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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간단한 재료를 여럿 늘어놓고 알아서 집어가게 하는 방식이었다. 상호는 구운 식빵과 삶은 계란, 사과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세희가 그의 옆에 따라 앉았다.
주말이라 먹는 시간도, 메뉴도, 자리도 자유로운 분위기였기에 선생과 학생이 같이 앉을 수 있었다. 상호는 세희의 식판을 내려다보았다. 잼을 바른 식빵과 사과, 오렌지 주스.
“계란은 싫어해?”
“삶은 건 잘 안 먹어요.”
“못 먹는 건 아니지?”
“네.”
상호는 삶은 계란을 까서 세희의 식판에 놓았다.
“수련하고 나면 단백질 챙겨 먹어. 검술은 결국 근육 수련이니까. 우유를 먹어도 되고…….”
“괘, 괜찮아요.”
“흰자만이라도 먹어.”
그녀는 결국 계란을 집고 한 입 베어 오물거렸다.
흰자만 먹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남기는 것 없이 노른자까지 다 먹어 치웠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버릇이 든 것 같았다.
상호는 그녀를 보면 볼수록 자신과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세희 너는 왜 특기를 칼로 정했어?”
세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다른 거엔 재능이 없어서…… 무예밖에 없었어요. 거기서도 다른 무기들은 영 손에 안 맞았고.”
“마법은 머리 아파서 싫지?”
“네.”
“창이나 망치 같은 건 폼이 안 살고. 검이 제일 멋있긴 해. 예쁘기도 하고.
그치?”
세희는 그 말을 듣고는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도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세희가 물었다.
“선생님은 왜 칼로 정하셨어요?”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끼었다.
“나는…… 내가 무예를 배울 때는 전쟁통이었거든. 그 때는 무예던 마법이던 가르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 스승이 칼을 쓰면 칼을 배우고, 창을 쓰면 창을 배우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였지. 내가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스승을 고를 수도 없었어요?”
“그때는 못 골랐어. 가르쳐 준다고 하면 넙죽 절하고 수발 들면서 배웠어야 했어. 안 배우면 몬스터한테 죽으니까.”
세희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흥미가 돋는 모양이었다.
“선생님도 스승님께 수발 들고 그러셨어요?”
“아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랬다는 거지. 나는 운 좋게 좋은 스승을 만나서 그러진 않았고.”
“어떤 분이셨어요?”
“여자였어. 나보다 여섯 살 많은 누나.”
상호의 스승은 그와 같은 저승부대원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제일 강했어. 마음도, 몸도. 지금까지도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야.”
“요즘도 연락하세요?”
세희의 질문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연락 못한 지 꽤 됐어.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아…….”
세희는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다물었지만, 상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별거 아냐. 넌 신경 안 써도 돼.”
하지만 세희는 여전히 눈치를 살폈다. 그는 그냥 말을 돌리기로 했다.
“태화랑 나빛이랑은 어때? 좀 친해졌어?”
“아직은 조금…….”
“하긴. 며칠밖에 안 됐으니까. 그래도 학생이 셋밖에 안 되는데 너희끼리라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반이 휑해서 그래.”
“노력할게요.”
“태화는 장난 많이 치겠더라. 어지간한 건 웃어넘기고, 진짜로 심한 장난이면 꼭 선생님한테 말하고. 알지?”
“네.”
“나빛이랑은 말 해봤어?”
“조금요. 첫날에도 했고 어제도 했고…….”
“너희들끼린 무슨 이야기 해? 선생님은 여자애들이랑 뭔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냥, 가방 예쁘다, 볼펜 예쁘다, 신발 예쁘다…….”
“……그게 다야?”
“아직은 덜 친해서요.”
상호는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지금 이 대화가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
“친해지면 무슨 대화 하는데?”
“그, 음…….”
세희는 초조한 듯 손을 꼬물거리다가 얼굴을 붉혔다.
“좋아하는 가수나…… 드라마나 소설 좋아하면 그 이야기도 하고, 헌터 관련해서 뉴스 나온 거 있으면 그것도 말하고…… 어디 브랜드 옷이 예쁘더라, 무슨 영화를 봤는데 배우가 잘생겼더라, 그런 이야기 해요. 많이 친하면 연애 상담 같은 것도 하고…….”
“음…….”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심오하네.”
“별거 없어요…….”
“나한텐 다른 세상 이야기라서. 그럼 세희 너는 취미가 뭐야?”
“취미요?”
“오늘처럼 쉬는 날에 하는 거. 뭔가 시간 보내는 게 있을 거 아냐.”
“저는…….”
