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501)

***

상호는 학생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태화에게 전화를 수 차례 걸어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받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기숙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학생 기숙사는 총 세 동이었다. 1학년이 이화관, 2학년이 백합관, 3학년이 목련관.

기숙사 입구의 위에는 각 꽃들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태화가 머무는 곳은 배꽃 그림이 그려진 이화관.

‘태화 방이…… 509호였지. 5층인가…….’

그는 이화관에 들어섰다.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5층까지 계단을 오르다 보니 땀이 뻘뻘 흘렀다. 남들보다 체력이 훨씬 좋은 그였지만 다리의 고통이 심했다.

상호는 마지막 계단을 밟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선생이 되니 한숨만 느는군.’

요 며칠 동안 평생 쉴 한숨을 다 쉰 느낌이었다.

그는 검을 절그럭거리며 복도를 걷다가 509호를 발견하고 그 앞에 섰다.

“태화야.”

부르며 노크를 해도 소식이 없었다.

상호는 여기가 아닌가 싶어 핸드폰을 꺼내 메모를 확인했다. 509호가 분명 맞았다.

설마 여기 없는 거라면.

상호의 등에 흐르는 땀의 양이 점점 늘어났다. 얼마나 더 싸돌아다녀야 하는가.

“태화야, 선생님 서서 기다릴 거야.”

그러자 문고리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상호는 태화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문고리에 손을 올려보니 그대로 열렸다.

그는 혹여나 누가 볼까 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선생이, 기숙사까지는 그렇다쳐도 여학생 방까지 들어가다니. 오해 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확인, 또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안쪽을 향해 물었다.

“들어간다?”

넓은 방은 아니었다. 문을 열자 침대가 바로 보였다.

누군가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툭 튀어나온 꼬리가 축 늘어져 흐늘거렸다.

‘……길어지겠네.’

상호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더워서 재킷도 벗었다.

“선생님 세수 좀 해도 돼?”

이불에서 꿍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대충 ‘화장실 쓰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상호는 안대를 벗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미안, 깨끗이 쓸게.”

안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집어든 비누도 상호가 쓰는 것과는 다른 향이 났다.

상큼하고 싱그럽게.

그는 간단하게 세수를 마친 후 수건을 목에 걸친 채로 밖에 나왔다.

이불 덩어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상호는 태화의 침대 옆 바닥에 앉았다.

“……침대에 앉아도 돼요.”

태화가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다리 때문에 바닥에 앉기는 불편했다. 상호는 일어나서 태화의 옆에 다가앉았다.

“태화야.”

“네.”

“쌤 교장선생님한테 혼났다.”

“……왜요?”

“너 치마 짧다고. 네 이름도 아시더라. 학생 관리 안 하냐고, 정신머리가 있냐 없냐 엄청 화내시면서…….”

상호는 한숨을 푹푹 쉬며 한탄했다.

“진짜요……?”

태화가 풀죽은 목소리로 묻자 상호는 씩 웃었다.

“뻥이야.”

“우씨!”

꼬리가 그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놀리지 마요!”

“교장선생님 그런 분 아니셔. 그래도 뭐라 하시긴 하셨어. 근데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태화야.”

상호는 태화를 감싼 이불 위에 손을 올렸다.

“화를 남한테 푸는 건…… 되게 멋없는 행동이다. 특히 상대의 어쩔 수 없는 약점, 노력해도 고칠 수 없는 약점을 공격하는 거는…… 많이 별로지.

결국은 너한테 그대로 돌아오는 거야.”

“부모…… 부모 말하는 게 어때서요. 저는 공격한 거 아니예요. 그건 저한테도 상처라고요…….”

“세희는 몰랐어. 세희는 네가 그냥 평범한 집에서 자란 줄 알아.”

그는 세희에게 태화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너는 세희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잖아.”

“걔가 뭘 알고 모르는지까지 제가 신경써야 해요? 왜요?”

“네가 알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지. 선빵을 네가 쳤잖아.”

“걔가 말을 띠껍게 하잖아요!”

“쌤 처음부터 다 들었는데. 태화 네가 제일 먼저 나빛이한테 짜증내던데?”

“……윽.”

할 말이 없어진 태화는 이불 속으로 더 깊이 숨었다.

상호는 그녀의 꼬리를 잡았다. 손에서 꼬리가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살짝 힘을 주어 도망치지 못하도록 잡았다.

“화가 나서 세상이 삐뚤게 보이는 거다. 나빛이도 세희도 다 네가 걱정되서 그랬던 거야.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

“걔 저랑 너무 안 맞아요.”

태화의 말에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한쪽은 부모가 없는 게 상처인 아이.

한쪽은 부모가 있는 게 상처인 아이.

성격도 반대, 환경도 반대. 둘은 완전히 상극이었다.

“뭐 친해지는 건 결국 너희 자유니까 뭐라고 안 하겠지만…… 그래도 사과는 해야지?”

“왜요? 저만 잘못한 거예요?”

“사과는 먼저 하는 사람이 멋있는 거야. 너 멋쟁이잖아.”

그 말에 꼬리가 팔딱팔딱 난리를 쳤다.

“아니, 제가 무슨 초딩인 줄 알아요?!”

“멋쟁이 아니야? 멋부린다고 치마 막 줄이잖아.”

“그건 진짜 꼬리 때문이라니까요──!”

상호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꼬리 끄트머리, 하트 모양의 넓적한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태화야, 진짜 멋쟁이는…….”

