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501)

***

날이 지나 3월 2일. 드디어 입학식이었다.

상호가 배정받은 교실은 본관 3층 서쪽 끄트머리. 입구가 남쪽에 있으니 입구기준으로는 왼쪽 끝.

그는 교실을 향해 걸어가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첫 제자들과의 첫 만남.

솔직히 좀 떨렸다. 엄밀히 따지자면 첫 제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사로서 만나는 건 처음이 맞았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착한 애들이 왔으면 좋겠는데…….’

그의 목적은 실전에서도 다치지 않도록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지 세계최강인간병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이 있으면 좋긴 좋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고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누가 오든 간에 한계를 마주하게 만들 것이다. 괜히 처맞을 각오하고 신청하라 말한 게 아니었다.

드르륵

상호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녹색 물칠판. 나무로 된 교탁. 그 앞으로 휑한 교실에 책상 세 개.

그 중 하나에 벌써 학생 한 명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을 굵게 땋아 어깨 앞으로 늘어뜨렸다. 책상 옆에 걸린 가방에는 상호의 것과 비슷한 동양풍 검이 끈으로 묶인 채였다. 하얀 얼굴의 무표정한 눈은 지금 상호를 향하고 있었다.

상호는 이 소녀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수강신청서를 낸 학생들 중 검을 쓰는 아이는 한 명뿐이었기에.

그는 그녀가 앉은 창가 쪽 책상으로 다가갔다.

“네가 세희구나.”

“네.”

소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경한이 낚아채려고 했던 아이, 천세희였다.

상호는 신경 쓰지 않으려 하면서도 은근히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학생들하고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감. 그는 입이 바싹 마르면서도 어떻게든 할 말을 찾으려 애썼다. 나이 어린 사람과 말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세희의 검을 향했다.

“그거 한 번 만져봐도 될까?”

“네.”

상호는 그녀의 검을 들고 칼집에서 꺼냈다.

평범한 검. 학생이 쓰는 수련용 가검이었다. 다만 상호가 보려는 것은 이 검이 얼마나 좋은 검이냐가 아니었다.

그는 검을 둘러보는 척하며 손잡이의 감촉을 느꼈다. 거칠었다.

오랫동안 휘둘러서 가죽이 해진 것이었다.

‘게으른 아이는 아니군.’

상호가 검을 집어넣자 이번엔 세희가 그의 검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저도 선생님 거 만져봐도 돼요?”

“그래. 여기…….”

“잠까아안!”

그가 허락하려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확 열렸다. 상호도 세희도 깜짝 놀라 그곳을 돌아보았다.

웬 여학생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이, 야한 거 하는 줄 알았네.”

그녀의 등 뒤에서 검은 꼬리가 살랑거렸다.

스승을 향해 쏴라

잔뜩 줄인 치마 아래로 쏙 튀어나온 꼬리.

어깨까지 오는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검붉은 뿔.

그리고 루비처럼 반짝이는 빨간 눈동자.

입꼬리에 걸린 요망한 웃음까지. 꼭 악마와 닮은 모습의 소녀였다.

“여기 앉으면 돼요?”

입으로는 질문을 하지만, 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상호는 씨익 웃는 소녀와 그 뒤에서 살랑거리는, 끄트머리가 하트 모양으로 생긴 꼬리를 바라보았다.

이태화.

주술과 마법에 특화된 악마 융합체.

“앉고 싶은 데 앉아.”

융합체란 개벽 때 이계의 존재와 몸이 섞여버린 이들이었다. 대부분은 존재가 합쳐진 충격으로 쇼크사했지만, 극소수는 살아남아서 특이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녀가 융합한 것은 이계의 악마.

운이 나쁘면 자아를 잃기도 하는데, 다행히 이 소녀는 그러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화가 상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선생님.”

“응.”

“눈하고 다리는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

너무 단도직입적이지 않나, 상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몬스터랑 싸우다가.”

“보험금 나와요?”

“받긴 받았지.”

하지만 태화가 말하는 것은 요즘 생긴 헌터 보험을 말하는 것이고, 상호가 받은 것은 쥐꼬리만한 군인 보험이었다. 아무래도 이계대전 직후는 사회와 경제가 박살났던데다가, 다친 사람도 수없이 많아서 받는 돈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태화는 그걸 모르고 눈을 반짝였다.

“그럼 선생님 돈 많아요?!”

“네가 알아서 뭐하게? 별로 없어.”

상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요즘 애들은 무섭구나,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드르륵

또다시 교실 문이 열렸다. 그와 세희, 태화는 동시에 문가로 고개를 돌렸다.

