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날.
“꺄아아악! 테디 씨!”
태화는 반에 들어오자마자 교실 한가운데에 놓인 곰인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같은 가게에 가서 같은 인형으로 샀다. 상호는 곰인형을 껴안고 굴러다니는 태화를 향해 물었다.
“그렇게 좋아?”
“네! 테디 씨, 죽은 줄 알았어…….”
“네가 죽였었잖아.”
세희가 한심하다는 듯 핀잔을 주자 태화의 꼬리가 빳빳하게 치솟았다.
태화는 머리를 싸쥐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내가? 내가 죽였다고?”
“네가 불로 태워 버렸잖아.”
지윤이 거들었다. 태화의 붉은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럼 이건 누구야?”
“다른 인형이지, 뭐.”
“아니야! 꺄아악!”
태화가 인형에 얼굴을 묻고 절규했다. 상호는 멀뚱히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아침드라마 찍냐?”
“히히.”
태화가 고개를 들고 배시시 웃었다.
“그래서 왜 사온 거예요? 테디 씨 수업은 끝난 거 아니었어요?”
“나빛이 때문에.”
그의 말에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요?”
“응.”
상호는 허공섭물로 인형을 조종했다.
곰인형이 저 혼자 일어서서 나빛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아장아장 걷는 인형을 보고는 뺨을 붉혔다.
그런 나빛에게 상호가 물었다.
“귀엽지?”
“네.”
“찔러.”
나빛의 앞에 상호의 칼이 두둥실 날아왔다.
갑자기 대뜸 던져진 말에 나빛은 멍하니 검을 바라보았다.
“……네?”
“그게 문제야.”
교탁 앞에 서 있던 상호는 자신의 검을 다시 가져와 잡고 나빛을 향해 다가갔다.
“다른 애들은 그런 반응 안 해. 네? 라고 되묻지 않는다고. 태화야.”
“네.”
“태워.”
“아까운데…….”
태화는 입맛을 다시며 곰인형을 집어들고 검은 불꽃으로 순식간에 태워 버렸다.
아깝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에는 거침이 없다. 그 모습을 본 나빛은 안절부절못해하며 변명했다.
“저, 저도 하라면 할 수 있어요…….”
“망설였잖아.”
상호는 허공섭물로 쓰레받이를 꺼내 타고 남은 재를 치웠다.
“그러면 안 된다니까. 고작 인형에도 폭력을 못 쓰는 건 잘못된 거야. 그거는 네가…… 물론 상대가 아플까봐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네가 폭력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야. 폭력을 쓰는 너 자신을 상상하질 못하는 거라고.”
“꼭 써야 해요……?”
나빛이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는 사회와 사람을 보호하는 직업이지만, 한편으로는 살생을 업으로 삼은 직업이기도 했다.
신앙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전선의 모두가 죽으면, 그때부터는 후방의 신앙인이 싸워야 하니까.
그는 나빛의 손을 잡았다.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어?”
“네…….”
“그럼 지금 방어막 만들어서 나 때려봐.”
“그건…….”
나빛이 울상을 지었다.
“선생님은…… 못 때리겠어요…….”
상호는 잠시 고민했다.
‘하긴, 어른을 때리는 게 익숙하지 않겠지.’
“그러면 나 말고 다른 애들은 때릴 수 있겠어?”
“네…….”
“누구?”
그의 물음에 나빛이 단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태화를 가리켰다.
태화가 어안이 벙벙해했다.
“……나?”
“쿠흡…….”
“푸하하하하!”
세희는 뭐 뿜는 소리를 내며 입을 가렸고, 지윤은 아예 대놓고 폭소를 터트렸다.
태화가 어이없어하며 소리쳤다.
“나라고? 왜 나야? 너 나 싫어해?”
나빛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지만, 그래도 태화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내리지 않았다.
상호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목걸이를 꺼냈다.
“태화야. 가만히 한 대 맞아 줘라.”
“아니…… 말이 안 되는데요? 야, 하나빛! 나 너한테 뭐 잘못했어?”
