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501)

 헌터 여고의 남선생

글    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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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애꾸 퇴역헌터

11월의 한적한 공원.

한 더벅머리 사내가 벤치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었다.

후줄근한 트레이닝복과 검은 안대, 거기에 벤치에 놓인 칼까지. 몬스터와 마나가 나타난 후로 무기가 흔한 세상이 됐지만, 차림새 때문에 한량과 폭력배사이의 어중간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내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상호야.]

“응?”

[거…… 교사 해볼 생각 없냐? 학교 선생 말이야.]

“안 해.”

벤치에 앉은 사내, 강상호가 즉답했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의 남자가 당황했다.

[야이 새끼야, 형이 기껏 너 생각해서 자리 남겨달라고 부탁했는데…….]

“내가 누구 가르칠 성격은 아니잖아.”

[그럼 계속 백수로 살게?]

“참전용사 연금 나오니까.”

[얌마, 1년에 천 나오는 걸로 결혼은 언제 하냐? 연금은 정해져 있지만 물가는 오르고 너 나이가 몇이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어쩌고저쩌고, 남자는 갖은 말로 상호를 설득하려 했지만 상호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됐어, 형.”

그는 입맛을 다시며 허탈한 눈으로 공원을 바라보았다.

“이 몸으로 뭘 해.”

22살, 한창 젊은 나이였지만 상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가만히 있으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당장 일어나 걷기만 해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절름발이.

그래서 그는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다녔다.

“애꾸에 다리병신인데. 어린애들 수군댈 게 뻔하잖아. 난 그런 거 못해.”

[예현여고야. 여고라고, 인마. 좀 화사한 곳에서 기운도 좀 차리고…….]

상호는 쓰게 웃었다.

“그렇게 좋으면 형이 가지 그래?”

[부협회장을 때려치고 가라고? 아…… 사실 그러고 싶긴 해.]

핸드폰 너머의 남자도 피식 웃었다.

통화중인 남자의 이름은 서도현. 그 역시 참전용사였다. 그것도 상호와 같은 특수부대 출신의.

7년 전 일어난 ‘개벽’. 지각변동과 함께 몬스터와 마나가 나타났고.

6년 전 일어난 ‘이계대전’으로 인간과 몬스터와의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사람들은 강자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한국괴렵협회, 간단히 ‘헌터 협회’.

도현은 그 헌터 협회의 부협회장이었다.

[근데 나 같은 아저씨가 가서 뭐하냐? 젊은 네가 가야 애들이 놀아주지.]

“안 해, 안 해. 스트레스야, 오히려.”

상호는 질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도현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난 그냥 이대로 살래. 선생 같은 건 안 해, 못 해.”

[새끼……, 그래. 평생 백수로 살아라.]

도현이 혀를 찼다.

[생각 바뀌면 연락해라.]

“그냥 다른 사람 찾으라 그래.”

[야박한 놈……. 끊는다.]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상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검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선생 일을 어떻게 해. 애들 다루는 법도 모르고 가르치는 법도 모르는 데…….’

그는 개벽이 일어날 땐 15살이었고, 전쟁이 일어날 땐 16살이었다.

개벽 이후엔 세상이 혼잡해서 학교 같은 건 다니지도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을 뿐. 전쟁통에 학교를 다니지 않은 건 더욱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그는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어떤지 잘 몰랐다. 그 스스로도 그 시기를 워낙 정신없이 보낸 탓에, 자기 자신의 경우를 참고하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가르치냐도 문제였다. 상호가 익힌 초식은 하나하나가 전쟁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익힌 살초들뿐이라, 죽도나 목검으로 펼친다 해도 최소가 골절이었다.

힘조절 따위는 배운 적이 없다.

여고생들을 두들겼다간 골로 간다는 건 자명한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상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는 검을 짚고 중심을 잡았다.

무게를 싣지 않았는데도 왼쪽 다리에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더 이상 달리기도, 단순한 도약도 할 수 없는 몸.

