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운명 (3)
“인조인간…이라.”
세이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플루톤을 거두고는 살짝 허리를 굽혀 코르지와 눈을 맞춘다.
“이봐, 늙은이. 날더러 인조인간이라고 했나?”
감정도, 자아도 없이 그저 필요에 따라 이용당할 뿐인 존재.
아마 코르지가 말하는 ‘인조인간’이란 그런 거겠지.
“그건 괜찮겠군. 그래, 인조인간인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 무슨……!”
코르지가 떨리는 눈동자로 세이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세이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진심이야.”
만약 인조인간에 불과하다면…….
성직자였던 아버지와 의사였던 어머니,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던 여동생까지…….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하지만 잊지 못한다.
센트럴은 아버지를 고문했고, 거리 한복판에서 목을 잘랐다.
단지 신을 믿었다는 이유였다.
어머니는 레지스탕스의 공범으로 몰려 살해당했다.
고문으로 반병신이 된 레지스탕스를 치료했다는 이유였다.
여동생은 센트럴 LAPD들에게 노리개 취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을 맸다.
아직 어린 동생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었다.
그 모든 죽음을, 그 억울함을 똑똑히 기억한다.
죽기 직전 가족들이 모습을, 그들이 흘린 피를 단 한순간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신이 어떻게 ‘인조인간’일 수 있을까.
아니, 차라리…….
“차라리 내가 인조인간이었으면 좋겠어.”
세이드는 그 한마디와 함께 자신의 눈에 끼운 특수렌즈를 빼 들었다.
핏빛의 붉은 눈동자가 선연히 빛나는 가운데.
코르지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사실 본인이 누구이든, 본인을 뭐라 부르든 상관없었다.
“센트럴의 모든 걸 남김없이 없애 줄게.”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바리사다를 들어 올린다.
검끝이 일그러지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곧 모두가 널 따라갈 거야.”
센트럴의 집정부를 이끌던, 의회의 수장이던 코르지 브레드필드.
그의 눈가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 안심하고… 죽어.”
그렇게 코르지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파칫.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한 줄기의 푸른 전류가 선명하게 빛났다.
일그러진 공간 전체에 푸른 전류가 감돌고, 그렇게 번져 나간 전류가 세이드의 팔에 닿았다.
그 모습을 본 켄이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장!”
“가까이 오지 마!”
황급히 바리사다를 거두며 뒤로 물러선다.
입술을 깨문 채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힘을 사용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그쯤 해 둬, 세이드.”
중저음의 목소리.
긴 코트를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늦었군.”
신태일.
그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들 움직이지 마.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니까.”
켄을 비롯한 대원들 모두가 경계하며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설마 살아남을 줄은 몰랐는데…….”
세이드가 슬쩍 눈을 돌려 제니를 바라보았다.
태일이 멀쩡히 걸어 들어오자 꽤 놀란 기색이었다.
적어도 제니가 일부러 살려 둔 건 아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태일을 바라보았다.
“…하긴 네가 그렇게 쉽게 죽을 녀석은 아니지.”
한편, 태일의 시선은 연회장 내부를 향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던 현장.
여전히 흥건한 피가 채 마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태일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세이드, 넌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몰라.”
“보다시피 센트럴을 철저히 박살 내는 중이잖아. 안 그래?”
태일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다가오는 세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센트럴의 개가 되었으니, 이제 날 붙잡기라도 할 건가?”
“넌 그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진지한 태일의 말에 세이드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 하하하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태일은 저 혼자 모든 것을 아는 듯 말했다.
혁명군을 이끌던 당시에도,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네가 의회를 파괴하고 제로 구역에 들어오도록 도운 자. 그는 그저 널 이용하는 거다. 넌 놈들의 암살자로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너 역시 마찬가지였지.”
“…뭐?”
“너도 나와 대원들을 잘 드는 칼로 써먹었잖아. 안 그래?”
“…….”
“난 가장 위험한 전장에서 센트럴을 박살 내겠다는 일념으로 싸웠어. 그 와중에 너는 우리가 얻어낸 전리품을 온 대륙민에게 나눠 주겠다는 헛소리나 지껄였지.”
