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
상호는 교탁에 손을 올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전학생…… 아니, 전입생이 있다.”
세희와 태화, 나빛 모두 멀뚱히 눈만 깜빡거렸다.
“전입생이요?”
“들어와.”
상호의 말과 동시에 앞문이 열리고 지윤이 들어왔다.
지윤은 상호 옆으로 폴짝 뛰어와서는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소개해야지.”
“넵. 오지윤이라고 해. 무예 유형이고 무기는 주먹이야. 선생님이 아빠 친구라서 여기 오게 됐어.”
상호는 헛기침을 했다.
‘말하면 귀찮아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태화가 눈을 부라렸다.
“뭐? 쌤이 네 아빠 친구라고?!”
“응.”
“개부럽다…….”
화를 낼 것 같던 태화는 싱겁게 중얼거리며 책상에 엎어졌다.
지윤이 말을 이었다.
“규리 선생님 반에서 왔고, 취미는 운동이야. 더 궁금한 건 물어보면 알려 줄게. 잘 부탁해.”
맑은 눈빛과 큰 목소리. 어제까지 상호가 알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녀의 소개가 끝나자 상호는 교실 앞쪽에 놓인 책상과 의자를 허공섭물로 들어올렸다.
“자리는 어디로 할까? 세희 왼쪽이 괜찮을 것 같은데…….”
갑자기 세희가 울상을 지었다. 창가가 좋은 모양이었다.
상호는 세희를 태화와 지윤의 사이에 놓고 말을 좀 늘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아니다. 나빛이 옆에 앉자.”
그는 책상을 나빛의 오른쪽에 내려놓았다.
창가 쪽에서부터 세희, 태화, 나빛, 지윤. 출석 순서대로 놓으니 보기에는 좋았다.
“넷이 잘 지내고.”
상호는 그녀들을 쭉 둘러보았다.
“제발 싸우지 말고. 혹시 서로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보기 좀 그러면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나빛만 빼고 전부 다 가정사가 복잡한 아이들이라 더욱 그랬다.
“쉬는 시간 동안 이야기도 좀 나누고 그래. 선생님 교무실 갔다 올게. 야외수업 준비하고 있어.”
“네.”
“네!”
네 명이 대답하니까 어째 교실이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소리 큰 아이가 들어와서 그런지도 몰랐다.
‘이제야 좀 학교 교실 같네.’
상호는 엷은 웃음을 지으며 반을 나섰다.
너 왜 거기 있냐
“에……. 생각했던 거하고 좀 많이 다르네요.”
지윤이 운동장에서 격돌하는 태화와 곰인형을 보며 당황해했다.
“인형하고…….”
“전투라는 게 뭔지 익숙해져야 하니까.”
슬슬 세희와 태화는 적응을 끝냈고, 나빛은 한참 멀었지만 그런 만큼 많이 배워서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윤에게는 총알을 잡은 걸 보여주지 않았다.
상호는 태화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지윤을 불렀다.
“지윤아.”
“네.”
“선생님 공격해 봐.”
“네?”
지윤은 옆에 서 있는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지금요?”
“네가 편할 때. 기습을 해도 상관없으니까, 내일이든 모레든 언제든지 공격해 봐.”
상호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지윤이 수 차례 되물었다.
“진짜죠?”
“응.”
“진짜 선생님이 절대 상상 못 할 방법으로 공격해도 돼요?”
“응.”
“성공하면 뭐 해주실 거예요?”
“음…… 소원 하나 들어줄게. 큰 거 말고. 적당히 들어줄 수 있는 거.”
그러자 상호의 등에 무언가가 와 닿았다. 지윤이 뒤에서 끌어안은 것이었다.
상호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해?”
“기습이요.”
“장난치지 말고…….”
그 때 상호의 목으로 뭔가가 날아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 무언가를 잡았다.
세희가 그의 목에 칼을 휘두른 것이었다.
수업 때만 쓰라고 빌려준 상호의 검이었다.
“……세희야?”
“저도 그거 할래요.”
손은 칼을 들었지만 눈빛은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상호는 이번엔 살짝 아슬아슬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혼은 내지 않았다. 이러라고 총까지 쏘게 시키면서 마음껏 공격하라고 교육했던 거니까.
그런데 그 순간 그의 양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응?’
지윤이 그를 들어올린 것이었다.
휙 소리와 함께 시야가 거꾸로 뒤집혔다.
“수플렉스!”
상호는 등부터 바닥에 메다꽂혔다.
