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태화의 마법에 대강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 다음 날 아침부터 태화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상호는 출석부를 펴며 태화의 눈치를 살폈다.
‘뭔 일 있나?’
설마 어제 일에 불만이 있는 걸까. 자기 마법인데 자기 맘대로 못 부르게 했다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상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화야.”
“네?”
“혹시 무슨 일 있어?”
태화는 생긋 웃었다.
느낌이 조금 생소했다. 평소에는 좀 버릇없어도 밝게 웃는데, 오늘은 뭔가 억지로 지어낸 듯한 웃음이었다.
“아니에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확실한데, 더 깊이 물어보긴 부담이 되었다. 상호는 속으로 쩔쩔맸다. 안 그러던 아이가 저러니 설마 불치병이라도 걸린 건 아닌지 겁이 났다.
“태화야. 선생님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꼭.”
“엥. 쌤이 도와주면 큰일나는데.”
태화는 피식 웃고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별거 아니니까 선생님은 신경쓰지 마세요.”
도와주면 큰일나는 일이란 게 뭘까.
어쨌든 태화가 저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출석부에 체크를 했다.
그런데 방금 태화의 말이 불현듯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쌤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기분이 정말로 나쁜 모양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호는 안절부절못해하며 조례를 마쳤다.
***
상호는 칠판에 물백묵으로 글씨를 쓰고 있었다.
지금은 2교시, 국사 시간. 조례 때부터 태화가 계속 걱정됐지만, 말을 안 하니 도울 수도 없어서 가만히 내버려두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평소에는 수업 중에도 신나게 떠드는데.
“쌤.”
태화가 그를 불렀다. 상호는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가 반갑기까지 했다.
“응, 태화야. 왜?”
“저 보건실 가도 돼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안색도 창백했다.
무엇보다 꼬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상호는 걱정이 되어 물백묵을 놓고 태화에게 다가갔다.
“뭐야, 어디 아파?”
그런데 태화가 벌떡 일어나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태화야?”
“선생님.”
지윤이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냄새 때문에 그래요. 피 냄새 때문에.”
그때서야 상호는 태화가 왜 상태가 안 좋은지 알아차렸다.
‘아…….’
그도 여자가 생리할 때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었다. 전쟁 때도 예경, 민정, 효은과 부대껴 지냈고, 예경과는 사귀면서 이것저것 다 해보기도 했다. 그저 시쳇말을, 은어를 모른다 뿐이지 알 건 다 알았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을 만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갔다. 주말에 한 게 아니라면 슬슬 할 때가 되었을 터였다.
“미안하다, 태화야. 어서 보건실 가. 혼자 갈 수 있겠어?”
“네…….”
태화는 비틀거리기까지 하면서 반을 나갔다. 상호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옆에서 세희가 중얼거렸다.
“쟤 저저번 주에 했는데…….”
“응?”
상호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세희야, 뭐라고?”
“태화 이번달에 이미 했어요. 저저번 주 금요일에 생리대 들고 화장실 가는거 봤는데…….”
상호는 머릿속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진짜야? 그…… 혹시 생리를 자주 하는 체질이 있나?”
“있긴 한데…….”
세희는 입맛을 다셨다.
“쟤는 아닐걸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그랬다.
태화가 특이한 체질일 확률보다는, 당연히 꾀병을 부릴 확률이 컸다.
상호는 두통이 몰려와서 이마를 짚었다.
‘맞네, 국사 싫어하지…….’
안 그래도 오늘은 태화가 싫어하는 과목만 꽉꽉 들어차 있는 날이었다. 물론 태화가 좋아하는 과목은 해봤자 가정뿐이지만.
아무래도 보건실에 따라가 봐야겠다. 상호가 절뚝거리며 문으로 걸어가자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가서 끌고 올게요.”
“아냐, 됐어. 꾀병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태화 네가 제일 내 다리를 아프게 하는구나…….’
그는 한숨을 푹 쉬고 보건실로 향했다.
***
상호는 보건실 문가에 서서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들을 들었다.
“패드는 갈았니?”
“네.”
“그럼 저기 누워 있어. 괜찮아지면 말하구.”
“네.”
상호는 복도에 난 창문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목소리는 끙끙 앓았지만, 꼬리는 이따금씩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살랑거렸다.
‘꾀병 맞네…….’
하루쯤 꾀병 부린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다. 귀엽게 봐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요즘 애들을 꽉 잡으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땡땡이를 치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면학 분위기가 조성이 되지 않았다.
상호는 검을 힘주어 잡으며 양호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강상호 선생입니다.”
“아, 들어와도 돼요.”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침대가 몇 개 있고, 창가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 앞에 앉은 여인은 청바지와 하얀 면티 위에 의사 가운을 걸친 채였다.
머리를 동그랗게 묶은 보건 선생, 성윤향이 상호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태화 좀 보러 왔습니다.”
“태화요? 아, 맞다. 담임이시구나.”
윤향은 커튼이 쳐진 침대를 가리켰다.
“거기 누워 있어요. 방금 누웠으니까 깨 있을 텐데. 태화야.”