“세이드…….”
“오해하지 마. 지금 와서 네가 우릴 이용했다고 비난하는 건 아니니까. 사실 당연한 거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이용하는 거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말을 끝으로 세이드는 그대로 태일을 향해 내달렸다.
태일 역시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세이드를 노려보았다.
둥! 둥! 둥!
세이드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고요한 수면 위로 파문이 일 듯 공간이 휘어진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은 조금의 손상 없이 그대로 일그러져 소용돌이 문양을 그렸다.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 인력.
힘의 흐름이 일그러진 공간 속 세이드의 움직임은 마치 순간 이동처럼 보였다.
세이드의 검, 바리사다가 단번에 태일의 코앞까지 닿는다.
그러나 태일은 그 순간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츠츠츠츠!
푸른빛을 내는 전류의 실타래가 사방을 메웠다.
“이 자식!”
수백, 수천 개에 이르는 전류의 실들이 세이드의 팔과 다리, 목, 가슴, 허리를 친친 감쌌다.
“멍청하긴!”
광범위하게 펼쳐진 필드는 그만큼 엄청난 소울을 소모한다.
과거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한 태일의 힘으로는 오래 유지할 수 없기에 무리수일 뿐이었다.
세이드가 횡으로 손을 뻗자, 그 손끝으로 검은 구체가 형성되었다.
블랙아웃.
파츠츠!!
세이드의 몸을 붙들어 매고 있던 푸른 전류들은 검은 구체를 향해 빨려 들어가듯 흡수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태일이 곧장 세이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쾅!
그러나 그렇게 날아든 주먹은 너무나 간단하게 세이드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뭐야? 급했나?”
태일의 주먹을 붙든 세이드는 곧장 몸을 돌려 왼발로 태일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퍽!!
“큭!!”
저만치 튕겨 날아가는 도중, 태일이 연속으로 손가락을 튕긴다.
핑거 라이트닝, 태일의 몸에서 수십 발의 푸른빛 화살이 날아들었다.
“어딜!”
세이드의 한쪽 손에서 펼쳐진 검은 장막이 사방을 잠식했고, 화살들은 장막을 뚫지 못한 채 그대로 빛을 잃고 사라져 갔다.
“실망이야, 대장. 고작 이 정도라고?”
세이드는 이쪽 세계로 넘어와 새로운 몸과 소울을 얻었고, 무제한에 가까운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랬기에 의사당에서 너무나도 쉽게 태일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 상대하는 태일은 이상했다.
태일이 펼친 필드는 불완전했고, 주먹은 맥빠졌으며, 기껏 쏘아 낸 화살들 또한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약하다.
너무나도 약해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다 이렇게 한심해진 거지?”
“하아… 하아…….”
저만치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던 태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태일의 코트 안쪽에서 푸르게 빛나는 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그 꼴은……?!”
제인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은 뒤, 무너진 의사당 건물 속에서 뼈가 부러지고, 살이 으깨졌을 것이다.
팔과 다리, 어깨, 허리 모두 멀쩡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태일은 실제로 그날, 모든 신체 기능을 상실했다.
“쿨럭!”
태일이 비치적거리며 일어나 세이드를 노려보았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난 아직… 더 싸울 수 있는데.”
태일의 몸 위에 걸쳐져 있던 코트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그러자 온몸을 촘촘히 감싸고 있는 전류의 실타래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푸른 전류는 태일의 근육과 뼈, 그리고 내장기관들을 촘촘히 메우고 있었다.
당장 무너져 내려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몸뚱어리.
태일의 몸은 오로지 그의 능력 덕분에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을 가까스로 이어 붙여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 꼴로 나를 막겠다고 여기에 온 거냐?”
태일이 주먹으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웃어보였다.
“다시 와 봐, 세이드. 아직 멀었으니까.”
켄은 입술을 깨문 채 둘의 전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능력자의 전투는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아니, 그 움직임조차 눈으로 잡아낼 수 없었다.
