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208화 (208/220)

208화 악마

“크으으윽…….”

왜 이렇게 된 걸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만신창이가 돼 버린 온몸이 너덜거렸다.

매달린 양팔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마치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왜 그랬어요.”

아크가 세이드를 딱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쉽잖아요. 그냥 내가 지시한 대로 제로 구역의 멍청이들이나 정리해 주면 될 일이잖아. 어려울 것 하나도 없잖아요?”

부드럽고 유쾌한 톤의 목소리, 웃음을 머금은 듯한 표정.

존댓말에서 반말로, 반말에서 다시 존댓말로.

피비린내 나는 이곳에서조차 아크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세이드는 이를 악문 채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나는… 네놈의… 지시에 따른 게… 아니야.”

“하, 나 원 참. 이봐요, 세이드 씨. 당신에게 힘을 준 게 누구죠? 당신의 꿈을 이뤄 준 게 누구예요?”

“…….”

“센트럴을 부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부수게 해 줬잖아. 의회도, 제로 구역도. 그 늙은이들을 당신 손으로 없애게 해 줬잖아요. 바로 내가!”

아크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끝까지 했어야지. 마저 불태우고, 실컷 복수하면 되잖아! 응? 마음껏 파괴하면 될 일이잖아. 근데 대체 뭐 하러 다시 돌아와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거예요?”

고작 몇 분 사이에 세이드를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함께 부활해 센트럴을 부수었던 혁명군 동료 모두가 눈앞의 악마와 그가 거느리는 붉은 눈의 군단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했다.

그렇게 세이드는 모든 것을 잃었고,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만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궁금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이 악마는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가.

센트럴을 부수고, 대륙을 부수고 폐허만 남은 가운데 무엇을 하려 하는가.

“세이드 씨, 이쪽 세계에서 무제한에 가까운 소울을 사용했지?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뭐?”

“한 인간에게는 정해진 만큼의 소울이 있어. 소울의 양은 곧 힘이자 정해진 ‘수명’이지.”

‘새로운 에너지’라 일컬어지는 소울은 사실 모든 생명체가 처음부터 갖고 있던 힘이었다.

갖가지 자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원천이자, 생명력.

소울을 소진한 생명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며, 새롭게 잉태된 생명체는 성년이 될 때까지 부모로부터 받은 소울을 키워 나간다.

소울, 즉, 영혼은 생명의 원천이자 힘이다.

소울에 대해서는 세이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혁명군은 센트럴에 의해 빼앗긴 소울을 되찾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었으니까.

“당신이 얻은 무제한의 소울은 바로 이쪽 세계 인간들로부터 얻어 낸 거야.”

“…….”

“역시. 알고 있었죠? 아, 심지어 더 많은 소울을 얻겠다면서 멋대로 당신의 옛 대장도 찾아갔던가?”

세이드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체 지금 이 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껏 갖가지 방법으로 소울을 수집했어요. 뇌에 벌레를 심어 보기도 했고, 약물도 써 봤지. 세이드 씨가 살던 세계에서는… 음, 그래. 다소 무식한 방법을 사용했지.”

“너… 너 이 자식!!”

세이드는 온몸을 비틀며 아크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50구역에 약물을 퍼뜨린 뒤 학살을 자행한 센트럴.

주기적으로 소울을 뽑아내 빼앗아 가던 센트럴.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고, 세이드의 가족 역시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빼앗은 소울은 상류층의 영생과 힘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런데 아크는 지금 그 모든 일을 자신이 저질렀노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 번거롭더라고. 한 번 생각해 봐요. 얼마나 귀찮았겠어? 소울을 좀 뽑아내려고 하면 금세 죽어 버리고, 기껏 살려 뒀더니 ‘혁명군’ 같은 걸 만들어서 귀찮게 굴더란 말이야.”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잇던 아크가 문득 깨달은 듯 아크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실례. 세이드 씨, 당신도 그 혁명군 출신이었지?”

“죽인다. 내 손으로 널……!!!”

아크는 그런 세이드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아무런 고통 없이, 저항 없이 소울을 수집하는 방법 말이야.”

“넌… 너는……!!!”

붉은 눈동자의 메타휴먼들.

아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뒤에 늘어선 군단을 흡족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이 발명품들은 단언컨대 최고의 역작이에요. 이를테면… 목장에서 자동으로 양털을 깎아주는 기계 같은 거죠.”

