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74화 (174/220)

174화 개는 주인을 물지 않는다 (1)

“하아… 하아…….”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켄이 숨을 헐떡이는 코르지를 부축하며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네… 쿨럭! 하아하아…….”

“젠장,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일어나요, 빨리!”

제니는 펄펄 뛰며 그런 켄과 코르지를 독촉했다.

“제니, 나이가 있으신 분이야. 지치시는 게 당연하잖아.”

“하이고, 성인군자 나셨네, 성인군자 나셨어!”

제니가 오만상을 쓰며 발을 굴렀다.

“켄, 네가 부축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나 알고 그렇게 챙기는 거야?”

“나원참…….”

그러나 켄은 열을 올리는 제니를 보며 혀를 찰 뿐이었다.

줄곧 몽롱한 표정으로 세이드의 말을 따르던 제니다.

그동안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표정 변화 역시 거의 없었다.

그랬던 제니가 180도 바뀌어 마구 떠들고 있다.

너무나 극단적인 변화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후우… 됐네, 이제. 어서 움직이지.”

가쁜 숨을 고르던 코르지가 몸을 일으키며 조용히 말했다.

“어르신, 이만하면 꽤 멀어졌으니,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습니다.”

“자네.”

코르지가 켄을 쏘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절한 건 고맙네만, 날 동정하지는 말게.”

“…….”

“난 자네보다 높은 곳에서, 자네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왔네. 아는가?”

“…죄송합니다.”

“염병한다, 진짜.”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제니가 짜증을 내며 코르지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봐요, 영감님. 왜 세이드 아저씨가 당신을 직접 없애고 싶어 했는지 알아?”

제니의 얼굴에는 그저 짜증 외에 분노도 함께 떠올라 있었다.

제로 구역에 숨어 평생 대륙을 통치해 온 사내, 코르지 브레드필드.

그는 보수당의 대표로, 집정부의 수장으로 센트럴에서 가장 강력한 사내로 군림해 왔다.

세계의 모든 죄악은 그가 설계해 놓은 제도 아래에서 벌어졌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개자식이기 때문이야.”

“이봐, 제니!”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켄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제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냥 당신이 개자식이라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려던 거라고!”

쿠구구구구… 쾅!!

제니가 말을 끝맺는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제로 구역의 상징물이, 연회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 하하하…….”

윽박지르는 제니를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코르지가 별안간 웃는다.

곧 그 웃음은 주변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높아졌다.

“아하하하하하!!”

“뭐야, 왜 웃는 거야?”

“어르신……!”

잠시 뒤, 웃음을 멈춘 코르지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래, 나쁘지 않군. 제일 나쁜 개자식이라… 나쁘지 않아.”

바로 그 순간.

“개자식이라는 말로는 부족하지, 사실.”

뒤쪽에서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장발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

코르지의 뒤편에 어느새 도착한 태일이 서 있었다.

파츠츠…….

태일의 뒤쪽으로는 연기와 함께 미세한 전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사했군.”

코르지는 태일을 보고도 담담했지만, 켄과 제니는 놀란 눈으로 태일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괜찮아?!”

“대장과 맞붙고도 멀쩡한 건가?”

태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괜찮지…….”

태일의 몸 전체는 그야말로 피투성이였다.

특히 오른 어깨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가운데 어설프게 대강 지혈이 되어 있었다.

“…않지.”

“뭐, 뭐야, 그 꼴은!”

제니는 깜짝 놀라 황급히 태일을 부축했다.

“설마 진 거야?”

“아니.”

태일은 대답과 달리 힘이 빠진 듯 잠시 제니에게 몸을 기댔다.

“…비겼어.”

“미련하긴! 대체 어떻게 이런 몸으로 싸운 거야?!”

태일의 몸뚱어리는 실타래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헝겊 인형과 다르지 않았다.

푸른 전류가 온몸을 메우고 있는 와중에 치료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아니, 그 전류가 없다면 태일은 생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제니는 자신이 태일의 복부에 찔러 넣은 검의 흔적을 발견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태일이 그런 제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잘 먹으면 금방 나아.”

“…내가 아직도 철없는 소매치기 꼬마로 보여?”

차라리 소매치기로 남았다면, 아니, 태일의 주머니를 노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 따위 겪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손으로 태일에게 검을 찔러 넣는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런 표정 짓지 마, 인마.”

제니는 결국 끅끅거리며 참아 오던 눈물을 한바탕 쏟아 냈다.

켄은 복잡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제니가 그처럼 눈물을 쏟아 내는 장면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코르지가 담담한 말투로 태일을 향해 물었다.

“아크는 만났나?”

“아니. 연회장에 온 건 놈이 아니었어.”

“아바타였군.”

“…그래.”

아크는 자신이 만든 제로 구역 최후의 자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감이군.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는데.”

“설사 그자가 직접 나타났어도 나 혼자서는 무리였을 거야.”

“…….”

코르지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도망쳐 나온 연회장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곳에서는 불길과 함께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코르지가 만들어 온 모든 것은 그처럼 모조리 불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훌쩍이던 제니가 눈물을 닦아 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아저씨는 분명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아저씨?”

“세이드 말이야, 등신아.”

별 이유 없이 욕을 얻어먹은 켄이 황당하다는 듯 제니를 바라보았다.

“상처받을 거 없어. 악의는 없으니까… 아마도.”

태일은 제니의 거친 말씨에 익숙한지 가볍게 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고는 제니 쪽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세이드 녀석,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자네가 머물렀던 저택으로 가도록 하지.”

“저택?”

제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일과 코르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태일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행선지가 정해졌다.

“잠깐.”

출발 직전, 제니가 손을 들어 올렸다.

“얘도 데려가?”

태일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채 우물거리는 켄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건 태일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래?”

