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501)

***

상호는 이화관으로 들어섰다.

텅 빈 기숙사.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가 달랐다.

“상호 선생님?”

그는 입구에서 한 여인을 맞닥뜨리고 움찔했다.

늘씬한 키에 서구적인 체형. 살짝 처진 실눈과 찰랑이는 생머리.

이화관의 사감, 봉경아였다.

“선생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그녀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상호는 그녀의 성격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겉보기와 달리 무서운 성격인데 그것 때문에 남자가 안 생겨서 노처녀 히스테리까지 앓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찾는 아이가 있는데 오늘 학교를 안 나왔다고 해서요.”

“아아, 지윤이 말이시구나.”

경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상호 선생님 지윤이 담임 아니지 않나? 지윤이 담임은 규리 선생님 아니에요? 말씀은 드리고 온 거예요?”

“아니요. 개인적인 일이라서…….”

“담임도 아닌 선생님이 개인적인 일로 여학생 방에 들어간다……?”

그녀가 웃었다.

“이거는 허락해주기 힘들어요.”

“그럼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무슨 일인지 말해봐요.”

그 또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그때 경아의 뒤로 누군가가 보였다.

지윤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지윤아.”

상호는 경아의 어깨 너머로 그녀를 불렀다. 경아도 뒤를 돌아보았다.

지윤이 발을 멈추고 가만히 상호를 바라보았다.

어제 대판 싸웠지만, 그녀의 얼굴엔 화난 기색이 없었다. 대신 살짝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이야기 좀 하자.”

“잠깐, 둘이 무슨 관계예요? 수상한데…….”

“아빠 친구예요.”

눈살을 찌푸린 경아에게 지윤이 대답했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와 경아를 쓱지나쳤다.

“사감선생님, 저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좀 데려가겠습니다, 봉 선생님.”

상호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지윤을 데리고 이화관을 나섰다.

경아에겐 더 이상 그들을 잡을 핑계가 없었다. 상호의 등 뒤에서 경아가 혀를 쯧 하고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직접 겪어 보니 알겠네. 왜 이렇게 훼방 놓는 걸 좋아하나…….’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차로 향했다.

지윤은 그들이 주차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차 탈 거예요?”

“응. 같이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는데. 괜찮아?”

“……마음대로 하세요.”

아직 어제의 응어리가 풀리지는 않았는지, 대답하는 말투가 꽤나 쌀쌀맞았다.

상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좀 보자.”

지윤은 망설이다가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손은 어제보다 더 부어 있었다. 새빨갛게 부은 손가락 사이로 시퍼런 멍이 울긋불긋 보였다.

“왜 치료 안 했어?”

지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치료부터 하자. 빨리 타.”

상호는 지윤에게 조수석 문을 열어 주고 운전석에 올랐다.

***

“……그러니까 형은 그렇게 알고 있어. 혹시나 우리 학교에서 물어보면 나 만났다고 해 줘. 뭐? 땡땡이 치냐고? 지금까지 뭐 들었어? 성철이 형 딸이랑 병원 간다니까?”

그의 말과는 달리 지윤의 손은 멀쩡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상호는 핸들을 돌리며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어. 올해 입학했더라고. 신기하지? 나도 신기해. 뭐? 데려오긴 뭘 데려와, 형이 와. 이제 내가 형보다 바쁘다고. 형은 아랫사람들 부리면서 놀기나 하잖아. 바쁘니까 끊는다고? 뻥치지 마. 괜히 나보다 바쁜 척 할라고…… 알았어, 알았어. 끊을게.”

상호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혀를 찼다.

“참나, 언제는 골프만 치러 다닌다면서 심심해 죽겠다던 인간이…….”

“새로 사셨어요?”

“아, 핸드폰? 새로 샀어.”

지윤이 차창 밖을 쳐다보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해? 내가 던진 건데.”

상호는 쓰게 웃었다.

“내가 성격이 이상한 거지. 너희 아버지도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많이 그랬어.”

“방금 통화한 분은 누구예요?”

“도현이 형. 서도현. 너도 들어봤을 것 같은데.”

지윤도 아는 듯싶었다.

“저승부대 출신 부협회장님…….”

“맞아.”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윤은 뭔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흘끔 쳐다보았다.

“선생님.”

“응?”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돼요?”

“연세……라고 할 것도 없지. 올해 스물셋이야.”

그 말에 지윤이 깜짝 놀라며 상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근데 어떻게 저희 아빠랑 같이 싸웠어요?”

“그냥 뭐, 너보다 어릴 때 군에 들어갔지. 7년 전이니까 너희 딱 열 살일 때다.”

“열여섯에요?”

“그치. 전쟁 시작하자마자 입대했으니까.”

상호는 살짝 웃었다. 지윤은 그런 그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셨어요?”

“부모님은 이계대전 전에 돌아가셨어. 개벽 때.”

그 대답을 들은 후로 지윤은 말이 없었다.

상호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왔다 갔다 하는 데 두 시간 반 정도. 빠르게 갔다 오면 오후 수업을 하기 전에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는 묵묵히 추모관을 향해 차를 몰았다.

***

“여기 오자는 거였어요?”