상호는 문가에 서 있는 소녀가 신청서에서 본 마지막 학생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셋의 시선을 받은 여학생은 잠시 당황하더니 생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허리까지 기른 연회색 머리카락. 그리고 같은 색깔의 눈동자. 겉눈썹과 속눈썹까지도 그랬다. 꼭 색소를 잃은 것처럼.

하나빛. 그게 이 소녀의 이름이었다.

남은 자리는 한 곳뿐. 나빛은 복도 쪽 책상에 앉았다. 상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아이들 몰래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빛의 목에 걸린 육각형 속 십자선. 신앙회의 문양 때문에.

‘신앙을 쓰는 애한테 뭘 가르치나…….’

그녀의 헌터 유형은 신앙. 성력을 써서 사람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 헌터 유형.

그러니까 애초에 전투 특기가 아니었다. 실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런 아이한테 실전 위주 수업이고 자시고가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배우려고 찾아왔으니, 그저 그가 계획한 교육대로 하면 될 뿐이었다.

맘에 안 들면 알아서 반을 바꿀 것이고.

상호는 셋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 왔네. 자, 셋이 인사해. 얼굴도 좀 보고.”

“저희 셋이 다예요?”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응, 셋이 끝.”

그는 칠판으로 가서 물백묵을 집어들었다.

강, 상, 호.

칠판 중앙에 정자로 쓴 세 글자. 상호는 어릴 때 남선생들이 꼭 이렇게 자기 소개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나이 지긋한 선생들은 아예 한자로 쓰기도 했다.

고리타분하긴 했지만, 이런 방식은 원래 시대를 막론하고 널리 쓰이는 법이었다.

“선생님 이름은 강상호다.”

“번호도 적어 주세요!”

“……번호?”

태화의 말에 상호의 백묵을 든 손이 멈칫했다.

‘요즘 학생은 선생한테 먼저 연락하나? 우리 땐 그럴 일이 없었는데…….’

고작 6살 차이인데 격세지감을 제대로 느끼는 상호였다.

소통이 원활해서 나쁠 건 없다.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이름 아래에 적었다.

세희와 태화는 핸드폰을 꺼냈고, 나빛은 수첩을 꺼냈다.

상호는 그녀의 수첩을 보고 물었다.

“나빛이는 핸드폰 없어?”

“네.”

나빛은 말을 할 때마다 웃었다. 버릇이라도 된 것처럼.

“부모님이 싫어하셔서요.”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딸이 세상을 아는 걸 두려워하는 부모거나. 혹은 둘 다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어느 쪽이든 상호에겐 달갑지 않았다.

“그래. 나중에 이야기 좀 듣자. 너희도 다 저장했으면 핸드폰 끄고.”

세희와 태화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상호는 슬슬 본론을 말하기로 했다.

“자, 선생님은 무예 B급 헌터야. 보다시피 칼이 무기고. 입학설명회 때 봤지?”

“네.”

“내가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나?”

세희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을 각오 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그는 대답한 세희를 제외한 다른 둘에게 시선을 맞췄다.

“너희도 알고 온 거지?”

“네.”

“네.”

상호는 셋의 대답을 확인한 후에 말을 꺼냈다.

“나는 안 봐준다.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어리다고 봐주는 것도 없어. 몬스터도 그래. 너희가 여고생이라고 살려주는 몬스터는 세상천지에 없다.”

세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반을 바꾸고 싶으면 언제든 이야기해. 단, 수업 도중에는 안 돼. 교육을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는 내 맘대로 할 거야. 지금 말해도 좋아. 오늘 수업전에 반을 바꾸고 싶은 사람 있나?”

태화가 죽상을 지었다.

“엑! 첫날인데 수업해요?”

“물론이지. 걱정 마. 금방 끝낼 거니까. 그래서 지금 그만둘 사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상호는 속으로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좋아.”

“수업은 언제 하는데요?”

“지금.”

그는 검지를 들어 그녀들의 책상을 가리켰다.

“거기 아래에 있는 걸 꺼내봐.”

책상 아래에는 교과서 등을 넣으라고 만든 서랍이 달려 있었다. 세희와 태화, 나빛은 책상 아래로 손을 넣었다.

나빛은 자신이 잡은 물건이 뭔지 알아차리고 움찔했다.

“이건…….”

그녀들은 책상 위에 권총을 올려놓았다.

안 그래도 하얀 세희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고, 태화는 피식 웃었다.

“가짜죠?”

“총도 진짜고 총알도 진짜다. 딱 한 발씩 넣어 놨어. 이미 장전된 상태니까 다시 장전하지 마.”

