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55화 (156/220)

155화 붕괴 (1)

달칵!

대회장 전면에 작은 램프 하나가 켜진다.

램프의 불빛을 받아 모습을 비친 의장석에는 시뻘건 피가 잔뜩 튀어 있었다.

“조용히들 해.”

의장석의 마이크에 얼굴을 들이민 사내가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해골을 연상시킬 정도로 해쓱한 얼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핏자국.

그 섬뜩한 모습과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 떠들어 대던 이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만 좀 짖어. 귀가… 울리잖아.”

사내는 살짝 쉰 목소리로 말하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쿠구구구구…….

의회장이 다시금 크게 흔들리면서 사방에 먼지가 인다.

그 와중에 사내가 움켜쥐고 있던 무언가를 램프 앞에 들이밀었다.

턱!

눈, 코, 귀, 입으로 피를 쏟아 내며 살해당한 의장의 얼굴이 힘없이 램프 앞에 놓여진다.

“지금부터 움직이거나 떠드는 놈은 죽는다. 이 녀석처럼.”

그 끔찍한 광경에 누구 하나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연극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비장하게 떠들어 대던 초선 의원들조차 거북이처럼 고개를 집어넣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 정말 얼마나 바랐던지.”

사내는 피 냄새에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경멸 섞인 시선으로 좌중을 훑었다.

“센트럴 의사당, 바로 이곳에서 대륙민들에 대한 학살이 결정됐지. 우리의 것을 모조리 빼앗고, 우리들의 피고름으로 제 배를 불린 돼지 새끼들.”

“워, 원하는 게 뭐요!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겁니까?”

어둠 속에서 경비 책임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경비원이군. 그래, 당신은 알 거야. 이곳 의사당이 얼마나 썩어 빠진 곳인지. 얼마나 사악한 짓들을 벌여 왔는지.”

“…….”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물었나? 단순해. 이 의사당을 부숴 없애 버리는 것. 센트럴을 부숴 버리는 것.”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쿠르르르릉…….

사방에 울리는 진동이 점차 커진다.

그 속에서도 사내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여기는 곧 무너질 거야. 그전에 너희에게 기회를 줄까 해.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통행증을 받을 생각이거든.”

끼이이익…….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회장 문이 세 개가 동시에 열렸다.

곧이어 문마다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한 명씩 안쪽을 바라보며 섰다.

사내들의 손에는 제각기 레이저 건이 들려 있었다.

“통행증은 단순해. 의원들의 목. 그 목을 저들에게 보여 주면 바깥으로 내보내 주지. 그러니 당신, 방금 당신의 뺨을 때린 그자의 목을 가져와.”

“이, 이런 미친놈이……!”

경비원이 고함을 내지르며 삼단봉을 빼 들고는 사내를 향해 내달렸다.

“아쉽군.”

사내가 피식 웃으며 천천히 경비원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쾅!!

그와 함께 달려오던 경비원이 그대로 휘청이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커헉!”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짓눌린 듯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시퍼렇게 날 선 검을 쥔 채 경비원 앞에 서서 그 목을 겨누었다.

굳이 피를 보지 않고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잔혹한 모습을 연출하려는 속셈이었다.

“죽여.”

사내의 지시와 함께 칼이 허공에 호를 그린다.

그러나 칼날이 경비원의 목에 닿기 바로 직전, 그의 팔이 멈추었다.

“그만두지.”

경비원의 목을 베려던 남자가 자신의 팔을 붙잡은 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온 시야가 푸른빛으로 뒤덮였다.

파치치치―

“끄으으윽!!”

쨍그랑!

그대로 검을 떨어뜨린 채 의식을 잃은 남자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른다.

“그만해, 세이드.”

사형 집행을 막은 태일이 온몸에 푸른 전류를 휘감은 채 의장석 쪽을 노려보았다.

램프 앞에서 잔인하게 웃고 있던 세이드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배신자, 너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거든.”

“배신자라…….”

태일이 가만히 세이드의 말을 곱씹었다.

“세이드, 부끄러움을 잊은 거냐?”

태일의 말에 세이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의원님!”

태일이 전면에 나선 순간, 민호는 안도의 팔을 잡아끌었다.

“지금 당장 여길 나가야 해요.”

“하, 하지만…….”

안도의 시선은 태일 쪽으로 향해 있었다.

“저 녀석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보다 이 건물, 오래 견디지 못할 겁니다.”

“이 녀석 말이 맞아. 빨리 나갑시다.”

카츠미와 페이진 역시 작은 목소리로 안도를 설득했고, 결국 안도는 불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안도의 뒤쪽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챙!

해리의 뒤에 경호원인 척 서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나이프를 꺼내 들더니 다짜고짜 안도를 향해 휘둘렀다.

나이프 끝에 섬뜩하게 붉은빛이 번쩍인다.

“이런……!”

민호가 다급히 남자를 막으려 나서는 찰나, 갑자기 남자의 육중한 몸뚱어리가 거세게 흔들렸다.

“으으윽!!”

“이놈!! 안 된다!”

어둠 속에서 안도의 곁에 서 있던 해리가 지팡이를 던져 버린 채 남자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이 늙은이가!”

“감히, 감히 내 아들을……!”

푹!

사납게 몸을 흔들어 대던 남자의 붉은 칼이 그대로 노인의 옆구리에 쑤셔 박혔다.

“컥!”

“아, 안 돼!!”

안도의 비명 소리가 온 의사당에 울린다.