허공답보니 능공허도니 하는 보법을 써도, 다리에 가해지는 압력은 그대로라 고통을 어찌할 순 없었다.

‘이딴 몸으로 가르치긴 무슨…….’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그는 절뚝거리며 집을 향해 걸어갔다.

***

동네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중, 상호의 눈에 무언가가 띄었다.

그가 사는 작은 아파트 옆 길가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따금씩 나무를 발로 걷어차면서.

나뭇잎을 베려는 듯했다.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혼자 수련하는 여학생. 개벽 전의 고전 만화에서나 볼법한 풍경에 상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나뭇잎을 베려면 검로가 유연해야 한다. 상하좌우의 이동이 능수능란해야 함은 물론이고, 때로는 생각보다 멀리 칼끝을 뻗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실전에는 비할 바 못 되었다. 나뭇잎을 베는 데도 나름의 묘리는 있겠으나, 살초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뭐, 애한테 살초를 가르칠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한테 대뜸 훈수하는 것도 꼰대스럽고 말이다.

그래도 칼을 잘 다루는 것이 재능이 있어 보였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어서, 상호는 검을 짚은 채로 우두커니 서서 소녀가 나뭇잎을 베는 것을 바라보았다.

소녀가 나무를 발로 차자 갈색으로 물든 나뭇잎 네 장이 떨어졌다.

촤좌좍

나뭇잎들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나이답지 않은 쾌검을 보자 상호는 입가에 스멀스멀 웃음이 났다. 놀라운 성취를 보니 자신과 관계 없는 아이인데도 괜히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한 손이 검을 짚고 있지 않았다면 무의식적으로 박수를 쳤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채 베지 못한 나뭇잎 한 장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는 것.

“아…….”

소녀는 아쉬워하며 칼끝을 떨궜다.

그러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근처에서 바라보고 있던 상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엑! 누, 누구세요?!”

“그냥 지나가다 보여서.”

상호는 검을 짚고 절뚝거리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크고 순하게 생긴 아이였다.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에는 염색한 흔적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수수한 인상이었다.

그의 절뚝이는 왼다리와 오른눈의 안대를 본 소녀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상호는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검이 꽤 빠른데. 학교에서 배운 거니?”

“네? 아…… 네.”

“어느 학교?”

“예현여고요.”

하필 도현이 소개해줬던 곳이었다.

상호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것도 인연인가.’

“거기 그렇게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어?”

“네, 뭐, 그냥…… 교과서 보고 배웠어요.”

범생이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상호는 피식 웃으면서도 속으론 감탄했다. 특별한 지도를 받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제대로 가르친다면 금방 실력이 늘 터였다.

“방금 한 건 뭐야? 학교 숙제 같은 거야? 수행평가?”

“아뇨. 제가 생각한 수련법인데…….”

소녀는 머쓱해하며 검지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그냥…… 개인적으로 하는 거예요.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중요한 일?”

“그…… 호송? 호위? 아무튼 보디가드 같은 건데요. 화물을 몬스터한테서 지키는…….”

“아아, 알지, 알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데?”

“일주일 후요.”

“그런데 그건 경호업체 용병들이 하는 거잖아. 학생이 그런 데 가도 돼?”

“돈이 없어서…….”

소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학교 몰래 하는 거예요. 돈이 필요해서.”

상호는 그녀의 말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부모님 몰래라고 말할 텐데.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해?”

“없어요.”

소녀의 짤막한 답에 상호는 입을 닫았다.

그도 개벽 때 부모를 잃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전쟁에 나갔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전투를 시작하고, 생사의 문턱을 드나들었다.

이 아이도 그 길을 걷게 될 터였다.

눈앞의 소녀가 자신과 겹쳐 보였던 탓일까, 상호는 검을 뽑았다.

“친구야, 나무 한 번만 차 줄래?”

그의 말에 소녀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나무를 힘차게 걷어찼다.