세희의 시선이 검을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상호는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진짜 검술밖에 모르는 바보구나.”
세희는 그 말이 기분이 좋은지 헤헤 웃었다.
상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교장과 내기를 한 것을 말할까, 말까.
이미 목표를 삼은 아이에게 더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어떤 일을 하건 1등을 하려면 채찍질이 좀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당근이 필요한지 채찍이 필요한지 파악부터 해야 했다.
어느새 식판이 깔끔히 비어 있었다. 상호는 커피를 쭉 비운 후 빈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여유롭게 향을 즐기거나 하는 버릇은 없는 탓이었다.
“나가자. 검술 좀 가르쳐 줄게.”
“정말요?”
조용하지만 신이 잔뜩 난 목소리였다. 세희는 서둘러 식판과 수저를 정리하고 상호의 뒤를 쪼르르 쫓았다.
칼에 미친 아이
“자, 전투의 기본이 뭐지?”
학교 부지의 구석. 아무도 오지 않는 외딴 곳에서 상호는 세희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양손으로 검을 짚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검을 꺼내든 세희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격, 방어……, 회피요.”
“그 모든 것의 기본은?”
“간격……?”
“간격도 정답 중의 하나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답은 강도와 간격이야. 수수깡으로는 때릴 수도, 막을 수도 없잖아. 방어의 기본은 강도고, 회피의 기본은 간격이지. 공격은 둘 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검기…… 이야기인가요?”
“그렇지. 무기의 강도는 아무리 못해도 상대의 피부보다는 강해야 해. 상대의 무기와 강도가 같아지면 그때부터 대등한 싸움이 성립되는 거고. 반대로 말해서, 내 무기가 상대의 무기를 부술 수 있다면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거야. 그걸 가능케 만들어 주는 게 검기, 검강이고.”
그는 검을 뽑았다.
“이제 네 검기 좀 보자.”
세희가 잔뜩 긴장한 채로 검을 들어올렸다.
상호는 그 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평범한 수련용 가검이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물건일 수도 있었다.
“그 검, 부러져도 괜찮겠어?”
“아…….”
세희는 당황하며 자신의 검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첫 검에는 정이 드는 법이지.”
상호도 이미 겪어 본 일이었다.
그는 검에 검기를 불어넣었다. 푸른 검기가 은은하게 칼날을 감쌌다.
“그래도 물건에 너무 정을 붙이면 큰 사람이 못 된다. 세희야, 내 앞에 서 봐.”
세희가 그의 앞에 다가와 섰다.
“이쯤이요?”
“살짝 뒤로 갈래? 응, 거기. 거기서 이제 발을 떼지 않고 상체만 움직여서 싸우는 거야. 나는 막고, 너는 공격하고. 약간은 움직여도 돼. 뒤로 가지 말라는 뜻이야.”
“네.”
“네가 공격하고 싶을 때 공격해. 만약 내 몸에 네 검이 닿으면…… 으음……. 큰 건 못 주고. 매점에서 뭐 하나 사 줄게.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얼굴을 향해 검이 날아왔다. 상호는 시퍼렇게 번득이는 칼끝을 보며 속으로 침음했다.
‘으음, 어지간히 미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뜸 면상부터 공격하진 않는 데…….’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지만, 실력차가 너무 컸다. 한 번 놀란 다음에 반응해도 넉넉할 정도였다.
그는 가볍게 그녀의 검을 쳐냈다.
째애앵
세희의 검이 비명을 토해냈다.
그녀는 뼛속까지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반격이 너무 강하고 깔끔해서 꼭 벽에 부딪힌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상호의 타박이 날아들었다.
“어허, 물러서지 말고.”
“죄송해요.”
세희는 작게 말하며 다시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그리고는 검을 몸에 바짝 붙였다.
내지르기 위해 끌어당긴 것이다.
상호의 눈이 그녀의 자세를 쓱 훑었다.
‘아래로 들어오겠군.”
세희의 몸이 그를 향해 쭉 내쏘아졌다.
왼발을 제외한 모든 신체가 탄력 있게 앞으로 튀어나왔다. 마치 펜싱의 찌르기와도 비슷했지만, 몸이 훨씬 낮았다. 다시 일어서려면 큰 힘과 시간이 들어가는 자세.
뒤를 생각하지 않는 공격이었다.
상호의 생각대로 세희는 아래에서 위로 찔러올렸다. 칼끝이 향하는 위치는 아랫배, 단전.
다리를 보통 사람보다 넓게 찢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상당히 유연하네.’
다리에서, 허리에서, 팔에서. 온몸에서 속도를 더해 뻗은 검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세희는 희망을 품었다.
