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96화 (196/220)

196화 D―Day (3)

쾅! 콰쾅!!!

스샤샤샤샤샤샤!!!!

알마티 부대를 향해 떨어졌을 포탄들이 요르문간드의 몸뚱어리와 부딪히며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아무리 강력한 비늘로 무장한 괴물이라 해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요르문간드의 몸뚱어리가 불안하게 휘청거렸고, 곳곳에서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미 타 버린 비늘들은 요르문간드를 보호하지 못했고, 몸 구석구석에 박힌 파편들로부터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아직…….’

기우뚱거리던 요르문간드가 별안간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노란 눈동자는 눈앞의 순양함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향… 아버지… 그리고 센트럴.’

요르문간드로부터 들려온 목소리.

태일은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인지 원인도,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요르문간드의, 아니, 장의 목소리를 들은 태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내질렀다.

― 모두 진격해! 지금 당장!

― 뭐!? 후퇴가 아니라?

― 제대로 판단한 게 맞나?

― 자, 잠깐! 뱀이……!!

통신기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사이, 요르문간드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순양함을 향해 덮쳐 갔다.

파칫! 쾅!

갑작스러운 공격에 순양함 선체가 요란스럽게 흔들렸고, 날개 쪽에서 작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거대한 순양함이 기우뚱거렸고, 급히 발진한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요르문간드의 숨통을 끊기 위해 미사일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르문간드는 제 살 곳곳에 구멍이 뚫리는 그 와중에도 순양함을 칭칭 휘감았으며, 제 이빨을 기어코 선체 갑판에 박아 넣었다.

콰쾅! 쾅!!

수십 대의 전투기와 온 병사들의 사격이 오로지 요르문간드에게 집중되었고, 괴수의 노란 눈동자는 점차 힘을 잃어 갔다.

그러나 갑판에 박아 넣은 이빨과 순양함을 얽은 몸뚱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안해, 아버지.’

순간 떠들썩하던 통신기가 조용해졌다.

이번만큼은 태일뿐 아니라 모두가 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장… 너구나. 너였어…….”

괴물로 변해 버린 아들.

장이 아직 어렸을 적부터 그 아이를 보면 난산으로 죽은 아내가 떠올랐다.

그랬기에 루키우스는 막내아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그건 장의 탓이 아니었음에도 루키우스는 장을 멀리했다.

애써 거리를 두었고, 사무적으로 대했다.

애정 어린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아버지, 왜 절 그런 눈으로 보세요?’

가족마저 안식처가 되어 주지 못한 가운데, 외톨이로 자라난 막내는 형들을 살해했고, 제 아버지를 센트럴에 넘겼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모든 건 자신의 탓이다.

장의 탓이 아닌, 못난 아비의 탓이다.

두 아들을 살해한 것은 장이 아닌 루키우스 자신이다.

장을 방치하고, 그 아이를 악마로 키운 당사자가 바로 루키우스, 자신이다.

그래서 미련 없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

회사도, 알마티에서의 삶도 등진 채 지하 도시로 숨어들었다.

그때라도 장을 말렸어야 했다.

그 결말이 파멸이라 하더라도 제 형들을 집어삼킨 장과 싸워야 했다.

잘못을 깨닫게 만들어야 했다.

아들을 보는 아비의 눈에 애정이 아닌 두려움이 실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다 나의 탓이다.”

서대륙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

‘심술꾸러기 아이는 부모의 미움을 받고 버려진단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에게는 마녀가 찾아오지. 그리고 마녀는 아이를 뱀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아들은 마녀의 손에 모든 것을 빼앗긴 뒤였다.

“미안하구나, 장. 내가 미안해.”

루키우스는 그대로 장벽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마를 땅에 마구 부딪힌다.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울부짖는다.

‘미안해, 아버지.’

“사과하지 말 거라. 제발 사과하지 마라.”

루키우스가 절규하며 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시꺼멓게 불타 버린 뱀의 노란 눈동자가 천천히 감겼다.

세상이 멈춘다.

무언가가 무너진다.

쾅! 콰쾅! 콰콰쾅!!

장이 마지막 순간 온몸으로 휘감았던 순양함이 거대한 굉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에 휩싸인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짐 덩어리처럼 순양함 갑판에서 쏟아져 떨어진다.

순양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질러 대며 떨어져 내렸다.

지상에 있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그렇게 아들의 몸뚱어리와 함께 순양함 플루톤 한 척이 땅으로 추락했다.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단다. 뱀으로 변한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반성한다면, 마녀는 그 저주를 풀어 줄 거거든. 그러면 부모님은 다시 아이를 받아 줄 거야.’

이야기의 결말은 현실과 달랐다.

“쿨럭! 쿨럭!!”

가까스로 추락 직전 탈출에 성공한 부관, 마오 대령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등에 부착된 낙하 장비를 해제한 뒤, 고개를 들어 올려 추락하는 순양함을 바라보았다.

현실일 리 없다.

거대한 성채이자, 요새와 같은 순양함이 이렇게 허무하게 추락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것도 고작 다 죽어 가는 괴물 뱀 한 마리에게 당할 리 없다.

“대, 대령님! 피해야 합니다!”

근방에서 몰려온 장교들 몇이 마오를 황급히 잡아끌었다.

순양함에 실려 있던 장비들이 불덩이로 변해 온 사방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운 나쁘게 피하지 못한 몇몇은 그 파편에 깔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현실이란 그런 거라네, 마오 대령.”

