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97화 (197/220)

197화 D―Day (4)

녹스(Nox) 그리고 보니(Bonnie).

둘은 분명 다른 인격체였지만, 이제 그런 구분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셸터를 지켜 왔던 녹스는 포트리스에 주둔했던 이들의 자료와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센트럴이 수많은 국가들을 어떻게 멸망시켰는가.’

‘어떻게 대륙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는가.’

‘어떻게 모든 것을 빼앗아 왔는가.’

녹스는 센트럴이 만든 세계의 위험성과 불합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녹스의 판단은 지극히 이성적이었고, 합리적이었다.

클라이드의 동생이자, 바토리 일족의 후예인 보니는 잔혹한 학살과 비인간적 실험을 기억하고 있었다.

‘센트럴은 바토리 일족을 배신했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했고, 오빠와 나를 사냥했어.’

‘우리를 실험실에 처넣었고, 온갖 인체 실험을 자행했어.’

보니는 센트럴의 잔혹함과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보니의 판단은 지극히 경험적이었고, 감정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둘의 결정은 한 가지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 센트럴 놈들,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이야.

해킹한 통신망을 통한 보니의 목소리가 알마티에 전해졌다.

조종대를 잡은 프랑켄은 그런 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스템이던 시절의 녹스를 기억하는 프랑켄에게 지금 그녀가 보이는 표정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울 듯 상기된 얼굴, 붉게 충혈된 눈과 덜덜 떨리는 양팔.

그러나 격동된 그녀의 감정에는 프랑켄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프랑켄, 비행에만 집중해.”

보니의 옆을 지키고 선 클라이드가 프랑켄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부터 비행이 녹록치 않을 거야.”

“이미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만.”

수천 대의 드론이 오로지 다빈치를 노린 채 온 사방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사방에서 이뤄진 사격으로 화망(火網)이 형성된 후로 곡예비행의 연속이었고, 다빈치의 방어막 손상률은 70%를 넘긴 상태였다.

“…버텨 보죠.”

프랑켄의 시선이 창밖 거대한 토네이도와 그 안에 갇힌 순양함으로 향했다.

고철로 변해 버린 순양함을 공중에 부양시킨 클라이드, 그리고 그런 순양함을 완전히 분해하여 부품을 끌어오는 보니.

남매의 능력은 이미 상상의 범위를 아늑히 초월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다빈치의 양옆과 뒤쪽으로 플레어가 터지며 드론들의 시야를 어지럽게 교란시켰다.

쾅! 콰쾅!

플레어로 인해 시야가 교란당한 드론 몇 기가 다빈치와 충돌했다.

그와 동시에 통신망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긴 알마티! 엄호하겠다.

“젠장, 방해나 하지 말라고 해!”

드론들과의 충돌로 다빈치가 거칠게 흔들리자, 클라이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플레어와 함께 날아든 알마티 측의 포격으로 인해 드론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 사이, 보니가 긁어모은 순양함의 부품들은 알마티 성벽 근처로 모여들고 있었다.

끼릭, 끼리리릭!!

그럴듯한 규칙조차 없이 마구 뭉쳐 든 부품들은 기괴한 형태로 뒤섞이고 있었다.

엔진을 구성했던 파이프와 갑판을 이루었던 철판이 들러붙었고, 강화 유리와 초합금 철판이 혼재되어 이제껏 존재한 적 없는 물질로 재탄생했다.

불꽃이 튀거나 수상한 연기가 흘러나오기도 하면서 기괴한 무생물 키메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편, 다빈치 계기판에는 온갖 적신호가 떠오르고 있었다.

[남은 연료가 5% 이하입니다. 연료 보급이 필요합니다.]

[방어막 손상률 79%. 수리가 필요합니다.]

[엔진 파손율 12%, 과열 위험이 있습니다.]

[날개 파손율 6%…….]

“오래 버티진 못합니다!”

프랑켄이 목소리를 높이는 그 찰나, 별안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저건……!”

알마티 장벽과 적진의 사이.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흙과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파도가 솟아오른다.

“이건 또 뭡니까!? 이게 대체!!”

프랑켄은 저도 모르게 고함을 내지르며 조종대에 손을 얹었다.

기계 팔이기에 땀이 배진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클라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프랑켄의 시선은 정면의 파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파도 안에서 짐승의 형상이 드러난다.

거대한 이빨과 모래로 빚어진 갈기, 사납게 일그러진 눈.

“세상에…….”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광경에 프랑켄은 얼이 나가고 말았다.

입을 쩍 벌린 사자가 단번에 다빈치를 집어삼킬 듯 덮쳐 오고 있었다.

― 어, 어이. 보고 있어!?

― 젠장! 저건 또 뭐야!

