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501)

***

11시가 다가오자 체육관의 강당이 학부모들과 입학생으로 가득 찼다. 상호는 단상 옆 계단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에서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화목하게 가족들끼리 도란도란 수다 떠는 것을 보면, 저들에겐 헌터란 직업은 그저 편한 돈벌이 수단인 듯했다.

정각이 되자 교장이 단상에 올랐다.

“본교를 찾아 주신 귀빈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학교의 교장을 맡은…….”

어느 행사를 가든 들을 수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말을 하는 해련 본인의 표정에서부터 귀찮음과 지루함이 묻어났다.

주변 직원들도 딱히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호는 이번이 처음 듣는 처지인지라 비교적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지만, 곧 으레 하는 평범한 겉치레라는 것을 깨닫고 신경을 껐다.

이윽고 교장이 선생들을 가리켰다.

“……이어서, 교직원 소개가 있겠습니다.”

그들 중 제일 앞쪽에 서 있던 남선생이 걸어나갔다. 그는 단상 중앙에 서서 교장이 건넨 마이크를 들고 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본교에 2년째 재직 중인 A급 헌터 문경한이라고 합니다.

선종대학교에서 마나 수련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고…….”

그 후로도 선생들이 소개를 이어갔다.

선생들은 모두 A급 혹은 S급이었다. 헌터의 등급은 일반적으로 밑에서부터 C, B, A, S.

S급 헌터의 평균 연봉은 약 3억. 최상위 헌터들은 몇백억을 가뿐히 넘기도 한다. 그 정도가 되면 도시만 지키는 게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이고, 몬스터를 잡아 돈을 버는 헌터의 특성상호재와 악재가 널뛰기를 타기 마련이었다. 마치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어부처럼. 몬스터는 농사를 하듯 추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게으르고 운이 없으면 S급 헌터라도 한 달에 백만을 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직장의 연봉은 헌터 평균보다 많이 낮았다. 1년에 2억 정도. 대신에 일이 훨씬 편하고 안정적이란 것이 큰 매력이었다.

어느새 설미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가 상호의 팔꿈치를 톡톡 두드렸다.

“다음 차례야. 잘 준비하고 있어.”

상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설미는 정령들을 소환하며 단상에 올랐다.

불과 물의 정령. 작은 새끼용과 반라의 여인이 그녀 옆에서 둥둥 떠다녔다.

객석의 감탄성을 들으며 설미가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본교에 재직한 지 1년이 된 A급 헌터 임설미라고 합니다.

특기는 여기 보시는 것처럼 정령술이고, 전공은 함서대학교에서 몬스터 생태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녀가 정령들을 향해 손짓하자 그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게 학생들을 맡겨 주신다면 제 가족처럼 아끼고 안전하게 가르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학부모들이 짧게 박수를 쳤다.

상호는 마이크를 내밀며 다가오는 설미를 보며 생각했다.

‘간결한 소개가 반응이 좋구만. 약간의 실력 행사도…….’

“자, 잘 하고 돌아와.”

설미가 눈을 찡긋하며 그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었다.

상호는 마이크를 잡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절뚝, 절뚝.

검을 짚으며.

“응?”

객석에서 의문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절름발이인가 봐요.”

“안대까지……. 은퇴한 헌터인가?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싸울 수는 있나? 아니, 가르치지도 못할 것 같은…….”

“보나마나 교사 일을 우습게 알고 지원한 거겠지, 흥.”

“편하게 일하려고…….”

전부 불평불만이었다.

딸의 교육을 맡기기엔 부족해 보인다는 듯.

상호는 아랑곳 않고 걸어갔다.

툭, 툭.

검이 바닥을 칠 때마다 작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가 단상 중앙까지 마지막 걸음을 앞뒀을 때.

‘약간의 실력 행사.’

상호는 검에 내공을 살짝 실었다.

꽈아아앙

“뭐, 뭐야!”

“꺄아아악!”