대답은 세희가 했다.
“너 옛날에 나빛이한테 싸가지없이 굴었잖아. 나랑 싸웠을 때.”
“내가? 언제?”
“나빛이는 너 아픈 줄 알고 걱정해줬는데 너는 막 놀리고 그랬잖아. 안 아팠다면서 다시 물어보니까 아팠다고 말 바꾸고.”
“그랬어? 진짜 그거야? 야, 나빛! 그게 언젯적인데 이제 와서 이러기…….”
상호는 태화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냥 깔끔히 한 대 맞고 풀자. 그게 최고다. 어차피 네가 잘못한 건 맞잖아.”
뭐라고 반박하려던 태화는 한숨을 푹 쉬고는 교실 한가운데에 섰다.
그리고는 나빛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 때릴 건 아니지?”
대답 대신 방어막이 사납게 날아들었다.
“히이익!”
태화는 순간이동으로 방어막을 피했다. 그녀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가슴팍을 부여잡고 덜덜 떨었다.
“쌤, 쌤! 쟤 진짜 저 때리려고 해요! 모서리로 때리려고 한다구요!”
“목걸이 걸어 줬잖아. 칼도 맞아 봤으면서…….”
“그래도 쎄게 때리면 아프단 말이에요! 진심으로 때리려고 한다니까요?! 쟤눈 봐요!”
상호가 나빛을 돌아보자 그녀가 방긋 웃었다.
“헤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폭력을 쓰는 대상이 정해져 있는 건가?’
방어막이 태화를 향해 내리꽂혔다.
태화는 다시 순간이동으로 피했지만, 금방 따라잡혀 등에 방어막을 얻어맞았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그녀를 방어막이 쫓아다니며 패기 시작했다.
“하나빛! 너 죽었어, 진짜! 아야! 미안, 미안해! 쌤! 살려주세요! 한 대라면 서요!”
“기왕 맞는 김에 나빛이 연습 좀 도와줘.”
“나만! 나만 미워해애애!”
덕분에 나빛은 그 날 원없이 방어막으로 사람 때리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넌 좀 죽어라
토요일 아침.
험난해도 얻은 게 많은 일주일이었다. 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상호는 침대에 누운 채로 생각했다.
‘좀만 누워 있다가 일어날까…….’
오전에는 일정이 없고, 오후에 나빛과 함께 가야할 곳이 있었다.
지금은 아침 9시. 나빛과 약속한 12시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다.
‘세희 검술이나 좀 봐줘야겠다. 아, 지윤이 권법도 좀 봐야 되는데.’
쉬면서도 제자들 생각이 났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티비를 켰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티비 화면에는 오늘 만나러 가기로 한 여인이 나오고 있었다.
[오늘 헌터를 만나다! 에서는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저승부대 출신! 한국 최고의 신앙인, 나효은 헌터님입니다! 짜잔!]
사회자가 옆에 앉은 여인을 향해 양팔을 펼쳤다.
여인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화려한 차림새였다. 얼굴은 청초하고 화장은 투명했지만 딱 거기까지, 입고 있는 옷은 다 가리긴 했지만 은근히 가슴을 부각시키는 디자인이었고, 검은 장발은 땋기도 하고 구불거리기도 해서 신앙인이라기보다는 아티스트 같았다. 중간중간 박힌 새치가 눈에 띄었다.
거기에 화장을 안 해도 심한 다크서클 덕분에 뇌쇄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어딜 봐도 독실한 신의 신자는 아니었다.
상호는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또 콧대 고쳤네…….’
[나효은 헌터님! 지난 2회에서도 모셨었지요. 어떻게 근황 한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효은이 빙긋 웃었다.
[늘 그렇듯 다친 사람들 치료하고, 가끔은 몬스터들이랑 싸우고, 그렇게 살지요.]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은쟁반에 옥구슬이네, 꾀꼬리 같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감탄했다. 상호에게도 감탄스럽긴 했다. 술담배를 그렇게 하면서 어떻게 저 목소리를 유지하는지.
