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501)

***

종례 시간.

상호는 학생기록부를 교탁에 통통 두어 번 튀기고,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다들 하교하고. 태화는 남아.”

“네? 왜요?”

태화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이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주시게요?”

“면담하려고 그래. 어제 세희도 했어.”

“에이, 좋다 말았네.”

그녀는 툴툴거리며 꼬리를 신경질적으로 휘둘렀다. 상호는 손뼉을 쳤다.

“자, 세희랑 나빛이는 가. 조심해서 들어가.”

“네. 안녕히 계세요.”

세희와 나빛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반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태화와 단둘이 남은 상호는 빈 자리의 의자를 끌고 태화의 앞에 앉았다.

“자…….”

그는 학생기록부를 폈다.

“학교 생활은 어때? 뭔가 불편한 거 있어?”

“있어요.”

“뭔데?”

“매점에 생리대가 없어요.”

“그런 건 나한테 말하지 말고…….”

매점에는 아직 가본 적도 없었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심각한 건 없나 보네. 그렇지?”

“으음……, 네. 쌤이 잘 챙겨주니까.”

그녀가 빙긋 웃었다.

‘갑자기 칭찬하기냐.’

그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그녀에 대한 기록을 읽었다.

편부 가정. 악마 융합체.

“지금은 기숙사에서 살지? 집에는 아버지 혼자 계시고?”

“그럴걸요.”

“아버지는 무슨 일 하셔?”

“몰라요.”

“응?”

상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왜?”

“그냥, 관심 없어요. 무슨 회사 다니는 것 같던데. 그것도 2년 전이고, 그 후로 본 적 없으니까. 지금은 또 모르죠.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2년 동안 아버지를 안 봤다고?”

“네.”

태화의 표정이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별로 안 좋아해서. 아, 그러고 보면 또 모르겠네요. 어디서 여자 꼬셔와서 같이 살고 있을지도.”

말하는 것을 보니 대놓고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사연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사춘기의 반항일 뿐인지. 상호는 직접 묻기보다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알아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본 적 있어?”

“어릴 때 도망갔대요.”

그녀가 책상에 턱을 괴었다.

“근데 그럴 만 해요. 툭하면 때리는 남자를 누가 좋아해요.”

상호는 그녀의 가족에 관해서 차마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뿔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는 불편한 거 없어? 뿔하고 꼬리. 어제 보니까 바지를 못 입는다며.”

“구멍 뚫으면 입을 순 있어요. 팬티가 좀 보일 뿐이지.”

태화는 다시 웃음을 되찾고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거 말곤 오히려 편해요, 이거. 뿔에 옷도 걸고 빽도 걸고. 꼬리로 커피도 들고.”

“빽?”

“핸드백이요.”

“아하…….”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집안 사정이 순탄치 않았더라도 어쨌든 지금은 기숙사에 살고. 스스로의 상태에 만족하는 듯했다. 딱히 걱정할 것은 없었다.

“태화 너도 중학교 성적이 좋더라. 장학금 받았지?”

그녀도 세희처럼 중학교 성적으로 등록금을 면제받은 케이스였다. 마법과 주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얻는 악마 융합체라서, 중학교 내내 필기는 개판이어도 실기는 최상위권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애초에 아버지……가 돈을 내줄 리가 없으니까요.”

“등록금은 1학년까지만 면제받는 거 알지?”

“네.”

“1학년 성적이 10등 안쪽이어야 2학년 때 면제되는 것도?”

“네. 설명회 때 들었어요. 1등은 지원금도 엄청 받는다매요.”

“그럼 너도 학년 1등이 목표겠네?”

태화는 그 말에 담겨있는 속뜻을 파악했는지 피식 웃었다.

“세희가 그게 목표래요?”

“다들 그게 목표지 뭐. 좀 더 간절한 사람들이 있는 것뿐이고.”

상호는 기록부를 덮고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너는 얼마나 간절한데?”

“저는 별로 안 간절한데요?”

“응?”

그에게는 의외의 대답이었다. 태화가 어깨를 으쓱이며 휘파람을 불었다.

“여자는 남자만 잘 만나면 되잖아요. 돈 없어서 퇴학당하면 남자 하나 물고 시집가죠, 뭐.”

