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D―1 (2)
제니는 시장실 창밖으로 알마티 거리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에, 몇 시간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된 거 같은데.”
“당연히 그렇겠지. 센트럴과 전쟁을 선포한 거니까.”
알마티 시민들에게 센트럴 최후통첩의 내용이 전해진 뒤, 시내에는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루키우스가 센트럴과의 전쟁을 각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많은 피난민들이 다시금 짐을 꾸려 알마티를 빠져나갔다.
마틴을 비롯한 부자들은 아예 타 구역으로의 이주를 적극 추진했다.
제니는 그런 이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루키우스에게 물었다.
“시장 아저씨, 배신자들을 그냥 보내도 되겠어?”
“그럼 어쩌겠나? 어차피 싸울 마음이 없는 이들이라면 내보내는 편이 낫지. 억지로 붙잡아 두는 것은 오히려 위험해.”
잃을 게 많은 이들은 자칫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 알마티를 배신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전쟁이 터지기 직전 떠나도록 하는 편이 나았다.
물론 시한이 단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기에 자산 대부분은 두고 가야 할 테지만.
“설마… 하기야 마틴, 그 작자까지 떠날 줄은 몰랐는데.”
“…….”
리치 타운의 학살 당시에 살아남은 벨로사 사장 마틴은 루키우스를 도와 알마티의 재정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그런 마틴까지 겁먹고 떠날 정도로 알마티의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그래도… 함께 싸워 주겠다는 이들이 많다네.”
“그렇겠지.”
지하에서 올라온 주민들은 최후통첩 중 ‘지하 반란 사건의 재조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자 센트럴과 싸우겠다며 자경단에 자원했다.
센트럴이 요청한 ‘반환 대상 장비’에 메타휴먼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심과 메타휴먼들 역시 무기를 들었다.
메타휴먼에 대한 차별이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센트럴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메타휴먼과의 협력은 기정사실과 같았다.
알마티 시내에 머무를 곳을 구하지 못한 여자와 아이들은 메타휴먼들이 개척지에 임시로 만들어 둔 거주 구역으로 이주했고, 개척지 근방에 방어를 위한 울타리가 세워졌다.
알마티를 지키려 하는 자들은 오히려 많이 가지지 못한, 힘겹게 최소한의 권리를 얻어 낸 주민들이었다.
바로 그때, 시장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절 왜 부르신 겁니까?”
루키우스의 맞은편에 앉은 사내.
그 누구보다 알마티에 우호적이던 사내.
“안도 군.”
안도는 알마티의 재건을 위해 다른 구역의 협력을 끌어냈으며, 정치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랬던 안도가 정작 중요한 회의에서 알마티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루키우스가 회의 직후 태일과 안도를 따로 부른 것은, 그 역시 안도의 반응에 제법 충격을 받았다는 의미일 터였다.
그러나 정작 화를 내고 있는 쪽은 안도였다.
“시장님,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안도 군.”
“무모하셨습니다.”
“알고 있네.”
“그 어느 구역도 공식적으로 알마티를 편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요. 완전히 파괴되어 더 잃을 게 없는 세 개 구역이나 실권을 잃은 멜리사는 동맹을 선언할 수 있죠. 하지만 다른 구역이 그런 요구에 응할 리 없습니다.”
안도가 고개를 숙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조차도 말입니다.”
승산이 희박한 전쟁.
그런 전쟁을 앞두고 동맹 요청은 실로 무리한 요구였다.
어느 쪽이 정의인가를 묻는다면, 너무나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의 손을 잡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그건 구역 주민들의 생명과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더라면 실리가 걸린 문제에서 명분만을 좇을 수 없는 법이다.
“대표자들에게 최대한 선택지를 주셔야 했습니다.”
회의에서 각 구역 대표들이 원한 답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센트럴에 맞서겠다는 루키우스의 선언과 더불어 그런 알마티를 ‘비밀리’에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루키우스는 전쟁을 선언하면서 정작 중요한 지원을 제 손으로 차단해 버렸다.