뒤쪽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닐스가 9중대원들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오가 곧장 무릎을 꿇자, 마오를 부축하기 위해 달려왔던 장교들 역시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순양함의 추락을 막지 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그만.”

닐스가 손을 들어 올려 마오의 말을 막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마오의 눈에 닐스의 얼굴이 비친다.

추락하는 순양함의 열기로 인해 닐스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착각이 아니다.

양쪽으로 치켜 올라간 입꼬리.

그는… 웃고 있었다.

아니, 어째서 순양함 추락 현장에 사령관이 직접 나타난 걸까?

살아남은 병사들은 이미 대부분 달아나 버린 이 현장에 왜 닐스가 아직 남아 있는 걸까?

“그동안 고생했어, 마오 대령.”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끄아아아아악!!!!”

마오와 함께 있던 장교들의 온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사, 사령관님!?”

“자네가 나의 정체를 의심했다지? 상부에 나의 지문과 DNA 정보의 대조를 요청했더군. 그래, 그 결과는 어떻던가?”

“그, 그건 그저……!”

결과는 98.8% 일치.

표본의 오염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동일인.

닐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부드럽게 말을 이어 갔다.

“자네의 짐작대로야. 난 자네가 그동안 모셨던 닐스 레오나드가 아니라네. 아마 부관인 자네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겠지. 난 그 저돌적이고 무식했던 놈과 다르니까.”

마오는 여전히 닐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눈앞의 사령관이 다급한 상황에, 순양함을 잃고 수많은 장비와 병사를 잃은 이 상황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걸까?

자신이 닐스 레오나드가 아니라니.

같은 유전자에, 같은 외형을 한 그가 닐스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쨌든… 내 옆에서 엉뚱한 짓을 벌이는 자를 계속 남겨 둬야 할 이유는 없겠지. 안 그런가?”

닐스의 곁에 서 있던 9중대장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자, 잠깐! 난 그러려던 게!! 아, 아아아아아아악!!!”

살이 타는 고통 속에서 마오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닐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령관님, 여긴 위험합니다!”

마오가 죽어 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도 닐스는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이미 마오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9중대장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말게.”

하긴, 그가 두려워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능력자라며 거들먹거렸던 그조차도 이만한 능력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을 테니까.

휘이이이이이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토네이도가 불어닥쳤고, 순식간에 온 전장을 거칠게 휩쓸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장면은 단연코 순양함의 모습일 것이다.

불길에 휩싸인 채 괴물 뱀과 함께 추락 중이던 순양함은 회오리바람에 갇힌 채 공중을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불길은 바람으로 인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지만, 조종할 수 없게 된 기체는 그저 회오리바람에 휘둘리며 공중을 부양할 뿐이었다.

“그리운 능력이군. 모처럼 동료였던 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팟, 파팟! 쾅!

순양함이 공중에 떠 있는 가운데, 순양함을 구성하고 있던 철판과 부품들이 마구 분해되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잘 조립된 장난감을 마구 헤집어 분해하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아마 다른 자와 함께 온 모양이군.”

닐스가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부품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닐스의 시선이 향한 방향, 알마티 동쪽에서는 낯익은 비공정 한 척이 이쪽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한편, 태일 역시 뒤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비공정을 보고 당황한 참이었다.

“…저게 대체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비공정 다빈치.

알렉세이 딘에게 반강제로 받아 알마티까지 타고 왔던 바로 그 비공정이었다.

그러나 알마티 지하 도시 붕괴 사건 직후, 프랑켄은 녹스를 찾겠다며 다빈치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떠나 버렸던 다빈치가 뜬금없이 전장 한가운데 나타난 것이다.

곧이어 통신기를 통해 제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엄호사격! 엄호사격 해!

―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뜻이지?

― 저 비공정을 지키란 말이야!

― 아직 비공정의 정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저 비공정은 대체……!

― 보면 몰라!? 이쪽 편이잖아.

제니 역시 비공정 다빈치를 알고 있다.

혁명군 활동 당시, 얼마 동안 다빈치를 운전했던 비행사가 다름 아닌 제니였으니까.

수천 대의 무인 드론들이 곧장 다빈치를 노리고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와 함께 한창 추락하던 순양함 근방에서 토네이도가 불어닥쳤다.

‘클라이드……!’

추락을 멈춘 순양함에서 온갖 철판과 부품들이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 날아들어 다빈치의 항로를 따라 철갑 방어막을 구축했다.

그 와중에 다빈치에서 틈틈이 쏘아진 미사일이 드론들을 한꺼번에 폭파시켰다.

― 일단 우리의 적은 아닌 것 같군.

― 그걸 이제야 눈치챘냐? 빨리 엄호해!

다빈치는 빠른 속도로 적 진영을 향해 날아들었고, 요르문간드의 난동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센트럴 군을 다시금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다빈치에 몰린 바로 그 순간.

치지지직! 치직!

통신기에서 잡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아아! 들려? 어이, 알마티. 내 목소리 들려?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

본래 포트리스를 지키던 시스템이었으나, 보니의 몸을 빌려 재탄생한 녹스, 바로 그 녀석의 목소리였다.

― 뭐야, 너? 웬 꼬맹이가……!

― 목소리를 들으니 너도 아직 어린 것 같은데.

― 뭐가 어쩌고 어째?

무전기를 통해 제니와 녹스의 날 선 목소리가 교차했다.

― 제니, 조용히 해. 들린다, 녹스. 말해.

― 녹스가 아니라 보니라고 불러. 어쨌든 지금부터 우리도 이 전투에 합류할 생각이야.

― 목표는?

― 센트럴 놈들,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이야.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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