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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들어올 때엔 저녁때가 되었다. 상호는 이화관 앞에 둘을 내려주며 말했다.
“저녁 거르지 말고. 과자는 월요일에 줄게.”
“넹.”
“감사합니다.”
태화는 가볍게 대답했고, 세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호는 그런 그녀들을 보며 생각했다. 둘이 서로를 조금씩만 닮았으면 좋겠는데.
‘오늘도 둘이 별로 이야기 안 했지…….’
그래도 이런 일은 억지로 시켜 봤자 반발만 생길 뿐이다.
상호는 창문 너머로 그녀들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쉬어.”
그리고 주차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뒤쪽에서 태화가 세희에게 말을 거는 것이 들렸다.
“너 밥 먹을 거야?”
“별로 생각 없는데. 너는?”
“오늘 새우튀김 나온대서 먹으러 갈려고.”
“그럼 같이 가든가.”
둘 다 툴툴거리는 말투지만, 이제 싸우지는 않는 듯했다.
상호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백미러로 그녀들이 이화관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현장체험학습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계전추모관에 견학을 가는 날이었다.
교정에 들어온 버스들에는 1학년들이 빼곡히 타 있었다. 버스 밖까지 들려올 정도로 떠드는 소리가 왁자했다.
그러나 상호와 그의 반 아이들은 버스에 타지 않았다.
“야! 그거 내 거야!”
“네가 샀어? 선생님이 사셨잖아.”
“그럼 네가 골랐어야지! 쌤! 세희가 제 거 막 뜯어요!”
상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좁아터진 경차의 뒷좌석에 세희, 태화, 나빛이 앉아 있었다.
그래도 셋 다 날씬해서 그렇게 많이 비좁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세희를 혼내기는커녕 과자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도 줘봐.”
“악! 쌤까지 그러기예요?!”
태화가 울상을 짓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쌤. 저 앞에 앉으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올 사람 있어.”
상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수석 문이 열렸다.
“강 선생, 준비 다 됐어요?”
해련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교장선생님만 타시면 됩니다.”
“그럼 잘 부탁해요.”
해련이 조수석에 앉아 벨트를 매자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장쌤 저희랑 같이 가요?”
“태화야, 어른들한테는…….”
“괜찮아요, 호호. 운전하는 사람 옆에 전화 받는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
해련은 입으로는 태화에게 대답하면서도 눈은 상호를 보며 웃었다.
“무슨 일이든 사수 부사수가 필요한 법 아니겠니?”
상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핸드폰으로 곧 출발한다는 단체문자가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들이 출발했고, 상호의 경차도 그 뒤를 따랐다.
***
계전추모관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왁자하게 떠들며 과자를 먹던 아이들도 하나둘 잠에 빠져들었다.
해련이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호호, 자는 게 다들 귀엽네. 그렇지 않아요?”
상호는 백미러로 아이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자고 있으니 속눈썹이 긴 게 눈에 확 띄었다.
“애들이니까요.”
“그것보다는 생긴 게 예뻐서 그런 것 같은데. 강 선생은 좋겠네요.”
그는 살짝 당황했다. 아이들이 예쁜 건 사실이지만.
“학생이 예뻐서 뭘 하겠습니까. 선생한텐 다 쓸모없는 일인데.”
“한 번도 아이들 여자로 본 적 없어요? 그래도 나이차 별로 안 나잖아요.”
“전혀 없습니다. 제 취향은 연상이라서…….”
“설미 양?”
“콜록!”
해련은 헛기침을 하는 상호를 보며 짖궃게 웃었다.
“어머, 그냥 찔러 봤는데 정답인가 봐.”
“한 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습니다.”
“자주 같이 다니잖아요? 임 선생 예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하고.”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 사실이긴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물론 설미 선생님이 누나라면서 잘 챙겨주긴 하는데…….”
“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외모로는…… 솔직히 누가 봐도 저보다 연하잖습니까.”
“푸하핫! 어머, 어머. 이거 임 선생한테 그대로 말해줘야겠다.”
박장대소하던 해련은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면서도 웃음은 참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는 다시 한 번 아이들이 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싶었다. 아이들이 들으면 곤란한 말.
이윽고 해련이 입을 열었다.
“추모관에 가본 적 있어요?”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개관식 때 한 번 가봤죠. 도현이 형 따라서.”
“그 후로는 한 번도 안 갔고?”