이쪽 세계는 그저 거대한 목장에 불과했다.

50개 구역으로 구획화 되어 나눠 놓은 양 떼들. 그리고 그 양 떼들을 관리해 주기적으로 양털을 깎아 공급할 메타휴먼들.

사람들은 귀찮은 일을 대신해 주는 메타휴먼이 무엇을 빼앗아 가는지도 모른 채 그들을 ‘상품’으로써 소비했다.

그렇게 메타휴먼은 모든 대륙민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몇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죠. 하지만 오랜 실험을 통해 메타휴먼은 더욱 완벽해졌어요.”

로보티안, 그저 소울을 수집해 전달하기만 하면 될 도구들이 영혼을 갖는 부작용.

코카서스, 메타휴먼에 대한 인간의 차별과 적대.

사실 그런 부작용들은 아크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최신 버전의 메타휴먼들은 그런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롭거든요. 가축들이 좀 더 오래 알을 낳도록, 좀 더 안전하게 우유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리하겠죠.”

그전까지 구역을 나누고, 관리하기 위해 센트럴의 위원들을 활용했지만, 목장을 완성한 이상 센트럴은 물론 센트럴의 위원들도 필요가 없어졌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세이드. 마무리를 짓다 만 건 좀 아쉽지만.”

“으, 으아아아아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양손이 십자가에 못질 된 탓에 자신의 귀를 막을 수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세이드는 마구 고함을 내질렀다.

그 와중에 악마는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벌써 해가 지고 있네.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군요. 지금껏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어서 꽤 심심했거든요.”

곧이어 도열해 서 있던 메타휴먼들이 줄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걸 끝맺으러 갈 테니까 끝까지 지켜보도록 해요, 세이드 씨.”

* * *

해가 완전히 저문 뒤, 루키우스는 사절들이 모여 있는 알마티 회의실로 향했다.

“다행히 여기는 무사하네요.”

루키우스의 뒤를 따르던 여인이 조용히 중얼거리자, 루키우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센트럴의 폭격으로 인해 공장과 연구원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이 파괴되었지만, 다행히도 시청과 회의실은 무사했다.

회의실 문을 열기 직전, 루키우스는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준비됐소?”

“…네.”

그러나 정작 준비가 되지 않은 쪽은 루키우스였다.

과연 끔찍한 진실을 털어놓는 게 옳은 선택일까?

아니, 믿어는 줄까?

그러나 루키우스는 애써 불안감을 감춘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당신을 카렌으로 알 거요. 그러니…….”

“네, 카렌으로 소개하셔도 상관없어요. 지금 그런 문제를 설명할 시간은 없죠.”

루키우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회의실에는 안도 애슈턴을 비롯해 십여 명의 사절들이 남아 있었다.

문이 열리자 사절들의 시선이 일제히 루키우스와 카렌에게 집중되었다.

루키우스는 긴장한 듯 숨을 들이켜며 사절들의 면면을 살폈다.

카렌을 알아본 사절들의 얼굴이 언뜻 밝아졌다.

그러나 도리어 표정이 굳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전쟁의 끝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루키우스는 천천히 원탁으로 다가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알마티를 믿고 남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남은 사절들은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떠나지 않은 이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순간 알마티를 위해, 아니, 대륙민을 위해 함께 싸워 줄 이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시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절들은 하나같이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름의 각오로 알마티에 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교전을 지켜보며, 바깥에서 들려오는 폭음을 들으며 종일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사절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에 계신 분은 카렌 님 아니십니까!?”

흥분 섞인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오오… 탈로스 가문에서 사절이 온 건가?”

“이제야 전쟁이 끝나려나 봅니다.”

“협상을 통해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루키우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이들 앞에서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마지막 결전에 나서야 한다고…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루키우스가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세연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말씀 좀 해 주시오. 탈로스 가에서 센트럴을 대표해 온 것이오?”

“센트럴 오더를 중지할 의향이 있는 건가요?”

갖가지 질문이 쏟아진다.

세연은 입을 닫은 채 질문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안도 애슈턴은 카렌이 센트럴을 대표해 왔을 리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뒤, 수년 만에 만난 동생 라비.

라비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49구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투를 생생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 속에 카렌이 있었다.