“지원을 더 많이 받을 방법을 고려했어야 해요. 모두 알마티가 센트럴에 맞서 주길 바라고 있으니, 그 점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얻어 냈어야 합니다!”
제 일처럼 괴로워하고 아쉬워하는 안도를 지켜보던 루키우스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안도 군, 지금 알마티에게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예?”
“센트럴 군이 동대륙의 연합을 괴멸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네. 그보다 강했던 서부연맹 세 개 구역은 단 3일 만에 초토화되었지. 그조차도 행군 시간을 포함한 기간이었네.”
“…….”
“당장 내일이면 센트럴 순양함들이 몰려들 텐데… 우리 알마티는 며칠이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시장님.”
“더 많은 지원이라고 했나? 그게 지금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눈치를 보아가며, 절차를 따져 가며 지원해 주는 이들은 시간 내에 우리를 돕지 못할 텐데 말이야.”
“…….”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린 세 개 구역 피난민들은 이번 전쟁에 대한 소문을 듣자 가장 먼저 달려와 자원했네. 자네가 보기에 영양가 없는 동맹처럼 보이겠지만, 내게는 뜸을 들이며 시간을 끄는 정치인들보다 훨씬 중요한 전력이지.”
“시장님께서는… 이미 패배를 각오하고 계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난 알마티의 저력을, 내 동료들의 저력을 믿네.”
“그럼 대체 어째서……!”
“도망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눈치를 살피는 자들이 있겠지. 알마티가 점령되기 직전까지 전황을 확인하려 할 거야. 난 그들에게 알마티의 저력을 보여 주려 하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걸어 볼 수 있겠다는 결론을 얻어 낼 생각이야.”
루키우스의 대답을 들은 안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말씀입니다.”
결국 알마티는 처참한 공성전을 치러 내야 한다. 거기서 며칠을 더 버텨 내고 투혼을 보인다 한들 과연 구역 대표들이 마음을 돌려 동맹을 결정할까?
알마티가 버텨 주는 모습을 보며 기뻐할지 모르지만, 그 전쟁에 참전하려 할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안도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구역 대표자들을 설득해 주게. 조금이라도 더 지켜볼 수 있도록, 알마티에 대한 결정을 하루라도 더 유보할 수 있도록 말이네.”
“…알겠습니다.”
안도는 루키우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요청까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대화를 마친 안도는 줄곧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태일과 제니를 힐끗 바라본 뒤, 그대로 시장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자네가 보기에도 내가 무모한 결단을 내린 것 같나?”
“아뇨.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태일은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곧장 대답하며 루키우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허허, 고맙군. 솔직히 나조차도 내 결정을 온전히 믿을 수 없거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지원이라면, 차라리 애당초 없는 편이 낫습니다.”
태일은 이미 혁명군에서 그 치명적인 함정을 경험했다.
그저 몸집만 불린 군단이 얼마나 나약한지, 말뿐인 지원 약속이 실제 전쟁에서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태일은 잘 알고 있었다.
각 구역 레지스탕스들은 혁명군의 의지에 동의한다며 참여 의사를 밝혀 왔지만, 혁명군의 가능성을 마지막까지 확인하려 했고, 자신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려 했다.
결국 그들은 의사결정 과정만 지체시켰을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마 처음 하루 이틀 정도가 고비일 겁니다.”
“…그렇겠지.”
서부연맹의 붕괴 당시, 전투순양함들은 항복 권유조차 없이 곧바로 도심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최후통첩의 기한이 만료된 내일, 센트럴 군은 곧장 알마티를 향해 포격을 가해 올 가능성이 높았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진심인가?”
루키우스가 조금 놀란 눈으로 태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걸 부탁하려고 부르신 게 아닙니까?”
“…염치가 없군.”
루키우스는 태일의 가공할 힘을 직접 확인했다. 그렇기에 애당초 다른 대안이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외부인이자 이해당사자도 아닌 태일에게 선봉을 맡긴다는 것은 루키우스에게도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태일은 너무도 담담히 자신의 역할을 수긍했다.
“기꺼이 싸우겠습니다.”
