 놓지 않았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외로 물건은 제대로 작동했다. 태화의 말대로 발에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고, 엉덩이 쪽에만 둔탁한 압박이 가해졌다.

이대로라면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파지직

마법진 주변에 불꽃이 튀었다.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마법진들은 금이 쩍쩍 가며 갈라지더니 약한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에…….”

태화가 얼빠진 얼굴로 보행기를 바라보았다.

상호는 피식 웃으며 보행기를 벗었다.

“봤지?”

“잘못 만들었나 봐요. 설계는 제대로 했는데…….”

“누나랑 같이 했으니까 설계가 정상인 건 당연하지. 그리고 물건도 잘못 만든건 아니야.”

사실 살짝 기대하긴 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지윤의 자리에서 의자를 꺼내 앉았다.

“태화야. 앉아 봐.”

“우씨…… 될 줄 알았는데…….”

태화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시무룩한 얼굴으로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상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빛에게는 다리를 보여 줬고, 세희와 지윤은 그가 저승부대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태화는 아무것도 몰랐다. 넷 중에서 제일 아는 게 없었다.

“비밀 하나 알려줄게.”

“비밀이요?”

“응. 우리 학교에선 아무도 몰라.”

극소수의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살짝 알려준 것도 오직 나빛뿐이었다.

그는 바짓단을 잡기 전에 태화와 다시 한 번 눈을 마주쳤다.

“비밀 지켜 줄 거지?”

“당연하죠.”

“믿는다.”

상호의 시커멓게 뒤틀린 왼다리가 드러났다.

“으…….”

태화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곧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다리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이거…….”

“왜?”

“익숙한 느낌이 들어요.”

“악마라서 그래.”

상호는 그녀의 뿔을 흘끔했다.

“네가 악마의 감각이 있나 보다.”

“……악마요?”

태화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쌤도 악마예요?”

“아니. 다리에 봉인한 거야.”

그는 자신의 다리를 노려보았다.

“죽여야 하는데 못 죽였거든. 죽이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서 몸하고 영혼을 찢어가지고 몸만 다리에 봉인했지.”

“그걸 왜 쌤이 해요?”

“체질이 특이해서.”

사실은 아니었다. 그저 봉인을 견뎌내고 악마의 침식을 밀어낼 수 있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놈이 마법만 보면 먹어치우려고 달려들어서…… 주변에서 마법이 돌아가는 꼴을 못 봐. 특히 자기한테 직접 작용하는 마법들.”

“그래서 마법공학 기계도 못 달고…… 고치지도 못하겠네요? 봉인하느라?”

“응.”

“그냥 평범한 기계를 달 순 없어요?”

“좋은 게 없더라. 다 조금씩은 다리에 압력이 가더라고. 그게 아니면 전신 슈트를 입어야 하는데…… 그쯤 되면 그게 더 귀찮다.”

태화는 말없이 그의 다리와 보행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많이 실망한 눈빛으로.

그러다 갑자기 상호를 향해 몸을 확 기울였다.

“쌤 그러면 공간이동은 할 수 있어요?”

“공간이동? 그러니까…… 나한테 통하는지를 묻는 거지? 내가 쓸 수 있냐가 아니라?”

“네.”

“그건 딱히 상관없어. 다리에 딱 붙어서 발동하는 마법만 아니면 돼.”

“그러면 제가 공간이동 아티팩트를 만들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마법을 못 하니까.”

공간이동 아티팩트는 둘 중 하나였다. 좌표가 한 곳으로 정해져 있거나, 좌표를 사용자가 정해야 하거나.

전자는 유동적으로 쓸 수가 없고, 후자는 마법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쌤도 이게 차라리 편해서 이렇게 다니는 거야. 어쨌든 고맙다. 저거는 기념으로 간직할게.”

상호는 태화가 만든 보행기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말에 태화가 벌떡 일어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쌤.”

“응?”

“제가 꼭 동반 공간이동 배워서 쌤 데리고 다닐게요.”

“……네가?”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동반 공간이동은 단독 공간이동보다 훨씬 어려운, 학생은 꿈도 꿀 수 없는 고등급의 마법이었다. 사람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닐 만큼 자유자재로 쓰는 건 민정에게도 불가능했다. 그런 일이 가능했으면 전쟁도 쉽게 이겼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이라면 언젠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졸업 전까진 무리겠지만.’

그는 씩 웃으며 그녀의 뺨을 집었다.

“해 봐, 그럼.”

“장난 아니에요!”

“믿어. 믿는다니까. 이제 가서 저녁이나 먹자.”

“넹.”

상호는 보행기를 챙기고 태화와 함께 교실을 나섰다.

태화는 상호가 들고 있는 보행기를 보고는 못내 아쉬웠는지 한숨을 푹 쉬었지만, 곧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팔짱을 끼려고 시도했다.

“야, 이건 안 돼.”

“힝! 껴안기도 했으면서!”

“그게 껴안은 거냐? 머리 살짝 안아 준 거지. 어쨌든 팔짱 끼고 돌아다니는 건 안 돼.”

“히이잉……. 근데 쌤.”

“응?”

태화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 악마 이름이 뭐예요?”

“몰라. 싸울 때 통성명을 따로 하진 않았어.”

“그리고 아까 몸만 쌤 다리에 봉인했댔잖아요.”

“응.”

“그럼 영혼은 어디 있어요?”

상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비밀.”

“아 뭐예요! 비밀 지켜 드린다고 했는데에에!”

“미안. 이건 안 돼.”

“치…….”

“가자. 가자. 배고파 죽겠다.”

그는 태화와 나란히 걸어가며 검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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