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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73화 (173/220)

173화 운명 (4)

“제정신이 아니군요, 당신.”

코르지의 지시로 태일의 치료를 책임진 의사는 저택을 나서려는 태일을 말렸다.

“당신이 살아 있는 건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머리 부분은 무사했지만, 그 아래쪽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의 뼈가 부러졌으며, 부서진 뼛조각들이 살과 내장기관 곳곳을 파고들었다.

근육들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핏줄은 전부 터져 손쓸 도리조차 없었다.

처음 저택에 태일이 실려 왔을 당시, 의사는 그런 태일의 치료를 포기했다.

그러나 태일의 몸에서 흘러나온 푸른 전류가 부서진 뼈들을, 찢어진 근육들을 억지로 붙잡았다.

출혈을 막아 냈고, 피의 흐름을 도왔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삶의 의지를 불살랐다.

그렇기에 의사 역시 태일의 치료를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의식을 회복한 태일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가까스로 이어 붙인 몸뚱어리로 다시금 싸우겠다고 했다.

코트로 몸을 감춘 채 그렇게 다시 나가겠다고 했다.

“…도망치십시오.”

코르지의 지시로 시작한 치료이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 이상 코르지의 지시가 우선할 수 없었다.

“대표님이 뭐라고 지시하셨든 상관없어요. 도망치십시오. 그저… 숨어 살란 말입니다.”

그러나 태일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가야 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거든.”

의사는 그런 태일의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 이제 어쩐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프다.

세이드의 발길에 차이는 순간, 몸 전체에 전달된 충격.

지금 태일의 몸은 고작 그 정도의 충격조차 부담이 될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고집을 부리며 저택을 나오긴 했지만, 애당초 세이드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평소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력에 팔다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

이미 정신력으로 어찌해 볼 만한 수준조차 아니었다.

째깍째깍.

품속에서 회중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시간을 좀 더 끌어야 하는데…….’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와 봐, 세이드. 아직 멀었으니까.”

짐짓 녀석을 도발한다.

자신의 몸 상태를 눈치챈 녀석의 눈에 잠시 당혹감이 스쳤지만, 세이드는 그런 사정을 봐줄 정도로 유약한 사내가 아니었다.

“아예 이 자리에서 내 손으로 널 묻어 주지. 지독한 악연, 여기서 끝내자.”

태일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세이드를 보며 오른팔에 전기를 휘감았다.

‘승부!’

부디 통하기를 바라며.

파츠츠츠츠츠츠츠!!

수천수만 갈래의 전류가 오른팔로 몰려든다.

세이드의 오른팔에서도 검은 안개가 피어났고, 그와 함께 주변의 공간이 휘어졌다.

세이드는 결코 정면 승부를 피하는 녀석이 아니었고.

“죽어!!”

태일은 그런 세이드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세이드를 보고 씩 웃어 보인 뒤, 곧장 좌측 끝의 기둥을 향해 내달린다.

“무슨 짓을?!”

파칫!

남겨 둔 양발 끝의 엔진이 발동되며, 짧은 순간 터무니없는 수준의 추진력이 붙었다.

그 속셈을 눈치챈 세이드가 황급히 방향을 바꿔 태일을 쫓으려 했다.

하지만 묵직하게 형성된 그의 힘은 도리어 강력한 인력으로 움직임을 방해했다.

이 와중에 무리하게 움직인다면, 그의 팔은, 나아가 그의 몸은 스스로 만든 어둠에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본능적으로 태일의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막아, 저놈을 막아!!”

세이드는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질러 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대원들이 제각기 무기를 꺼내 들고 황급히 태일을 겨누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오빠!”

그 목소리에 놀란 건 태일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이드 역시 뭔가에 홀린 얼굴로 멍하니 제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니가 다른 대원들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제니, 너……!”

“뭐 하는 거야?!”

대원들이 당황한 사이, 제니가 태일 쪽을 바라보았다.

“빨리!!”

어느새 기둥 앞에 도달한 태일은 위태롭게 버티고 선 기둥을 그대로 오른팔로 가격했다.

