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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 후, 상호는 건흠의 반으로 찾아갔다.
건흠의 반은 아직 종례 중이었다. 나이 든 선생답다고나 할까, 매일 하는 종례일 텐데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건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청소 똑바로 하고. 이 청소를 말이야, 매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니까. 그런데 매일 하고 나면 쓰레기통에 먼지니 쓰레기니 하는 것이 확 쌓여.
느이들이 밖에서 발 털고 쓰레기 아무데나 던지지나 않으면은 선생님이 청소를 시키겠냐, 안 시키겠냐. 으응?”
“그래도 시킬 거잖아요~!”
“어떻게 알았냐? 알면 빨리 청소해.”
의자 올리는 소리와 책상 끄는 소리가 들렸다. 상호의 교실에서는 들을 일 없는 소리였다.
상호는 문 옆에 기대어 건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 되면 불러라. 교무실에 있을 테…… 어이쿠, 강 선생.”
문을 열고 나오며 외치던 건흠이 그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상호는 검을 짚고 그의 앞에 똑바로 섰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근육은 우락부락하고 눈매는 사납지만, 방금 학생들에게 들려준 목소리는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허리에는 상당히 긴 길이의 검을 하나 차고 있었다.
건흠이 그의 다리를 흘끔하며 물었다.
“부를 일 있으면 전화로 하지 그랬나. 힘들게 굳이…….”
“직접 뵙고 말씀드릴 일이라서요.”
상호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건흠의 반은 청소 중이고, 다른 반은 전부 하교를 마쳤다.
“잠깐 이야기 좀 괜찮으십니까?”
“일이 있긴 한데…… 잠깐이면 상관 없지. 긴가?”
“저는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따가 괜찮을까? 내가 일 금방 끝내고 애들 하교시키고 갈게.
음……. 어디서 볼까?”
“좀 한적한 곳이 좋으니까…… 옥상이 낫겠습니다.”
그의 말에 건흠이 고개를 기웃했다.
“옥상까지……? 뭐, 나는 좋아. 간만에 높은 곳 바람이나 쐬지 뭐. 그럼 한 30분 후쯤 보자고.”
“예, 때맞춰 기다리겠습니다.”
건흠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교무실로 걸어갔다.
상호는 건흠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바로 옥상으로 향했다.
***
시원한 바람이 상호의 머리칼을 휩쓸고 지나갔다.
높은 곳의 풍취를 즐기러 올라왔건만, 정작 상호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이 소식을 어떻게 건흠에게 전해줘야 하는지.
담벼락에 팔을 걸치고 교정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미안해. 애들이 청소를 덜 해서 혼 좀 내느라 늦었네.”
“괜찮습니다.”
“미안, 미안.”
건흠은 머리를 긁적이며 상호의 옆에 섰다. 그 역시 담벼락에 팔을 올리고 팔짱을 끼었다.
부른 것은 상호이니 운도 상호가 떼어야 했다. 영 어색하고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상호는 입맛 한번 쩝 다시고 말을 걸었다.
“주 선생님.”
“음?”
“선생님네 반 아이들은 자루감기 모양이 다르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오, 그걸 봤어? 눈썰미가 좋은데?”
건흠은 피식 웃고 대답했다.
“자루감기는 너무 촘촘하게 묶으면 요철이 줄어들어서 잘 미끄러지잖나. 딱 한 번 꼬아서 묶으면 울퉁불퉁해져서 잡고 휘두르기 딱 좋거든. 그래서 애들 칼 보고 제대로 묶여 있지 않으면 다시 묶어 주지. 특히 여자애들이라 예쁘게 묶겠다고 촘촘하고 평평한 거 좋아하거든. 애들은 그래서 나 싫어해. 푸헐헐…….”
“그런 것치고는 애들 표정이 밝던데요.”
예현여고는 학생이 담임을 선택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사제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지만, 건흠의 반은 담임이 잔소리가 많은데도 아이들이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상호는 그가 어떤 선생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선생님 잘 따르나 봅니다. 선생님도 아이들한테 애정이 깊은 것 같고.”
“자네만 하겠어? 강 선생 반 소문이 자자해, 학생들이 선생님 엄청 좋아한다고.”
“저야 뭐, 넷밖에 안 되니까…….”
상호는 슬슬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선생님. 혹시 작년에 학생이 실종된 적 있지 않습니까?”
건흠의 몸이 굳었다.
“……있지. 누가 말해 줬나? 교장선생님하고 이사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어쩌다 알게 됐습니다. 11월에 실종된 거 맞습니까?”
“맞아.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건흠은 눈을 부릅뜨며 상호의 어깨를 잡았다.
꽤 강하게 잡았지만, 위해를 가하려는 것이 아님을 상호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 이름이 뭡니까?”
“송다혜. 다혜를 본 적 있나? 마지막으로 본 게 어디야?”
살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묻는 질문이었다.
상호는 눈을 감았다.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것도 작년 11월입니다.”
“어디서? 자네 11월이면 여기 없을 때잖아. 대체 어떻게 만났나? 어디로 간 거야?”
“진정하고 들으세요.”
그는 건흠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의 말과 행동이 건흠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한 듯했다. 그의 눈이 멍하니 초점을 잃었다.
“……설마.”
“제가 만난 날…… 다혜는 검술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호는 저녁놀을 배경으로 나무를 차던 소녀를 떠올렸다.
“그게 신기해서 제가 뭐 하냐고 물어봤고…… 그 애는 다음날 떠나는 호송임무 때문에 연습하는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호송 임무? 임무? 설마 프로 헌터 일을 했다는 말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건흠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을 떡 벌렸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나?”
“제가 검을 살짝 더 가르쳐줬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다혜가 더 알려달라면서 열흘쯤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뉴스가 나오더군요.”
“아.”
건흠은 상호의 손을 놓고 비틀거렸다.
“작년 11월……. 동해고속도로…….”
“예. 거기서 호송 일을 하다가……. 아마도.”
상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 후로는 못 봤습니다.”
“어……어으…….”
건흠의 목에 핏줄이 솟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흘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말도 안 돼…….”
꾹 감은 눈에서 눈물이 굵게 흘러내렸다.
“가족 한 명 없이 살아온…… 그런 아이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어떻게 그런 아이를 데려가느냔 말이야…….”
상호는 말없이 그의 넓은 등에 손을 얹었다.
태산만 한 등이 들썩거리며 그 속에서 깊은 괴성을 토해냈다. 내장을 끊긴 듯 구슬프고 처절하게.
자식 잃은 짐승이 지르는, 언어가 되지 못한 울음을 쏟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