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격동하는 대륙 (3)
프랑켄이 집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허술하게나마 지어진 집과 울타리 따위는 완전히 부서졌다.
마을 곳곳에 시신이 가득했고, 피 냄새가 진동했다.
마을 주민들의 몸뚱어리에는 뱀의 이빨 자국이 생생히 남아 있었고, 얼굴은 하나같이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죽음 직전까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 듯 시신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다.
바로 그때.
“끄아아아아아!!”
어디에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프랑켄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철컥.
녹스의 소총을 고쳐 잡는다.
우우우웅…….
손이 떨려온다.
아직 단 한 번도 쏘아 본 적 없는 녹스의 소울웨폰, 그 내부에서 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에 반응하는 것처럼 울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도달한 프랑켄은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았다.
검은 머리칼의 미녀, 그리고 그 옆에 선 낯익은 소녀.
“…녹스?”
녹스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파… 아프단 말이야!! 다들 어딨어? 이보게들!! 다들 어딨나!! 나를 좀……!”
유일하게 살아남은 근육질의 남자는 무릎을 꿇고 눈을 감싼 채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남자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를 제외한 모두가 목숨을 잃었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여기는 어디야? 대체 왜, 왜 이런 일이……!”
메데이아와 녹스는 그의 고함을 무시한 채 유유히 프랑켄에게 다가왔다.
프랑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사람을 보며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메데이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깨달았다.
“자네가 왔으니 이젠 마녀도 오래 살지는 못하겠군.”
노인의 말은 정신 나간 헛소리에 불과했다.
프랑켄은 결코 마녀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압박감으로 인해 손끝 하나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녀의 소울은 주변 모든 공간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의 시선이 사방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함부로 움직이면 죽는다.’
프랑켄의 본능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숨소리도 내지 마라.’
숨조차 멈추고, 온몸이 경직된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메데이아를 바라본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열린다.
“보아하니… 메타휴먼이구나. 얘야, 어째서 여기에 있니? 날 죽이러 오기라도 한 거니?”
메데이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녀의 손끝에서는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먹는다면 순식간에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그저 터무니없는 괴물을 마주한 미물의 공포일까.
프랑켄의 온몸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
대답할 수 없다.
아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터무니없는 공포 속에서 프랑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녹스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녹스는 눈살을 찌푸린 채 프랑켄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을 따라왔냐고 타박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죽는 걸까 싶었던 그 순간,
“하아……. 언니, 잠시만요.”
녹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프랑켄을 압박하고 있던 힘이 약해졌다.
“쿨럭! 하아… 하아…….”
그제야 숨을 쉴 수 있게 된 프랑켄이 상기된 얼굴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메데이아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간다.
“뭐지, 보니?”
“언니, 얘는… 아마 날 따라온 걸 거예요.”
“네가 아는 아이니?”
“일단은요.”
“…그렇다면야.”
메데이아는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가만히 뒤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온몸을 압박하던 모든 힘이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프랑켄은 상기된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메데이아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온 마을을 덮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연기에 닿은 모든 것들이 검은 잿더미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시신도, 집의 잔해도 일절 남기지 않았다.
마치 불에 탄 듯, 혹은 셀 수 없이 긴 시간이 지난 듯 모든 형체들이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보며 프랑켄은 자신이 어째서 한 달간의 여정 중에 사람이나 마을을 찾지 못했는지 알았다.
메데이아는 이런 방식으로 마을들의 존재 자체를 지워 왔을 것이다.
그 어떤 전투의 끝이 이처럼 깔끔하고 압도적일 수 있을까.
그녀는 걸어 다니는 재앙, 그 자체였다.
잿더미로 변해 가는 마을을 멍하니 보고 있는 와중에 녹스가 조용히 물었다.
“여기에 오래 있었어?”
“아니.”
“다행이네. 만약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다면, 아무리 나라도 너를 구해 줄 수 없었을 거야.”
“…….”
“여기까지 온 건 어리석은 짓이었어, 프랑켄. 왜 여기까지 온 거지?”
프랑켄은 고개를 들어 가만히 녹스를 바라보았다.
예의 담담한 표정 그대로다.
하지만 전과 달리 녹스의 말투에는 인간적인 감정이 짙게 묻어났다.
“너라면 분명 이 정글에 들어와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믿음이나 마음에 대한 집착.
한낱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녹스는 그런 집념으로 인해 급기야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런 녹스의 발길이 종교의 땅이자 이방인의 땅인 대륙 남부에 닿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멍청하긴.”
“지키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어.”
프랑켄에게 이름을 준 여경 유리.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프랑켄은 로보티안이 되었고, 감정을 깨달았다.
유리에 이어 파트너가 되어 준 요한.
그 역시 프랑켄의 부재중 너무나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는 잃고 싶지 않아.”
“너보다 내가 더 강하거든.”
“알아.”
프랑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녹스는 강하다. 애당초 프랑켄이 지켜 줄 대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찾아 이곳에 왔다.
“녹스, 어째서 마을을 공격한 거지?”
“언니의 적이니까.”
“언니?”
“그래.”
