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87화 (187/220)

187화 끝의 시작 (5)

“우, 우우웁!”

알렉세이 딘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G7 조수석에 위쪽에 달린 손잡이를 죽어라 움켜쥐고 있었다.

수차례의 난폭한 드리프트, 눈이 팽팽 도는 속도와 급브레이크.

“이야아아아!! 더 빨리! 더!”

“으와아아아아!”

뒷좌석에 앉은 지우와 앨리스는 탄성을 질러 대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마치 즐거운 놀이 기구라도 타는 듯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버티다 못한 딘은 애원하듯 고함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 그만… 그만!!”

끼이이이이익!!

급브레이크와 함께 차가 거칠게 회전한다.

온 사방에 흙먼지가 휘날리면서 창밖에 먼지가 뿌옇게 떠올랐다.

쾅!

“으악!”

“우왓!”

딘의 머리가 차창에 부딪쳤고, 뒤쪽의 지우와 앨리스의 몸뚱어리 역시 펄쩍 뛰어오르며 차 천장과 충돌했다.

어쨌든 한동안 폭주하던 차가 멈춰 섰다.

딘은 곧장 차창 문을 열고는 고개를 내민 채 마구 토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에 먹은 것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온다.

뒷좌석에 앉은 지우와 앨리스는 그런 딘의 모습이 그저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웃어 댔다.

“어른이 돼서 한심하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라비가 차가운 눈으로 옆자리의 딘을 노려보았다.

힘겹게 속을 게워 내고 신음을 토하던 딘이 그런 라비를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너, 너 진짜…….”

“왜요?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라비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딘에게 되레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딘은 슬쩍 라비의 시선을 피하며 그답지 않게 작게 우물거렸다.

“그, 운전을 좀 신중하게… 조심해서 하라고…….”

“아하, 아저씨가 몰래 떠날 때처럼 그렇게 신중하게?”

“아니, 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날 전쟁터에 버리고 갈 때처럼 조심스럽게?”

“그게 아니라…….”

심장이 떨린다.

“그게 아니라 뭐? 귀찮은 꼬맹이가 돌아와서 불만이신가?”

라비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다.

항상 무서울 게 없던 딘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병동이 불타고, 코카서스 놈들과 홀로 맞서던 당시에도 이처럼 겁을 먹진 않았는데.

“라비, 난 그저 네 친구들이 있으니까…….”

딘은 그렇게 말하며 다급히 뒷좌석의 지우와 앨리스를 가리켰다.

그러나 지우와 앨리스는 되려 딘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하긴, 원래 어른들은 우리 같은 애들을 귀찮게 여기는 법이지.”

“무책임해.”

특히 앨리스의 마지막 한마디에 치명상을 입은 딘이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너희들, 진짜!”

“아~ 그렇단 말이지? 내가 귀찮았구나?”

“끄응…….”

하긴 딘 입장에서야 할 말이 없었다.

깡통 로봇과 메타휴먼, 쇳덩이들로 가득한 포트리스보다 또래 친구가 있는 연합 쪽이 라비에게 더 낫다고 여겼을 뿐이다.

같은 인간들 무리에 있는 편이 아무래도 라비에게는 좋을 거라 여겼다.

오로지 라비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도 어떻게 전쟁 직전에 그렇게 얠 두고 갈 수 있지?”

설마 그 직후에 연합이 괴멸되어 버릴 줄이야.

“자기는 전투에서 발을 뺐으면서 라비는 두고 가다니. 쯧쯔.”

지우가 밉살맞게 비아냥거리며 혀를 찼다.

그 와중에 앨리스 역시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망할 꼬맹이들.’

그러나 딘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라비를 달랬다.

“라비, 난 연합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어. 지켜보다가 상황이 위험해지면 널 데리러 가든지 할 생각이었다고.”

진심이었다.

연합의 괴멸 소식이 전해진 직후, 늘 포트리스 작업실에 처박혀 있던 장 영감은 딘을 죽여 버리겠다며 난동을 피웠다.

