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501)

***

4월의 두 번째 월요일.

상호는 출석부를 펴며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주말에 잘 쉬었는지, 아파 보이 지는 않는지.

다행히 다들 멀쩡했다.

“세희랑 지윤이, 발가락 단련 했어?”

“네.”

“나빛이는 그…… 수녀한테 잘 배우고 왔어?”

“네. 이제 방어막 접을 줄 알게 됐어요.”

나빛의 앞에 보호막이 떠오르더니 모서리가 조금씩 꺾이면서 가운데에 날카로운 각을 만들었다. 삼각뿔 모양으로.

창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눈에 띄게 발전한 건 분명했다.

상호는 방어막 너머 나빛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 확실히 정한 거지?”

“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투 유형으로 중간평가 신청할게.”

“네.”

그때 태화가 끼어들었다.

“쌤, 저는요? 저는 뭐 해줄 말 없어요?”

“넌 연습하고 대련만 똑바로 하면 돼.”

“우씨…… 나도 더 배우고 싶단 말이에요! 가르쳐 줘요!”

태화가 발을 구르자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너 도서관에 가면 마법서 있는 거 알아, 몰라?”

“알아요!”

“가본 적은 있어?”

“……없어영!”

처음에는 불만스러운 듯 매섭게 대답하더니 불리해지니까 해맑게 웃는다.

눈썹을 하도 찌푸려서 근육통이 날 것 같았다. 상호는 미간을 문지르며 조곤 조곤 말했다.

“악마 융합체는 마법 빨리 배우잖아. 마법 문자도 못 읽는 거 없을 거고……. 혹시 마법사 선생님 필요해?”

“아뇨.”

“그치? 그런 건 자습할 수 있잖아. 태화 네가 평소에도 열심히 하면 선생님도 의욕이 생길 것 같다.”

“저는 선생님이 관심 주면 열심히 할 수 있어요! 관심! 관심관심관심!”

“관종이네, 진짜.”

세희가 툭 내뱉었다.

태화의 빨간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쌤.”

“응?”

“좀 있으면 마법공학 발명대회죠?”

“그렇지.”

태화가 책상을 양손으로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저 그거 할래요!”

“……네가?”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마법이랑 마법공학은 다르다는 거 알지?”

“알아요!”

“마법공학…… 배운 적 있어?”

“아니요!”

‘그럼 왜 하는 거야…….’

알 수가 없다. 그는 출석부 옆에 꽂힌 일정표를 읽었다.

발명대회는 사흘 후, 목요일.

“그냥 중간평가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꼭 상 받아올게요!”

태화의 눈빛은 집념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상호는 그녀를 말리려다가 문득 그녀가 노력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져서 생각을 바꿨다.

“그럼…… 해봐. 열심히 할 거지?”

“네!”

태화는 자신 있게 소리쳤다.

학생이 어디 이상한 곳도 아니고 대회를 나가겠다는데 선생이 뭐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대할게.”

“상 받으면 뭐 해주실 거예요?”

“소원권 있잖아. 또 뭐를 해줘야 돼?”

“소원권 하나 추가!”

“……알았어, 알았어.”

“히힛.”

태화는 만족한 듯 자리에 앉았다.

마법공학은 하나도 모른다면서 대체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열심히만 한다면야.

상호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을 정리하며 출석부를 덮었다.

마음을 만드는 소녀

“아아아~ 좆박았따!”

“야 인마, 어디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을…….”

“바가따바가따바가따!”

태화가 책에 얼굴을 처박으며 발을 굴렀다. 그 앞에서 또다른 책을 읽던 상호가 꾸지람을 했다.

둘은 방과후 교실에 남아 마법공학에 관한 서적을 읽고 있었다. 상호는 태화가 무언가를 하겠다는 게 기특하기도 했고, 그동안 잘 신경써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작한 날부터 난리였다.

“쌤! 마법적 위상 계수가 뭐예요?!”

“모르겠다.”

“점성예상식의 절대상수는 왜 알아야 해요? 별이랑 기계랑 뭔 상관이에요?”

“그게 뭐냐……. 이거 읽어 볼래? 이건 과학 쪽 같은데…….”

마법공학은 마법만 다루는 게 아니라 과학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둘에는 수학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태화는 상호가 내민 책을 보고는 울상을 지으며 등받이에 몸을 한껏 늘어뜨렸다.

“이게 뭐야……. 이거 1학년 수준 아닌가 봐요.”

“수학은 앞으로도 안 배울 텐데. 아마 마법공학 특수반이 있을 거야. 그런 반이 아니면 힘들겠다, 이거는.”

그는 책을 덮으며 태화를 바라보았다.

“그냥 그만할까? 이거는 사흘 만에 가능한 수준이 아니야.”

“그래도…….”