켄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 모두 넋을 잃은 채 둘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켄의 시선이 제니에게 닿았다.
제니는 어째서인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봐, 제니. 괜찮아?”
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니에게 다가갔다.
세이드가 질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대장이 질 리 없으니까.”
그러나 제니는 켄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 아아…….”
* * *
처음 캡슐에서 깨어난 직후,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그저 한 가지, ‘센트럴’이라는 이름에 대한 감정만은 선명했다.
센트럴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그 이름에 공포와 슬픔, 괴로움과 증오를 느꼈다.
그리고 세이드는 그런 제니에게 센트럴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센트럴은 가족과 친구를 모두 앗아 간 존재야.”
더불어 제니의 운명을 일깨워 주었다.
“센트럴을 무너뜨리는 것만이 혁명군인 대원들의 운명이다. 똑똑히 기억해 둬.”
세이드의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세이드의 말에는 어째서인지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세이드와 대원들은 그로부터 수개월 동안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센트럴의 주요 요인들을 암살했다.
때로는 나이 든 정치가일 때도 있고, 아직 젊은 군인일 때도 있었다.
그저 센트럴을 무너뜨리기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에 기계적으로 지시를 따랐다.
캡슐에서 깨어난 대원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다.
기억은 없지만, 전투와 살인에 최적화된 육체.
그런 대원들에게 실패란 없었다.
그러나 체격이 작고 체력이 약한 제니는 대원들에 비해 뒤처지기 일쑤였다.
두려웠다.
뒤쳐질까 봐, 버려질까 봐.
하지만 세이드는 그런 제니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대신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키도록 했다.
“나한테서 멀어지지 마라.”
늘 무뚝뚝하지만 믿고 싶은 사내.
세이드는 그런 남자였다.
* * *
평소처럼 임무를 마치고 세이드와 함께 거리를 누비던 어느 날.
“어딜.”
“우앗!”
건방지게도 제니의 단검을 훔치려던 소매치기를 붙잡았다.
“뭐, 뭐야! 이거 놔! 그쪽이 먼저 와서 부딪쳤잖아!”
왜일까?
왜 소매치기의 수법과 그 뻔뻔함이 이렇게나 익숙할까?
그리고 그 순간, 흐릿하게 어떤 기억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서투른 소매치기범일 뿐이야.”
소매치기범을 비호하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가진 사내의 이름, 태일.
“배신자야. 우리 혁명군을 배신하고 센트럴에 붙은 놈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곧장 대답해 주었다.
“그놈 때문에 우리는 모든 걸 잃었어.”
세이드의 목소리에서는 어째서인지 분노보다 슬픔이 느껴졌다.
그날, 제니는 그 배신자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없애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제니는 세이드와의 약속을 지켰다.
의사당에서 기어코 그의 몸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의심 따위 없었다.
세이드를 슬프게 만든 배신자.
센트럴에 붙은 배신자.
그를 죽이는 게 틀릴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정작 태일을 찌른 순간, 그는 너무나도 슬픈 눈으로 제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제니는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이, 이거 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이… 이… 변태 새끼가!!”
어떤 꿈에서 제니는 어설픈 소매치기였다.
“아저씨, 아저씨는 그렇게 매번 깨지면서도 왜 자꾸 태일 오빠한테 싸움을 걸어?”
“태일 오빠, 저 말이 벌써 몇 번째더라? 내가 스무 번까지는 세다가 포기했는데!”
“원래 잘생기면 오빠야.”
또 어떤 꿈에서 제니는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놀리고 있었다.
“부탁이야, 오빠. 제발 그만둬. 열쇠 따위 넘겨 버리고 떠나.”
“세연 언니가 설득했어도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까?”
그리고 어떤 꿈에서 제니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설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푸른 전류에 온몸을 휘감은 태일을 바라본다.
“다시 와 봐, 세이드. 아직 멀었으니까.”
모든 기억이 떠올랐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제야 알았다.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도 이제야 알았다.
“오빠……!”
그래, 잘생기면 오빠라고,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