“네.”
“부대원들 보고 싶진 않았어요?”
상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보고 싶어서 못 갔습니다.”
해련이 쓰게 웃었다.
“강 선생이 내 생각보다 훨씬 젊다는 걸 자꾸 깜빡하곤 해요.”
상호는 그녀를 흘끗했다.
분명 옛날에 봤을 때보다 훨씬 젊어진 모습이었다. 30대 초반의 외모. 마법이나 주술, 혹은 숨겨진 무예.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는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그는 해련의 원래 나이를 몰랐지만, 죽음에 익숙할 나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느낌으로는 60, 아무리 못해도 50.
그래서 살짝 돌려 물었다.
“교장선생님.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뭔데요?”
“자녀분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해련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나한테 손녀가 있다는 것까지만 알려줄게요.”
그렇다면 대충 60 언저리라는 소리다. 상호는 혀를 내둘렀다.
“어쩌다 그렇게 젊어지신 겁니까?”
“체내에 기가 너무 많아서 몸이 적응하려고 변화하는 거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상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교장선생님이 특별한 겁니까? 아니면…….”
“우리나라엔 나밖에 없다 그러데. 애초에 내 나이에 나만큼 강한 사람이 없으니까.”
“신기한 이야기네요.”
“그렇죠? 사실 나도 원리는 몰라요. 그냥 내 몸이니까 그런갑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지.”
씨익 웃어보이던 해련이 돌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안 좋은 것도 있어요.”
“그렇겠죠. 사람들이 원래 나이로 안 보니까요.”
“아니, 그런 건 별로 상관없는데…….”
“그럼 어떤 점이……?”
“달거리가 다시 오더라고요.”
그녀의 태연한 말에 상호는 크게 당황했다.
“저,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응? 아아, 요즘은 달거리란 말 잘 안 쓰죠? 월경이라고 해야 알아듣나?”
“그…… 뭔지는 아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또 주책을 부렸나?”
해련이 쿡쿡 웃었다.
상호는 헛기침을 하며 애꿏은 차창 밖만 멀거니 쳐다볼 뿐이었다.
‘여자들 사이에 끼니까 여자들 이야기만 듣는군…….’
***
계전추모관은 도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한국괴렵협회 산하의 국립묘지를 겸하는 국립박물관이었다.
옆으로 널찍한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하얀 대리석으로 외벽을 채우고, 굵은 기둥을 여럿 세웠다. 건물 뒤로는 햇볕이 잘 내리쬐는 국립묘지가 펼쳐져 있었다.
지어진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2년.
예현여고의 학생들과 선생은 건물 안에 있는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여기 연표를 보시면…….”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여자 안내원이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그녀의 손은 벽에 붙박이로 설치되어 누런 조명을 받는 철제 연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8년 전, 개벽이 일어났지요. 세계 각지에 이계의 대륙이 소환되면서 지각 변동으로 큰 피해가 생겼어요. 다행히 한국은 지각 변동으로는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1년 후, 태평양 한가운데의 거대 이대륙 아르게스에서 몬스터들이 공격해 들어오면서 전쟁이 발발했어요.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전쟁이었죠. 이 전쟁의 이름이 바로 이계대전…….”
상호는 다 아는 내용이었다.
“……이계대전은 921일, 그러니까 2년 하고도 191일 만에 끝이 났어요.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죠. 그 후 사람들은 사회를 재건하고 이렇게 추모관을 세워서…….”
그는 설명을 듣다가 슬쩍 빠져나왔다.
전시실 한쪽에 해련이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상호는 그쪽으로 다가가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살폈다.
부러진 검 한 자루였다.
해련은 상호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물었다.
“이 칼, 누구 칼인지 알아요?”
그거야 설명을 보면 알 것 아닌가. 상호는 칼 아래 쓰인 글귀를 읽었다.
“국토수비군 수호부대 소령 이해련…….”
해련의 검이었다. 상호는 뭔가 이상해서 눈을 끔뻑였다.
보통 이계대전 때 참전한 사람들은 병사로 시작했고, 진급을 하더라도 부사관이었다.
“원래부터 군인이셨습니까? 장교인데다가 소령씩이나…….”
“아니, 입대는 개벽 후에 했죠. 장교는 어쩌다 보니 된 거고, 특진을 많이 해서 그래요. 아무래도 최전방은 전투도 많이 했고, 보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반면에 상호가 있던 부대는 아무도 모르게 싸웠다. 그래서 전쟁 중에는 공로를 많이 인정받지 못했다.
