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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맞을 각오 하고 오라.
상호는 허리에 붕대를 두르며 스스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원래 이러려고 했으니까.’
늘 웃고 지낼 순 없다. 아이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 그게 상호의 원래 계획이었고, 그게 옳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 자신은 그의 생각보다 더 정이 많았고,
아이들은 그의 생각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세상은…… 너희들 생각보다 훨씬 차가워.’
상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소녀를 떠올렸다.
소녀도 약하지 않았다. 그녀의 실력은 상호가 갓 참전했을 때보다 강했고, 그래서 상호도 소녀가 첫 실전을 겪는 데 회의감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는 죽었다.
아이들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아이들이 예쁠수록, 아이들을 위할수록, 그는 매정해져야 했다. 세상처럼.
‘살짝 쓰리네…….’
상호는 붕대의 매듭을 질끈 동여매었다.
이미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랐다. 익숙한 상처일 텐데 오늘은 유난히 쓰렸다.
그래도 그는 신앙인에게 치료를 받지 않았다. 이 상처는 기억해야 하는 상처니까.
시력을 잃은 오른쪽 눈이 욱신거렸다.
‘어쩔 수 없었어.’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세희와 나빛, 유난히 그를 잘 따르고 착한 아이들.
‘이게 옳아.’
처맞을 각오한 사람만 받겠다고 했다. 처맞는다는 것은 몸만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린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에게 더욱 모질어져야 했다.
그래야 강해지니까.
그래서 상호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몸도, 마음도, 한계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다.
처치를 마친 상호는 보건실 침대에서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어?”
지윤의 물음에 세희가 대답했다. 많이 풀죽은 목소리였다.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뭔가 일이 있으셨던 거 아닐까? 태화가 짜증나게 했다거나…….”
“뭐? 갑자기 왜 나야? 어이가 없네…….”
태화의 헛웃음이 들렸다.
“그렇게 치면 난 안 혼내셨잖아. 너랑 나빛이랑 뭔가 잘못한 거 아니야?”
“잘못했으면 그걸 말하셨겠지.”
“그럼 역시 다른 일이 있나? 다른 반 쌤한테 어이없게 혼나셨다든가.”
“아닐 거야.”
나빛이 웅얼거렸다.
“우리한테 화풀이할 분이 아니잖아…….”
상호는 이빨을 부숴버릴 듯이 앙다물었다.
저런 아이들을 앞으로 때리고 울려야 한다니.
‘……난 못해.’
지금 들어가서 아이들을 봤다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결국 상호는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다.
***
교무실로 온 상호는 자신의 책상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종례는 설미에게 부탁해 끝냈다. 그녀는 지금 그의 옆에 와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계속 묻고 있었다.
“상호 씨, 고개 좀 들어 봐. 응? 무슨 일 있어?”
“……죄송해요.”
“아니, 뭐가 죄송한데. 어디 아파? 애들이 상호 씨 걱정하면서 울었다니까?”
“제가 때려서 울은 거예요.”
그 말에 설미가 깜짝 놀랐다.
“상호 씨 애들 때렸어? 왜?”
“전투는…….”
때리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다. 당연히.
상호는 설명하려다 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응.”
“저는 교사 될 자격이 없나 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안 되겠다. 상호 씨 따라와.”
“예? 아니, 잠깐만…….”
“잔말 말고 따라와!”
설미는 상호를 잡아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
“마셔.”
상호는 눈앞에 찰랑이는 소주잔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들이 온 곳은 실내포차.
맞은편에 앉은 설미는 방금 전 민증 검사를 받은 후부터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쭉 들이키고 다 토해봐. 누나가 다 들어줄 테니까.”
“저희 내일 출근하잖아요.”
“쫌만 먹지 뭐. 밤새서 마실 것도 아니니까 자고 일어나면 돼.”
“선생님은…….”
“어허. 사석에선 누나.”
“누나는 잔 없어요?”
“난 운전해야지.”
설미가 씩 웃으며 물컵을 들었다.
“짠.”
상호는 한숨을 쉬며 그녀와 잔을 부딪혔다.
설미는 물을 술처럼 들이켰다.
“키야~.”
“물이잖아요.”
“너 심심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짠 했으면 빨리 마셔.”
그도 술잔을 기울였다.
“쓰지?”
“당연히 쓰죠.”
“난 술이 달…….”
“그거 형들한테 귓구멍 뚫리도록 들었어요.”
“에잉.”
설미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서. 무슨 일 있었어? 반 아이들이랑. 상호 너 평소에 아이들 좋아했잖아.”
“그게…….”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설미에게 전부 말하기는 힘든 내용이었다. 그의 과거와, 해련과 이사장의 내기, 그리고 아이들의 사정까지 전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뭉뚱그려 말했다.
“꼭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 있는데…… 때리지 않으면 못 가르쳐요. 그런데…… 도저히 애들을 때릴 수가 없어서…….”
말을 마쳐도 설미는 바로 답해주지 않았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한참 동안 그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곧 설미가 입을 열었다.