체육관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학부모들은 혼비백산했고, 선생들도 식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렇지만 돌가 루만 조금 떨어질 뿐, 건물이 무너지진 않았다.

난리 속에서 태평한 건 단 둘, 상호와 해련뿐이었다.

‘간결한 소개.’

상호는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올해 들어온 B급 헌터 강상호입니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말을 이었다.

“처맞을 각오가 된 학생만 받겠습니다.”

상호의 폭탄발언에 설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해련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현직은 교사, 전직은 최강

“상호 씨! 왜 그랬어!”

설미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어찌어찌 설명회를 마친 후, 그녀에게 체육관 뒷편으로 끌려온 참이었다. 상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교장선생님은 좋아하시던데요, 뭐.”

“그분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놀랄 일이 없으시니까 그러지!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데! 학부형들은 어떻고!”

“괜찮아요, 내가 싫으면 내 수업 안 듣겠죠, 뭐.”

예현여고의 교육방식은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반씩 섞인 느낌이었다. 대학교처럼 어떤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을지 학생이 결정할 수 있지만, 한 번 정하고 나면 고등학교처럼 그 선생이 담임이 되어 공부 외적인 부분으로도 학생을 관리한다.

학교가 받을 피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설미가 한숨을 폭 쉬었다.

“난 몰라……, 근데 상호 씨.”

“네?”

“교장선생님이랑 아는 사이랬지?”

“네.”

“낙하산……인 거야?”

“엄청 직설적이네요. 뭐, 난 그게 좋긴 한데.”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낙하산은 낙하산인데, 교장선생님 빽은 아니고요. 그냥 협회에서 추천하길래온 거예요.”

“상호 씨 낙하산이라고 말이 많아. 대학도 안 나왔는데 여기 왔다고…….

시선이 안 좋아. 다들 그런 건 아닌데 대부분이 그래.”

설미가 그에게 걱정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사실이 그랬다. 상호의 학력은 대입도 아니고 고졸도 아니고, 심지어 중졸도 아니었다. 15살, 중학교 2학년 때에 개벽이 일어났으니까.

바꿔 말하면 지금 헌터 관련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선생들은 셋 중 하나였다.

시기가 운좋게 맞아 떨어져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전쟁이 일어났고, 종전 후에 대학을 갈 수 있었거나.

능력을 늦게 발견했거나.

능력이 있는데도 참전하지 않은 비겁자이거나.

상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신경 안 써요.”

십중팔구는 비겁자들이다. 설미가 말한 그 대부분이라는 작자들이 바로 비겁자들일 터였다.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하지 못해 남의 도덕성을 깎아내리려 하는 이들.

그는 검지로 검의 손잡이를 두드렸다.

“헌터는 실력으로 말하는 거니까. 뭐 교사가 되었으니 이젠 얼마나 잘 가르치 느냐가 기준이겠지만. 두고 보면 알겠죠. 누가 더 제대로 되어먹은 인간인지.”

“그러고 보니…….”

설미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B급 맞아? 난 무예 쪽은 잘 몰라서……. 그래도 A급 헌터들보단 훨씬 강한 것 같던데.”

능력의 분류는 무예, 마법, 주술, 신앙.

검을 쓰는 상호는 무예가로 분류되었고, 정령을 쓰는 설미는 주술사로 분류되었다.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몰라요. 협회에선 그렇게 정해 줬어요.”

사실은 아니었다. B급은 그가 선택한 등급이었다. 적당히 눈에 띄지 않을 법한 등급으로.

종전 후 국가에서는 저승부대원들에게 몇 가지 혜택을 주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헌터 등급을 고를 수 있게 한 것.

부대원들은 선택권을 얻었다.

최강의 특수부대원임을 증명하는 특별 등급, X급으로 살아갈 것인지.

혹은 전쟁의 기억을 뒤로하고 낮은 등급으로 살아갈 것인지.