태화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만들고 싶은 거 있단 말이에요.”

“뭔데?”

“비밀이에요.”

태화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힘들다고 징징대면서도 그녀는 꾸준하게 책을 읽으려 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책을 내려다보았다.

마나에 관한 내용은 어찌 이해가 됐지만, 그 중간중간 나오는 마법 문자와 수식은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마법은 몰라도 마법공학은 확실히 무리였다.

그가 돕기는 힘들 듯했다.

“태화야.”

“네?”

“쌤이 아는 사람 중에 아티팩트 만드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한테 가서 배워 볼까?”

“여자예요, 남자예요?”

엉뚱한 질문에 상호는 잠시 말을 잃고 어리벙벙해했다. 그게 왜 중요한지.

‘남자면 배우려는 건가?’

“여자야. 아는 누나.”

“그럼 배워 볼래요.”

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상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책을 정리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럼 내일 학교 끝나자마자 같이 가자. 오늘은 늦어서 안 되겠다.”

“둘이서 차 타고 가요?”

“그래야지.”

“으흠~. 개이득~.”

둘은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

다음 날 방과 후.

상호의 차에 탄 태화가 조수석 창문을 열고 세희와 지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입가에 환한 미소를 걸고.

“안뇽~ 쌤이랑 살림 차리고 올게~.”

“조용히 해.”

상호는 핀잔을 주며 창문을 올리고 차를 몰았다. 백미러로 아이들의 심통 난 표정이 보였다.

교문을 나와 도로에 들어서자 태화가 신난 듯 물었다.

“제가 처음이죠? 쌤이랑 단둘이 타는 거?”

“아니. 지윤이 태운 적 있는데.”

“……끄응.”

태화가 알아들을 수 없게 꿍얼거리며 다리를 떨자 상호는 그녀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다리 떨지 마라. 사람들이 안 좋게 본다.”

“왜 안 돼요?”

‘……그건 나도 몰라.’

상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렸을 땐 그도 다리를 가만 두지 못했다. 앉으면 위아래로, 서면 옆으로 떨었다. 버릇을 고칠 수 있었던 건 예경이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지만, 태화에게는 설명이 필요할 듯했다.

“너는 쌤이 막 촐싹댔으면 좋겠어?”

“그래도 전 좋아할 건데요.”

그 말에 상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태화야, 가벼운 사람은 말에 힘이 없다. 양치기 소년 알지?”

“그건 남들을 속여서 그런 거잖아요.”

“행동도 마찬가지야. 경박한 사람은 아무리 진지하게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아. 화나고 억울해해도 무시하고…… 결국은 손해를 보게 돼. 봐봐, 솔직히 말해서 네가 아프다고 보건실 보내달라는 거랑, 세희가 아프다고 보건실 보내달라는 거랑. 느낌이 같을까? 쌤이 누굴 더 믿을까?”

태화는 말없이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논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세희와 비교당하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자기보다 세희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것부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 상호는 잠시 갓길에 차를 세웠다.

“태화야.”

“……왜요.”

“선생님이 평소에 누굴 제일 걱정하는 지 알아?”

“세희랑 나빛이요.”

“너야.”

태화가 움찔했다.

그러나 곧 불만 섞인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잖아요.”

“진짜야, 인마.”

상호는 태화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보도록 했다. 그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너 성력으로 치료 안 된다는 말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지금도 심장이 떨려.”

거짓말이 아니었다.

치마 줄인 날 나빛과 태화의 대화. 악마라서 치료가 안 듣는다는 말. 나중에 조사해서 사실이란 것을 깨닫고는 잠까지 설쳤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련할 때 상호가 제일 집중하는 것도 태화에게 걸린 목걸이의 상태였다.

“네가 진짜로 아프다고 하면 선생님이 못 알아볼 것 같아? 네가 아프면 나는 무섭다고. 그래서 꾀병 부리지 말라는 거야.”

태화가 코를 훌쩍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울지는 않지만 눈시울은 붉고, 목이 메였는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세희가 더 믿음직스럽다는 거 아니에요.”

‘……내가 졌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들고 손바닥을 펴 보였다.

“알았어. 내가 말을 잘못했어. 난 너도 믿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렇다는 거야.”

“그래요? 저도 믿어요?”

뒤에 이은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태화는 대답을 요구하듯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상호는 그녀의 촉촉히 젖은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세희도, 다른 애들도. 다 똑같이 믿어.”

“그렇지만 절 제일 걱정하시는 거죠?”

“응.”

태화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그럼 됐어요.”

“해결됐어?”

“네.”

상호는 다시 핸들을 잡고 학회를 향해 차를 몰았다.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려고 오른쪽을 보니 태화는 아예 그를 향해 돌아앉은 채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실쭉 웃었다.

더 이상 다리는 떨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