이 빠르기라면 중간에 쳐내지더라도 옷깃 정도는 스칠 수 있을 거라고.
쩌엉
그러나 칼끝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손바닥을 때리는 충격을 느끼며, 허공에 비산하는 검의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막 질러버리면 안 되지.”
부서진 칼날이 바닥에 떨어져 땡그랑거렸다.
“실전에서도 이럴 거야? 이건 공격이 아니라 그냥 자살이야.”
상호는 허리를 숙여 세희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얏…….”
“다리를 너무 뻗어서 일어나지도 못하잖아. 왜 그랬어?”
“손이 빠르다고 하셔서…….”
세희는 상호가 내민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제가 얼마나 빠른지 궁금했어요. 선생님한테 통할지 안 통할지…….”
“세희 넌 이미 빠르다니까.”
“전 선생님만큼 빨라지고 싶어요.”
“으음…….”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검이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쾌검에만 집중해 버리면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도 있었다.
“넌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야. 어쨌든…… 검기는 나쁘지 않네.”
“정말요?”
“아직 기본 심법이지? 그런 것치고는 꽤 단단해.”
중학교에서는 아주 기초적인 심법만 가르친다. 전문적이고 특화된 심법과 기공은 고등학교 때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기초 심법은 내공을 쌓기엔 영 좋지 않다. 그런데도 세희의 검기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 정도 수준이 되니까 중학교에서 1등을 한 것일 터였다.
보통 학생들 사이에서는 ‘기초 심법은 효율이 떨어지니 중학교 때는 대충 하고, 고등학교 가서 고급 심법으로 열심히 수련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학생뿐만이 아니라 선생들에게도. 하지만 상호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세간의 인식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기초 심법은 실제로 효율이 쓰레기 수준이었다. 거기에 고급 심법도 쌓이는 양이 많은 것뿐이지 들고 있는 내공을 곱빼기로 뻥튀기시켜주는 것은 아니기에, 기초 심법 1년치 내공을 들고 시작하든 2년치 내공을 들고 시작하든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럼 무엇이 다르느냐.
인간이 달랐다.
미친 자와 미치지 않은 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기공을 배우면 금방 강해질 거야. 그러면 배우는 재미도 더 생길 거고. 넌 잘 하고 있으니까 계속 열심히 하면 돼.”
“……네.”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부서진 검을 바라보았다. 상호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중학교에서 그냥 준 싸구려 가검이지만 엄연히 인생의 첫 검. 손때도 많이 먹은 만큼 저 검의 길이, 무게, 손잡이의 굵기에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다.
스스로 다른 검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중일 것이다.
“자.”
상호는 세희에게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칼집에 넣은 채로.
“주말 동안은 이걸로 연습해. 월요일에 학교에서 새 검 받고.”
세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도 돼요?”
“응. 그 검을 선생님 줘. 난 칼집만 있으면 상관 없으니까.”
주저하던 세희는 자신의 칼집에 부러진 검을 넣어 상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상호가 내민 검을 받았다.
두 검은 길이가 비슷했다. 세희는 의외로 짧은 상호의 검을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키치고 짧은 거 쓰시네요.”
“나보다 작은 사람이 쓰던 거라서.”
상호는 두루뭉술하게 넘기며 그녀의 검을 짚어 보았다. 평소에 짚던 감각과 큰 차이가 없었다.
부러진 검이긴 했지만, 휘두를 일도 없는데다가 필요하면 강기로 길이를 늘릴 수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세희가 쥔 자신의 검을 가리켰다.
“그거 아끼는 물건이니까 막 돌에 내리치고 그려면 안 돼.”
그의 말에 세희는 어째 입이 근질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상호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를 깨닫고 피식 웃었다.
“선생님은 물건에 정을 붙여서 큰 사람이 못 됐다. 그래서 B급인 거야.”
“그거 궁금했어요. 선생님 진짜 B급이에요?”
세희의 목소리에는 불신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리 봐도 B급은 아니잖아요.”
“그거는 뭐…… 헌터 등급은 강하다고 무작정 올라가는 게 아니니까.”
상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선생님은 다리 때문에 활동을 못 하잖아. 강등되는 게 당연하지.”
그런 설정이었다.
그는 세희의 검을 짚으며 뒤돌아섰다.
“새 검에 익숙해져 봐. 그게 숙제야. 잘 쉬고, 월요일에 보자.”
“네.”
세희는 멀어지는 상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검을 뽑았다.
만만한 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검을 살짝 휘두르며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나무를 걷어찼다.
“흐읍!”
떨어지는 나뭇잎을 향해 칼날이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