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61화 (161/220)

161화 격동하는 대륙 (4)

“묻고 싶은 게 있다고? 나에게 말이니?”

메데이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프랑켄을 바라본다.

클라이드와 보니는 물론, 마을에서 의식을 끝마치고 모여들던 신도들까지도 프랑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경악과 당혹감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당장 보니는 입 모양으로 열심히 경고를 전하고 있다.

‘뭐 하는 거야, 멍청아! 조용히 있어, 조용히!’

그러나 프랑켄은 그런 보니의 경고를 무시한 채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네, 실은…….”

“그렇다면 예의를 먼저 갖춰야지.”

순간, 프랑켄에게 다시금 터무니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으윽……!”

프랑켄뿐만이 아니었다.

신도들 역시 저마다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린 채 벌벌 떨었다. 녹스와 클라이드는 그나마 흔들림 없이 서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

부복한 사제들 가운데 누구 하나 노여움을 풀어 달라거나 죄송하다느니 하는, 빤한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압도적인 공포 속에서 겁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바로 이런 공포야말로 메데이아가 수많은 종교를 아우르며 군림하는 방식일 것이다.

“자, 이제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예의를 갖춰 보렴.”

프랑켄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느껴지던 압박감이 다시금 몰려왔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달랐다. 지금은 곁에 보니가 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전 당신의 신도가 아닙니다.”

“그 말뜻은… 예의를 갖추고 싶지 않다는 거니?”

“당신과 정보를 교환하고 싶을 뿐입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는 친구를 뒀어, 보니.”

보니를 곁눈질한 메데이아가 코웃음을 치며 다시금 프랑켄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는 거구나? 맞니?”

“…….”

“대등하게 말이지.”

메데이아가 빙긋 웃으며 힘을 거두었다.

진땀을 흘리며 떨던 신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보니 역시 안도한 듯 보였고, 클라이드는 내심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메데이아는 전사를 아끼며 용기를 존중한다.

프랑켄은 본능적으로 그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좋아, 말해 보렴. 질문이 뭔지 들어 보자꾸나. 대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려면 너도 그만큼 가치 있는 정보를 줘야겠지.”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프랑켄은 숨을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얀 눈동자를 가진 노인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메데이아의 눈이 반짝거렸다.

“너, 그 노인네를 만났니?”

“…….”

“그래, 뭐, 좋아. 대답은 어렵지 않겠구나. 그럼 대답의 대가로 넌 내게 어떤 정보를 줄 거니? 딱히 네게 들어야 할 정보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49구역과 50구역의 메타휴먼들에 대한 정보입니다.”

메데이아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메타휴먼 따위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을까?”

보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따위’…….

그래, 이게 바로 메타휴먼에 대한 보통의 시선이다.

프랑켄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의연하게 말했다.

“센트럴이 당신의 적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정보일 겁니다.”

애당초 도박이었다.

태일조차 어쩌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사실 외에는 메데이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녀가 정말 센트럴을 적대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단지 정황과 짐작만으로 던진 패였다.

“보니, 정말 재미있는 친구를 뒀어. 기대 이상이구나.”

메데이아는 팔짱을 끼고는 검은 뱀들이 뒤엉킨 자리에 다시금 걸터앉았다.

“쟤가 원래 좀… 특이하긴 해요.”

보니는 짐짓 태연한 척 말했지만, 걱정 섞인 얼굴로 프랑켄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랑켄이 이렇게 무모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어지간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변한 이는 보니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켄 역시 여정을 거치면서 선택과 행동의 중요성을 배웠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선택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친구를 지킬 수 없다.

“저와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메데이아는 빙긋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마. 네가 만난 그 노인은 드림 코퍼레이션의 회장, ‘이고르’란다. 너희 메타휴먼들을 만든 당사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럴 리가……!”

프랑켄의 목소리에 엎드리고 있던 사제들의 몸이 일제히 움찔거렸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프랑켄을 숫제 미친놈 보듯 바라보고 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만, 그 정보가 확실한 겁니까?”

“후후… 건방지네.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니?”

메데이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짐짓 화가 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힘을 쓰지는 않았다.

“잠깐이지만 그 노인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메타휴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메타휴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센트럴의 의지라는 둥 운명이라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메타휴먼을 만든 당사자라면 더더욱 그런 말을 할 리 없지 않은가.

“그 노망 난 늙은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야 모르지. 하지만 얘야, 그 늙은이가 탈로스 가의 가주이자 자본가들의 지도자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단다.”

“죄송합니다. 감히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

“뭐, 좋아. 그럼 이번에는 네 정보라는 걸 한번 들어 볼까?”

“50구역 공장 지대의 메타휴먼들이 센트럴에 대한 저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메데이아의 눈이 가늘어진다.

“49구역 메타휴먼들 역시 마찬가지로 센트럴과…….”

“잠깐.”

메데이아가 프랑켄의 말을 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얘, 너 정글을 헤맨 지 얼마나 지났지? 보아하니 따로 기구를 이용한 거 같진 않은데.”

“대략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하, 나원참.”

메데이아가 코웃음을 치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미리 눈치챘어야 하는데. 내가 고작 이런 꼬마의 말장난에 놀아나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

“지난주에 50구역 떨거지들이 49구역 부랑자들과 손잡고 센트럴 측 지역군과 충돌했단다. 그 사실은 알고 있니?”

프랑켄은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정글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래. 그 전투에서 메타휴먼들은 꽤 중요한 역할을 했지. 네가 말한 바로 그들이겠구나. 이미 내게는 전혀 새로운 정보가 아니야.”

“전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그걸 왜 알려 줘야 하지? 네게 더는 거래할 게 없어 보이는데.”

“그건…….”

프랑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제가 그들을 조직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 * *

49구역 황량한 땅에는 9월까지도 지독한 무더위가 이어진다.