상호는 그녀들을 바라보고 똑바로 섰다.

“그걸로 날 쏴.”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태화는 권총을 집었다가, 그 무게를 느끼고 다시 내려놓았다. 진짜라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상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옆에 잠금장치 풀고 방아쇠만 당기면 돼.”

“저, 저는…….”

나빛이 눈을 질끈 감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종교 때문에……. 무기를 드는 것도, 사람을 쏘는 것도…….”

“못하겠어?”

“못하겠어요…….”

“그럼 나빛이는 귀 막고 책상에 엎드려.”

상호는 나빛이 엎드리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둘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못 쏠 이유가 없지?”

세희가 권총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수업인 거죠?”

“그렇지.”

그녀가 총을 잡아 그에게 겨누었다.

“믿을게요.”

태화는 그런 세희를 보며 헛웃음을 치다가, 곧 자기 총을 집어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둘 다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 세희는 마른침을 삼키고 상호에게 물었다.

“언제 쏘면 돼요?”

“너희가 쏘고 싶을 때.”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지금 쏘면 맞출 수 있겠다, 싶을 때 쏴. 내가 가장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공격이란 건 원래 그렇게…….”

타탕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세희와 태화가 총을 쐈다.

확실히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상호는 그 순간 자신이 방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녀들은 올바른 때에 공격을 했다.

하지만 그에겐 택도 없었다.

투둑

앞으로 내민 그의 손에서 총알 두 개가 떨어졌다.

“잘했어.”

상호는 놀란 기색도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빛의 책상까지 걸어가서, 총을 집어 자신의 손바닥에 마지막 한 발을 쐈다.

타앙

총소리가 교실을 울리자 나빛이 몸을 떨었다. 어안이 벙벙해 있던 세희와 태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잡아낸 총알을 바닥에 던지며 태연하게 말했다.

“너희는 몬스터라고 하면 오크나 고블린, 뭐 그런 놈들밖에 모르겠지. 하지만 그런 놈들은 현대화기로도 죽일 수 있어. 진정한 헌터가 싸워야 할 놈들은 이렇게 총이 안 통하는 놈들이고. 그러니까 너희도 총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강해질 필요가 있단 뜻이야.”

총을 쏘게 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수업은 너희가 나를 공격하는 방식이 될 거야. 그러려면 너희가 맘 놓고 공격하도록, 나를 믿게 만들 필요가 있었어. 어때, 아직 부족한가?”

이 아이들은 앞으로 그에게 불덩이를 던지고 칼을 휘둘러야 했기에. 사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

아이들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세 개의 총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사실 총을 막는 것 정도는 예현여고의 선생들 대부분이 할 수 있었다. 마법과 신앙은 C급 헌터일지라도 기초적인 방어막을 만들 수 있고, 주술은 정령으로 총을 막거나 저주로 고장낼 수도 있다. 가장 어려운 편인 무예도 A급부터는 방탄복 정도의 호신강기를 둘러 약간의 충격을 감수하고 받아낼 수 있었다.

피멍은 들겠지만.

그러나 선생들 중 어느 누구도, 총알을 반응속도만으로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해봤자 교장인 해련 정도.

상호는 총을 걷으며 그녀들의 책상을 두드려 정신을 차리게 했다.

“자, 자. 나빛이도 일어나. 첫 수업은 이걸로 끝…….”

갑자기 세희가 복도 쪽을 돌아보았다. 상호도 문 밖이 소란스러워진 걸 깨닫고 말을 멈췄다.

“뭐야, 총 소리가 났는데?”

“여기 강 선생 교실 아냐?”

“상호 씨! 문 열어 봐!”

그는 권총들을 태화의 책상 서랍에 허겁지겁 쑤셔넣고 절뚝거리며 걸어가 교실 문을 열었다.

문 앞에 몰려든 선생들이 그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강 선생, 방금 엄청 큰 소리 들렸는데?”

“제가 무예 시범 좀 했습니다.”

“총소리 아니었어?”

“착각입니다.”

상호는 딱 잘라 말하고 문을 닫았다.

이미 설명회 때 한 짓이 있는지라, 선생들도 다들 수긍하고 물러갔다.

“강 선생은 애들 놀래키길 좋아하나 봐.”

“나이도 어린데 벌써 괴팍하다는 소리 듣겠네…….”

상호는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사라지자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어쨌든 첫 수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반을 바꾸는 사람 없이.

즉, 그는 선생이 됐고, 그녀들은 학생이 됐다.

“다들 도망 안 쳐줘서 고맙다.”

그는 그녀들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이제 학생도 되고 했으니.

“자, 너희 소개 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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