카렌은 동부연맹을 결성한 당사자였으며 센트럴 오더에 그 누구보다 강경하게 맞선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동부연맹이 궤멸당했던 날, 실종되었다.

안도는 다른 구역 사절들의 질문들이 끝난 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도 함께 싸우기 위해 온 거요?”

그리고 마침내 카렌의 얼굴을 한 세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전 알마티와 함께 싸우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얼이 나가 버린 구역 사절들의 얼굴이 일제히 창백하게 질렸다.

잠시간의 침묵 뒤, 사절 중 한 명이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정신이오?”

그의 옆에 있던 10구역 대표 멜리사가 말을 이었다.

“오늘 전투에서 서쪽 성벽이 무너졌어요. 심지어 알마티 시내도 폭격당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지원군도 없이 혼자 나타나서 싸움에 참여하겠다고 하는군요. 당신이 보기에 승산이 있긴 한가요?”

날 선 멜리사의 말에 세연이 고개를 저었다.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궤변이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세연은 분노하는 사절들 앞에서 선언하듯 말했다.

“이 전투에서 진다면, 대륙민은 모두 가축으로 전락할 겁니다.”

그건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이쪽 세계의 모두는 철저하게 관리를 받으며 다른 세계의 누군가를 위해 자신들의 고기, 즉, 소울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가축’이라 부른다.

“지금부터 이 전쟁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말씀드릴 겁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입니다.”

세연은 천천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때는 ‘이고르’라는 이름을 가졌던, 그리고 지금은 ‘아크’라 불리는 악마에 관한 이야기였다.

* * *

북쪽 성벽 위에 올라선 태일은 말없이 닐스가 머무르고 있을 순양함을 바라보았다.

클라이드의 죽음, 그리고 다시 나타난 세연.

째깍, 째깍, 째깍…….

품속의 회중시계가 그 어느 때보다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태일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잘 지냈어?’

세연의 건조한 한 마디.

‘클라이드가 죽었어.’

딘의 감정 없는 목소리.

어느 쪽이 더 당혹스러웠던가.

아니, 어느 쪽이 더 아팠던가.

“오빠, 괜찮아?”

뒤쪽에서 제니가 조심스레 태일에게 다가왔다.

“그래.”

지상에는 순례자들이 어젯밤과 같은 의식을 이어 가고 있었다.

자켄과 클라이드를 비롯해 첫째 날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클라이드 씨가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어.”

“…….”

클라이드는 마지막 순간, 닐스에 의해 죽어 가던 이들을 구해 냈다.

오로지 동생밖에 모르던 녀석이 그 많은 사람들을 살려 낸 것이다.

“저기 오빠, 혹시…….”

제니가 조심스럽게 뭔가 말하려 했지만, 곧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세이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지?”

“…응. 만약 아저씨가 사과한다면, 같이 싸우기로 한다면…….”

세이드는 이미 태일을 몇 번이나 죽이려 했다.

세이드의 지시를 받은 제니는 심지어 태일의 배에 칼을 꽂아 넣기까지 했다.

“그럼 같이 싸워야지.”

“그, 그렇지?”

제니가 안심했다는 듯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그 누구보다 세이드를 따랐던 제니였기에 클라이드를 보고 세이드를 떠올린 건 당연했다.

“가서 눈을 좀 붙여. 내일 전투는 더 치열할 거야.”

“응, 오빠도…….”

애써 밝게 말을 잇던 제니의 시선이 별안간 어딘가로 고정되었다.

“어… 저거…….”

쿵, 쿵, 쿵, 쿵, 쿵.

알마티 주변의 땅이 울린다.

어둠 속에서 밀려드는 엄청난 군세.

수를 셀 수조차 없는 규모의 병력이 불을 밝힌 채 알마티로 몰려들고 있었다.

로봇처럼 일제히 발맞추어 다가오는 붉은 눈동자의 병사들.

순양함이나, 전차 따위 없이 순수한 보병 병력만으로 구성된 그들은 수십 분에 걸쳐 동, 서, 남, 북 할 것 없이 알마티를 빽빽이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니가 망연자실한 듯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저게.”

지금 제니가 보고 있는 건 그 거대한 숫자의 병력이 아니었다.

북쪽에 나타난 군단 정중앙에 높이 올라선 십자가.

마치 보란 듯이 매달아 놓은 누군가의 모습.

그건 제니와 태일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세이드…….”

마침내 악마가 알마티에 도착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