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우웅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교직원 숙소로 돌아가던 상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태화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쌤
-저 밥사주세요
그 아래로는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 이모티콘이 전송되어 있었다.
‘얘가…….’
상호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아침이잖아. 학교 밥 먹어.
-다 치웠어요ㅠㅠ
지금은 10시였다. 그가 아침을 먹은 것은 7시.
급식소에서도 아침을 몇 시간씩 차려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점심 준비도 해야 하니까.
-일찍 일어났어야지. 기숙사에 먹을 거 없어?
-사감쌤이 먹을거 가져오지 말래요ㅠㅠㅠ
-그럼 굶어야지 뭐.
-너무해요ㅠㅠㅠㅠㅠ
문자로 흘리는 눈물이 점점 늘어갔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애를 굶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급식소에 가 봤자 점심 준비로 바쁠 것이다.
별 수 없었다.
-그럼 일단 교직원 숙소 앞으로 와.
-아싸~~~~
태화의 답장은 아주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급히 삭제한 모양이었다.
-네ㅠㅠㅠ
상호는 그 문자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교직원 숙소에 도착해 보니 태화가 벌써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가 그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었다.
하얀 긴팔티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쌤~!”
“다음부터 아침 제때 안 먹으면 혼낸다.”
“에이, 늦잠 잘 수도 있잖아요~.”
태화는 꼬리를 흔들며 상호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래서 저희 뭐 먹어요? 나가서 먹을 거죠?”
“뭘 나가. 선생님한테 있는 거 먹어야지. 밥이랑 김치랑.”
“엑…….”
상호는 당황해하는 그녀를 보며 무심하게 한 마디 했다.
“싫어? 배가 아직 덜 고프구만.”
“진짜 밥이랑 김치만 있어요? 에이……. 하다못해 라면이라도…….”
“가서 봐라.”
그는 태화와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
“진짜네…….”
태화가 상호의 방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덩그러니 놓인 김치통이 끝. 계란 한 알이나 마늘 한 쪽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뭐가 없어요?”
“나도 여기 들어와 산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꼭 필요한 것만 챙겼지.”
“꼭 필요한 게 김치가 다예요? 방에도 뭐가 없고…….”
냉장고, 침대, TV. 그 외에는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끝이었다.
상호의 살림살이를 털던 태화는 아무리 찾아도 먹을 만한 것이 나오지 않자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발을 동동 굴렀다.
“아 몰라, 배달이라도 시켜줘요! 치킨! 짜장면!”
“아침부터 뭔 배달이야. 있는 거 먹어야지.”
“몰라몰라몰라! 일주일 내~내 급식만 먹었단 말이에요!”
“급식 엄청 잘 나오잖아. 그리고 뭘 잘했다고 밥을 사줘? 세희도 대련 잘 하면 아이스크림 하나 사준다고 했는데…….”
그 말에 태화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통이 나서는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왜 세희만 사줘요?”
“안 사줬어. 성공 못해서.”
“그게 아니라요. 왜 세희만 사준다 해요? 저도 대련 할래요.”
“너도 나중에 할 거야. 선생님 몸이 두 개가 아니잖아. 세희는 칼 쓰니까 편해서 먼저 가르친 거고.”
“그래도…… 끄응.”
입은 열었지만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태화는 다시 침대에 널브러져 뒹굴거리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힝, 다른 애들은 주말에 가족이랑 외식하러 나가던데…….”
그 말에 상호는 또 마음이 약해져 버렸다.
“……시켜, 그럼. 먹고 싶은 걸로.”
“진짜요? 아싸!”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태화가 싱글벙글 웃으며 핸드폰을 켰다.
상호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세희한테도 나중에 사줘야겠다…….’
***
결국은 치킨을 시켰고, TV 앞에 앉아서 둘이 함께 먹게 되었다.
상호는 닭의 목뼈부터 집었다. 배가 딱히 고프지 않았다.
“너 다 먹어. 선생님은 맛만 볼게.”
“쌤.”
“응?”
“쌤은 가슴이 좋아요, 다리가 좋아요?”
그의 옆에 앉은 태화가 닭가슴살과 닭다리를 양손에 들고 차례로 흔들며 물었다.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난 그런 거 안 따져.”
“막 먹어요?”
“막 먹지.”
“그래도 굳이 하나만 고르라면요?”
“다리.”
“흐음…….”
태화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리 좋아하시는구나…….”
그걸 알아서 뭐 하겠다는 걸까. 상호는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목뼈의 튀김 껍질만 깨작거렸다.
“너 세희랑 나빛이랑은 이야기 해 봤어?”
“많이 했죠?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것 치고는.”
“번호는 다 교환했고?”
“그럼요. 기본이죠. 말 나온 김에 걸어봐요?”
태화는 씩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세희한테 쌤 방에서 쌤이랑 치킨 먹는다고 자랑해야겠다.”
“너 그거 남들한테 말하고 다니면 다시는 안 사준다.”
“에이, 알죠, 알죠. 농담이에요~.”
태화는 능글능글하게 아양을 떨면서도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호는 둘이 이야기하는 걸 보고 싶었던 참이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결음만 길어질 뿐이었다.
태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씹는데요?”
“수련중일걸. 그래서 못 받는 거겠지.”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상호는 초조해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설마 진검에 다친 건 아니겠지…….’
“내가 걸어 볼게.”
그는 세희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태화의 핸드폰에서 들렸던 연결음이 똑같이 재생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희는 받지 않았다. 두 번씩이나 핸드폰이 울렸을 텐데 확인하지 않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상호는 닭뼈를 탁자에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났다.
“가봐야겠다.”
“저도 같이 가요.”
태화도 치킨을 내려놓고 그를 따라 일어섰다. 하지만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넌 먹고 있어.”
“쌤 못 뛰잖아요. 부축해 드릴게요.”
그 말도 맞았다.
상호는 별 수 없이 태화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가자,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