통신기를 통해 당황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알마티 쪽 포대가 연달아 불을 뿜었지만, 발사된 포들은 파도에 휩쓸릴 뿐, 파도 자체를 막아 내진 못했다.

그 와중에 클라이드가 천천히 조종석 앞으로 다가왔다.

모래 파도를 바라보는 클라이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적 진영에 형성한 토네이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닐스, 이 새끼. 해보자 이거지?”

짓씹듯 중얼거리던 클라이드가 주먹을 움켜쥐자, 순양함을 지탱하던 회오리바람이 온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콰콰쾅!!

얼마 남지 않은 순양함 파편들이 온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져 내렸다.

힘을 거둬들인 클라이드가 사자 머리를 향해 양손을 뻗고는 손목을 슬쩍 비틀었다.

쿠쿵! 쿵!!

모래 폭풍의 사자 머리 한가운데 거대한 구멍이 뚫린다.

마치 이마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대한 길이 생겨났고, 거센 회오리바람이 마치 창처럼 모래 파도를 관통했다.

“망할 첩자 새끼가 어딜!!”

몇 발의 창이 관통하기라도 한 듯 사자 머리 곳곳에 바람의 길이 생겨났다.

사자의 눈을 뚫고, 코를 뚫은 데 이어, 아가리 한가운데를 관통해 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모래 파도의 기세는 줄지 않았다.

바람으로 꿰뚫렸던 곳은 금세 다시 메워질 뿐이었다.

“…부족해.”

주변을 파리처럼 맴돌던 센트럴의 무인 드론들은 모조리 철수한 상태였다.

프랑켄 역시 모래 파도를 회피할 생각으로 조종대를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였다.

“방향 틀지 마!”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그대로 장벽을 직격할 거야.”

클라이드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번 전투의 승리는 알마티 장벽의 수호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장벽이 무너진다면, 결국 센트럴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다.

― 제대로 판단했어, 클라이드.

통신기를 통해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한 줄기 번개가 다빈치 앞에 내려쳤다.

번개가 내려친 뒤, 비공정 다빈치 갑판 위에 한 사내의 모습이 비친다.

코트를 입은 채 장발을 휘날리는 사내.

사내의 양팔에서는 푸른 스파크가 어지러이 튕기고 있었다.

“대장……!”

태일은 입에 불붙지 않은 담배를 문 채 모래바람을 마주하고 섰다.

― 단 한 발로 끝낸다.

낯익은 광경과 목소리.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다.

혁명군으로 함께 싸우던 당시, 태일은 지금처럼 선두에 선 채 클라이드에게 물었다.

‘준비됐냐?’

클라이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빠?”

“금방 다녀올게, 보니.”

클라이드의 몸이 천천히 떠오른다.

클라이드는 온몸에 바람을 휘감은 채 비공정 갑판 위로 향했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바깥, 태일은 갑판 한가운데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클라이드, 준비됐냐?”

태일은 클라이드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물었고, 클라이드의 대답은 예전과 같았다.

“물론이지!”

이제 통신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클라이드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태일의 바로 옆에 섰다.

“오랜만이야, 대장.”

“그래.”

왜 잊었을까?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이 순간의 고양감을, 이 순간의 즐거움을.

숨을 가다듬은 클라이드가 한쪽 발을 뒤로 쭉 빼면서 팔을 뒤로 내뻗었다.

그렇게 내뻗은 클라이드의 팔 끝에서 묘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파공음과 함께 만들어진 바람은 창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와 같은 자세로 허공에 뜬 태일의 팔에서도 거대한 번개의 창이 형성되고 있었다.

‘아스트라페.’

역사시대와 함께 잊혀 버린 신의 무기를 이르는 명칭.

그러나 혁명군은 그 의미조차 잊은 채 태일이 만든 번개의 창을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신의 무기를 뜻하는 그 명칭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 어떤 능력도, 방어도 그 창 앞에서는 무력했으니까.

절대의 창.

클라이드 또한 닿고 싶은 경지였고, 그를 흉내 내기 위해 비슷한 기술을 창안했다.

‘따를 수 없어.’

제아무리 무한에 가까운 소울을 지녔다 해도, 태일의 아스트라페와 같은 수준의 무기는 완성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태일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의 바로 옆에 서서.

“간다.”

잠깐 동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

태일의 팔이, 클라이드의 팔이 호를 그렸다.

그와 함께 온몸의 무게가 정면으로 이동했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손은 제각기 번개와 바람을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호가 그려지는 사이, 번개와 바람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창이 곧장 모래폭풍 한가운데, 사자를 향해 쏘아졌다.

콰콰콰콰콰!!!!