“물 남자는 있어?”

그가 묻자 태화가 눈웃음을 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상호의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서로의 코가 닿을 것처럼 가까운 곳까지.

“가정폭행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 여자애.”

속삭이는 입에선 딸기처럼 달콤한 과일향이 났다.

“그것도 1년 동안 가르쳤던 18살 여제자. 갈 곳은 없고, 부르는 건 남자들.

그런 여자애를 쌤은 무시할 수 있겠어요? 못 하실 걸요.”

꼬리가 그의 볼을 살짝 쓰다듬고 지나갔다.

“제가 쌤 본 순간부터 정해졌어요. 인생 펴는 거.”

상호는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그녀의 말이 맞다. 그는 한 번 정을 붙이면 매정하게 내치질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상호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선생님도 여자 패고 싶을 때 많은데.”

“엑…….”

그 말에 태화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뻥이죠?”

“진짜야. 내가 어릴 때 여자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저승부대에 있을 때 이야기였다. 보급을 위해 자주 들렀던 최전방 부대 중에 유난히 물자를 안 내어주는 여자 장교가 있었다. 상호가 그 장교를 욕할 때 제일 많이 한 말이 ‘개@발#년’ 이었다.

부대원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분명 두들겨 팼을 것이다.

“태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사람은 아니야.”

태화는 오히려 헤벌쭉 웃었다.

“저 나쁜 남자한테 환장해요.”

‘돌겠네…….’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선생님이랑 약속 하나 해.”

“뭔데요?”

그는 그녀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네가 우리 학교 무사히 졸업하면 선생님이 소원 하나 들어줄게.”

태화가 눈을 반짝였다.

“뭐든지요?”

“뭐든지.”

“그럼 반대는요?”

“반대는 네가 선생님 소원 들어줘야지.”

상호는 만약 태화가 어떠한 이유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면, 그냥 협회의 연줄을 이용해서 그녀를 헌터로 만들어 자립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교육을 받은 헌터와 받지 못한 헌터는 큰 차이가 있다. 인식도, 대우도. 그래서 상호는 그녀가 꼭 학교를 졸업하기를 바랐다.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선생님 소원은 뭔데요?”

“지금은 말 못해.”

학교 안 졸업해도 협회 연줄로 헌터 쉽게 시켜 주겠다고 말해버리면 학교를 다니려는 노력을 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더더욱 그럴 사람이었다. 상호는 그걸 알기에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태화는 뭔가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실쭉웃었다.

“그렇고 그런 거예요? 아직 어려서 말 못하는?”

“뭔 소리야?”

“전 거친 게 좋아요.”

“난 잘 모르겠다.”

상호는 거칠게 훈련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태화는 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또 웃었다.

“히힛…….”

키득거리는 그녀의 뒤로 꼬리가 촐싹거렸다.

***

“히야아압!”

콰콰콰쾅

보랏빛 폭발이 연속으로 작렬했다.

주술사 선생들이 대지의 정령을 시켜 정비했던 운동장이 또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호는 흐뭇한 표정으로 태화와 곰인형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먼저 싸운 후 땀을 닦던 세희도,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나빛도 놀란 얼굴으로 태화를 쳐다보았다. 세희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오늘따라 열심이네요.”

“그렇지?”

상호는 씩 웃었다. 어제 태화와 면담을 했던 보람을 지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늘 높이 뛰어오른 태화의 주변에 검붉은 불덩이들이 나타나 땅으로 쏘아졌다.

퍼퍼펑

불덩이들은 유도탄처럼 정확히 곰인형을 강타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세희에게 말했다.

“태화도 10등 안에 드는 게 목표야.”

“그래요?”

“이길 수 있겠어?”

세희는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어요.”

“그래? 싸우면 질 것 같아?”

“해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럴 수 있지.”

그는 다시 곰인형을 조종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세희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태화가 싸우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눈동자에 조용히 이글거리는 승부욕을.

하나빛

상호는 학생기록부를 폈다.

마지막 학생, 나빛과의 면담.

그녀는 지금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다소곳이 앉은 채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 맑은 회색 눈동자였다.

