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01)

***

결국은 보호구 열 개에 특별주문한 보호구도 하나 얻었다. 상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교장선생님, 강상호입니다.”

“아.”

당황한 해련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상호는 문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뭔가 이상했다. 해련이 당황할 일이 별로 없는데.

그는 천천히, 조용하게 문을 열었다.

‘윽.’

이사장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상호는 입맛이 떫어지는 것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섰다.

“목걸이 새로 사왔습니다.”

“아, 다행이네.”

해련이 후련한 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이사장님이랑 그 이야기 하고 있었…….”

“강 선생.”

이사장이 그를 불렀다.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은 것이었다.

상호는 이사장과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였다.

“예, 이사장님.”

“아티팩트는 귀중한 학교 기물이요.”

이사장의 날카로운 눈빛이 상호를 훑었다.

그가 부서진 목걸이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학생들 안전과 직결되어 있지. 그런 물건을 함부로 다룬다는 건 그냥 넘어가기 힘들군.”

상호는 말대꾸하지 않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설미와 해련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사장은 오히려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상호가 이렇게 처음부터 저자세로 나올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해련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래도 다시 사왔다니까 한번 보죠. 강 선생, 꺼내봐요.”

“예.”

상호는 가방에서 목걸이를 무더기로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수를 본 해련과 이사장이 몸을 움찔했다.

해련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 선생. 이거 진품 맞아요?”

“분명합니다.”

이미 민정의 앞에서 테스트를 마친 후였다. 상호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련은 그의 말을 믿었지만, 이사장은 전혀 그런 눈치가 아니었다.

이사장은 팔목에 목걸이를 감고 검지를 들어올렸다.

검지에 밝은 주홍빛 불꽃이 길게 타올랐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이사장도 헌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마법 유형.

파팟

이사장이 검지를 팔목에 내리치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목걸이도, 보호막도 멀쩡했다.

“……진짜군.”

이사장은 중얼거리며 목걸이를 풀었다.

“이걸 하루아침에 이렇게 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테스트를 해 본 입장으로서 가짜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이사장은 혀를 차며 목걸이를 내려놓았다.

“능력도 좋군, 강 선생.”

그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교장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상호는 자꾸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 했다.

“이사장님은 뭔가 맘에 안 드셨나 보네요.”

“이럴 거라곤 생각 못 했겠죠.”

해련도 아직까지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는 목걸이를 하나하나 들어서 확인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샀어요?”

“학회에 친구가 있어서요.”

“아, 하긴. 한국 최고의 마법사가 강 선생 친구일 테니까.”

해련은 그때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목걸이들을 바라보았다. 총 열 개. 전부 그가 부숴먹었던 목걸이와 같은 종류였다.

민정에게 특별히 주문한 보호 목걸이는 주머니에 따로 챙겨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교장선생님. 저 부탁드릴 게 있는데…….”

“응? 말해봐요.”

“이만큼 가져온 대신에, 두 개 정도는 제가 우선 사용할 권리를 주시면 안 될까요?”

특별주문한 물건은 그와 대련할 아이들이 쓸 것이고, 평범한 물건은 아이들끼리 대련할 때 쓸 심산이었다.

자신이 가져온 물건인데도 따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모양은 이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교사가 학교에 등록되지 않은 물건을, 그것도 학생의 안전과 관련된 물건을 학교의 인증 없이 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상호는 알아서 잘 할 수 있었지만, 세상은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애초에 헌터의 등급을 떠나서 사비로 안전장비를 사서 수업하는 것은 누가 봐도 논란이 될 만했다.

들키면 교직에서 짤릴 만한 일이다. 그래서 교장과 이사장의 인증은 필수불가결한 절차였다.

상호의 속사정을 알아차린 해련은 피식 웃었다.

“무슨 뜻인진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에요? 이 비싼걸…….”

“학생들 쓰라고요.”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우리 애들만 애들이 아니니까…….”

당장의 목표는 그의 학생들이 학년 최고가 되는 것이지만, 그 바탕에 깔린 이유는 그의 학생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더욱 강해지고, 나아가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돈이 얼마가 되었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상관없다.

10억을 써서 그 소녀를 살릴 수 있었다면 살렸다.

그는 천성이 그랬다. 바보처럼 미련했다. 7년 전부터 세상에 목숨을 바쳤고, 지금도 무엇이든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건 해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나이답게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고마워요. 잘 쓸게요. 교사들한텐 내가 직접 말해놓을 테니까 걱정 말고.”

“감사합니다.”

“대신 뭐 다른 거 필요해지면 나한테 언제든지 말해요. 공짜로 받을 순 없으니까.”

“아닙니다.”

상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들어가요. 아이들 기다리겠네.”

상호는 엷은 미소를 띠며 교장실을 나섰다.

이제 곧 아이들끼리 대련시킬 생각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오늘은 더 이상 야외수업이 없지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원 없이 대련시킬 수 있을 터였다.

‘아, 빨리 월요일이나 됐으면 좋겠네.’

상호는 몹쓸 생각을 하며 교실로 돌아갔다.

지금부터 서로 싸워라

“으아…….”