그러자 나뭇잎이 떨어졌다. 어떤 것은 빠르게, 어떤 것은 느리게.

총 일곱 장.

상호의 검이 번득이며 시퍼런 빛을 뿜었다.

파파팡

검으로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파공음. 칼끝이 닿을 때마다 나뭇잎이 터지듯 조각났다.

일곱 장 전부.

그 모습을 본 소녀가 입을 떡 벌렸다.

“우와…….”

“이 속도에 익숙해져야 해. 안 그러면 나처럼 다친다.”

상호는 검지로 자신의 안대를 두드렸다.

“그리고 이런 건 베면 수련이 안 돼. 실전하고 너무 달라. 차라리 찔러.”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해요?”

“몇 번 다쳐 보면 몸이 안 다치려고 발악을 하지.”

살초란 그렇게 익히는 것이다.

그는 검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내공심법은? 검기는 낼 수 있어?”

“네. 아직 약하지만…….”

소녀가 검을 들자 희미하게 붉은 빛이 감돌았다.

“잘 보면 보여요.”

“괜찮네.”

이 정도면 참전 당시의 상호보다도 더 나은 수준이었다.

물론 좀 더 강해진 다음에 실전을 겪으면 좋겠지만,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이유가 있으니 그가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죽지는 않을 테다.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딱히 없고…… 열심히 수련해 봐. 넌 재능이 있으니까 뭔가 얻어내겠지.”

“네.”

재능이 있다는 말에 소녀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상호는 뒤돌아서 절뚝절뚝 걸어가다가 돌연 생각이 나서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 호송일은 언제 끝나?”

“사흘 걸려요. 그러니까 열흘 후요.”

그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그럼 끝나고 돌아오면 하루 쉬고 이 시간에 여기 다시 나와.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번 보게.”

소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

“그럼 저한테 검술 가르쳐 주실 거예요?”

“검술?”

이번엔 상호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뭐……. 물어보면 알려줄 수는 있지.”

“꼭이요.”

“그래, 꼭.”

소녀는 방긋 웃었다.

“그럼 다시 봐요.”

“그래. 그때 보자.”

상호는 다시 돌아서서 검과 발을 옮겼다.

‘학생 가르치는 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

[속보입니다. 옛 동해고속도로 삼청시 부근에서 화물을 불법으로 운송하던 상인들이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호위하던 용병들 또한 참 변을 피치 못했는데요, 아직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도로에서 무모한 계획을 진행한 것이 이번 참사의 원인이라고 추정됩니다. 현장 특파원 연결해 보겠…….]

식당에서 육개장을 먹던 상호는 식당 TV를 보다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소녀를 만난 지 딱 일주일하고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그는 그릇에 담긴 육개장과 TV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젠장, 재수없게시리…….’

TV에는 도로 외곽과 검을 찬 헌터 몇 명이 나오고 있었다. 사고 현장을 일부러 찍지 않는 모양이었다. 특파원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모자이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입니다. 생중계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현장에서는 경찰과 구조대가 시신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것은 경찰과 구조대를 호위하는 헌터들입니다.]

[아직까지도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잔인한 몬스터들은 생존자를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모두 습격당시에 즉사한 것으로 여겨지는…….]

식당 직원 아줌마들이 탄식했다.

“어휴, 저걸 어째…….”

“그러게 왜 위험한 길을 가가지고…….”

“거기 청년도 헌터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청년은 위험한 일 하지 말어~. 개똥밭에 굴러도 사는 게 제일이여…….”

“저도 이제 못 싸우는 몸인데요, 뭐.”

그가 안대를 톡톡 두들기자 직원이 혀를 내둘렀다.

“어휴……. 그래도 살았으니 됐지.”

TV에는 모자이크 처리된 현장의 사진들이 나오고 있었다.

상호는 육개장을 더 먹지 못했다.

“계산이요.”

그는 검을 짚으며 식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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