[아, 맞아요! 헌터님은 성력으로 싸우기도 하지요! 이야, 정말 대단합니다.
남들은 싸우거나? 치료만 하는데? 헌터님은 둘 다! 그러면 저승부대 시절에도 그러셨나요?]
[네. 물론 치료사가 저밖에 없어서 치료를 주로 하긴 했지만요. 다같이 싸울 땐 다같이 싸웠죠.]
[크아~, 그러면 저승부대 사람들이 전부 헌터님께 목숨을 빚진 것 아닙니까?
헌터님이 없었으면 저승부대도 없었고, 저승부대가 없으면? 이 나라도 없었고! 그러면? 헌터님이 계셔서 이 나라가 살아남은 거네요?]
[호호호…… 그건 아니죠, 호호…….]
‘지랄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상호는 효은을 보며 혀를 찼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고 보면, 신앙회에서 헌터님처럼 싸우는 신앙인들을 부르는 명칭이 있다는데요. 정확히 뭐라고 부르나요?]
[편한 대로 부르면 돼요. 신앙회에서는 성직자들을 딱딱 분류하진 않거든요.
분류는 괴렵협회가 좋아하는 방식이니까요. 그래도 부른다면…… 신앙회 소속이라면 싸우는 사람은 전투신관, 치료하는 사람은 치유신관이라 부르면 다 알아들어요. 협회에서도 그렇게 부르구요.]
그때 상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지윤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쌤 저랑 스파링 해주세요!!
‘스파링?’
일반적으로는 격투기 종목의 규칙대로 링 위에서 싸우는 연습 경기를 뜻하지만, 무예 헌터 사이에서는 내공을 쓰지 않고 체술로만 겨루는 대련을 뜻했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지윤이 너 쌤 다리 아픈 거 알지?
-앗
‘깜빡했구나…….’
그가 쓴웃음을 짓는 와중에 지윤이 재차 문자를 날렸다.
-죄송해요… 그럼 미트만 들어 주세요!
-어디로 가면 되는데?
-별관 체단실이요! 지금 아무도 없어요
-금방 갈게.
상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기며 외출 준비를 했다.
켜놓은 티비에서 효은과 사회자가 수다를 떨었다.
[효은 헌터님은 참전 때 17살이었죠? 그럼 부대에서 제일 어렸겠네요?]
[아, 그건 아닌…… 으흠, 그게…….]
[앗! 이렇게 당황하는 걸 보면…… 알려지지 않은 부대원들 중에 효은 헌터님보다 어린 사람이 있군요! 그렇죠?!]
[으흠! 그, 그렇죠.]
[그 분과는 연락 많이 하시나요? 나이차가 별로 안 났을 텐데, 둘이서 사이가 좋았겠네요!]
[아뇨, 그 새…… 아니, 그 애랑은 별로 친하진 않았어요. 종전 후에 만난 적도 없고요.]
[아아, 그래도 보고 싶지 않을까요? 티비로 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영상편지 한 번 보내 주세요.]
[그럼…… 그럴까요? 그 친구 별명이 강아지였으니까, 누렁이로 부를게요.]
상호는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서는 효은이 뽀샤시한 특수효과를 받고 있었다. 그녀가 곱게 눈웃음을 지었지만, 상호에게는 예쁜 척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누렁아, 누나야. 옛날 생각 많이 난다. 근데 바빠서 만나진 못할 것 같아.
누나 맘 알지? 가아아아끔은 연락도 좀 하고 그래.]
해석하면 이런 뜻이었다.
개새끼야, 우리 옛날에 존나 싸웠잖아. 너 만날 시간 없어. 뭔 소린지 알지?
뒈지기 직전까진 연락하지 마.
‘조까, 이년아. 오늘 간다.’
그랬다. 연락 안 하고 찾아갈 예정이었다. 오후에 나빛과 함께.
준비를 마친 상호는 검을 짚으며 별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