해련은 상호를 보며 쓰게 웃었다.
“물론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강 선생 덕분이지만.”
“글쎄요. 그렇지는 않죠.”
상호는 가만히 검을 쳐다보았다. 해련의 검이 부러질 정도라면 필시 수호부대원들도 힘겨운 전투를 겪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연표 앞에서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내원이 어떤 전시물 앞으로 그녀들을 이끌었다.
상호는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 이 사진 보세요, 여러분.”
안내원이 사진을 가리켰다. 찍힌 것은 여자 세 명과 남자 아홉 명.
분명 21세기에 찍은 사진인데도 20세기 저화질 흑백사진 같은 분위기가 났다.
찍은 카메라는 흙투성이, 찍힌 사람은 재투성이. 사진의 색도 많이 바랬다.
생전에 다같이 찍은 사진은 저것 하나뿐이었다. 분명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는데 파일은 어디 가고 사진만 남았는지.
상호는 멀찍이 떨어져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헌터 부대 중에서도 최고의 부대, 저승부대예요. 여러분도 이름은 들어 봤지요?”
“네.”
“왜 몇 명은 얼굴이 가려져 있어요?”
한 학생이 물었다.
사진을 덮은 유리판에는 희뿌연 부분이 있어서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가리는 중이었다.
“가려진 사람들은 나라에서 신원을 보호해 준 사람들이에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거죠.”
안내원은 씩 웃으며 얼굴이 드러난 사람들을 차례로 짚었다.
“그 외에는 돌아가셨거나 계속 활동중이신 분들이에요. 여러분들한테도 익숙 한 분들이죠? 헌터협회 부협회장 서도현 헌터님, 그리고 신앙회 소속 나효은 헌터님. 그리고 또…….”
오랜만에 듣는 이름들이었다. 상호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마음이 복잡했다. 살아있는 부대원들은 다시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이들이 더 그리워질까 봐 억지로 마음 속에 묻어놓고 살았다.
“……이분들이 전선 너머에서, 부대명처럼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고 싸우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참전 헌터분들은 다들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싸우셨죠. 헌터에게는 그런 희생 정신이 필수랍니다. 자, 이제 다음 걸로 넘어갈까요?”
안내원은 설명을 마치고 다음 전시물로 학생들을 이끌었다. 그중에 학생 두명이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남아 사진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상호가 모르는 아이였고, 한 명은 세희였다.
상호의 옆에서 해련이 속삭였다.
“어머, 뭔가 알아차렸나 본데.”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에이, 설마…….’
그는 고개를 기우뚱하고는 사진 쪽으로 발을 옮겼다. 상호가 가까이 다가가자 모르는 여학생은 그의 눈치를 한 번 보고는 안내원을 따라갔다.
상호가 세희의 곁에서 걸음을 멈추자 그녀가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뭐 신경쓰이는 거 있어?”
“이 사람…… 선생님 아니에요?”
세희가 사진 속의 한 소년을 가리켰다. 얼굴이 희뿌옇게 가려져서 아무리 봐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상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걸 알아봤다고?’
사진 속 소년은 그가 맞았다.
그래도 놀란 티를 내진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이거 선생님 검이잖아요.”
세희가 가리킨 것은 소년의 검이 아니라 그 옆에 선 여인의 검이었다.
이번에도 정답이었다. 상호는 얼떨떨해하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걸 어떻게……?”
“선생님 검은 자주 봤으니까요. 직접 써 보기도 했고…….”
맞춘 것이 기쁠 법도 한데, 세희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며 나지막이 말할 뿐이었다.
“그럼 이 분이…….”
세희의 시선이 사진 아래쪽을 향했다. 사진의 설명에는 서 있는 순서대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곳에 쓰여진 여인의 이름은.
-故 백예경 중사
여인의 얼굴은 가려져 있지 않았다.
환하게, 정말 환하게.
옆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웃는 중이었다.
“……맞아.”
상호는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게 스승님이라고, 그 옆이 자신이라고, 더 설명을 해주고 싶은데 목이 메어서 나오질 않았다.
고운 머리를 쓰다듬은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세희는 살며시 그 손을 잡았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몰래. 가느다란 손가락이 상호의 손을 따스하게 감쌌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한참 동안 말없이 사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