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501)

***

“상호 씨 어딜 그렇게 봐?”

“예?”

상호는 정신을 차리고 설미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급식소 교사 전용 입구에 줄을 서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선 설미가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애들 다리 보는 거 같은데…….”

“콜록!”

상호는 헛기침을 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옆에 줄을 선 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보는 중이었다.

“아주 넋을 잃고 보는데……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아뇨, 그게…….”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 반 애가 치마가 너무 짧아서요. 치마가 얼마나 길어야 괜찮을지 보는 중이었어요.”

“아, 그럼 그럴 수 있지.”

끄덕여지던 설미의 고개가 돌연 기우뚱했다.

“그런데 상호 씨 반엔 1학년밖에 없잖아.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치마를 줄여?”

“그러게요.”

“만만찮은 애가 있나 보네.”

교사 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앞으로 걷던 상호는 학생 줄 앞쪽에 세희와 태화, 나빛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태화와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세희와 이야기하느라 뒤를 돌아보고 있던 태화가 그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오후에 야외수업 할 때는 말을 해야 할 텐데…….’

학생들 사이에 있으니 치마가 짧은 것이 눈에 확 띄었다.

설미도 그것을 봤는지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저 애, 상호 씨 반이지?”

“네.”

“짧긴 짧다.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한소리 듣겠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상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해련이었다.

“아, 교장선생님.”

“할 이야기 있으니까 밥 먹고 교장실로 와요.”

평소보다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어째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부르면 갈 수밖에 없었다. 상호는 고개를 푹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해련은 그의 대답을 듣고 쌩 가버렸다. 설미가 상호의 귀에 속삭였다.

“혼내시려는 것 같아. 말대꾸 하지 말고, 죄송하다고 꼭 말하고. 알지?”

“알죠. 애도 아니고…….”

“그래도 상호 씨 나보다 동생이니까.”

설미가 헤헤 웃었다.

“누나로서 조언 좀 해 봤어.”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굳이 따지자면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법은 군에서 굴러본 그가 더 잘 알 터였다. 물론 그걸 따지고 들 생각은 없었다. 좋은 뜻으로 말해주는 거니까.

그는 이후에 있을 해련과의 대면을 걱정하며, 설미를 따라 급식소로 들어갔다.

***

점심시간 후. 상호는 교장실 앞에 섰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혼나는 것이 두렵다고까지 할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인 건 사실이니까.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사람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도망쳐 버릴 수는 없으니.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매무새를 한 번 다듬은 후 문을 두드렸다.

“교장선생님, 강상호입니다.”

“들어와요.”

상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주 와본 건 아니지만 꽤나 익숙해진 방이었다. 해련이 책상에 턱을 괸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앉아요, 강 선생.”

상호는 소파에 앉아 무릎에 손을 올렸다.

“왜 불렀는지 알아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몰라요?”

해련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 호호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 참, 부대처럼 장난치려고 했는데, 너무 어색하네. 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사실 많이 무서웠습니다.”

“호호…….”

해련이 상호의 앞 소파에 앉았다.

“말했듯이 별 건 아니고…… 강 선생 반에 악마 융합체인 아이 있지요? 태화라는 아이.”

역시나.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아이 치마가 많이 짧던데. 알고 있어요?”

“예, 그렇잖아도 아침에 보고 늘려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대답을 듣자 해련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 선생이 전투는 잘 가르치겠지만 선생 일은 처음이니까…… 걱정돼서 확인차 물어 봤어요. 혹시 그런 쪽은 신경을 아예 안 쓰나, 자유방임주의인가, 해서.”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수요일까지는 꼭 늘려 오도록 시키겠습니다.”

“혼낼 거예요?”

“……예?”

상호는 해련의 말을 이해하는 데 살짝 시간이 걸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태화요? 혼은 낼 수도 있지만…… 최대한 말로 타일러 보겠습니다.”

“말로 해서 안 되면?”

“그러면…….”

상호는 눈을 감았다.

“……선생 실격이죠.”