바로 그 순간, 페이진이 사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움켜쥔 뒤, 우악스럽게 땅에 메다꽂았다.

풀려난 노인의 몸뚱어리가 힘없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사내로부터 칼을 빼앗아 든 페이진이 그대로 그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한편, 안도의 비명 소리를 신호로 곳곳에 잠복하고 있던 테러리스트들은 물론,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경호원들까지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을 열어!”

“의원님, 이쪽으로!!”

“문 쪽을 뚫어!”

테러리스트들 역시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댄다.

“전부 죽여!!”

“막아! 한 놈도 내보내지 마!”

입구를 지킨 자들의 레이저 건이 불을 내뿜는다.

소란과 함께 곳곳에서 요란한 육탄전이 벌어졌다.

“으아악!!”

“저, 저리 비켜!”

“우와악! 살려 줘!!”

잠깐 사이에 사방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능력자들이 뿜어낸 형형색색의 불길과 냉기가 사방에서 충돌했고, 상대의 목숨을 거두기 위한 결투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안도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쓰러진 해리의 옆에 주저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해리의, 아버지의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댄다. 검붉은 피가 바닥에 흐르는 와중에 해리의 숨소리는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왜 해리가, 이 남자가 자신을 대신해 칼을 맞은 걸까.

“왜… 대체 왜……?!”

해리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피 묻은 손으로 안도의 볼을 매만진다.

“미안…하구나…….”

젊을 적 감당할 수 없는 욕심으로 악마와 같은 짓을 저질렀다.

형과 형수를 살해했다.

그 대가로 가주였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모든 것을 잃었다.

오로지 가주의 지시가 있는 경우에만 방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경호원들은 해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처음에는 분한 마음이 들었다.

응당 자신의 것이어야 할 모든 것을 잃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병든 아내의 곁에 다가갈 수 없다.

한 주택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들의 곁을 지킬 수도 없다.

자신이 형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릴 수 없다.

끝내 아내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고, 가주는 선심이라도 쓰듯 아내의 장례식 참여를 허락했다.

그리고 아내의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안도를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안도의 시선을 보았다.

안도는 분노와 증오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금 구금된 날 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그가 잃은 재산도, 가주의 자리도,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는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좀 더… 잘하고… 싶었다.”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안도는 그 즉시 해리를 해방했다. 더불어 지금껏 해리를 감시하던 경호 업체 BW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선하지만 순진한 결정이었다. 안도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막상 오랜 구금에서 풀려난 해리는 안도의 결정에 경악했다.

오랫동안 부려 온 경호 업체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문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경호 업체는 그것을 무기 삼아 적대 세력에 자신들을 팔아넘길 것이다.

그 위험성을 알았기에 가주는 한때 해리가 고용한 경호 업체를 아예 박살 내지 않았던가.

해리는 그 즉시 자신을 죄수처럼 대우하던 BW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산 동결이 풀리며 비로소 얻게 된 애슈턴 가문의 지분 일부를 BW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시해 가주의 저택을, 아버지의 시신을 불태워 버렸다.

애슈턴 가주에게 어설픈 선(善)은 죄악이며, 순진함은 무능이다. 그 사실을 가주가 된 아들에게 알려 주고자 했다.

그 직후, 해리는 캐피탈 클럽과 애슈턴 가문을 경계하던 복고주의자, 코르지 브레드필드를 찾아갔다.

오랜 구금 생활 중에도 바깥소식에 귀를 기울여 왔고, 애슈턴 가문을 위협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가장 강대한 적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가문을, 아니, 아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악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손가락질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잘… 듣거라…….”

안도가 울부짖으며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인제 와서……!”

아직 눈을 감을 수 없다. 아직은 아니다.

마지막 힘을 짜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운용하던 A1… 정보망은 폐기하거라. 놈들이 내 뒤를 밟기 시작했으니… 곧 드러날 게야.”

안도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보수당 측의 비밀 정보를 얻어 낸 안도의 개인 정보망이 해리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정보의 출처가 정확히 누구인지 안도는 지금껏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이……!”

해리가 안도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제대로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단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숨이 붙어 있는 이상,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넘겨주어야 한다.

“BW는… 내게 일이 생길 경우… 너와 자동으로 재계약이 되도록… 해 놓았어.”

이제는 알 것이다. 무력 조직의 중요함을, 그 계약의 무게를.

“널 습격한 히트맨들… 코르지의 짓이 아니야.”

안도의 얼굴에는 충격이 떠올라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 코르지마저도 위협하는… 녀석이 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아, 알겠어요. 알았어. 나가서… 나가서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뭐든 좋으니까! 아버지, 제발……!”

“마침내…….”

해리의 얼굴에 언뜻 웃음이 떠오른다.

‘아버지’라는 호칭,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아버지?”

“…….”

“아, 아버지……!”

해리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힘겹게 말을 이어 가던 해리의 숨이 그렇게 끊어졌다.

“아버지!!”

안도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절규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해리는 그 목소리에 답할 수 없었다.

“빨리 가야 해요! 얼른!!”

페이진이 목소리를 높이며 눈물범벅이 된 안도의 몸을 잡아끌었다.

대회장 내 전투는 점차 격렬해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그런 가운데 해리의 시신은 싸늘하게 식어 갔다.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채 평생 외롭게 살아온 노인.

그러나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 단 한 사람, 노인의 아들만큼은 진심으로 그를 향해 목 놓아 울부짖고 있었다.

용서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한 듯 해리의 얼굴에는 더 이상 그 어떤 고통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