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격동하는 대륙 (6)
정찰 드론의 정보에 따르면, 첫 전투 이후 연합 측 세력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단 일주일 사이에 3분의 1가량이 진영을 이탈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솔직히 워낙 믿기지 않아서 곳곳을 정찰했지.”
닐스는 연합 측의 이상 징후를 눈치챈 뒤, 수십 대의 드론을 띄워 근방 수십 킬로미터를 수색했다. 매복이나 우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였지만, 그런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대규모 탈영이라니. 이거야말로 신이 나를 돕는 게 아닌가 말이야!”
닐스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백련의 등을 두들겼다.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등짝을 후려치자 백련은 갑작스런 통증으로 인해 숨을 들이켰지만, 애써 웃으며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 와중에 아크에게 들은 설명을 그대로 읊는다.
“메타휴먼과 인간은 결코 함께 싸울 수 없으니까요. 가만두면 메타휴먼 놈들이 반드시 갈라설 거라 생각했죠.”
“후후, 좋소. 아주 좋아.”
닐스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백련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렸다.
“그럼 선생, 한번 말해 보시오. 지금이 공격하기에 적기요?”
백련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빌어먹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닐스는 백련을 신묘한 책사라 여기는 모양이었지만, 정작 백련의 입에서 나온 작전은 모두 아크의 것이었다.
애당초 49구역에서 신도들을 이끌고 다니며 용병 겸 교주로 살아온 백련이 전략 따위 알 리 없지 않은가.
아크는 첫 전투에서 일부러라도 패해야 한다며 일러주었지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까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결국 괜히 말을 길게 늘어놓아 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백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선생이 보기에도 그렇단 말이지? 좋아! 아주 좋아!”
만족스럽게 웃어 보인 닐스가 지휘봉을 치켜올리더니, 기관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얘들아, 다들 들었겠지?”
“예!”
도열해 있던 군인들이 한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한다.
“현 시간부로 동대륙 반란군 새끼들을 뿌리 뽑는다. 화력 아낄 거 없어. 전부 쏟아부어.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백련은 그 삼엄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닐스의 지시가 떨어지자 센트럴의 공중 전투순양함, 플루톤(Pluton)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날개를 펼쳤다.
* *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켄은 망연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와 폭발음이 들려온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지옥도, 그 자체였다.
“그 자식들, 별거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쌍권총으로 일곱 놈이나 잡았단 말입니다!”
의기양양하게 권총을 치켜올리던 배불뚝이는 몸의 절반이 불타 버린 채 쓰러져 있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쳐들어가죠! 아예 동대륙을 전부 우리 영역으로 만들어 버립시다!”
검을 뽑아 들고 호기 부리던 애꾸눈은 나머지 한쪽 눈마저 멀어 버린 가운데 숨이 끊어졌다.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어제 몰래 숨겨 온 술을 건네주던 딸기코도, 조금 전까지 소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묘기를 부리던 꽁지머리도 처참한 몰골로 죽어 버렸다.
“아, 아아…….”
자켄은 시체가 가득한 전장 한가운데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눈앞 부하들의 죽음은 오롯이 자신의 탓이었다.
왜 몰랐을까.
첫 전투에서 싸운 오합지졸들은 센트럴의 전력이 아니었다.
왜 잊었을까.
며칠 전, 두 눈으로 협상장에서 전투순양함 플루톤을 보지 않았던가.
마피아에게는 그 괴물을 추락시킬 힘이 없다.
자욱한 모래 먼지 속에서 웬 사내가 자켄을 향해 달려왔다.
“뭐 하는 거야!!”
그는 무릎 꿇은 자켄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자켄!!”
힘없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본다.
흙먼지와 검댕을 뒤집어쓴 사내는 다름 아닌 강필이었다.
자켄은 그런 강필을 보고는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부하들이, 아이들이…….”
‘모두가 내 탓이다. 지키지 못했다. 어리석은 나 때문이다.’
그 모든 말들이 입을 맴돈다.
“정신 차려!!”
감정 표현이 거의 없던 강필이 충혈된 눈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포격이 멈췄어. 지금, 지금 당장 후퇴해야 한단 말이야!”
“나, 나는…….”
“곧 놈들의 지상군이 섬멸전을 전개할 거야. 놈들에게 포위되기 전에 빠르게 여길 벗어나야 해!”
“…….”
“당신의 부하들이 아직 살아 있어. 아직 살릴 수 있는 놈들이 많단 말이야!!”
강필의 말에 자켄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굴에 끔찍한 화상을 입은 가운데 악착같이 몸을 일으키는 녀석, 다리 한쪽이 날아간 가운데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선 녀석,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녀석…….
그 모두가 오로지 자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리더는,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이는 당주에게 권한을 받은 자신이다.
“내가… 뒤를 막겠어.”
가만히 검을 고쳐 잡는다. 그러고는 뿌옇게 인 전방의 흙먼지를 바라본다.
이제 곧 적이 연기를 뚫고 생존자들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강필이 갑자기 그런 자켄의 팔을 붙잡더니 단호히 말했다.
“당신은 퇴로를 뚫어.”
자켄이 뭐라 대꾸하려는 순간, 강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탁!
강필이 숨기고 있던 수백 개의 쇠구슬이 사방의 연기 속으로 쏘아져 흩어졌다.
퍽! 퍼퍽!
“으아아악!!”
“어억!”
안개 속에서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접근해 오기 시작한 지상군 수십의 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강필이 자켄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교란과 방어에는 내가 더 적합해.”
“당신…….”
“돌격과 공격에는 당신이 더 적합하지.”
“…….”
“움직여. 당신 부하들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면.”
자켄은 단호한 얼굴의 강필을 바라보았다.