그러나 그 시점에 딘은 이미 포트리스를 비운 상태였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당장 라비를 찾기 위해 달려 나왔으니까.

라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를 사지에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다짜고짜 포트리스를 뛰쳐나왔다.

“어쨌든 내가 널 찾아냈잖아. 안 그래?”

딘이 리비를 찾아냈을 당시, 라비와 앨리스, 지우는 기름이 거의 다 떨어진 G7에 탄 채 황무지를 누비고 있었다.

폭격으로 주력군이 괴멸당한 뒤, 센트럴 지상군이 연합 본진까지 밀어닥치자 주차되어 있던 G7을 타고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지금 이렇게 사과도 하고 있고.”

“아저씨, 아저씨가 한 말들은 사과가 아니라 핑계라고 하는 거예요.”

지우가 다시금 찬물을 끼얹는 통에 딘은 그만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말았다.

당장에라도 지우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는 찰나.

“아저씨.”

라비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딘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리고는 라비를 바라보았다.

라비는 딘을 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운전대를 붙잡은 채 차창 밖 전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랑 약속해.”

지금까지와 달리 비꼬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약속?”

“다시는 날 버리지 않겠다고.”

“라비, 난 널 버린 게 아니라…….”

“날 멀리 떼어놓지 않겠다고.”

“…….”

라비는 연합에 남겨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극적으로 딘에게 구조되었다.

그러나 구조 뒤, 약 몇 주 동안 딘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런 라비가 G7을 끌고 포트리스 밖으로 나온 지금, 딘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노, 그리고 지금은… 절실함이었다.

“아저씨가 싫어하면 이제부터는 운전도 안 할 거야.”

“…….”

“떠들지도 않을 거고.”

라비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딘의 입안이 바짝 메말랐다.

라비는 강한 아이였다.

우는 모습을 본 적조차 없고, 처음 만났을 당시부터 검을 들고 설칠 정도로 겁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은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귀찮게 하지 않을게.”

“라비…….”

차라리 화를 냈으면.

“그러니까 날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 마.”

라비의 마지막 한마디에 딘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딘은 지금껏 라비가 자신으로 인해 전쟁터에 남겨졌기에 화가 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라비가 정말 상처받은 것은 딘이 자신을 남겨 두고 떠나 버렸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또래 친구 하나 없는 곳, 장 영감 외에 평범한 인간은 살지 않는 곳, 기계와 메타휴먼들이 숨어 사는 곳.

그런 장소보다야 당연히 친구들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 나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라비를 위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라비를 보며 ‘너를 위한 일이었다’는 말을 도무지 할 수 없었다.

그건 딘이 멋대로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라비는 아저씨를 계속 찾아다녔어요.”

앨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아저씨가 자신을 버렸을 리 없다고, 두고 갔을 리 없다면서 계속 찾아다녔어요.”

“버린 게 아니야.”

딘은 라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약속할게, 라비. 앞으로는 널 떠나지 않을게. 네 옆에 있을 거야. 계속.”

라비는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벌게진 눈으로 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의 뿌옇던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어…….”

뒤쪽에서 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라비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찰나,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가 딘의 신경을 건드렸다.

당장에라도 지우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다.

“저기… 사람들 같은데? 그것도 꽤… 많이.”

“뭐?”

딘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먼지가 가라앉은 차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조그맣게 보이는 형체들.

그건 틀림없이 바이크와 사람의 형상이었다.

수십 대의 바이크, 몽둥이나 쇠파이프 따위를 쥔 녀석들이 멀찌감치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명백하게 이쪽을 경계하고 있다.

딘은 가만히 자신의 손목에 찬 워치를 통해 좌표를 확인했다.

포트리스로부터 꽤 떨어진 장소.

라비와 화해할 생각으로 나왔건만, 너무 멀리 도달해 버린 것이다.

“하필 여기까지 와 버린 건가…….”

최근 근방에서 정찰 드론이 요새를 발견했다.

전투 전후로 갑작스럽게 텅 비어 버린 49구역 포인트와 사라진 사람들.