신분을 세탁하고 아무도 해당 인원이 저승부대원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저승부대는 너무 유명했기에 X급을 선택한다면 저승부대원이란 사실을 숨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부대원들은 신념에 따른 선택을 했다.

X급을 이용해 한 자리 꿰차거나.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거나.

부협회장인 도현이 전자였고, 상호가 후자였다.

“궁금한 건 다 풀렸어요?”

“아니, 속 시원하게 알려준 것도 없으면서…….”

설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상호 씨는 나이도 어리면서 뭔 비밀이 그렇게 많아?”

“그러게요. 본의는 아닌데.”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것도 나이답질 않고.”

“그래요?”

상호는 피식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어렸을 때는 성격이 정반대였다.

해련을 만났을 때 그녀가 말했던 대로, 저승부대에서 불렸던 별명이 ‘미친 개’. 툭하면 싸웠고, 절대로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허나 전쟁을 겪고 나니 그 성격이 다 죽어버렸다. 가끔 튀어나오려고 할 때도 있지만.

그는 검을 짚으며 발을 옮겼다.

“밥이나 먹으러 가요. 어디 맛있는 데 알아요?”

***

2월의 마지막 날.

상호는 교무실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접수받은 수강신청서를 훑고 있었다.

총 3장.

다른 선생들의 신청서는 30장 내외.

설명회 때 그 깽판을 쳐놨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3명이면 개인지도하기 딱 좋지.’

상호는 오히려 만족하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그가 맡은 학생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실전 위주의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우선은 그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다른 선생들에게 증명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원이 적은 편이 유리했다.

“강 선생.”

별안간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상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학교에 2년째 재직 중이라던 교사, 문경한이었다.

안경을 쓰고 약하게 파마를 한 머리를 반으로 가른, 깔끔한 얼굴에 훤칠한 키를 가진 사내. 척 봐도 여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교회 오빠’상으로, 여고에선 꽤나 인기 있을 법한 외모였다.

상호는 그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 예, 문 선생님.”

“잠깐 둘이서 이야기 좀…….”

경한은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했다.

다리 불편한 사람에게 참으로 귀찮게 한다. 상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얼굴하고 속이 다르구만, 이 양반.’

어쨌든 직장 선배였기에 그는 경한을 따라 교무실을 나섰다.

경한은 그를 복도 끝에 놓인 엘리베이터로 데려갔다. 상호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데려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떳떳하거나 좋은 일은 아니리라.

엘리베이터는 5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경한이 상호의 다리를 흘끗하며 물었다.

“도와줄까?”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고통을 참고 계단을 올랐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면 날려 버리리라 다짐하면서.

그들은 옥상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가슴께까지 오는 담벼락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경한은 주변을 살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강 선생, 교사 생활은 어때?”

“아직 수업을 못 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수강신청서는 봤지?”

“예.”

“거기 천세희라는 학생 있잖아.”

상호는 그 여학생의 수강신청서를 떠올렸다. 천세희. 꽤 유명한 헌터 양성 중 학교에서 무예로 1등을 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또 특이한 것은, 혈육이 아예 없는 천애고아.

“그 학생은 왜요?”

“나한테 넘기는 게 어때?”

경한이 담배를 빨며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아주 살짝 뒤로 젖히며, 미묘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그 아이, 중학교 성적이 좋더라고.”

상호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재능 있는 아이를 빼앗아 좋은 대학 보내서 자기 스펙으로 삼으려는 것일 테다.

이렇게 노골적인 학생 빼돌리기가 있을 줄이야. 전장에서만 구르던 그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 학생은 저한테 배우고 싶어서 온 건데요?”

“난 대학에서 마나 수련을 전공했으니까. 그리고 선생 경력도 길잖아. 강 선생보단 여러모로 내가 낫지 않을까, 싶네.”

경한의 눈동자가 상호의 다리를 향했다.

“그게 그 학생 장래에 좋을 거야. 잘 생각해 봐. 아이 하나 인생이 걸린 일이니까.”

