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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214화 (214/220)

214화 인공심장에 깃든 영혼 (2)

현태는 50구역에서 마피아로 살아오며 나름 무수한 전투를 겪었다 자부했다.

조직 간 전쟁 중 상대의 몸뚱어리에 칼을 쑤셔 박아 본 경험도, 박혀 본 경험도 있었다.

술집에 앉아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을 앉혀 놓고 그런 경험에 대해 실컷 떠벌리는 게 현태의 낙이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단어들이 있었다.

사나이의 낭만, 의리, 그리고 명예.

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전부 헛소리에 불과했다.

진짜 ‘전쟁’에는 멋들어진 낭만도, 가슴 뛰는 의리나 명예도 없다.

그저 광기, 짐승 같은 본능에 지배된 채 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타탕!!

벌써 몇 차례나 눈먼 총알이 귓가를 스쳤다.

운이 나빴다면 이미 몇 번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삐이이이이…….

양쪽 귀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윙윙 울린다.

좌우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커질수록 두려움을 잊기 위해 악착같이 방아쇠를 당겼다.

연속된 사격음 때문인지 귀가 먹먹했다.

철컥, 철컥!

“칫!”

총알이 소진된 자신의 권총 따위는 던져 버린 지 오래였다.

시신에 쥐어져 있던 소총을 빼앗아 사용했고, 그렇게 얻은 소총의 총알조차 소진된 뒤에는 단검을 꼬나 잡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간을 위하여! 대륙을 위하여!!”

곳곳에서 구호가 들려왔다.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들려온 구호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현태 역시 자신도 모르게 구호를 되뇌고 있었다.

“인간을 위하여!!”

어째서 그 구호를 읊는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 구호를 계속해서 읊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았을 뿐이다.

“대륙을 위하여!!”

사방에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사방에서 곳곳에서 포격음이 들려왔다.

센트럴 군복을 입은 이들조차도 센트럴 사령부를, 자신들의 순양함을 공격하고 있었다.

총구를 돌린 센트럴 병사들의 어깨에는 하나같이 붉은 손수건이 매어져 있었다.

“인간을 위하여! 대륙을 위하여!!”

그러다가 현태는 문득 돌격을 멈추었다.

‘누구와 싸우고 있는 거지?’

알마티 군세도, 센트럴 군단도 일제히 센트럴 사령부를 공격하고 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그럼 대체 적은 누구일까?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적.

“대륙을 위하여!”

대륙의 적.

마침내 현태는 자신이 정확히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센트럴 군복을 입은 채 도열해 서 있던 메타휴먼들.

붉은 눈동자의 센트럴 병사들만이 여전히 알마티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들만이 센트럴 측에 서서 모든 공격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었다.

“메타휴먼들을 전부 때려 부숴라! 하나도 남겨 두지 마!!”

불타오르는 순양함과 곳곳에 뒹구는 메타휴먼의 잔해들.

대부분의 메타휴먼들은 기능을 정지한 채 멈춰 있었지만, 센트럴 병사들과 알마티 저항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잔해까지 철저히 박살 냈다.

“9중대 놈들을 잡아! 이레귤러들은 하나도 살려 두지 마!”

센트럴 순양함에서 타오른 불길이 온 사방으로 번져가는 가운데, 악의에 찬 목소리가 전장을 뒤덮었다.

이미 전장은 ‘알마티 저항군’ 대 ‘센트럴 진압군’의 구도가 아니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있을 뿐이다.

마구 뒤엉킨 전쟁터에서 집중 공격을 당하는 이들은 메타휴먼과 이레귤러였다.

“이건…….”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 증오와 혐오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메타휴먼들 역시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걸.

메타휴먼 역시 인간과 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걸.

“형님, 뭐 하시오!”

누군가가 멍하니 선 현태의 팔을 붙잡았다.

바로 곁에서 함께 싸우던 동생이 현태를 다그쳤다.

“가만히 서 있을 때가 아니오! 빨리 적을……!”

“누가 적인데?”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뭔가 잘못됐어. 단단히 잘못됐다고.”

곧이어 집단 광기는 알마티군의 선두에 섰던 메타휴먼들을 노렸다.

“메타휴먼들을 전부 부숴 버려!! 하나도 남기지 마라!”

“인간을 위하여! 대륙을 위하여!”

센트럴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레지스탕스와 마피아, 알마티 자경단원 중 평소 메타휴먼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던 이들까지 가세하여 모든 메타휴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현태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형님!!”