제각기 거대한 빛과 바람을 쏟아 내면서 귀를 찢을 듯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같은 속도로 날아간 두 대의 창이 모래폭풍에 닿았다.

콰콰쾅!!!

앞서 클라이드의 공격들과는 달랐다.

그저 관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자의 형상이, 파도를 이루던 모래 입자들이, 파도를 이끌던 소울의 힘이 모조리 휩쓸렸다.

뒤엉키고, 흐트러지고, 끊어진다.

다빈치와 알마티 장벽을 집어삼키기 위해 몰려왔던 일체의 공격이 모든 흐름과 규칙성을 잃고 온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사자의 형상은 일그러짐 끝에 완전히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고, 파도는 하릴없이 가라앉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공격이 가라앉은 가운데, 남은 것은 오로지 두 자루의 창.

태일과 클라이드가 만든 아스트라페였다.

창은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 * *

“물러서지 마라! 싸워!”

알마티 제7군단 1대대 3중대장 막스.

그는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 가며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전방에서 뿌연 모래 파도가 알마티 장벽을 향해 밀어닥치는 중이었고, 뒤쪽에서는 검게 타 버린 괴물 뱀과 순양함의 잔해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막스는 오로지 전투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내려앉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막스에게는 눈앞의 전장이 전부였고, 모든 것이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그 와중에 도망치는 소대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딜 가나, 제군?”

“주, 중대장님! 놈들은……!”

철컥!

막스는 끝까지 얘기를 듣지도 않은 채 소대장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요, 용서를!!!”

탕!!

겁에 질린 소대장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산산이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본 주변 병사들은 잠깐 주춤했지만, 막스의 사나운 표정을 보고는 곧장 고개를 돌려 적들을 향해 돌격했다.

“명예를 기억해라!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란 말이야!!”

전투에서의 승리, 알마티의 점령…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다.

막스는 무기를 치켜든 채 겁 없이 덤벼드는 적들의 모습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메타휴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

오로지 인간을 위해 봉사하며, 인간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놈들.

붉은 눈동자를 가진 놈들이 지금 자신들의 주인인 인간을 향해 무기를 들이밀며 달려들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지, 이래서는 안 돼! 감히 메타휴먼 따위가!!”

그래, 안될 말이다.

인간과 닮았다고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을 흉내 낸다고 해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권을 가진 ‘로보티안’?

헛소리다.

정치인들의 장난질에 놀아난 것이다.

코카서스 동지들의 말이 옳다.

그들의 말처럼 메타휴먼은 이미 인간을 대체하고 있었으며,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전쟁터에서 사령관을 보필하는 9중대 역시 메타휴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대원들을 공격해 오는 놈들 역시 메타휴먼이었다.

모두가 그 악마 놈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정체성을 훼손하는 메타휴먼의 존재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전부 없애! 전부 없애 버리란 말이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던 그 찰나, 거대한 몸집의 메타휴먼 한 놈이 막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다리 대신 캐터필러, 양팔 대신 거대한 해머와 드릴, 어깨에 얹어진 로켓포대와 기관총.

이미 병기로 변해 버린 그 모습을 감히 누가 ‘인간’이라 하는가.

“놈을 없애!!!”

수십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놈의 갑주는 이미 반파되었고, 드릴의 날은 헤졌으며, 어깨에 얹은 총기들은 탄이 소진된 듯 더는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놈은 양팔에 장착된 해머를 쉬지 않고 휘둘렀다.

“끄아아악!!”

“막아! 막아라!”

해머에 찍힌 병사들의 팔과 다리가 으깨졌고, 섣불리 매달렸다가 저만치 날아간 병사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흉측하게 망가진 몸체로 난동을 부리던 괴물은 붉은 눈으로 막스를 노려보았다.

붉은 눈 괴물로부터 자그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올 거…다. 곧… 온다.”

그 소름끼치는 모습에 막스조차도 잠시 주춤했을 정도였다.

막스는 입술을 깨문 채 놈을 박살 내기 위해 어깨에 메고 있던 레이저건을 어깨에 견착 했다.

메타휴먼의 약점은 놈의 머리, 즉, 눈 부위다.

철컥!

놈은 이미 거의 기력이 소진되어 있었고, 거의 파괴된 상태였다.

단 한 발이면 끝장낼 수 있다.

이를 악문 막스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바로 그 순간.

콰콰쾅!!!

앞쪽에 펼쳐져 있던, 알마티를 향해 몰아치던 모래 파도가 별안간 사라져 버렸다.

그와 함께 눈부신 빛이 온 전장을 감쌌다.

“뭐, 뭐야!?”

거대한 창이 모래 파도를 흩어 버린 뒤, 정확히 이쪽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광경에 막스는 그대로 굳어 버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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