지윤은 성철의 묘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상호는 이번엔 넉넉하게 가져온 꽃을 한 줌 떼어 그녀에게 건넸다.

“아버지한텐 네가 드려. 난 잠깐 다른 사람들 주고 올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성철을 제외한 여섯 개의 묘비 앞에 꽃을 놓기 시작했다.

중간에 예경의 묘비 앞에서는 일어나는 데 살짝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상호는 금방 헌화를 마치고 성철의 묘 앞으로 돌아왔다.

지윤은 처음 꽃을 받아든 자세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모르겠어요…….”

지윤은 꽃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도,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지윤아. 나 봐봐.”

상호가 부르자 지윤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부모님이 개벽 때 죽었다고 했지? 그럼 난 뭐하러 몬스터들하고 싸웠을까? 지킬 것도 없고, 그냥 혼자 도망치면 내 맘대로 살 수 있었을 텐데.”

“몰라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야.”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것이 저승부대원들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수없이 되뇌인 문구였다.

“저승부대원들 중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졌다. 만약 그랬다면 너와 너희 가족은 죽거나, 운좋게 살아남아 다른 나라로 도망쳤더라도 그 나라에서 총알받이, 몬스터를 막는 소모품으로 이용당했을 거야. 물론 지금 네게는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 줘.”

상호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뺐다.

“네 아버지는…… 네가 가끔 자기 때문에 슬프더라도, 친구들하고 웃고, 수다떨고, 좋아하는 운동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내의 곁도 떠나고, 딸이 예쁘게 자란 모습을 보는 것도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싸우다가 죽는 순간까지도.”

지윤은 그 반지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가족 돈 없는 거 걱정하면서 이거라도 팔으라고 말했다고.”

상호는 지윤의 손을 잡고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밋밋한 금반지지만, 어머니의 것과 한 쌍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팔 거야?”

상호가 나직하게 묻자 지윤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이, 이…….”

그녀는 결국 꽃을 후두둑 떨어뜨리고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걸 어떻게 팔아요…….”

상호는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분명 등만 다독이려고 했는데 지윤이 아예 흐느끼면서 그의 품에 달려들었다.

당황한 상호는 지윤을 엉거주춤 안아주면서 성철의 묘비를 흘끔거렸다.

시체도 없는 가묘인데 어째 지켜보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따끔거렸다.

‘조카인 셈 치지 뭐, 안 건드릴 테니까 걱정 마쇼…….’

그는 지윤이 원없이 울도록 가만히 품을 내어주었다.

***

“……죄송해요.”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윤이 대뜸 사과를 했다.

상호는 창 밖을 보는 그녀를 곁눈질로 살피고 물었다.

“뭐가?”

“선생님한테 목소리 높이고…… 대든 거요.”

“그럴 수 있지. 그땐 나도 선생으로서 말한 게 아니니까.”

“그래도요.”

지윤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는 그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싸웠어요?”

“성철이 형? 너처럼. 아무것도 안 들고 맨주먹으로 싸웠지.”

“아빠도요……?”

그녀는 뒷자리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상호의 검이 놓여 있었다.

“선생님은 검을 쓰시는 거죠?”

“응.”

“검만 가르치시는 거예요?”

“일단은 그런데…… 내 교육 방식이 좀 특이하거든? 그래서 학생이 무예도 있고, 마법도 있고, 신앙도 있어.”

지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저도 가르쳐주실 수 있어요?”

“규리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시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선생님 저승부대잖아요. 그럼 우리나라에서 제일 강한 거 아니에요?”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학교에서 가장 강하긴 하지.”

“그럼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요.”

지윤이 상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빠가 얼마나 강했는지도 알 거 아녜요. 저 선생님한테 배울래요.”

“반에 친구들은 어쩌고?”

“어차피 기숙사 가면 다 만나요.”

“으음…….”

상호는 눈을 몇 번 끔뻑이고는 대답했다.

“그럼 그건 규리 선생님하고 이야기 해 볼게. 근데 지윤이 너.”

“네.”

“친구들이 그러는데 너 원래 말 엄청 많다며? 진짜야?”

그 말에 지윤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누가……누가 그래요?”

“다들 그러던데? 아재개그 좋아하고, 사투리 쓴다고.”

“아, 아니에요. 안 그래요.”

“상상이 안 가네.”

상호는 킥킥 웃었다.

“아재개그 하나 들려줄 수 있어?”

“그…… 그러면…… 주먹밥은 왜 물이랑 먹어야 하는지 아세요?”

“왜인데?”

“주먹 밥이라…… 퍽퍽, 해서…….”

지윤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궜다. 목부터 귀까지가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상호의 입꼬리가 자꾸 스멀스멀 올라갔다.

“사투리도 들려줄 수 있어? 어디 사투리야?”

“사투리는…… 엄마 아빠 섞여서…… 저도 제가 쓰는 사투리가 어디 건지 몰라요.”

“아빠랑 이야기한 기억은 있나 보구나.”

“……네.”

어릴 때 헤어졌지만, 아버지의 흔적은 남았다.

지윤은 반지를 햇살에 비춰 보았다. 평범한 금색이지만 그녀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찬란하기만 했다.

상호는 하염없이 반지를 바라보는 지윤을 곁눈질로 살피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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