“고맙네. 진심으로 고마워.”
바로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시장실 문이 열렸다.
“난리로군, 난리야.”
카심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시장실로 들어왔다.
“마틴, 그 개자식, 결국 떠났다지?”
“…그렇다네.”
“가진 놈들이 원래 그런 법 아니겠나. 걱정할 거 없어. 놈이 남기고 간 재산이나 미리 압류해 두지.”
“…….”
카심은 자리에 앉아 있는 태일과 제니를 보고 눈을 반짝이더니, 곧장 안도가 앉아 있던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보다 내일부터 있을 전투 말인데…….”
카심은 마치 여행 계획이라도 얘기하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메타휴먼 부대가 선봉에 설까 하네.”
“…이보게.”
“하지만 아무래도 난 늙은데다 전투 경험도 부족하니까 유능한 지휘관이 한 명 붙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카심이 태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마침 딱 좋은 인재가 있군그래.”
제니가 그런 카심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할아버지, 뻔뻔하다는 소리 좀 듣죠?”
“흐흐흐, 왜? 무섭나? 무서우면 그냥 내가 지휘하고.”
“이미 시장님께 답변을 드렸습니다.”
“호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태일의 답변을 들은 카심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좋아, 좋아. 이거야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로군.”
대화를 듣고 있던 루키우스가 한숨을 내쉬며 타일렀다.
“카심, 어린애처럼 굴지 말게. 이건 전쟁놀이가 아니야.”
“알고 있네. 알고말고. 센트럴 놈들에게 본때를 보일 기회지. 감히 메타휴먼들을 일개 ‘장비’로 취급하면서 반환하라니. 그놈들, 드디어 정신이 나가 버린 게야.”
못 말리겠다는 듯 카심을 바라보던 루키우스가 화제를 전환했다.
“지난번에 부탁한 건 어찌 됐나? 정찰 말이네.”
“아, 그래. 안 그래도 멜리사 양에게 드론을 좀 빌려서 주변을 돌아보았지. 뭐, 열 대 중 여섯 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꽤 유용한 정보를 얻었어.”
“그런 걸 ‘빌렸다’고 하나? 그냥 뺏은 거 아냐?”
제니가 중간에 끼어들었지만, 루키우스는 깔끔히 무시했다.
“센트럴 놈들, 작심하고 달려들 모양이야. 일단 확인된 바로는 2개 방향에서 몰려오고 있네.”
루키우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선 북쪽에서 순양함 다섯 척이 이쪽으로 오고 있네. 북쪽 구역들의 레지스탕스 소탕을 마쳤다고 하더군.”
“레지스탕스 소탕이라… 그런 구실로 북방 구역의 지배 가문들을 모조리 쓸어버렸겠지. 어쨌든 북방에 투입되었던 병력이 모조리 온다는 거군.”
루키우스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동대륙 쪽에는 순양함 다섯 척이 흩어져 있더군. 그중 세 척이 방향을 달리 잡은 것 같고, 두 척은 알마티 쪽으로 오고 있네.”
“…순양함 두 척이 더 온다고?”
제니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헤, 벌렸다.
“미친 거 아니야?!”
순양함 단 한 척만으로 동부 연합이 괴멸당했고, 서부 대륙 세 개 구역을 파괴할 당시에도 총 다섯 척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작은 도시에 불과한 알마티에 무려 일곱 척의 순양함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글쎄, 전투 소요 기간이 길어지면 더 올지도 모르지.”
“말도 안 돼…….”
“어느 쪽이 먼저 도착하겠나?”
“내일 새벽쯤이면 북쪽에서 모습을 드러낼 거네. 동부에서 오는 놈들은 하루 정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고.”
“순양함 다섯 척…이군.”
“이건 말도 안 돼…….”
절망적인 전력 차이를 체감한 루키우스와 제니는 할 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편, 태일은 얼마간 손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탁, 타탁.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그 사이로 작은 스파크가 튄다.
승산이 없어 보일 정도로 전력 차가 두드러지는 전투.
하지만 이런 전투에서 승리를 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편 대장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