그나마 8월의 살인적인 더위에 비하면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견디기 힘든 수준의 더위였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49구역에서 주민들은 더위를 견디기 위해 나름의 방법들을 고안해 냈다.

젖은 천으로 머리를 감싸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팔 토시 등 나름의 용품들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런 물건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지.’

알렉세이 딘은 충전해 온 휴대용 냉방기를 얼굴에 쏘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 에너지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물건들이라면, 어설프게 만든 기계 따위보다 훨씬 유용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시계 따위 아주 있으나마나 한 물건보다는 그렇겠지.

“늦는군, 다들.”

의자에 앉은 딘이 젖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아마 시계들이 전부 망가진 모양이야. 그렇지?”

“…….”

도열해 선 경호원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약속 시간이 벌써 10분가량 지났건만, 50구역 측 대표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경호를 책임진 경호원들이 먼저 도착해 회의장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덥지 않아? 잘도 그렇게 껴입고 있네.”

딘을 따라온 라비 애슈턴이 혀를 차며 천막 안팎에 도열해 선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

타들어 갈 듯 무더운 날씨에 양복을 갖춰 입은 그들의 모습은 라비의 눈에 더없이 미련해 보였다.

그러나 경호원들은 나름의 규칙이 있는지 라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뻣뻣이 서 있었다.

라비는 경호원들에게 흥미가 사라졌는지 고개를 쭉 빼 들고 천막 문을 바라보았다.

“앨리스랑 지우는 아직인가?”

“라비, 가만히 있어.”

라비는 딘의 말을 무시한 채 아예 천막 문을 열어젖히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라비가 굳이 이곳까지 딘을 따라온 것은 어디까지나 두 또래 친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호기심이 가득한 50구역의 두 꼬맹이는 금세 라비와 어울렸다.

포트리스에 만들어 둔 개인 작업실이 아니었다면, 아마 라비는 두 꼬마를 따라갔을 것이다.

“아, 온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무리들을 확인한 라비가 반색하며 황급히 천막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하여튼…….”

라비를 말리려던 딘은 포기하고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지치지도 않는지 힘이 남아도는 라비를 보고 있자니, 절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잠시 뒤, 각 조직의 대표들이 천막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늦어서 미안해요.”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50구역의 실질적인 대표자이자 기업가인 카렌이었다.

사과가 정말 간결하다.

그런 면은 기업가답달까.

“덥군, 정말 더워.”

LAPD 강필이 얇은 숄을 걸친 마피아 대표 자켄과 함께 들어온다. 늘 그렇듯 하얀 늑대의 가면을 쓴 레지스탕스 대장이 뒤이어 들어왔다.

‘지독한 노인네…….’

가면 옆으로 땀이 줄줄 세는데도 기어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다.

“많이 기다렸나?”

“정확히 11분 39초.”

“…….”

하얀 늑대는 불퉁거리는 딘의 붉은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라비는?”

“우리가 데려온 두 명과 함께 있소. 애들끼리 신이 났더군.”

“하여튼 애들은 지치지를 않아요.”

강필과 자켄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되었든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카렌이 사무적인 말투로 회의의 시작을 알렸지만, 딘이 비딱한 말투로 회의를 막았다.

“잠깐.”

“…뭐죠?”

“이 사람들, 꼭 이렇게 세워 둬야겠어?”

카렌이 그제야 텐트 안과 바깥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을 둘러보았다.

“이게 이 사람들의 임무니까요.”

“임무?”

“지금은 전시 상황이고, 이곳 텐트 역시 안전한 장소가 아니에요. 당연히 경비 업체의 경호가 필요하죠.”

“…….”

“보안이 우려된다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이분들은 저와 오랫동안 계약해 일해 온 팀의…….”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딘이 카렌의 말을 막았다.

“적어도 저 답답해 보이는 양복 상의와 넥타이라도 좀 벗게 해 주자고. 이 더위에 굳이 저렇게 차려입을 필요는 없잖아?”

“…그렇죠.”

카렌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려 경호원의 리더로 보이는 사내를 불렀다.

“교대로 쉬어 가면서 근무를 서도록 해요. 복장을 조금 더 편안히 하는 게 좋겠어요. 이분 말씀처럼 날이 꽤 더운 건 사실이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아가씨.”

지시를 들은 리더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카렌이 무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먼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다시 회의를 시작하죠.”

자켄이 급히 분위기를 전환하며 밝게 말문을 열었다.

“일단 지난 전초전은 우리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할 거예요.”

“승리라…….”

“그렇잖아요? 이쪽의 피해는 거의 없고, 상대가 먼저 후퇴했어요.”

“메타휴먼 수십 명이 다치고 셋이 죽었어. 피해가 거의 없던 게 맞나?”

“이봐요.”

자켄이 골을 내며 계속해서 시비조로 나오는 딘을 노려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지. 상대가 먼저 후퇴한 건 애당초 놈들에게 싸울 의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일 뿐이야.”

센트럴의 지시를 받고 파견된 병력은 대륙 북부의 30번대 구역들에서 차출된 병력이었다.

센트럴 오더에 따라 마지못해 병력을 구성해 49구역까지 진입해 들어왔지만, 애당초 희생을 치러 가면서까지 싸울 이유가 없는 이들이었다.

그나마 센트럴에서 파견된 지휘관이 직접 이끄는 특공부대가 위협적인 전투력을 선보였을 뿐, 나머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자, 좋게 해석합시다. 그래도 승리는 승리잖아.”

강필이 손을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고, 딘은 처음처럼 뚱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하얀 늑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메타휴먼들은 겁을 집어먹고 이번 전쟁에서 발을 빼겠다는 건가?”

그 노골적인 물음에 텐트 안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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