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쌤~!”
“선생님~.”
효은이 담배를 다 태웠을 때쯤 나빛과 지윤, 그리고 나빛의 수행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잔해는 대충 옆으로 치워놨지만, 전투의 흔적을 숨기기는 당연히 무리였다.
그래도 몸은 말끔하게 치료를 했다.
문 바깥에 있는 사제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쏟아졌다.
상호는 그 눈빛들을 흘려 넘기며 나빛이 내민 케이크 박스를 받았다.
“여기요. 딸기맛.”
“응, 고마워.”
그는 옆에 다가와 앉은 나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서 효은을 쳐다보니, 그녀가 못 볼 꼴을 본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호는 케이크를 던져버리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또 뭐?”
“뭐는 뭐가? 그냥 보는 건데…… 근데 완전 애기들이네.”
“고 1이니까.”
“아니, 네 제자라길래 너만큼 성깔 있는 애들일 줄 알았는데…… 딴판이네.”
효은은 상호가 내민 케이크를 받으며 나빛에게 씩 웃었다.
“잘 먹을게.”
“앗!”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지 이제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 혹시, 나효은 헌터님…….”
“선생이 누구 만나는지 안 말했나 보구나. 하긴 일일이 신경쓸 인간이 아니지.”
“놀래켜 주려고 일부러 안 말한 거야. 착각하지 마.”
상호의 핀잔에 효은은 콧방귀를 뀌었다.
“어련하시겠어.”
효은이 박스에서 케이크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포크에 묻은 크림을 쪽쪽 빨다가 상호의 양 옆에 앉은 지윤과 나빛을 돌아보았다.
“둘 다 신앙인이야?”
“아니, 얘만.”
상호는 나빛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효은의 손가락이 지윤을 가리켰다.
“그럼 얘는?”
“성철이 형 딸이야.”
“뭐? 진짜?”
효은이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지윤을 바라보았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
“눈썹이 닮았잖아, 눈썹.”
“아, 듣고 보니 있네. 아저씨 눈썹이.”
지윤은 효은을 금방 알아봐서 놀라지 않았다. 대신에 아버지의 친지를 만났단 것에 여러 복잡한 감정을 품은 표정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효은은 지윤을 빤히 쳐다보더니 또 수녀복 어딘가에서 지갑을 꺼내 지폐를 몇 장 내밀었다.
“아가. 이거 용돈 해.”
“어…….”
50만 원 남짓. 액수가 좀 컸는지 지윤이 당황하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받아. 받아서 어머니 드려.”
그리고 입모양으로 효은에게 쏘아붙였다.
‘잘하는 짓이다, 애들 버릇 안좋게.’
그러거나 말거나 효은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지윤이 돈을 받아들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게 세상이란다. 돈, 술, 담배. 섹…….”
상호는 검으로 효은이 들고 있는 케이크 받침대를 올려쳤다.
퍼억
“…….”
“주둥이를 꿰매야지, 미친년…….”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검을 내렸다.
효은은 얼굴에 분홍빛 생크림을 잔뜩 묻힌 채로 굳었다. 나빛이 당황하며 수행원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손수건, 손수건 주세요…….”
나빛은 수행원이 건넨 손수건으로 효은의 얼굴을 닦았다. 효은의 다크서클 진한 눈이 상호를 노려보았다.
“애들 아니었으면 닌 진짜 뒈졌어.”
“참나, 다리병신한테도 털리는 주제에 애들 핑계는…….”
“또 뜰까? 또 떠?”
“그래, 오늘 끝을 보자. 나와, 밖으로 나와.”
상호가 벌떡 일어나 검을 뽑으려 하자 지윤과 나빛이 안절부절못해하며 그를 말렸다.
“쌤, 참으세요, 참아요…….”
“싸우지 마세요…….”
결국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애들만 아니었으면 진짜…….”
“이젠 지가 애들 핑계 대네.”
효은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볼일 보고 빨리 꺼져. 그래서, 나한테 무슨 조언을 해달라는 건데?”
“성창.”
상호는 나빛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성창 만드는 법, 얘한테 설명해 줘.”
그 말에 효은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나빛의 연회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같은 색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효은이 입을 열었다. 나빛을 향해서.
“전투신관이 되려는 거야?”
“네.”
“왜?”
“음, 그게…… 남들은 앞에서 싸우는데 저만 도망치기는 싫어서요. 그리고 사람은……, 언젠간 싸워야 하는 때가 오는 법이니까요.”
나빛이 순진한, 그러나 결의가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효은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나빛을 향해 몸을 숙였다.
“얘야.”
“네.”
“담배 피워본 적 있어?”
“네?”
엉뚱한 질문에 나빛이 당황했다. 상호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며 역정을 냈다.