“상호 너 전에 그러지 않았나? 맞을 각오 된 학생만 받는다고.”
“맞아요.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저는 애들 못 때리겠더라고요.”
“그렇지?”
그녀가 후훗 웃었다.
“애들이 귀엽지?”
“……그렇죠. 그거 때문에 못 때리는 거죠.”
상호는 설미가 술병을 드는 것을 보고 잔을 내밀어 받았다.
두 사람은 한 번 더 잔을 부딪히고 쭉 들이켰다. 설미가 상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벌써 취한 건 아니지? 얼굴이 빨개.”
“평소에 안 마시니까요. 안 마신 지 세 달은 됐어요.”
“아, 연말에 다같이 마셨을 때구나. 왜, 평소에 안 마시는 이유가 있어?”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마실 사람들은…… 만나기 힘들어서.”
“그래?”
설미는 안주를 몇 개 집어먹더니 말을 이었다.
“상호야.”
“네.”
“애들도 나름대로 각오를 하지 않았을까?”
“했겠죠. 그런데 내가 문제예요. 애들이 아니라…….”
상호는 슬슬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신경질적으로 술을 들이키고 직접 따랐다.
“상호야.”
“네.”
“솔직히 말해 봐. 계속 숨기는 게 있잖아.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너 혼자 끙끙대는 거랑 똑같잖아. 머리 두 개 모였으니까 두 개 다 써 봐야지. 그럼 뭔가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겠어?”
“……그러면.”
상호는 술을 또 마셨다. 오늘따라 왠지 잘 받는 느낌이 들었다.
“절대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 하겠다고 약속해요.”
“그럼, 물론이지.”
“가르쳤던 아이가…… 죽은 적이 있었어요.”
그는 식탁에 팔을 올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싸쥐었다.
“딱 하루, 가르쳤는데…… 화물 호송 일을 하다가 몬스터한테 죽었어요. 그거 때문에, 그런 애가 생기지 않도록, 학생들한테 실전이 뭔지 가르치려고 했어요. 그래서 내 특기인 무예만 받은 게 아니라 마법, 신앙, 그런 애들이 신청했어도 다 받아 줬어요. 내가 가르칠 건 무예가 아니라 전투니까.”
“응.”
“그래서 나는…… 한계로 몰아붙이는 거예요. 애들을. 항상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언젠간 피를 보게 되니까. 그래서 애들을 때렸어요. 오늘 처음으로. 채찍질하려고…….”
“응.”
“그런데 그러니까 또 이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건…… 목표 없이 그냥 달리라고 채찍질만 한다면…… 끝이 없다는 거. 나는 아이들이 어떤 성취를 얻든 간에 그 아이를 떠올릴 거고…… 애들이 잘못될까 봐또 때리면서 채찍질할 테고. 그걸 아이들이 내게서 떠날 때까지 계속하겠죠.
그건…… 저는…… 절대로, 버틸 수가 없어요…….”
“당연하지.”
설미는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상호의 입에 넣어 주었다. 상호는 안주를 씹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이 고인 눈으로 식탁만 내려다보았다.
“네가 뭐 때문에 그러는진 알겠어. 근데 좀 착각하는 게 있는 것 같애.”
“뭔데요?”
“때리고 잘해주면 되잖아?”
“아니 못 때리겠다니까…….”
안 그래도 술기운이 올라오던 상호는 옛날 성격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리고 잘해주면 그게 채찍이에요? 그런 식으로는 한계까지 못 몰아붙이잖아요.”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미는 빙긋 웃었다.
“상호야,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봐. 네 애들을 네가 가르쳤을 때. 그리고 네 애들을 다른 선생님이 가르쳤을 때. 어떤 게 나아? 어떤 게 애들이 더 강해질 것 같애?”
“그거는…….”
상호는 혀를 찼다. 좀 부끄러웠다.
“나요.”
“그치? 자신 있잖아. 너도 네가 가르치는 데에 자부심이 있을 거 아냐?”
“있기는…… 있지만.”
“그럼 된 거 아냐? 네가 애들 가르쳐서 다른 반 애들 이기면, 그걸로 네 애들은 다른 선생님이 맡는 것보다 좋은 길을 걷게 된 거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그리고 또, 만약 네가 지금 이렇게 다 포기하고 도망치면 애들은 너보다 못한 선생님들한테 배우게 될 텐데. 그래도 좋아?”
그 말에 상호는 경한이 세희를 눈독들이던 것을 떠올리고 눈을 부릅떴다. 술이 확 달아날 정도였다.
‘씨바……, 그건 안 되지.’
“아뇨. 당연히 싫죠.”
“그럼 고민 해결이야?”
상호는 설미가 내민 잔에 잔을 치며 입맛을 다셨다.
“조금……은요. 고마워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지만 마음의 짐은 확실히 덜었다. 설미와 이야기하기 전에는 교직을 때려칠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싹 사라진 채였다.
설미가 그를 보며 씩 웃었다.
“그럼 이제 마시는 일만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