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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었다.
상호는 운동장에 선 네 명의 아이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목걸이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주말에 들었지? 오늘은 너희끼리 대련시킬 거야.”
태화를 제외한 세 명의 아이들은 전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태화는 입술을 삐죽 내미는 중이었다. 저게 그녀 나름대로 진지한 표정인 모양이었다.
상호는 세희와 태화에게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보호막 마법 아티팩트야.”
그 한 마디만 하고 끝. 그는 그녀들에게 목걸이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게 있어서 안전하다고 알려주면 상대의 공격을 열심히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 이걸 믿지 말라고 하면 마음 놓고 공격할 수도 없을 것이다.
상호는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서 아이들이 목걸이를 너무 신경쓰지 않도록 했다.
“세희랑 태화부터. 해보자.”
아이들은 운동장 한가운데로 나란히 걸어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이 좋은 친구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상호는 그녀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풀풀 흩날리는 투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세희와 태화가 중앙에 섰다.
“준비하고.”
상호의 말에 세희와 태화가 자세를 잡았다.
세희는 몸을 낮추며 검으로 태화를 겨누었고,
태화는 나른한 표정과 자세로 세희를 향해 검지를 들어올렸다. 귀찮다는 듯이.
너 따위는 상대도 안 된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시작.”
상호의 구호와 함께 태화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초보 수준에서 마법사들이 무예가를 상대로 선전하는 이유. 순간이동.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싸움의 향방이 크게 달라진다. 상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세희를 지켜보았다.
‘아직 세희는 발이 느리다.’
분명히 세희는 그 나이 또래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순간이동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상승의 보법도 배우지 못한 상태. 과연 세희는 태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사라졌던 태화는 하늘 높은 곳에 검은 연기를 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뿔 가운데에 보랏빛 에너지가 모여들었다.
“히야아압!”
콰아아앙
세희는 정통으로 내려꽂힌 광선을 몸을 굴려 피했다.
떨어지던 태화는 다시 한 번 순간이동으로 허공에서 사라졌다.
평범한 사람은 그녀의 나이대에 저만큼 빨리 순간이동을 쓸 수 없다. 물 흐르듯 마법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악마 융합체의 특징이었다.
세희의 뒤쪽에 나타난 태화가 이번엔 검은 불덩이를 날렸다. 세희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돌려 피하고 태화에게 달려들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태화는 검은 연기를 남기며 사라졌다.
세희의 검은 허무하게 검은 연기를 갈랐다.
“느려, 둔탱아! 꺄하하하!”
“우씨…….”
세희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제 상호에게도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세희에겐 태화를 잡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할 거니?’
전투를 지켜보던 상호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세희가 태화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태화가 세희를 공격하는 것도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선 검은 불덩이는 너무 느렸다. 여러 개를 만들어서 던지기는 했지만, 세희처럼 단련이 된 사람에게는 걸어서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느려터졌다.
그나마 빠른 뿔 광선 공격은 명중률이 아주 개판이었다. 뿔이 머리 위에 달려있으니 광선이 어디로 쏘아지는지 보이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둘 중 한 명이 지칠 때까지 끝이 나지 않을 듯했다.
아이들도 그걸 알아차린 듯했다.
“헉, 헉…….”
“으……. 도망 참 잘 치네.”
태화는 뺨에 흐르는 땀을 닦더니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곤 검은 연기를 흩날리며 세희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돌기 시작했다. 예전에 인형을 상대로 썼던 바로 그 전법이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상호는 기를 이용해서 감각을 증폭시켜 불꽃 너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폈다.
태화가 원을 조여듬에 따라 불꽃의 벽이 점점 세희에게 다가왔다.
“어쩔래? 어쩔래? 에베베베베~.”
연기 속에서 태화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세희를 놀렸다.
세희는 혀를 차더니 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몸을 푹 숙여 땅에 왼손을 짚었다. 오른손으로는 검을 잡은 채로.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로 승부를 보겠다, 이건가.’
지금 세희의 자세는 최대한 많은 방향으로 튀어나갈 수 있는 자세였다.
발은 살짝 대각선으로 놓고, 몸을 수그려 땅을 짚은 자세. 언제든지 몸을 튕겨 옆이나 앞으로, 만약 제비를 돈다면 뒤로도 뛰쳐나갈 수 있는 상태였다.
태화는 일정한 빠르기로, 일정한 간격으로 순간이동을 쓰며 세희를 약올리고 있었다.