그는 나빛의 회색 머리카락을 한 번 힐끔 보고 다시 기록부로 시선을 돌렸다.

“염색은 아닌 것 같고. 원래부터 그랬어?”

“아니요. 어릴 땐 안 이랬는데, 나이 먹으면서 저절로 이렇게 됐어요.”

그녀가 검지로 머리카락을 꼬았다.

“성력을 쓰는 사람들한테서 가끔 보이는 증상이래요.”

“건강에 문제는 없고?”

“네. 아, 맞다.”

나빛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살짝 쳤다.

“선생님, 눈하고 다리 치료해 드릴까요?”

상호는 피식 웃었다.

“괜찮아.”

“특별히 어려운 거 아니에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

“눈은 일부러 안 고치는 거야. 그리고 다리는…….”

그는 바지 밑단을 무릎까지 걷었다.

“앗…….”

그의 다리를 본 나빛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번개 맞은 고목처럼 시커멓게 타고, 말라비틀어지고, 뒤틀린 피부. 그 아래로 붉은 기운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덜 굳은 용암처럼.

“안에 고약한 놈이 들어있거든. 성력을 쓴다고 치료되는 게 아냐.”

상호는 옷을 다시 내렸다.

나빛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치 자기가 아픈 것처럼 힘들어하며 말했다.

“아프지 않으세요?”

“아프지. 그래도 별거 아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돌렸다.

“나빛이는 부모님이랑 집에서 살지? 집이 좀 먼 거 같던데. 등교는 어떻게 해?”

“삼촌이 데려다 주셔요.”

“삼촌?”

“아버지가 고용하셨어요. 비서 비슷하게.”

상호에겐 생소한 개념이었다. 아이에게 비서가 붙는다니.

“집에 여유가 있나 보네. 아버지는 무슨 일 하셔?”

“태궐그룹이라고…… 회사 다니셔요.”

태궐이면 아주 유명한 대기업 이름이었다. 제철, 전자, 식품 등 다양한 방면으로 성공한 문어발같은 그룹.

다만 이상한 것은, 그 중에 하나를 골라 말한 것이 아니라 태궐 ‘그룹’에 다닌다고 하는 것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기웃했다.

“태궐그룹 어디?”

“그게…….”

나빛은 망설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회장이세요.”

그때서야 상호는 이런 어린 아이한테 왜 비서가 딸려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나빛이 너는 등록금 걱정은 없겠네.”

“네.”

“헌터는 왜 하려는 거야? 아버지 일 도우려면 공부를 하는 게 나을 텐데.”

그녀가 가슴팍의 신앙회 문양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제일 잘 하는 거라서요. 사람들 치료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그러면 회사 일은 할 생각이 없어?”

“네. 오빠가 있어요. 오빠는 머리도 좋고 그래서…….”

상호는 씩 웃는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빛이 너는 왜 선생님 반으로 들어왔어?”

“저는…….”

나빛은 그의 눈치를 보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가장 엄한 선생님한테 배우려고요.”

“엄한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었다고?”

“네. 헌터로 인정받고 싶어서요.”

그녀는 양손을 꼼지락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돌봐지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그런 게 싫어서…… 제 힘으로 뭔가를 이루고 싶어서요.”

상호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맞을 각오하고 오라는 선생 반으로 온 거야? 부모님이 뭐라고 안 했어?”

“부모님은 몰라요. 제가 신청서 넣을 때 몰래 바꿔 넣었거든요, 선생님 반으로.”

상호는 살짝 놀랐다. 마냥 순진한 아이는 아니구나, 하고.

그렇지만 그가 나빛의 담임이 되었다는 것쯤은 얼마 안 가 들킬 터였다.

그래도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라면.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물었다.

“직접 겪어보니까 어때? 내가 많이 엄한가?”

“아뇨, 오히려…… 상냥하신 것 같아요.”

“그래?”

“네.”

나빛이 상호를 향해 방긋 웃었다. 하지만 그는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가끔은 엄해질 수도 있어. 나빛이 너한텐 많이 무서울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무 맘놓고 있진 마.”

“네. 기억할게요.”

“그래.”

상호는 기록부를 덮고 일어났다.

“고생했다. 조심히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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