상호는 담벼락 너머로 운동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싸우자는 건가?’

검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학력, 장애, 경력.

사실 따지고 보면 경한의 말이 맞았다. 냉철하게 확률을 따지자면 그가 학생을 더 잘 가르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경한이 딱 한 가지 고려하지 않은 게 있었다.

실력.

상호는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화르륵

검에서 짙푸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엇……?!”

경한이 당황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검을 휩싼 불꽃은 이내 바닥으로 퍼져 나가 옥상 전체를 뒤덮었다.

강기. 그것도 아주 밀도 높은 강기의 불꽃.

짙다 못해 새까만 청흑색의 불꽃이 그들을 삼켜버릴 듯이 넘실거렸다.

“크윽!”

경한은 담배를 떨어뜨리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불꽃이 그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지만, 불꽃이 아닌 곳, 허공처럼 보이는 곳도 엄청난 양의 기가 압축된 상태였다. 그는 폐부를 짓누르는 답답한 감각을 느끼며 경악한 눈으로 상호를 쳐다보았다.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괴물하고 싸워본 적 없죠?”

상호는 강기를 거두어들였다.

“괴물이 되어 본 적도 없을 거고.”

그런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어떻게 강해졌는지.

남에게 가르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내 학생은 내가 가르칩니다. 그 애가 날 선택했으니까. 선생이 되어가지고 학생보다 먼저 포기할 수는 없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윽!”

무력으로도, 선생으로서도 져 버린 경한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진땀을 흘리며 옥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급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상호의 귓가에 닿았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그가 도망친 문을 바라보았다.

“적응이 좀 되나요?”

상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돌아보자 담벼락 위에 해련이 걸터앉아 있었다.

강렬한 기의 집중을 느끼고 찾아온 모양이었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친구가 선배라고 뭐라 하니까 화가 나죠?”

그는 차마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하고 쓰게 웃을 뿐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재능 있는 학생은 모든 선생이 탐을 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학기중에도 담임을 바꿀 수 있는 건가요?”

“학생과 원래 선생, 바꿀 선생, 이렇게 셋이 동의하면 바꿀 수 있죠. 특별한 사고가 있으면 그냥 바꾸기도 하고.”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엷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수작질이 계속 있을까요? 귀찮은데…….”

“X급으로 정정하지 그래요? 아무도 못 건드릴 텐데.”

“그건 더 귀찮아서…….”

그랬다간 일상생활을 전혀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 X급은 매일같이 사람들이 찾아온다. 매스컴, 정치인, 광고를 원하는 대장장이나 돌팔이 한의사까지. 그런 인간들이 학교에 찾아오면 수업도 제대로 못 하게 될 터였다.

학생을 받을 때도 오히려 악영향이다. 그의 위명만 보고 아무런 다짐도, 각오도 없이 가르쳐 달라고 매달릴 게 뻔했다. 특히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상호는 그런 인간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X급을 택한 부대원들이 초기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알아서 더욱 그랬다.

1학년 동안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교육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올해로 끝이 아니라 내년도 있으니까.

일에 확신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학생을 더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는 절뚝이며 담벼락으로 걸어가 해련의 옆에 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련도 그녀들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감상이 어때요?”

“예?”

“우리가 지켜낸 아이들이잖아요.”

상호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전쟁이 뭐냐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들.

특별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저 죽은 부대원들이 떠오를 뿐이었다.

“잘 자랐네요.”

“그렇죠?”

그녀가 씩 웃었다.

“강 선생하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나요. 말도 많아지고.”

상호도 마찬가지였다. 해련과 이야기하면 옛날 생각이 났다.

그래서 오히려 말이 적어졌다.

그다지 밝은 기억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경한이 떨어뜨렸던 담배를 집어 페인트통으로 만든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배들이 또 귀찮게 하면 교장실로 도망와요. 숨겨줄 테니까.”

“하하…….”

상호는 허탈하게 웃으며 옥상 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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