“뚜벅아~ 뚜벅뚜벅~ 걷기밖에 못한대요~.”
상호가 태화의 순간이동 패턴을 파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희도 번개처럼 검은 연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꺄핫! 너 어딜 노리는……, 어?!”
태화는 엉뚱한 곳을 노리는 세희를 비웃다가, 머릿속의 관성을 따라 또 순간 이동을 하고는.
눈앞에 날아드는 칼날을 보며 얼이 빠져 버렸다.
“뭐, 뭐야…… 쿠엑!”
칼이 태화의 얼굴을 때렸다.
충격은 거의 없겠지만, 깜짝 놀란 태화는 그대로 땅바닥에 나자빠져 버렸다.
그녀는 당황하며 얼굴을 문질렀다.
“엥? 으엥? 이, 이게 대체…….”
“세희 승.”
상호는 그렇게 선언하며 종이에 체크를 했다.
“둘이 선생님 앞으로 와.”
세희는 뿌듯해하는 웃음을 지으며 상호에게 걸어왔고, 태화는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넋이 완전히 나가서는 순간이동도 안 쓰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상호는 팔짱을 끼고 그녀들을 둘러보았다.
“둘 다 아쉬운 게 보인다.”
당분간은 엄한 선생님이어야 했다. 칭찬은 하면 안 된다.
상호는 우선 세희에게 말했다.
“세희는 공격 수단이 너무 없어. 만약 태화가 명중률만 좋았다면 처음에 전투가 끝났을 거야. 답은 둘 중 하나야. 너도 순간이동만큼 빠르게 움직이든가, 검기를 날려서 장거리 공격을 할 수 있게 되든가.”
이번에는 태화.
“태화는 더 맘에 안 들어. 훨씬 우위에 있는 상성인데도 져 버렸잖아. 마법명중률이 너무 낮아, 너무. 그리고 행동이 뻔해. 다 뻔해. 공격을 날리는 위치도 뻔하고, 불로 벽 만들어서 가두는 것도 뻔하고, 순간이동으로 나타나는 위치도 뻔해. 그게 왜 그런지 알아? 네가 생각하는 걸 귀찮아해서야.”
“힝.”
태화는 주눅이 든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세희도 이겼는데 꾸지람을 들을 줄은 몰랐던 듯 서운해하는 얼굴이었다.
상호는 그녀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칭찬을 해 버렸다.
“그래도 둘 다 잘했어.”
그는 입을 열어놓고는 아차 싶었다. 아직 띄워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세희는 생글거리며 웃었고, 태화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잘했죠? 그죠?”
“……목걸이 나빛이랑 지윤이한테 넘겨주고 앉아서 쉬어.”
상호는 방정맞게 입을 놀린 자신을 책망하며, 운동장으로 걸어가는 나빛과 지윤을 바라보았다.
***
“쌤! 얘 자꾸 웃어서 못 때리겠어요!”
“헤헤.”
지윤은 대련을 시작하자마자 달려들어 나빛의 멱살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주먹을 휘두르질 못했다. 나빛이 바보처럼 자꾸 웃었다.
상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빛이는 당분간 빼고 해야겠다. 빨리 특훈이나 시켜야지…….’
그 날
“메롱~ 메롱~.”
태화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바닥에 쓰러진 지윤을 놀렸다.
어제 세희에게 져서 그런지 놀리는 정도가 훨씬 심했다. 태화는 지윤의 머리 맡에 쪼그려 앉아 꼬리로 지윤의 뺨을 마구 문질렀다.
“내가 이겼지롱~.”
“아이고, 진짜 말도 안 되네…….”
지윤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탄했다.
상호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태화의 명중률은 어제보단 나아진 상태였다. 뻔한 전법을 쓰는 건 아직 바뀌지 않았지만, 세희보다 느리고 공격 거리가 짧은 지윤을 상대하기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지윤은 순간이동을 쓰는 태화를 단 한 번도 따라잡지 못했다. 이기는 게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둘이 와봐.”
상호는 가까이 다가온 그녀들에게 간단히 조언을 했다.
“지윤이는…… 어제 세희한테 한 말 들었지? 발을 빠르게 하든가, 장거리 공격을 하든가. 그리고 태화는…… 뭐 할 말이 없다. 이기긴 이겼지만 잘한건 딱히 없네.”
“에엑! 이겼잖아요! 잘했잖아요!”
태화의 항변에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뒤통수를 긁었다.
“너 그…… 그 뭐냐. 그거. 뿔 사이에서 광선 쏘는 거. 그거 마법 이름이 뭐야?”