녹스는 그렇게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녹스는 메데이아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언니’라는 표현처럼 친밀감을 느끼는 것 역시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녹스가 잿더미로 변해 버린 마을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보다 하찮은 이유로도 사람은 죽어.”
“…….”
바로 그때, 마을 뒤쪽의 수풀에서 검은 망토를 걸친 사내 수십 명이 허리를 숙인 채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메데이아를 향해 깍듯이 절을 한 뒤, 마을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러고는 검은 재만 남은 폐허에 무언가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고개를 숙인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무언가 주문을 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괴상한 모습에 프랑켄은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녹스, 저들은…….”
“베다 교 사제들이야. 저런 의식으로 죽은 영혼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베다 교 사제들에 이어 나뭇잎이나 풀뿌리로 엮어 만든 옷을 걸치고, 지팡이를 짚은 이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폐허로 변한 땅에 심었다.
“저 사람들은 에덴의 신도들. 폐허가 된 땅에 식물의 씨앗을 심으면서 신의 가호를 비는 이들이야.”
“…….”
메데이아는 마을을 습격하면서 군대 대신 사제들을 데려왔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 한꺼번에 그녀를 따랐고, 한 공간에서 제각기 나름의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건 실로 기묘하고도 이상한 광경이었다.
“프랑켄, 난 녹스가 아니라 보니야.”
녹스, 아니, 보니가 조용히 말했다.
잠시 침묵하던 프랑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프랑켄이 기억하던 녹스는 없다. 옆의 소녀는 녹스가 아니었다.
녹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의식처럼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던 녀석이니까.
심지어 남을 진심으로 걱정할 줄 모르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프랑켄의 친구였다.
서로를 구해 주고,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는 관계. 그게 바로 친구다.
보니는 조금 전 메데이아로부터 프랑켄을 구했고, 자신을 찾아온 프랑켄을 걱정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꽤 긴 시간이 흐르도록 의식은 이어졌다. 그러나 메디이아는 느긋한 표정으로 커다란 뱀의 그림자에 걸터앉아 그들이 의식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저지르던 괴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고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그녀의 바로 앞에는 마을의 마지막 생존자가 마구 몸부림치고 있었다.
“여기가… 여기는 대체……!!”
그는 이제 아예 정신이 나가 버린 듯 마구 중얼거리고 있다.
“엔, 마틸, 부르카, 간… 다들 어디에 있나! 제발, 제발… 대답해 주게. 제발…….”
메데이아는 눈이 멀어 버린 남자를 여전히 살려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있어 차라리 형벌과도 같았다.
목숨이 붙어 있다 해도 그는 이 정글 속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사제들의 의식을 지켜보던 프랑켄이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그의 귓가에 가만히 중얼거렸다.
“당신의 친구들은 전부 죽었습니다.”
“…누구요, 당신?”
“한 시간쯤 전, 마을에 들어온 ‘베타’입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모,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마을에 들어온 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자는 정말 프랑켄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마구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저 정글을 빠져나가려고 했을 뿐이야. 그런데 어느새… 어느샌가 집을 지었고… 눈이 갑자기…….”
남자는 무언가 기억을 되짚는 듯 보였다.
아니, 애당초 자신이 누구와 싸웠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말했다.
“하얀 눈동자…….”
프랑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만난 정체불명의 사제, 마을의 촌장을 떠올렸다.
“그래, 그 이상한 노인의 말을… 우리가 듣고… 그의 말에 따라서…….”
“그 노인, 이 마을의 촌장이 아닙니까?”
“모르겠어. 모르는 사람이야. 난… 나는… 그 영감은…….”
바로 그때였다.
“소용없어.”
뒤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기억에 손상을 입은 녀석이야.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는 없겠지.”
붉은 눈동자에 황금빛 머리칼의 사내.
보니와 함께 떠난 남자, 클라이드가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오빠!”
보니가 활짝 웃으며 클라이드에게 달려간다.
메데이아 역시 클라이드를 보고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돌아왔구나. 그런데 빈손인 걸 보니… 놓친 거니?”
“흔적도 찾지 못했어.”
“그렇겠지. 어쨌든 수고했구나.”
“그런데 이 녀석은 뭐죠?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넌?”
클라이드가 프랑켄을 쏘아보며 묻는다.
그 목소리는 프랑켄에게 너무나도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보나?”
프랑켄은 작년 7월, 49구역 파견 임무 당시 클라이드를 만났다. 그는 동료 경찰들을 맨손으로 무참히 살해했다.
그로 인해 죽을 뻔했고, 그 직후 녹스를 만났다.
유쾌하게 자신을 향해 ‘동료가 되라’고 말하던 요새의 관리자.
그러나 한 달 전, 알마티에서 다시 만난 클라이드는 녹스를 자신의 동생이라며 제멋대로 데려가 버렸다.
녹스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로 인한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친구?”
보니가 황급히 나서서 말했다.
“오빠, 잠깐만. 얘, 내 친구야. 이름은 프랑켄.”
“…….”
클라이드는 보니의 설명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프랑켄을 노려보았다.
바로 그때, 메데이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니, 클라이드, 이쯤하면 됐겠지. 이만 돌아가자.”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언니.”
“저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메데이아는 물론, 보니와 클라이드의 시선이 프랑켄에게 몰렸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