“지켜…….”

“예!?”

“이 새끼야, 아군을 지키라고!! 우리 쪽 애들이 위험하잖아!”

현태는 선두에 섰던 알마티 메타휴먼들을 향해 내달렸다.

현태의 팔을 붙잡았던 사내는 놀란 눈으로 그런 현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 현태는 이 혼란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피아 식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뒤엉켜 버린 전쟁터의 한가운데.

카츠미 역시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사인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복잡하게 뒤섞인 전장, 방향을 잃은 채 날뛰는 병사들.

마피아들 역시 카츠미의 지시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어느새 모든 공격은 메타휴먼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이레귤러들을 없애 버리자는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제길…! 이 자식들, 완전히 통제 불능이야!”

“인간을 위한다느니, 대륙을 위한다느니 하는 저 구호, 코카서스 놈들이야. 놈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거라고.”

민호와 페이진 역시 창백한 얼굴로 광기에 물든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야.”

당장 구호를 되뇌는 이들 중에는 코카서스뿐 아니라 마피아나 레지스탕스, 알마티 자경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회담장의 그 이야기들이 모두의 두려움에 부채질을 한 거야.”

코카서스는 그저 기폭제의 역할을 한 것에 불과했다.

인간들 속에 숨어든 이레귤러 닐스와 세연, 인간으로부터 소울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메타휴먼.

그런 이야기들은 단순한 결론으로 치달았다.

‘메타휴먼이나, 이레귤러는 인간과 대륙을 위협하는 놈들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으면서 인간이 되려 한 ‘메타휴먼’, 보통의 인간과 다른 능력을 지닌 가운데 사람들 속에 숨어 사는 ‘이레귤러’.

기존부터 존재하던 적대감과 두려움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번져 갔다.

그리고 바로 지금, 전쟁터에서 광기로 폭발했다.

“우리 쪽 애들이라도 물려야겠어.”

“명령이 통할 분위기가 아니야. 이건… 막을 수 없다고.”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이놈들!! 저리 물러나지 못해!? 감히 너희들이 어떻게……!”

카심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오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카츠미와 민호, 페이진은 곧장 카심을 향해 달려갔다.

멈춰선 알마티 메타휴먼들.

그들은 곧 자신들의 기능이 정지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알마티 군세의 선두에 섰다.

센트럴의 의도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간이 되기 위해 싸웠고, 마지막에는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감히 네놈들이!!!”

카심은 핏발 선 눈으로 고함을 질러 댔다.

사방에서 몰려든 병사들이 멈춰 선 메타휴먼들의 몸뚱어리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었다.

심지어 파괴를 자행하는 이들 중에는 마피아나 레지스탕스도 끼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인간을 위해, 대륙을 위해 싸운 영웅들이 아니던가.

탱크를 비롯한 영웅들의 최후가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되었다.

“멈추지 못해!? 이 배은망덕한 놈들!!”

탕!! 타탕!!

카심이 더는 참지 못하고 사방에 몰려드는 이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렇게 발사된 탄환이 몇몇 병사들의 팔과 다리를 맞췄다.

하지만 광기에 빠진 무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 돼… 안 된다고……!!”

파각!

지하도시에서부터 함께해 왔던 녀석들의 팔다리가 부서진다.

뿌드득! 쾅!

이미 기능이 정지해 버린 녀석들의 목이 부러지고, 허리가 으스러진다.

그 끔찍한 광경에 카심은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 와중에 카심의 귓가에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의 마지막을 지킨다.”

“우리의 인연은 이어져 있다.”

키릭, 키리리릭!

아직 기능이 정지되지 않은 메타휴먼들이 저희들끼리 뭉치고 있었다.

멈춰 선 친구들의 몸뚱어리를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기 위해서 한 지점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몰려든 메타휴먼들의 선두에는 50구역 공장지대 메타휴먼들의 리더, 가이가 서 있었다.

“동료들을, 친구들을 지킨다.”

그들 중 누구도 카심에게 원망의 말을 내뱉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들이 인간을 위해 싸워야 했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애써 지켜 냈던 인간들이 자신들을 향해 총칼을 겨눈 이 와중에 메타휴먼들의 태도는 그저 담담했다.

생각해 보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메타휴먼들은 언제나 희생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했다.

기계는 인간을 위해 봉사하여야 하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였으니까.

메타휴먼의 희생은 언제나 당연한 것이었다.