하지만 태화는 대답이 없었다. 윤향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태화야?”
“제가 보겠습니다.”
“안 돼요. 그래도 여학생이니까.”
윤향은 침대로 다가가는 상호를 말리고 커튼을 젖혀 태화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새 자네요. 신기하네. 분명 방금 누웠는데…….”
상호는 윤향을 따라 커튼 안으로 들어왔다. 태화는 이불을 덮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태화의 꼬리가 스멀스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윤향에게 말했다.
“잠깐 둘이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그래요. 담임이니까. 마침 저도 다른 데 볼일이 있어서…… 나가볼게요.
혹시 아픈 학생 오면 전화해 주세요.”
윤향은 그렇게 말하고 보건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상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태화를 내려다보았다. 견학 갈 때도 봤지만, 잘 때는 정말 천사가 따로 없었다. 뿔과 꼬리가 달렸어도.
그렇지만 사실은.
“안 자는 거 알아, 태화야.”
꼬리가 살짝 꿈틀하는 게 보였다.
태화가 눈을 살며시 뜨더니 앓는 소리를 냈다.
“쌔앰…….”
“많이 아파?”
“네…….”
꾀병이라도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쓰라렸다.
상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화야.”
“네.”
“마지막으로 생리했을 때가 언제였어?”
“한…… 3월 1일? 그때부터 며칠 했어요…….”
“세희는 너 저저번주 금요일에 생리하는 거 봤다던데?”
“엥.”
태화의 어깨가 꿈틀했다. 뜨끔한 모양이었다.
“걔, 걔가 잘못 본 거예요.”
“태화야.”
“네.”
“쌤은 피 냄새 엄청 잘 맡거든?”
전쟁 때 하도 많이 맡아서 둔감해질 법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유발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호는 피 냄새에 아주 민감했다.
지금은 딱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태화 넌 아무 냄새도 안 난다.”
“맡아 보실래요?”
태화는 이불 아래에서 다리를 살짝 벌렸다.
상호는 그냥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이윽고 태화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잘못했어요.”
“그렇지?”
상호는 씩 웃었다.
“이제 말 안 해도 알지?”
“네.”
“수업이 싫어도 들어야지. 그리고 꾀병은 부리지 마. 자꾸 그랬다간 네가 진짜로 아플 때도 의심하게 되잖아. 난 그런 거 싫다. 차라리 엎드려서 자.”
“……아니에요.”
태화는 웅얼거리며 이불을 걷고 침대에 앉았다.
“수업 잘 들을게요.”
꾀병 부린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는지, 오늘따라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상호는 만족하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선생님이 네 생리 주기까지 챙길 수는 없잖아. 언제 시작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런 걸 선생님이 메모해서 따졌으면 좋겠어? 아니지?”
당연히 아니어야 하는데, 어째 태화의 표정이 미묘했다.
상호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태화야?”
“으음……, 사실…… 에이, 아니에요.”
태화는 손사래를 치며 상호를 따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요, 쌤. 부축해 드릴게요.”
“됐어. 먼저 가.”
먼저 가라고 했건만, 태화는 걸어가는 상호의 옆에서 알짱거리며 함께 걸었다.
태화의 입에서 수업 잘 듣겠다는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상호는 마음속으로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그를 향해 방긋 웃는 태화와 눈을 마주쳤다.
항상 이렇게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매는 때리는 사람이 더 아프다
항상 웃으며 지낼 수는 없는 법이다. 상호는 운동장에서 대련하는 세희와 지윤을 바라보았다.
같은 무예가들이라 그런지 태화와 싸울 때보다 훨씬 격렬했다. 그가 잘 아는 분야인 만큼, 그의 눈동자도 빠르게 그녀들을 훑었다. 움직임, 빠르기, 시선의 위치, 빈틈의 유무.
검을 들고 있는 쪽이 세희이기에 세희는 거리를 벌리려 했고, 지윤은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달려들었다.
“윽!”
지윤의 주먹이 세희의 어깨를 쳤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상호는 말없이 대련을 속행시켰다.
지윤은 금속로 된 장갑을 끼고 있었다. 손등 부분이 특히 두꺼운 물건이었다.
그녀는 그 부분으로 세희의 검을 쳐냈다.
‘막기는 잘 막네. 빈틈도 잘 찾고.’
맨손 격투를 하는 아이들은 무기를 든 아이들과 연습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면 그게 연습이고, 같은 맨손 무예가 친구 찾아서 스파 링하면 그게 대련이다. 귀찮게 이것저것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지윤은 제법 눈이 빨랐다. 칼이 날아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보고 피하면서 세희의 허점을 노렸다.
하지만 세희에겐 통하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1등을 거저먹은 것이 아니었기에.
“흡!”
세희는 자세를 낮춰 지윤의 주먹을 피하고, 훤히 드러난 겨드랑이를 칼 손잡이로 힘껏 찍었다.
“악!”
지윤은 급소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야야…….”
대련은 끝난 듯 보였다. 세희는 지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등을 털어주었다.
그런데 상호가 조용했다. 누가 이겼다거나,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당황하며 상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상호는 고민 중이었다.
