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날.
전투 수업 중이었다. 상호는 운동장에서 곰인형과 싸우고 있는 태화를 불렀다.
“태화야, 그만하자. 나빛이랑 교대해.”
“네?”
인형과 엎치락뒤치락 굴러다니던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빛이요? 나빛이도 테디 씨랑 싸워요?”
“응. 오늘부터.”
그가 손짓하자 태화가 곰인형을 내버려두고 그에게 걸어왔다. 그의 곁에 있던 나빛이 우물쭈물해하면서도 곰인형을 향해 다가갔다.
상호의 옆에서 세희가 물었다.
“신앙인도 싸울 수 있어요?”
“누구나 싸울 수 있지. 언젠간 싸워야 하는 때가 오는 법이고.”
그들은 가만히 나빛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곰인형 앞에 서서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리고 도끼눈을 떠 날카로운 눈빛을 만들었다. 하지만 상호에게는 꼭 세희를 따라하는 것 같아서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인형이 뿅망치를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힉!”
나빛이 급히 펼친 방어막을 뿅망치가 내려쳤다. 예상 외의 굉음이었는지, 그녀가 귀로 손을 가져가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호는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쫄지 말고 정신 차려. 귀 막지 마. 감각은 계속 열어둬야 하는 거야.”
“네……, 네!”
그녀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상호는 다시 뿅망치를 휘두르게 해서 방어막을 깨부수고, 재차 나빛을 공격했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멍하니 있지 말고 방어막 펼쳐!”
나빛은 대답도 못하고 방어막을 펼쳤다.
상호는 곰인형을 세희와 태화를 상대할 때보다 훨씬 느리게 조종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도 나빛에겐 너무 빨랐다. 그녀의 눈동자는 곰인형의 흐릿한 실루엣을 쫓는 게 고작이었다. 뿅망치를 어떻게 휘두르는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쨌든 방어막으로 막아낼 수는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
쨍그랑
곰인형이 다른 손으로 내리치자 방어막이 유리창처럼 와장창 깨져 버렸다.
“앗……!”
그리고 뿅망치가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빛은 눈을 꼭 감으며 몸을 움츠렸다.
삑
뿅망치의 귀여운 타격음이 들리는 순간, 상호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피해야지!”
천둥같은 일갈이 그의 목에서 대포알처럼 튀어나왔다.
옆에 가만히 있던 세희와 태화도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운동장을 온통 떨어 울리는 성량도 문제였지만, 여지껏 상호가 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물론 제일 크게 놀란 것은 당사자인 나빛이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에서 피가 쫙 빠졌다.
“아…….”
상호는 그녀를 향해 절뚝절뚝 걸어갔다.
“왜 안 피해? 다리가 없어? 네가 나처럼 다리병신이야?”
“아, 저, 저어, 그게…….”
“방어막 깨졌다고 그냥 죽을 거야? 그렇게 쉽게 포기해? 너는 그 정도밖에 안돼?”
“아니요, 아니요…….”
“아니면 뿅망치 따위는 맞아도 상관없어? 저게 만약 도끼라면? 이게 실전이라면? 진지하게 못 하겠어?”
“아니에요…….”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기관총같은 타박에 나빛이 울먹거렸다. 그녀는 촉촉히 젖어든 눈으로 상호와 눈을 마주쳤지만, 살벌한 눈빛을 버티지 못하고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상호는 멈추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세희와 태화를 가리켰다.
“세희랑 태화를 봐. 쟤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피하려고 노력한단 말이야.
눈은 왜 감아? 눈을 감으면 무서운 게 사라져? 무서운 게 사라지면 싸우던 몬스터도 사라져?”
“죄송해요, 죄송해요…….”
“누구한테 변명할 거야? 누구한테 사과할 건데? 너는 방금 도끼 맞고 죽었는데?”
그야말로 미친개처럼, 마구 물어뜯는다.