쿠구구구구… 쾅!!

태일의 주먹이 닿은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수십 갈래의 선이 그어진다.

그 선이 기둥 전체로 뻗어 나가고…….

세이드가 광기 어린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 댔다.

“신태일, 너!!!”

마침내 기둥 전체가 부서져 내린다.

그와 함께 사방에서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쾅! 콰쾅!!

태일이 건물 주변에 미리 만들어 둔 리펄서볼이 연쇄적으로 폭파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태일은 그 폭파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까지 시간을 재고 있었다.

제로 구역의 영광을 상징하던 거대 건축물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신태일, 너 이 자식!! 거기 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세이드는 자신의 오른팔에 만들어 둔 검은 구체를 스스로 부수었다.

그러고는 기어코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듯 곧장 태일을 향해 달려왔다.

깨어진 검은 구체의 파편들이 닥치는 대로 공간을 왜곡시켰고, 뒤바뀐 중력 속에서 사방으로 돌 파편이 튕겨 날아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세이드와 태일의 사이로 위쪽 난간이 떨어져 내리며 돌무더기가 시야를 가려 버렸다.

가까스로 시간을 번 태일은 곧장 몸을 날려 코르지 쪽으로 달려갔다.

“자네……!”

“얘기는 나중에.”

코르지를 붙잡아 일으키자, 정신을 차린 대원들 중 하나가 태일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멈춰!”

퍽!

제니의 매서운 발길질이 낭심에 꽂히자, 태일을 노리던 대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너…….”

“오빠, 아직 무사해?”

“아직 그 버릇 못 고쳤구나.”

고통스러운 얼굴로 쓰러지는 대원이 문득 안쓰럽게 느껴지는 찰나.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야? 빨리…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 거 아냐!”

바로 그 순간, 뒤쪽에서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세이드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신태일!!”

무너지는 파편 속에서 혼란에 빠진 대원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제니, 코르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뭐?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빨리!”

“…알았어.”

태일의 지시를 들은 제니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바로 그때, 태일의 눈에 머뭇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군복 차림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혁명군 대원이자 태일의 부하였던 소년, 켄.

그가 복잡한 얼굴로 코르지와 제니, 그리고 태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켄!”

“…당신, 날 알아?”

“가서 제니를 도와줘!”

“내가 왜 당신의 지시를…….”

“지시가 아니라 부탁이야, 켄!”

부드럽고 선한 성품의 켄은 사실 혁명군과 그리 어울리는 소년은 아니었다.

세연이 만든 묘목에 남몰래 물을 주며 살아남길 기도하던 소년.

“가서 코르지와 제니를 구해 줘. 둘을… 살려야 해!”

켄은 태일의 말에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제니를 뒤따랐다.

그렇게 켄의 모습을 확인한 찰나.

“여유만만하시군.”

악귀와 같은 얼굴을 한 세이드가 태일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대원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뭐 하는 거야, 이 등신들아!! 가서 코르지, 그 늙은이랑 배신자들을 잡아! 보는 즉시 죽여 버려!”

“제니도 말이냐?”

“내가 아는 제니는… 그날 죽었어!! 지금 밖으로 나간 그년은 제니가 아니야!”

“너, 갈 때까지 갔구나.”

“닥쳐!”

파츠츠츠츠츠…….

다시금 사방에 전류의 필드를 펼친다.

어설프게 펼친 처음과는 달리 세이드와 그의 부하들을 온전히 가두기 위한 공간이었다.

“하! 네가 지금 이 모두를 붙잡아 둔 상태로 나와 싸우겠다고?”

“필요하다면.”

태일은 가만히 한 손에 남은 전류를 끌어모았다.

번개로 빚어낸 성창 ‘아스트라페’.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이 다시금 태일의 손에 쥐어졌다.

앞서와 같은 눈속임이나 블러핑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세이드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제정신이 아니군.”

쾅!! 쾅!

그사이,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커다란 돌무더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전류로 만든 새장마저 뚫고 쏟아지는 돌무더기 속에서 대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채 허둥대고 있다.