학생을 말로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교직에 있을 자격이 없다.

심지어 그의 반은 고작 세 명이다. 다른 교사였다면 몇십 명을 한 명 한 명 붙들고 있을 순 없다며 변명이라도 하겠지만, 상호는 그런 변명을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체벌이 더더욱 용납되지 않았다.

애초에 세희, 태화, 나빛 중 아무도 때리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말로 했는데도 안 되면 제가 선생을 때려치겠습니다.”

“그럴 것까진 없는데…….”

해련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일단 알겠어요. 강 선생이 알아서 잘 할 것 같네요. 가도 돼요. 그리고 사직서는 학년 말까진 안 받으니까 그리 알고.”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오후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무실로 향했다.

왜 너희끼리 싸우냐

오후 수업이 시작되는 5교시. 수업 준비를 마친 상호는 교실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그는 교실 앞에 다다라서 별 생각 없이 문을 열려다가 움찔했다. 5교시는 야외수업. 즉 수업 직전은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었다.

노크를 하기 위해 올라가던 그의 손이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우뚝 멈췄다.

“태화야, 어디 아파?”

나빛의 목소리. 걱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 물음에 태화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럼 오늘 왜 늦은 거야?”

“아팠어.”

“에…….”

나빛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럼 내가 치료해 줄게! 어디가 아파?”

“나 악마라서 성력 안 먹히는데.”

“아…….”

당황한 나빛에 이어 세희가 물었다.

“그럼 선생님이랑 싸웠어?”

“아팠다니까.”

“너 오늘 선생님하고 한 마디도 안 했잖아.”

“아프면 말이 없지. 당연한 거 아니야?”

“웃기네. 아프면 선생님한테 어리광부릴 거면서.”

상호는 세희가 따지는 것을 듣고는 눈을 끔뻑였다. 마냥 순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세희…… 내가 없으면 말이 세지는구나.’

태화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힘없는 대답이 뒤따랐다.

“치마 짧다고 혼났어. 난 꼬리 때문에 줄인 건데 무조건 늘려오래.”

“많이 화내셨어?”

“아니, 그건 아닌데…… 나한테 치마 늘려오기 전까지는 말 걸지 말래. 그래서 나도 말 안 한다고 했지.”

“네가 애기야?”

세희의 말에 태화가 발끈했다.

“쌤이 먼저 했거든?!”

“니가 애기같이 구니까 그러셨겠지.”

그 말이 뼈를 때렸는지, 태화는 궁시렁대기만 할 뿐 똑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세희가 말을 이었다.

“그냥 조금 불편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너도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을 거 아냐.”

“조금 불편한 거 아니거든?”

“그러면 선생님하고 계속 불편하게 지낼 거야?”

“신경 끄셔. 니가 내…….”

그 다음 말은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상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태화도 잠시 말을 주저하는 듯했다.

하지만 잠시일 뿐, 그녀는 결국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니가 내 부모야? 뭔데 그러는데?”

“부…….”

부모. 그 단어를 말하려던 세희는 목이 콱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너, 나보고…….”

“왜? 뭐가?”

“부모님 없다고…… 먹이는 거야?”

그 말에 태화가 버럭 소리쳤다.

“나도 애미애비 없어, 썅년아! 너만 없는 줄 알아?!”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쥐죽은 듯 조용한 반에서 나빛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싸우지 마…….”

상호는 상황이 더 심해지기 전에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이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들어간다.”

상호는 말을 하고 잠깐 기다렸다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세희와 태화가 서로 마주 서 있고, 그 사이에 나빛이 안절부절못해하고 있었다.

그는 세희와 태화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얼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나 그가 그러는 동안, 태화가 울먹거리더니.

“……흑!”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태화야……. 선생님 다리 아파 죽는다…….’

“너흰 반에 있어. 태화 데려올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절뚝절뚝 서둘러 걸어갔다. 태화가 갈 만한 곳은 정해져 있었다.

반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세희와 나빛이 착잡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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