“인류를 위해! 대륙을 위해!!”

과연 누가 인류의 적인가?

과연 누가 대륙의 적인가?

그것을 도대체 누가 정하는가?

메타휴먼에게 영혼이, 소울에너지가 있다는 게 밝혀진 이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메타휴먼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붉은 눈동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인류의 적, 대륙의 적으로 불린다.

거기에는 이성도, 합리도 없었다.

카심은 그 꼴을 바라보며 멈춰 선 탱크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탱크,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냐?”

차라리 마지막 선택의 순간 커널의 파괴를 막고, 인간 쪽으로 총구를 돌리는 편이 나았다.

“나 때문이겠지.”

자신이 인간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탓에 탱크는 카심의 옆을 지켰다.

“너희와 함께 멍청한 인간들을 전부 없애야 했다. 그래야 했어.”

기능이 멈춰 버린 탱크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메타휴먼들의 주변에는 두꺼운 포위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이는 멈춰 선 동료의 곁에 서서 이쪽으로 몰려드는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가이가 지금껏 원했던 건, 단 하나뿐이었다.

공장지대에서 함께 살아왔던 동료들과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는 것.

고된 일이 계속되어도, 인간의 학대 속에서도 함께라면 괜찮았으니까.

그러나 결국 인간은 그 하나의 바람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이용당했고, 배신당했다.

연합에 합류했지만, 몇 번이나 자행된 테러에 몸이 부서졌다.

이젠 인간을 위해 싸우다가 인간의 손에 삶의 흔적마저 파괴당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가이를 믿고 함께해 왔던 친구들이 하나, 둘 멈춰 선다.

그렇게 멈춰선 동료들의 몸뚱어리가 처참하게 부서진다.

인간의 소울에너지에서 비롯된 생명.

‘나를 저주한다.’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 믿었지만, 사실 인간을 착취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

애당초 대륙에 존재해서는 안 되었을 존재.

가이는 그런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삶을 저주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조차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인공 심장을 가진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바로 그때였다.

“다들 물러서! 가까이 오지 마!”

“광신도들에게 휘말리지 말란 말이야!!”

익숙한 얼굴의 누군가가 가이의 옆에 섰다.

“정신 똑바로 차려! 왜 죽을상이야!?”

거친 말투, 불량스러운 표정.

현태를 비롯한 마피아 몇몇이 가이의 곁에 서서 메타휴먼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어째서……?”

현태는 과거 가이를 공격했던 사내였다.

그의 손에 수많은 메타휴먼들이 목숨을 잃었고, 결국 메타휴먼들은 연합에서 이탈했다.

그랬던 현태가 지금 메타휴먼들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있었다.

“이젠 알고 있으니까! 너희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

현태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합류한 카츠미와 민호, 페이진 등 50구역 사람들이 메타휴먼의 편에 섰다.

메타휴먼들을 공격하는 이들을 막아서고, 밀어낸다.

“우리를 위해 싸운 전우를 보호한다! 무사의 도리를 다해라!”

카츠미가 사인검을 치켜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리케이트를 만들어! 친구들을 지키자!”

페이진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민호는 어디선가 빼앗아 온 바이크를 타고 곳곳을 내달리며 몰려오는 무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건 참으로 이상한 장면이었다.

몇몇 인간들이 메타휴먼을 지키려 하고 있다.

곧 멈춰 버릴 자신들을 지키겠다며 광기에 맞선다.

그 장면이, 그들의 목소리가 가이의 심장을 깊이 파고들었다.

저들을 통해 입증된 진실.

그것을 모두에게 알려야 했다.

가이는 눈을 똑바로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공 심장은 여전히 박동하고 있었다.

쥐고 있던 총을 내려놓는다.

저주받은 운명일지라도 살아 있다면, 마지막까지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어떻게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적이 아니다! 우리는 대륙의 적이 아니다!”

외친다.

“우리는 인간의 적이 아니다!”

줄곧 가이의 옆에 있던 메타휴먼이 그 말을 따라 외친다.

“인간… 적… 아니다.”

음성 장치가 망가져 버린 메타휴먼도 어눌하게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하나둘 입을 모아 외쳤고, 지독한 광기 속에서 메타휴먼들의 구호가 점차 커져 갔다.

기계 심장이 완전히 멈추기 직전까지 구호를 외쳤다.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든 상관없다.

마지막만큼은 인류의 적이나 대륙의 적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남고자 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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