강필은 지금과 같은 결말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는 모두의 앞에서 센트럴의 힘은 생각보다 강함을 몇 번이나 역설했다.
메타휴먼을 잡아두기 위해, 그들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해 온 이 역시 강필이었다.
강필은 메타휴먼에게 테러를 저지른 마피아, 레지스탕스들을 붙잡아 처벌했으며, 메타휴먼을 멋대로 살해한 마피아 간부의 팔 한 짝을 날리기까지 했다.
그런 강필에게 자켄은 모진 말을 쏟아 냈다.
“아직도 당신이 잘나신 경찰인 줄 알아요? 내 부하들이 멋대로 날뛰면 한 줌도 안 되는 당신 부하들이 당신을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냐고요!”
결국 메타휴먼들은 전부 연합을 떠나 버렸다.
첫 전투에서 터무니없는 무력을 선보인 알렉세이 딘과 기계병단들 역시 전투에서 발을 빼 버렸다.
만약 메타휴먼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센트럴이 지금처럼 거칠 것 없이 전면 공격을 가해 오진 못했을 것이다.
“이 패배는… 나 때문이에요. 그러니 내가 남아야 해.”
“여전히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하는군.”
강필이 사나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자켄은 지금껏 본 적 없는 강필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책임을 지겠다고? 그래서 더 효율적인 전술도 무시하고 그냥 무책임하게 죽어 버리겠다고?”
“나는……!”
“건방 떨지 마! 당신 하나 죽는다고 이 사태가 해결될 거 같아?”
“…….”
“퇴로를 뚫지 못하면 전멸이야. 포위당하면 전부 개죽음이라고. 그러니 길을 뚫어. 당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란 말이야!”
강필의 다그침에 자켄은 잠시 망설이다가 등을 돌렸다.
“…죽지 말아요. 살아서 돌아오란 말이야.”
“당연하지.”
자켄은 강필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주변에서 모여드는 생존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전원 후퇴! 내가 선두에서 길을 뚫는다! 다들 뒤처지지 마라! 부상자들이 있으면 등에 업고, 들쳐 메고 따라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마피아, 레지스탕스, LAPD 생존자들은 제각기 무기를 고쳐 들고는 마지막 힘을 짜내 호응했다.
“살자! 살아남자!”
“좀만 힘내, 살 수 있어!”
“부상자들 부축해!”
자켄은 가만히 품에서 여우 가면을 꺼내 썼다.
50구역 최강의 검수로서 한때는 검귀라 불리던 그녀다. 처음에는 얼굴에 피가 튀는 게 싫어 가면을 썼고, 나중에는 피로 점철된 자신의 과거가 싫어 가면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최강의 검수였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금 가면을 썼다.
강필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강필은 잠시 동안 제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자켄을 바라보았다.
자켄의 명령에 호응한 생존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부상자들을 챙겨 그녀의 뒤를 쫓았다.
“잘만 하면서…….”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던 마피아들이 뒤섞여 서로를 부축하고 있다.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해 오랜 세월 싸워 온 마피아들이었다.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었다 해도 잡음이 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고, 언제든 내부 분열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켄은 하나된 마피아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조직 구성원 간 차별을 두지 않았고, 조직원들의 얼굴을 전부 기억해 챙기는 꼼꼼함까지 보였다.
자켄의 능력으로 인해 조직은 빠르게 정비되었고, 봉쇄로 인해 자금줄이 막힌 상황에서조차 배신이나 내부 갈등은 없었다.
강필 자신은 갖지 못한 능력이었다.
‘나도 참 한심하지…….’
LAPD 서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기존 근무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했으며, 모조리 적으로 돌려 고립을 자초했다.
그들의 불만은 결국 내부 반란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희생자 중에는 강필이 무능하고 부패했다 여긴, 요한 같은 경찰도 있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으나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LAPD를 망가뜨린 것이다.
연합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그런 강필의 실수는 계속되었다.
‘조금만 더 모두를 포용할 수 있었다면…….’
강필은 메타휴먼을 차별하고 살해한 이들을 마치 경찰처럼 단속했다.
명분은 연합의 통합을 위한 것이지만, 정작 강필의 행동은 더 큰 저항을 불렀고, 메타휴먼에 대한 적대감에 더욱 불을 붙였을 뿐이다.
“그동안 잘못 살았나 보군.”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의 기척을 감지하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 붉게 물든 쇠구슬들이 어지러이 사방을 날고 있지만, 상대 쪽 능력자도 나선 듯 빠른 속도로 쇠구슬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쇠구슬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 더는 적을 잡아 둘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자신의 마지막일 터였다.
그렇게 최후를 각오하며 쓴웃음을 짓는 순간, 낯익은 녀석들이 강필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아셨습니까?”
50구역에서부터 따라온 부하 경찰 셋이 강필의 옆에 나란히 섰다.
“솔직히 처음 부임해 왔을 때 왕재수이긴 했죠.”
“우릴 믿지도 못했고 말이야.”
“그래도 윗대가리들이 워낙 썩어 있던 건 사실이잖아.”
셋은 LAPD 반란 가운데에도 살아남아 이곳까지 강필을 따라왔다.
그리고 지금은 강필과 함께 이곳에 남았다.
“뭐 하냐, 니들?”
“서장님이 남으면 우리라고 별수 있습니까? 같이 남아야지.”
“꼴통들, 내가 분명 후퇴하는 부상자 호위를 맡겼을 텐데…….”
“지들끼리 잘하던데요, 뭐.”
“…….”
“장 팀장님이 꼭 서장님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장량, 그 녀석이 쓸데없는 말을…….”
강필은 결연하게 각오한 듯 총을 고쳐 잡는 부하들을 보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물었다.
“근데 너희 셋, 이름이 뭐냐?”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