“나는…….”

“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켄에게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이 없었다.

그저 세이드의 지시에 따라 군복을 입었으며, 그의 지시에 따라 테러와 감시 임무를 맡았다.

문득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의원의 얼굴이 떠오른다.

의사당에서 죽어 가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태일을 따라간다 해서 그런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피비린내를 풍기는 세이드의 곁에 더는 남고 싶지 않았다.

결국 켄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널 따라가지.”

* * *

“대장, 전원 집결했습니다.”

제로 구역 연회장의 붕괴 현장.

“대원들은?”

“제니와 켄, 두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나머지 대원들 가운데 사상자는 없습니다.”

“그래.”

“…지금이라도 추격할까요?”

코르지 브레드필드와 함께 사라진 두 명의 대원, 그리고 태일.

“아니. 그냥 내버려 둬.”

고개를 내저으며 짧게 대답했다.

어차피 코르지를 잡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예전 세계에서와 달리 지금의 코르지는 힘을 모조리 잃어버린 빈껍데기일 뿐이다.

지금 해야 할 일.

“지금은 일단… 전부 태워 버려. 정원도, 수풀도 닥치는 대로 태워 버려.”

그것은 제로 구역의 확실한 파괴였다.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대원이 곧장 명령을 전하러 갔다.

“하아…….”

왼뺨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무너진 잔해를 바라보았다.

의회를 무너뜨린 데 이어 제로 구역 한가운데에 들어와 심장을 부수었다.

대륙을 좌지우지하던 의원들과 집정부 대신들까지 모조리 해치웠다.

운 좋게 연회에 나오지 않아 목숨을 건진 이들 역시 지금부터 하나하나 사냥해 목숨을 거둘 것이다.

제로 구역은 완전히 불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결국 세이드는 고작 몇 개월 만에 원하던 모든 것을 해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넌 그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태일의 그 한마디 때문일까.

휘둘릴 필요 없는 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모든 일이 너무나 쉽게 풀리는 것을 보며 세이드는 내심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군, 세이드.”

웬 사내가 느긋하게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멋들어진 연미복에 잘 손질된 머리.

언뜻 보면 평범한 바람둥이 청년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원들에게 군인 신분을 부여하고, 제로 구역 진입을 가능하도록 손을 쓴 자가 바로 눈앞의 청년, 유키였다.

센트럴의 의원이되, 센트럴 의사당을 부순 날 혁명에 합류한 인물.

제로 구역의 주민이되, 제로 구역의 파괴를 직접 도운 인물.

“아직 여기에 있었나?”

“뭐야, 그 반응은? 내 도움으로 이런 업적을 세웠으면 좀 친절해도 괜찮잖아?”

매사 장난스럽고 가볍다.

“그 꼴로 어슬렁거리고 다니면 실수로 죽여 버릴지도 모르지.”

“어우, 살벌하네.”

세이드는 그런 유키를 좋아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지?”

“아크가 말을 좀 전해 달라고 해서 말이야.”

거슬린다.

“…난 놈의 부하가 아니야.”

“아아, 누가 뭐라고 했어? 동등한 협력 관계라면서? 알지, 알아.”

히죽거리는 놈의 목을 당장에라도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유키가 별안간 웃음을 멈추었다.

“신태일.”

“…….”

“그자를 잡았나?”

“무슨 상관이지?”

“설마 놓쳤나? 오늘 분명 그자가 나타날 거라고 미리 얘기까지 해 줬을 텐데.”

더는 참지 못하고 바리사다를 꺼내 유키의 목을 겨누었다.

“워워, 흥분을 가라앉혀.”

그 순간, 유키의 주변에서 음험한 기운들이 피어올랐다.

“네 보디가드들이 과연 날 이길 수 있을까?”

“잠깐, 오해하지 말라고. 난 당신이랑 싸울 생각이 조금도 없어. 그저 상황을 공유할 뿐이라고. ‘동등한 협력자’로서 말이야.”

유키의 목을 이대로 베어 버린다면 지금껏 받은 정보와 신분, 장비와 자금을 모두 잃게 된다.

단독으로 작은 구역 하나 어쩌지 못하는 레지스탕스 수준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유키의 목을 베어야만 입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고민하던 세이드는 천천히 바리사다를 거두었다.

“…놈은 내가 직접 잡는다.”

“그래그래, 나도 세이드 당신이라면 믿음직하지.”

유키가 다시금 헤실거리며 세이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제로 구역을 잘 한번 털어 봐. 배부른 돼지들이 온갖 보물들을 긁어모았을 거야.”

“우린 도적 떼가 아니야.”

“누가 뭐라고 했나?”

유키가 고개를 세이드의 귀 가까이 들이밀었다.

“돈, 필요하잖아? 네 조직을 유지하려면, 그리고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말이야.”

“…….”

세이드는 당장에라도 날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되뇌었다.

‘그저 잠시 미룰 뿐이야.’

결국 유키도, 아크도 전부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의사당을 부수고, 제로 구역을 잿더미로 만든다 해도 두 사람을 살려 둔다면 불완전한 결말일 뿐이다.

“아, 그리고 코르지 영감이 숨겨 두고 있던 저택들을 몇 개 찾았어. 온갖 명의로 제 배를 불려 왔더라고.”

“그걸 내게 알려 주는 이유가 뭐지?”

“아아, 몰랐구나? 코르지, 그 영감탱이가 신태일을 빼돌렸어.”

“뭐?!”

“아마 내가 찾은 저택 중 어딘가로 숨어들겠지.”

“…….”

“주소들은 보내 주지. 이번에는 깔끔히 처리해 줬으면 좋겠어. 반드시 말이야.”

유키의 말을 들은 세이드는 말없이 돌아서서 불길이 이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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