질타를 견디기 힘들었던 나빛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 으흑…….”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이쯤 할까.’
맘만 먹으면 ‘뭘 잘했다고 우냐’ ‘울면 도끼가 멈추냐’ ‘애원하면 몬스터가 알아듣냐’ 등등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았다.
그는 짚고 있던 검을 허공섭물로 세워놓고 양손으로 나빛의 어깨를 잡았다.
“나빛아.”
“잘못했어요…….”
“나빛아, 선생님 좀 봐봐.”
얼굴을 가리고 우는 나빛의 손을 상호가 떼어냈다. 눈시울이 새빨갛게 물든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상호는 오른쪽 눈을 가린 안대를 들어올렸다.
눈을 세로로 가른 흉터와 하얗게 혼탁해진 눈동자가 드러났다.
“어제 들었지? 일부러 안 고치는 거라고.”
“네…….”
“죽는 날까지 잊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는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조금만 더 깊이 베였으면 눈으로 안 끝났을걸. 아마 죽었겠지. 이 흉터 뿐만이 아냐. 선생님은 몬스터랑 싸우면서 수백, 수천 번을 죽을 뻔했어. 전투 중에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라.”
그리고 나빛의 가냘픈 손을 잡았다. 그녀가 코를 훌쩍이며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항상,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해. 내가 이겼다는 게 증명될 때까지. 단 1초도 방심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마음가짐이 없으면 헌터로 살아남을 수 없어.”
상호는 그녀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물었다.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겠어?”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두 손으로 나빛의 손을 감쌌다.
“믿을게. 다시 해보자.”
상호는 나빛을 두고 다시 세희와 태화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들은 아직도 놀란 표정 그대로 잔뜩 얼어 있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는 입맛을 다시고 곰인형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금 나빛을 향해 날아드는 뿅망치.
그녀의 앞에 금빛 방어막이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사정없이 깨뜨려 버렸다.
나빛은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흡!”
그녀가 옆으로 몸을 날리자 곰인형이 그녀가 있던 자리에 뿅망치를 내리쳤다.
상호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을 정도로만 빠르게 나빛을 향해 뿅망치를 내리쳤다.
그녀는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공격을 피해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태화가 혀를 찼다.
“아이고, 저 흙 좀 봐…….”
체육복에도, 회색 머리카락에도 흙먼지가 달라붙어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호는 무덤덤하게 한 마디 할 뿐이었다.
“너희도 곧 저렇게 될 거야.”
“으엑…….”
태화가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한편 상호는 나빛이 망치를 몇 번까지 피하는지 세고 있었다. 넷, 다섯.
여섯 번째가 되자 그는 뿅망치의 속도를 올렸다.
“헉, 헉…….”
나빛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몸을 굴렸다.
하지만 점점 빨라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머리에 타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삑
“아…….”
당황한 그녀의 이마에 흙 묻은 땀이 흘러내렸다.
“됐어.”
나빛은 상호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불안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 또 혼이 날까봐 겁이 난 듯했다.
“죄, 죄송해요…….”
“잘했어.”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흙을 털어냈다.
“그렇게 하는 거야. 끝까지 노력하는 거. 그래야 공격을 맞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거야.”
나빛의 꾀죄죄한 얼굴이 환해졌다.
“……네.”
상호는 그녀를 데리고 세희, 태화와 함께 본관으로 돌아갔다.
가면서 그녀들을 슬쩍 보니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빛이는 평소처럼 웃는 상인데, 세희와 태화 둘 다 나빛을 흘겨보고 있었다.
꼭 부럽다는 것처럼.
‘또 뭔 일이 있었나?’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종례 시간.
교실에 들어온 상호는 아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물로 한 번 씻은 나빛은 말끔해진 얼굴로 밝게 웃고 있었다. 상호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나빛이 오늘 고생했다.”
“헤헤…….”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그 옆에서 태화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팔을 번쩍 들었다.