“애한테 뭔…….”
“넌 빠져. 진지한 이야기야.”
효은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상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효은이 다시 나빛에게 물었다.
“술은 좋아해?”
“한 번도…….”
“게임은?”
“게임도…… 안 해봤어요.”
“그럼 좋아하는 남자는?”
그 말에 나빛이 당황하며 곁눈질로 상호를 흘끔 쳐다보고는, 재빠르게 다시 효은과 눈을 마주쳤다.
“……있어요.”
나빛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수행원이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는 등에 식은땀이 쫙 배어났다.
‘왜 날 보고 말하는 거야, 나빛아…….’
“그나마 다행이네.”
효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낯빛은 어두웠다.
“네 선택이라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괜찮겠니? 전투신관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길이 아니야.”
“결심은 했어요.”
“어떤 결심을 했든 다른 결과를 맞게 될 거야.”
이쯤 되니 상호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서 듣는 지윤도 같은 마음인 듯했다.
“뭔데 자꾸 그래?”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요?”
하지만 효은은 쉽게 알려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나빛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들은 상호와 지윤에게서 약간 거리를 두고 물러나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그 대화가 길어질수록 상호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이야기가 끝난 후 효은은 나빛을 데리고 상호에게 돌아왔다.
나빛의 안색은 창백했다.
“나빛아.”
“네.”
“괜찮아?”
“……헤헤.”
상호의 물음에 나빛은 애써 미소지었다. 곤란할 때 짓는 웃음이었다.
전투신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효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향해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등을 돌린 채로 바닥에 떨어진 신앙회의 문양을 지켜볼 뿐이었다.
원망스럽다는 듯이.
***
“웬일로 배웅까지 해?”
“시꺼.”
결국 나빛은 시간이 될 때마다 효은을 만나 성력을 다루는 수업을 받기로 했다.
효은이 상호를 따라 대성당 입구까지 따라나왔다. 아이들은 이미 수행원과 함께 차에 타고 있었다.
상호는 작별 인사를 하려고 효은을 돌아보았다.
“간다. 술담배 작작 하고…….”
“잠깐.”
효은이 그의 팔목을 잡았다.
그녀는 그를 끌어당기고 눈을 마주쳤다.
“너 내 머리카락, 원래 어떤 색인지 알지?”
모를 수가 없었다. 효은의 머리카락은 전쟁 2년 반 내내 새하얀 백발이었으니까. 지금 그녀의 머리는 검게 염색을 한 것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냐?”
“몰라. 저년은 원래 저런갑다 했지.”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나빛이한테 들어 보니까 뭐 성력을 쓰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모양이드만.”
“맞아. 그럼 너 내가 왜 술담배 하는지는 알아?”
“당연히 좋아서 하는 거 아냐? 뭔 소리야?”
“하긴 모르겠지. 니가 어떻게 알겠냐.”
효은이 혀를 차자 그는 황당해하며 눈을 끔뻑였다.
“그냥 까놓고 말하면 안 돼? 술담배랑 머리카락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데?”
“말 못해.”
“왜?”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한테 새어나가면 존나게 힘들어지니까.”
“나한테도 못 알려주냐?”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됐고, 애한테나 잘해, 병신아. 나빛이라는 애한테.”
효은은 톡 쏘아붙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락도 가끔 좀 하고…….”
“뭐?”
“아냐. 아무 말 안 했어. 빨리 꺼져.”
“잠깐만, 잠깐만.”
상호는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효은의 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의심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괜찮냐?”
효은의 뺨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으, 응?”
“오늘따라 맛이 갔는데. 설마…….”
상호는 검지와 엄지로 효은의 눈두덩이를 위아래로 벌렸다.
“마약했냐? 술담배로 모자라서?”
“……니가 그럼 그렇지.”
효은은 자신의 뺨에 얹힌 상호의 손목을 잡았다.
“니가 알아차려 주기를 기대한 내가 병신이다. 아, 그리고.”
그리곤 아래로 확 잡아끌었다.
상호의 손끝에 뭔가가 닿았다.
“진짜 뽕 아니야, 병신아. 내가 지금 나이를 몇 개를 더 먹었는데…….”
“아니……!”
상호는 식겁하며 손을 잡아뺐다.
효은은 한 방 먹인 게 통쾌한지 비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이제 진짜 꺼져.”
“미친년, 진짜…….”
상호는 손을 흔들어 감각을 털어내며 이를 갈았다.
효은이 돌아서서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수녀복 끝단이 바람에 나부꼈다. 상호도 돌아서서 나빛의 차로 향하다가,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마침 그때 효은도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버린 둘은 동시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다시금 돌아서서 각자 가야 할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