태화는 질린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지윤이 돈까스를 두 접시째 비우고 있었다.

“쌤요, 저 한 그릇 시켜도 됩니꺼……돼요?”

“내 거 먹어.”

세희가 이때다 싶었는지 자기가 먹던 돈까스를 지윤의 접시에 넘겨주었다. 지윤이 두 그릇을 비우는 동안 세희는 반 개밖에 먹지 못한 것이었다. 상호는 세희가 한 그릇을 다 먹어줬으면 했지만, 역시 강제로 먹일 수는 없었다.

한 그릇을 다 비운 태화는 이제 두 개 반을 먹는 지윤을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넌 그렇게 먹으면서 살이 왜 안 쪄?”

“응? 나야 뭐, 운동하니까…….”

지윤이 팔을 걷어 굽히자 알통이 볼록 튀어나왔다. 태화는 고개를 절레절레저었다.

“괴물이야, 괴물…….”

상호는 지윤이 남은 음식을 후다닥 해치우는 것을 보며, 고깃집을 가면 대체 얼마가 나왔을까 생각에 잠겼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궁금해서였다.

‘시험 끝나면 애들한테 한우도 한 번 먹여볼까…….’

고민에 빠진 상호의 눈앞에 지윤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상호는 정신을 차렸다.

“응? 왜.”

“쌤, 저희 놀러가면 안 돼요?”

“어디를?”

“노래방이나, 음, 뭐. 공원? 이나…….”

노래방은 바로 나오는데 그 뒤가 늦는 것을 보면 그냥 노래방을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노는 건 안 돼.”

“돈 저희가 낼게요.”

“돈 문제가 아니라, 나빛이 없으면 안 돼. 주말에는 밥만 사주는 거야.”

나빛의 집이 매우 잘 사는 집안이니까 밥은 안 사 줄 수도 있지만, 노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녀를 빼놓고 셋이서 노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주말에 노는 것 가지고 너무 뭐라 하진 않겠지만…… 선생님은 같이 못 놀아. 나는 너희들이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기 전까진 별로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상호가 살짝 매정하게 말하자 태화가 어리광을 부렸다.

“에이~ 쌤~ 같이 놀아요~.”

하지만 상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윤이 물었다.

“그 성적이란 건 어떻게 보는데요?”

“1학기 중간평가. 너희 중간평가 언제인지 알아?”

세희가 대답했다.

“4월 26일이요.”

역시 정확히 알고 있다. 상호는 지윤과 태화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너희는 관심 없지?”

“에헤…….”

“항상 노력하는 사람은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태화는 멋쩍게 웃었고, 지윤은 자신만만하게 허리에 손을 올리며 항변했다.

상호는 피식 웃었다.

“모르는데 노력했다고 할 수 있어?”

“……노력하겠습니다!”

지윤이 그릇에 코를 박을 듯이 머리를 푹 숙였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애들한테 일정을 한 번 알려줘야겠다.’

“자. 이게 1학기 일정이야.”

그는 핸드폰 화면에 일정표를 띄워 주었다.

지금은 3월 셋째 주 주말.

4월 중순에 마법공학 발명대회. 이건 태화는 어차피 안 할 것 같고.

4월 말에 중간평가.

5월 초에 수학여행.

5월 중순에 공개수업.

6월 초에 학생회장 선거. 선거는 1학년과는 별로 상관 없는 일이고.

6월 중순에 대토론회.

7월 초에 기말평가.

7월 말에 방학식으로 1학기가 끝난다.

“……알았지? 다른 건 그때그때 준비해도 되는데, 중간평가랑 기말평가는 기억해 둬.”

“넹.”

“넵!”

“핸드폰으로 보내 줄게.”

상호는 그녀들에게 메세지 앱으로 사진을 보내준 후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제 월요일부터 너희 많이 힘들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선생님도 더 이상 안 봐줄 거니까.”

그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 월요일부터 뭐 해요?”

“평소처럼 수련이지. 근데 훨씬 힘들어질 거야.”

겁을 주려는 건 아니고, 준비 단단히 하고 오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끼리 대련도 하고, 나랑도 싸울 거야. 그 후에 세희한테는 내 검술 가르쳐줄 거고, 태화는 마법 뭐 쓸 수 있는지 같이 정리할 거고, 지윤이는 격투좀 알려주고. 나빛이는 너희랑은 좀 차이가 나니까, 좀 더 전투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야겠지. 그러고 나면 다른 반 아이들이랑도 천천히 대련 붙일 거고.”

“저희끼리 대련이요?”

“응, 너희끼리.”

세희와 태화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태화가 먼저 실쭉 웃었다.

“어머~. 기대된다, 정말…….”

세희는 말없이 태화의 꼬리를 만지작거렸다.

상호는 두 아이가 서로 죽여버리겠다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진심으로 공격하는 건 좋지만, 사적인 감정이 실리면 혼낼 거야.”

“어떻게 혼나요?”

“아마 나빛이 혼냈던 것처럼? 너희 하는 거에 따라서 진짜로 화날 수도 있지.”

지윤은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세희와 태화는 그 말을 알아듣고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하고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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