“……응흐윽!”

“아, 미안. 아파?”

그는 서둘러 꼬리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꼬리는 뱀처럼 슬금슬금 기어 그의 손으로 다시 들어왔다.

“아뇨……, 괜찮아요.”

“그…… 그래.”

상호는 그녀의 꼬리를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주물럭거리며 말을 이었다.

“진짜 멋쟁이는 스스로를 비싸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야. 치마는 줄이면 줄일수록 싸 보인다. 너 싼 인간 아니잖아.”

“비싼 인간도 아닌데요.”

“쌤이 볼 때는 엄청 비싸 보이는데. 치마만 안 줄이면.”

“……얼마처럼 보이는데요?”

“당연히,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태화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눈시울이 붉었다. 뺨도 새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잔잔하게 떨리는 붉은 눈동자가 상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호는 그녀와 세희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아낌 받은 적 없다는 것이.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치마 늘릴 거지?”

“……네.”

“세희한테도 사과할 거고?”

“네.”

“그래, 잘 생각했어.”

상호는 그녀의 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갑자기 태화가 몸을 움찔했다.

“으…….”

살짝 벌어진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얼굴의 홍조가 목까지 퍼진 상태였다.

그때서야 상호는 태화가 우는 게 그가 한 말이 아니라 꼬리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뭐야, 꼬리 만지면 아파? 말을 하지 그랬어.”

“아니요, 아픈 게 아니라…….”

태화는 다시 이불 속으로 숨었다.

“몰라도 돼요. 쌤은.”

아픈 게 아니면 대체 뭘까. 상호는 멍청히 눈을 끔뻑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기분 풀렸으면 빨리 수업하러 가자. 애들 기다린다.”

“수건 저 주세요.”

이불 밖으로 나온 태화가 그의 목에 걸린 수건을 가리켰다.

상호는 외투를 챙기며 대답했다.

“빨아서 줄게.”

“그냥 지금 주세요!”

태화는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떼를 썼다. 상호는 별 수 없이 그녀에게 수건을 넘겨주면서도 어리둥절해했다.

‘빨아서 준다는데 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태화는 상호에게서 빼앗은 수건을 침대 머리맡에 대충 던져놓고 그의 등을 방 밖으로 떠밀었다.

“이제 가요.”

“너 젖은 수건 저렇게 막 놓으면 곰팡이 핀다. 빨래바구니 있네 여기. 제대로 넣어야…….”

“신경쓰지 말고 빨리 가요!”

“알았어, 알았어.”

상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화와 함께 방을 나왔다. 그는 슬쩍 태화를 돌아보았다.

하트 모양 꼬리가 이제는 아주 그냥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새 기분 좋아졌나 보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자.”

본관 3층으로 돌아온 상호는 옆에 선 태화를 내려다보았다.

“쌤은 교무실 들렀다 갈게. 먼저 교실 들어가 있어.”

“네.”

“세희한테 사과 꼭 하고.”

“……네.”

태화는 어물쩍거리며 고개를 애매하게 까딱였다.

상호는 교실을 향해 걸어가는 태화를 바라보다가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태화가 반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교실 문 닫히는 소리가 나자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교실로 조용히 다가갔다.

안쪽에서 태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천세희.”

“왜?”

“따라나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상호는 식겁하며 멀쩡한 오른쪽 다리로 바닥을 박찼다.

그리곤 허공답보를 응용한 방식으로 천장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가 숨을 죽이고 검을 품에 부여잡는 찰나, 문이 열리고 태화와 세희가 걸어나왔다.

분위기가 아주 험악했다.

‘제발, 제발, 제발 좀 싸우지 마라, 태화야…….’

상호는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태화는 벽에 기댄 채로 다리를 건들거리며 세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뺨 한대 갈기고 머리끄댕이 붙잡을 분위기였다.

상호는 수틀리면 끼어들 준비를 했다.

“미안해.”

태화가 툭 내뱉듯 말했다.

“난 네가 나 부모 없이 살은 거 아는 줄 알았어. 그래서 그 이야기 했던 거고. 너 비꼬려고 그랬던 거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상호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팔짱을 낀 채로 이야기를 듣던 세희가 태화를 향해 다가섰다.

“그런 거면 알겠어. 나도 착각해서 미안해. 그런데.”

세희는 둘의 앞머리가 닿을 거리까지 걸어가 태화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또렷한 속삭임이 상호의 귀까지 닿았다.

“너 선생님 수업하는 거 방해하지 마.”

가르친 적도 없는 투기가 세희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난 수업 듣는 1분 1초가 소중하니까.”

그 말을 들은 태화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정도야?”

“당연하지. 난 1등해야 되거든.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했어.”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알았어, 근데 너 있잖아.”

태화가 실쭉 웃으며 세희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입냄새 좋다.”

“……윽!”

세희는 당황해서 입을 가리며 후다닥 뒤로 떨어졌다.

“너!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들었어, 멍청아. 그래, 수업 시간은 보장해 줄게, 범. 생. 이.”

태화는 놀리듯이 한 글자씩 끊어 말하고는 혀를 쏙 내밀며 교실으로 들어가버렸다.

세희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후우…….”

한숨을 폭 쉬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호는 그녀가 문을 닫는 것을 확인한 후 바닥에 내려왔다.

이마에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선생 일을 너무 쉽게 봤나…….’

그는 태화의 사과가 무사히 끝난 것에 감사하며,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반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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