“음…….”
태화는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킹갓쁘띠큐티빔이요.”
“……네 뿔빔 있잖아, 그거 쏘는 의미가 없더라. 가만히 있는 물건도 못 맞추겠더만.”
눈으로 안 보고 쏘니까 맞을 리가 없다.
“못 맞출 거면 쓰지 말고, 쓸 거면 맞추려고 노력해야지. 너 그거 연습한 적없지?”
“엥. 중학교 땐 다 맞았는데…….”
“아닐걸. 잘 생각해 봐. 뿔빔 말고 다른 마법으로 끝낸 거 아니야?”
“어……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태화는 손으로 턱을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간만에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상호에겐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킹갓쁘띠큐티빔을 똑바로 쏘란 말이죠?”
“응. 뿔빔이 속도 자체는 빠르니까. 조준만 잘 하면 충분히 쓸만한…….”
“그러니까 킹갓쁘띠큐티빔을 제대로 맞출 수 있도록 연습하란 말이죠?”
“그…….”
상호는 빙글거리며 웃는 태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킹갓뭐시기 연습 많이 하라고…….”
“킹! 갓! 쁘…….”
“그만해.”
세희가 태화의 옆구리를 검지로 찔렀다. 태화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가 자신을 찌른 게 세희인 것을 알고는 으르렁거렸다.
“왜! 네가 뭔데!”
“유치해.”
“유치해? 내 작명센스가? 그럼 네가 지어주든가!”
“어…….”
세희는 당황하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데몬 레이저?”
“우와, 개구려! 이름에서 음식물쓰레기 냄새 나!”
“네, 네가 지은 것보단 낫거든!”
상호는 붉으락푸르락하는 그녀들을 떼어놓으며 지윤과 나빛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모여 봐, 모여 봐. 잘됐다. 다같이 태화 마법 이름 좀 붙여 주자.”
“아, 그럼 저도요!”
“저도 지어 주세요.”
지윤이 신이 나서 손을 들었고, 나빛도 그녀를 따라 손을 들었다.
상호에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너희는 뭘 지어? 너희는 마법이 아니잖아. 마법은 모양이 정해져 있으니까 지어놓고 불러야 편한 건데…….”
“저 주먹에 이름 붙여 주세요.”
“저는 방어막…….”
방어막은 그렇다쳐도 주먹에 대체 왜 이름을 붙일까. 상호의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래, 그래. 같이 짓자, 같이. 선생님도 그런 거 못하니까. 대신 태화먼저 하고.”
“네.”
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세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는 안 지어도 돼?”
“응?”
세희는 당황하며 지윤과 상호의 시선을 피했다.
“나, 나는 필요 없어.”
“왜? 어제 그거 멋지던데? 엎드려서 칼 어깨에 올리는 거…….”
“그거는…… 그냥 자세잖아.”
“뭐,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대충 이야기가 끝난 듯했다. 상호는 종이와 펜을 들었다.
“태화 네가 쓸 수 있는 마법이…… 빔 쏘는 거하고, 불덩이 만드는 거하고, 땅에 불지르는 거하고, 결정으로 창 만드는 것도 있었지?”
평소에 주의 깊게 관찰하는 그였기에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그는 종이에 네가지 마법의 특징을 간단히 적고 태화를 보았다.
“뭐 더 있나?”
“있죠.”
“뭔데?”
“마법 걸리는 날이요.”
상호는 고개를 기우뚱하며 종이에 그대로 받아 적었다.
“마법 걸리는 날? 그런 것도 있어?”
“선생님, 그건…….”
세희가 당황하며 상호의 팔을 잡았다.
지윤은 키득키득 웃었고, 나빛은 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상호는 멀뚱히 눈만 끔뻑거렸다.
“그게 뭔데? 세희랑 지윤이는 아는 거야?”
“그, 여자가 한 달에 한 번…….”
세희는 태화를 흘겨보며 상호에게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태화가 먼저 툭 말해버렸다.
“생리요.”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했다…….’
“……어쨌든 제일 자주 쓰는 건 이 네 가지지?”
“넹.”
“보자.”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종이를 훑었다.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일단 뿔에서 빔 쏘는 것부터.”
“해피해피빔이요.”
“어…… 바이올렛 레이저…….”
“악마포요!”
“매직 캐논……?”
태화, 세희, 지윤, 나빛이 차례대로 말했다. 상호는 지윤이 말한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자도 나쁘지 않네. 일단 적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