다행히 제때 호신강기를 펼쳐서 충격은 없었지만,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이라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설마 선생을 집어던질 줄이야. 상호는 널브러진 채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싸! 한판! 소원 하나 저장!”
지윤이 깔깔거리며 상호의 몸을 잡고 번쩍 일으켰다. 힘이 정말로 장사였다.
상호는 비틀거리며 몸을 추슬렀다.
‘아이고, 정신이 없네.’
먼지를 털고 주변을 둘러보니 세희는 그를 향해 검을 내려칠지 말지 고민하는 표정이었고, 나빛은 한 발짝 뒤에서 말없이 웃고 있었다.
상호는 세희의 검을 밀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인정할게. 지윤이 소원 하나.”
세희 때문에 방심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윤이 그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천근추를 썼을 것이다.
물론 몬스터였다면 그를 잡자마자 팔이 동강났겠지만, 아이들한테 그런 식으로 반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반응하는 게 살짝 늦었다 싶으면 대응을 포기하고 호신강기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잘못 때리면 골로 가니까.
“지윤이는 소원 생각해서 나중에 말해줘.”
“저도 할래요…….”
나빛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지윤처럼 상호의 등을 안았다. 하지만 너무 약했다. 지윤이 꽉 끌어안는 느낌이었다면 나빛은 오히려 그의 등에 안겨드는 느낌이었다.
상호는 그를 들어올리기 위해 끙끙거리는 나빛을 살살 밀어냈다.
“나빛이 너는 성력 있잖아. 그걸로 잘 공격해 봐.”
“전 방어막밖에 못 만들어요…….”
“그럼 그걸로 싸워야지 뭐. 그리고 그게 다는 아니야. 네가 네 한계를 정하면 안 된다, 나빛아.”
“선생님.”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희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상호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응? 왜?”
“태화 좀 보세요.”
“아차, 태화…….”
상호는 정신을 차리고 태화 쪽을 쳐다보았다. 지윤에게 수플렉스를 당한 후로는 인형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는 태화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웬 잿더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상호는 교탁 앞에 서서 진땀을 흘렸다.
“태화야, 미안하다. 새로 사 올게.”
“쌤이 죽였어……, 쌤이 죽였어……, 쌤이…….”
태화는 의자 위에 쪼그려 앉아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테디 씨…… 인형처럼 이용만 당하다가 죽었어…….”
“그건 인형이니까…….”
“걱정 마, 테디 씨. 내가 복수해줄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꼭 복수해줄게…….”
“태화 너는 기습 성공해도 소원 안 들어줄 거야.”
상호가 딱 잘라 말하자 태화가 펄쩍 뛰어올랐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왜요! 왜요왜요왜요왜요!”
“너는 숙소까지 쫓아올 게 뻔해서 그런다.”
그녀는 순간이동을 쓸 수 있으니까. 다른 아이들과는 출발선이 너무 달랐다.
태화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다리를 굴렀다.
“맨날 나만 미워해애애!”
“너 진짜 애야?”
세희가 핀잔을 날려도 태화는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다니며 떼를 썼다. 보다 못한 상호는 허공섭물로 태화를 들어올렸다.
“먼지 다 먹는다, 인마. 청소도 별로 안 하는데…….”
“저랑도 소원 내기 해요! 내기! 내기이이이!”
상호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알았다, 알았어. 태화 너도 해…….”
“히힛.”
태화는 그때서야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지금부터예요?”
“응. 지금부터.”
상호는 천천히 그녀를 땅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세희와 나 빛, 지윤을 둘러보았다.
“기습해도 된다고 했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말은 아니야. 너희는 아직 너희 공격에 자기가 다칠 수도 있어. 내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너희 걱정은 하라는 말이야. 앞뒤 안 보고 달려들지 말고. 특히 세희, 태화.”
둘 다 앞뒤 안 보고 질러버리는 경향이 한두 번씩 튀어나오는 아이들이었다.
세희와 태화는 그의 말에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표정이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 지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또 해도 되는 거예요? 그럼 소원 두 개 들어줘요?”
“응.”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불안해져서 멈췄다.
“소원이라고 하니까 무슨 거창한 거인 줄 아나 본데…… 진짜 가벼운 소원만 들어줄 거야. 두 개 세 개 들어줄 수 있는 거.”
“그럼요.”
지윤이 헤헤 웃었다.
상호는 뒤숭숭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또 사고가 터질 것 같았다.
‘환장하겠네……, 다음부턴 이상한 거 시키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