그들이 모여 있는 요새일 것이다.

“저 사람들은 49구역 원주민들이겠군.”

전쟁을 피해 모여든 그들은 센트럴 병력을 피해 거대한 요새를 만들었다.

아니, 요새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공호라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대륙 곳곳을 누비던 펑크 라이더들 역시 그런 방공호를 지키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들의 정체를 짐작한 딘이 천천히 차 문을 열었다.

“아저씨?”

“너희는 여기에 있어. 잠시 얘기 좀 나누고 올 테니까.”

곧이어 상대 쪽에서 대표처럼 보이는 세 사람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자, 잠깐만.”

지우가 더듬거리는 말로 딘의 팔을 붙잡았다.

“뭐야, 왜 그래?”

지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고, 앨리스 역시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둘의 시선은 차창 밖을 향하고 있다.

“저 사람들은…….”

“맙소사!”

“뭐야, 너희들? 아는 얼굴이야?”

딘이 의아해하며 묻자, 앨리스와 딘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라비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아저씨도 아는 얼굴 같은데.”

“뭐?”

딘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셋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과거, 포트리스에 찾아온 바로 그 얼굴들이었다.

카게구미의 당주이자 모든 마피아의 지도자 카츠미, 천중회의 리더였던 페이진, 그리고 레지스탕스 저격수 민호.

세 사람이 49구역 주민들을 대표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딘이 차에서 내리자 셋은 꽤 놀란 듯 보였다.

하지만 곧 표정을 굳힌 채 딘 앞에 멈춰 섰다.

“간만이야. 그렇지?”

“당신이었군.”

카츠미가 딘을 보고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딘을 바라보는 셋의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날 다시 만난 게 그리 반갑지는 않은 모양이네. 그렇지?”

당시 전장에 없던 셋이 이처럼 딘에게 적대감을 내보이는 것은 패잔병에게 전해 들은 정보 때문일 것이다.

연합 쪽 패잔병이 전투 직전의 회담을 두고 뭐라 말했을지는 굳이 직접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 전투 직전 연합을 버렸다지?”

“버렸다라…….”

과연 그것을 ‘버렸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애당초 딘이 그들을 버린 게 맞는 걸까?

아군인 메타휴먼들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한 이들은 다름 아닌 연합이었다.

그 와중에 연합은 뻔뻔하게 딘과 기계병단을 이용하려고까지 했다.

그래서 딘은 그들과의 동맹을 끝냈다.

비록 감정적인 결정이었지만,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다.

“그저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 두지.”

카츠미와 페이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당신의 결정 때문에 너무 많은 희생자가 생겼어. 알아?!”

“기계병단이 있었다면, 그날 포트리스를 지키고 있던 그 녀석들이 있었다면……!”

딘은 흥분한 둘을 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우리가 너흴 반드시 도왔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뭐?!”

그날, 딘은 두 가지 결정을 내렸고, 그건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주박이 되어 딘을 얽어매고 있었다.

하지만 라비를 두고 내린 결정과 달리, 다른 하나의 결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나도 내가 지켜야 할 녀석들이 있어. 연합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더군.”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자식이!”

페이진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권총을 뽑아 들자, 민호가 급히 팔을 붙잡았다.

“그만둬.”

“너도 들었잖아, 인마! 너희 대장도 그날 죽었다고. 이 새끼 때문에!”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침착한 말투였지만, 딘을 바라보는 민호의 눈동자에도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그 역시 참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딘에게도 분노할 권리가 있었다.

“너희는 연합에서 메타휴먼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알고 있나?”

“…….”

“기계병단은 필요하지만, 정작 그 기계병단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 안 그래? 그저 네 손에 쥐어진 권총 정도로 보고 있을 뿐이야. 쓰기 좋은 무기 말이야.”

민호, 카츠미, 페이진과 딘은 얼마간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철컥!

침묵을 깬 것은 뒤쪽 차에서 들려온 문소리였다.

“저, 저기…….”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나왔다.

“태일 아저씨는 어디에 있어요?”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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