“쌤! 저는요? 저는요?”
“그래, 너도.”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데요.”
그는 태화의 말을 무시하고 세희를 보았다.
“세희도 고생했어.”
“나만 미워해애애~!”
태화가 책상에 철퍽 널브러지며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호는 교탁에서 출석부를 덮으며 말했다.
“내일 주말이네. 그치? 주말 잘 보내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네.”
“월요일에 보자. 조심히 가.”
“네~.”
그는 그녀들의 대답을 들으며 반을 나섰다.
목표는 1등
교사를 채용하는 기준은 집의 거리가 아니라 실력이다. 교직원들 중에는 본가가 가까운 사람보다 먼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예현여고는 실력 있는 헌터를 교사로 붙잡기 위해 교직원 숙소를 따로 마련해 두었다. 학생들 것보다는 좀 허름했지만 나름대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상호는 집이 아주 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출퇴근하기 훨씬 편하니까 교직원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남자 교직원 숙소 뒷편.
이른 아침부터 한 청년이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촤아악
그가 검을 휘두르자 바닥에 놓인 신문이 깔끔하게 잘렸다. 딱 한 장만.
겹겹이 접힌 신문 중에서 아주 얇은 한 장을 자른 것이었다.
몇 번을 더 휘둘렀었던 것인지, 신문의 다른 부분에도 똑같은 흔적이 몇 개 더 있었다.
“대단하네요.”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 상호의 뒷편에서 해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뒤돌아서 허리를 푹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하얀 양복 차림이 아니라 분홍색 스웨터와 하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어울렸지만, 그녀의 원래 나이답기도 하다는 것이 참 묘했다.
“밥은 먹었어요?”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같이 먹으러 갈래요?”
“예.”
상호는 검을 집어넣고 발을 옮겼다.
해련은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예요?”
“감각을 좀…… 날카롭게 갈아야 해서, 수련 중이었습니다.”
“감각?”
“곧 아이들이랑 직접 대련할 생각이라서요.”
그녀가 고개를 기웃했다.
“전에 보니까 곰인형으로 잘 하고 있던데. 뭔가 아니다 싶었어요?”
“그건 그냥 애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보려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일반적인 싸움은 못 하니까…….”
뛰어다니지 못하는 상호의 사정상, 그녀들이 상대를 얼마나 빨리 쫓아다니는지, 공격의 명중률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제가 직접 하기도 하고, 인형으로 하기도 하고 그럴 겁니다.”
“신문은 아이들 안 다치게 하려고?”
“예. 저는 무조건 깊게 베는 방법밖에 몰랐으니까요. ”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매일 연습하고 있습니다. 칼이 손가락인 것처럼…….”
“대련할 때도 진검을 쓸 건가요?”
“칼집째로 쓸까 생각중입니다. 목검보단 차라리 그게 더 익숙해서요. 매일 짚고 다니니까.”
해련이 웃었다.
“강 선생이 이렇게 노력파인 걸 교원들이 알아야 하는데.”
낙하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학생들이 증명할 겁니다.”
“아이들은 어때요?”
“셋 다 착하고 성실합니다. 재능도 최고고요.”
“그럼 학년 1등, 자신 있나요?”
“이미 확정입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한 대답이었다.
해련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마주보았다.
“그러면 내기 하나 하죠.”
“내기요?”
갑자기 뭔 소리인가, 상호는 멀뚱히 눈만 끔뻑거렸다.
“강 선생네 반에서 1등이 나오면 강 선생한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장학금을 줄게요.”
“……그걸 어디다 씁니까?”
“맘대로요. 학생들한테 그냥 학비로 넘겨줘도 좋고, 밥을 사줘도 좋고, 놀러 갈 수도 있을 거고. 칼이나 전투복을 사줄 수도 있고.”
헌터용 검은 못해도 100만원이고 좋은 것은 1000만원을 넘는다. 규격 외의 특이한 물건들은 억을 우습게 뛰어넘기도 한다.