“그때와는 달라. 내 필드 안에서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

싸움의 결착.

의사당이 무너지던 순간과 같은 환경이었지만, 조건은 달랐다.

당시 태일은 인질로 잡은 사람들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일이 세이드의 부하 대원들을 인질 삼고 있었다.

그러나 세이드는 태일과 달랐다.

지켜야 할 이들을 핑계로 눈앞의 싸움을 망설이지 않는다.

‘단번에 결착을 낸다.’

세이드는 마음을 굳힌 뒤, 바리사다를 꺼내 들었다.

검신 전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우우우우우웅…….

태일이 만든 필드에 겹쳐져 세이드가 형성한 중력장이 만들어진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

모든 것을 깔아뭉갤 듯 짓눌리는 압력.

그 와중에 세이드, 단 한 사람만큼은 움직임이 깃털만큼 가벼워진다.

“딘에게 그 검을 만들도록 한 건 최악의 실수였어.”

태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더럽게 치사하게 구네. 고작 검 하나 갖고 말이야.”

“너에게 어울리는 무기가 아니야.”

“어디, 직접 확인해 봐. 정말 내게 어울리지 않는지 말이야.”

잡담은 거기까지였다.

둘은 곧장 서로를 향해 내달렸다.

바리사다와 아스트라페가 공중에서 어지럽게 부딪친다.

단지 무기만의 충돌이 아니었다.

발밑에서는 두 개의 진형이 서로의 범위와 영역을 두고 어지럽게 맞물렸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삼키려는 듯 첨예하게 맞붙는다.

그 충돌의 한가운데에서 대원들은 누구 하나 제대로 눈을 뜰 수 없고, 싸움의 향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퍽!

태일의 왼쪽 옆구리가, 세이드의 오른 어깨가.

피핏!

태일의 오른 허벅지가, 세이드의 왼쪽 뺨이.

팟!

태일의 왼쪽 가슴팍이, 세이드의 오른 무릎이 차례로 터져 나간다.

무아지경 속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린 공격이 계속되었다.

태일이 입은 부상이 더 심했고, 심지어 태일이 밀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분명 세이드는 태일을 압도하지 못했다.

아스트라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빛이 줄지 않았고, 세이드의 목숨을 끊을 단 한 번의 기회를 집요하게 노렸다.

‘즐겁다.’

너무나도 즐거워서 이 전투가 그저 계속되기만을 바란다.

무아지경 속에서 세이드는 오래간만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희열 때문에 태일의 숨통을 선뜻 끊지 못하는 걸까?

아니. 세이드 역시 태일을 봐주며 승부하고 있는 게 아니다.

도리어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태일의 목숨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기에 이 전투에 미칠 듯한 희열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와 대등하게 싸운다는 즐거움으로.

콰콰쾅!!

마침내 더는 버티지 못한 건축물이 급기야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스트라페와 바리사다가 수백 번째 교차하던 바로 그때, 거대한 기둥이 세이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회!’

바리사다는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태일의 심장을 노렸다.

그러나 아스트라페는 찰나의 순간 방향을 틀었다.

쿵!

잘린 기둥 파편이 나뒹군다.

“쿨럭!”

무아지경의 끝.

승부의 끝.

플루톤은 태일의 오른 어깻죽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기둥을 자르는 데 그친 아스트라페는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대체…….”

“…….”

“대체 넌 뭐냐, 어?”

그 대단한 성창으로 마지막 순간 한다는 짓이 고작 세이드 자신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저 플루톤을 피하기만 해도 되었다.

아스트라페를 거두기만 했어도… 떨어져 내린 기둥은 세이드의 몸을 부수었을 것이다.

세이드는 순간적으로 태일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았다.

그러나 태일은 기어코 세이드를 구했고, 동시에 자신 또한 죽지 않았다.

몇 번을, 몇 번이나 더.

“날 비참하게 만들 셈이냐? 얼마나 더… 얼마나 더!”

“어이, 세이드.”

쿠쿠쿵!!

“못다 한 승부는 나중에… 마무리하자.”

태일은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이 쳐 놓은 필드를 거두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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