마음에 안 들었다. 공격 하나하나에 의지가 담겨있지 않은 것이.
살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모든 공격은 당연히 살초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평소 생각이었지만, 아직 1학년인 아이들에게 그 정도까지는 요구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의 공격은 명백히 각자의 최선을 다한 게 아니었다.
마음은 성실하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넘기엔 택도 없이 부족하다.
“지윤이는 뒤로 나와 있어.”
지윤이 쭈뼛거리며 세희에게서 물러났다. 세희 또한 풀이 죽은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했다.
상호는 세희 앞에 섰다.
“네가 제일 자신 있는 방식으로 공격해 봐.”
그 말에 세희는 몸을 확 낮추고 한 손으로 상호의 배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예전에 그와 세희가 처음 대련했을 때 썼던 기술이었다.
거침없고, 빨랐다.
하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상호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라, 검에 찌르겠다는 의지가 깃들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배의 경계를 노릴 뿐이지, 아예 꿰뚫어 창자를 보겠다는 결심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라고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
상호는 날아오는 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칼날이 그의 배를 찔렀다.
“……어?”
세희는 멍하니 상호의 셔츠에 배어나오는 피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검과 칼집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 선생님…….”
“여기서 멈출 줄 알고 있었어.”
상호는 셔츠를 들어 배에 난 상처를 내보였다.
깊이 찔리진 않았다. 그에겐 세희가 피부쯤에서 멈출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더 깊이 들어오려 했다면 호신강기로 밀어낼 수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칼날은 피부보다 살짝 더 들어오는 데에 그쳤다. 그래도 날카롭게 베여서 피는 줄줄 흘렀다.
“왜 멈췄어? 아니지, 왜 여기까지만 공격하려고 했어?”
“서, 선생님. 치료해요. 치료…….”
세희가 파들파들 떨었다. 너무 심하게 놀랐는지 안색이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나빛이 그의 상처를 보고 서둘러 달려왔지만 상호는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대답부터 해.”
“저, 저는, 그게 들어갈 줄…….”
“세희야. 왜 찔렀냐가 아니라 왜 덜 찔렀냐를 묻는 거야. 왜 덜 찔렀냐고.”
상호가 따지자 세희는 고개를 흔들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몰라요, 몰라요…….”
“네 칼이면 네가 알아야지. 손에 분명 감각이 있을 거 아니야. 얼만큼 찔렀는지.”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제발 빨리 치료해주세요…….”
세희가 흐느끼며 그의 앞에 주저앉았다.
상호는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싶은 것을 참았다. 평소처럼 이름을 부르며 괜찮다고, 나는 이런 상처 수천 번은 겪어서 상관없다고,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걷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 너희를 위한 거라고.
그렇게 달래 주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되었다.
“공격할 땐 죽일 각오로 공격해.”
상호가 세희를 내버려두고 돌아서자 나빛이 그의 옆에 다가왔다.
“선생님, 치료…….”
“나빛이 너도 서 봐.”
그는 자신의 발치를 가리켰다.
나빛이 허둥지둥 다가와 그의 앞에 차렷 자세로 섰다.
“네, 네.”
“공격해.”
“아…….”
나빛은 당황하며 양손을 맞잡고 꼼지락거렸다.
“저, 저 아직, 잘 모르겠는…….”
“언제까지 모를 거야?”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시간 많이 있었잖아. 그런데 그동안 뭐 했어?”
“저어…… 방어막은, 연습 많이 했어요…….”
“그럼 펼쳐 봐.”
나빛은 목에 걸린 신앙회 문양을 잡고 집중했다.
그러자 반투명한 황금빛의 막이 그녀와 상호의 사이에 펼쳐졌다.
상호는 손을 들어 방어막에 가져갔다.
쨍강
힘을 주어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볍게 뻗은 손에 산산조각이 났다.
나빛은 깨친 유리창처럼 무너져 내리는 방어막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빡
“흐윽!”
방어막을 깬 상호의 손이 나빛의 머리를 쳤다.
당연히 다칠 정도로 치진 않았지만, 일부러 아프라고 때렸다. 나빛의 눈가에 눈물이 찰랑찰랑 고여 갔다.
하지만 상호는 멈추지 않았다.
“또 안 피하지. 또.”
그는 다시 한 번 나빛의 머리를 때렸다. 정수리와 이마의 사이를 손바닥 아래 부분으로.
“네가 왜 안 피하는지 알아? 아프게 맞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
맞은 데를 또 맞자 나빛이 꾹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
“으윽……흑…….”
상호는 이를 꽉 악물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도 나빛의 머리를 치는 이 손의 감각을 도려내버리고 싶었다.
“피할 땐 죽을힘을 다해 피해야지. 살려고 발버둥쳐야지. 여태껏 맞아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피할 줄도 모르지.”
퍽, 퍽.
머리를 얻어맞던 나빛은 결국 대성통곡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흐으, 흑, 으허허헝…….”
서럽게 우는 세희와 나빛에게 지윤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태화도 많이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상호는 세희가 떨어뜨린 자신의 검과 칼집을 집어들고 말없이 본관으로 향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