“칼을 산다면 어느 정도 급의……?”
“상 2품 하나 살 정도는 되겠네요.”
상 2품이면 500만원 정도.
상호에겐 의미 없는 액수다. 하지만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핑계가 생긴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리 아이들 형편이 어려워도 선생이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지나친 참 견이니까. 선생이 학생의 환심을 사려 한다는 주변의 시선도 문제겠고.
그는 신경쓰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은 원치 않았다.
하지만 학교 돈을 받아 쓴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럼 그 반대는 뭡니까?”
“1등이 안 나오면 교직을 내려놓는 거예요.”
해련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뭐…… 거기에 덤으로 내 개인 비서 되기까지?”
“예?”
“호호, 늙은이 주책이 심했나? 방금 건 잊어요.”
그녀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반대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자신 있잖아요? 나도 강 선생이 해낼 거라고 믿는 중이에요.”
해련이 돌연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사장이 강 선생을 맘에 안 들어 하거든요.”
“낙하산이라고요?”
“네. 단단히 벼르고 있어요. 올해까지만 두고 보고 성과를 못 내면 바로 잘라버리겠다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이사장하고도 내기를 했어요. 내가 이기면 이사장이 사비를 털어서 학교 건물 하나 지어 주고, 이사장이 이기면 내 올해 연봉을 학교에 반납하기로.”
“제 학생이 1등한다에 거셨다, 그 말씀입니까?”
“물론이죠.”
상호는 한참을 말없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그 내기 하겠습니다.”
“비서 되기도 포함해서?”
“그거는 좀…….”
다시 발을 옮기던 그들은 학생 기숙사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정확히는 기숙사 옆 나무 아래에 서 있는,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학생을 보고. 상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희였다. 그녀가 나무를 노려보며 검을 들고 있었다.
해련은 상호가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강 선생네 학생이에요?”
“예.”
“선생도 학생도 일찍부터 부지런하네.”
해련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가서 일 봐요. 먼저 먹을 테니까.”
그녀는 그를 놔두고 먼저 걸어가 버렸다.
상호는 세희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검이 땅을 치며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세희는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그를 발견하고는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뭐 하고 있었어?”
“나뭇잎을…….”
“나뭇잎? 아, 숙제?”
“네.”
“몇 개까지 성공했어?”
“세 개요.”
상호는 세희의 발치에 굴러다니는 나뭇잎 조각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때 그 애도 세 개였지.’
“한 번 보여줄래?”
“네.”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상호의 검이 칼집째 나무를 후려쳤다.
나뭇잎이 세희의 주변에 우수수 떨어졌다.
긴 속눈썹 아래의 날카로운 눈빛이 베어야 할 것들을 빠르게 훑었다.
팟
뻗은 검에 나뭇잎이 터지듯 조각났다. 하나.
상호는 그녀가 검을 찌른 것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하라고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팡 팡
둘, 셋.
검이 닿을 때마다 잎이 산산조각났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것이 흠 잡을 데 없는 움직임이었다.
상호는 마지막 잎을 찌른 것을 보고 박수를 치려 했다.
그 순간, 세희의 등 뒤로 잎이 하나 더 떨어졌다.
하늘하늘, 나비 날개처럼 흔들리며.
그녀가 발목을 뒤틀었다.
파아앙
내지른 검에 네 번째 잎이 터져나갔다.
“……잘했어.”
상호는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네 개네.”
세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말투도, 표정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잘한 거예요?”
“응, 최고야, 최고. 더 바랄 게 없어.”
그의 극찬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평소에 엄격한 그였기에 칭찬이 생소하면서도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정말요?”
“손 빠른 거야 원래 알고 있었지만…… 검을 실용적으로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네. 그거면 충분해.”
상호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같이 먹자.”
“네.”
세희는 검을 집어넣고 그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