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마지막 회의 (3)
“의원님!”
“아, 불렀어?”
유키가 흠칫 놀란 듯 시선을 돌려 카를로스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시기에…….”
유키는 멋쩍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아, 별거 아냐. 왜?”
“이렇게 가만히 자리에 앉아 계셔도 괜찮겠습니까?”
마치 거대 오페라 공연장처럼 3층으로 이뤄진 대회장. 의원과 보좌관들은 바삐 서로의 자리를 오가며 막후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표를 행사하는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인지, 혹은 받을 것인지에 대해 소곤거리며 거래를 이어 간다.
의결이 행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원들의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바쁘게들 사네, 다들.”
“태연하게 그런 말씀이나 하실 때가 아닙니다. 의원님께서도 뭔가 하셔야죠.”
“내가?”
“…….”
카를로스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모르쇠를 놓는 유키를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런 자리에서 교섭력을 조금만 발휘한다면 의미 있는 정치적 자원을 얻을 수도 있다.
야심에 불타는 초선 의원들, 즉 최근 의원 배지를 단 이들은 아예 보좌관을 동원해 의사당 곳곳을 돌도록 지시했을 정도다.
보좌관들 역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기 위해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온갖 말들을 쏟아 냈다.
어설프게 돈다발을 몰래 건네는가 하면, 어떤 특권을 비밀스럽게 약속하기도 한다.
유키 역시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의원님 말씀처럼 이번만큼은 양쪽 모두 한 표가 급하지 않겠습니까? 적당히 저울질하시면 괜찮은 제안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유키는 그런 카를로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를로스, 다들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난리인 이 와중에 이쪽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알아?”
“…….”
유키의 말처럼 이쪽으로는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보수당 쪽은 물론, 청년당 쪽 사람들 역시 유키 쪽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내지 않았다.
“난 지금껏 딱히 원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야.”
“…….”
유키는 재선도, 당대표 같은 자리도 바라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유키의 의원 자리는 유지될 것이며, 이름뿐인 간부직 역시 원하기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다.
유키의 아버지가 가진 힘이라면, 유키의 가문이 가진 권력이라면 충분했다.
“더구나 저들 역시 내게 바라는 게 없지.”
유키는 다른 의원들을 이끄는 거물급이 아니기에 행사 가능한 표가 오로지 한 장뿐이다.
몇 시간 전까지 보수 중견급 의원 몇이 유키에게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유키가 안도 의원실 회의에 참석하면서 그들은 깔끔히 유키의 표를 포기했다.
어차피 유키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그들에게 유키는 유의미한 변수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유키에게 거래를 걸어오지 않았으며, 유키 역시 굳이 거래를 시도하지 않았다.
“카를로스, 그러니까 포기하고 그냥 편히 앉아 있어. 이곳에서 우리의 존재감은 없다고.”
카를로스는 이처럼 좋은 기회를 날려 버린다는 사실에 아예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즈음, 의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의원님들께서는 착석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임시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종 표결 전까지 의원들과 각 구역의 사절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랐다.
연설들은 하나같이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글 솜씨 좋은 이들이 집필해 준 연설문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다.
대륙의 영광, 센트럴의 정의, 인류의 미래, 위대한 문명.
그럴듯한 표현들로 포장했지만, 결국 빤한 이야기들이었다.
“여러분, 센트럴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금권으로 모든 이치를 뒤흔들려 하는 자본가들입니다. 황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그들의 오만이 센트럴을 좀먹고 있습니다.”
“전쟁을 꿈꾸고 피를 원하는 제국의 후예들이 있습니다. 모두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륙의 적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센트럴을 부수려 하는 자들이지요.”
상대 진영을 악마로 묘사하고, 자신이야말로 정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하나같이 대륙의 평화를 읊조리고 센트럴의 영광을 외친다.
비장한 태도와 꾸민 듯 중후한 목소리는 마치 숙련된 연극배우와 같았다.
‘직업을 잘못 선택한 이들이 많군.’
아니, 어쩌면 정치가라는 직업이야말로 배우와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연설을 들은 의원들의 반응은 매우 격동적이고… 진부했다.
“옳소! 맞는 말이오!”
“집어치워라! 내려가! 어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이합집산을 마친 의원들은 반대파에게 야유를 보내며 의사 진행을 방해했고, 같은 편의 주장에는 박수를 보내며 호응을 보냈다.
나중에는 아예 저희끼리 싸우기도 했다.
“어허, 예의를 지켜요. 예의를!”
“예의? 저 발언은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는 발언이야!”
“뭐가 어쩌고 어째? 당신 말 다 했어?”
“당신?! 어허, 당신 몇 살이야?”
그처럼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주로 전방에 앉은 초선 의원들이었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의 과한 반응은 정작 상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재선을 위해서는 공천권을 가진 고참급 의원들과 당 간부들의 눈에 들어야 한다.
험하게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자신의 충성심을 내보일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체면을 버린 발언들은 비굴한 아부와 다르지 않았다.
“힘들게들 산다, 진짜.”
유키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런 몸부림을 바라보았다.
카를로스는 혹시 다른 의원들이 들을까 걱정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센트럴 오더 의결을 위한 임시회가 시작되고 약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표결 직전, 마지막 사절인 태일의 차례가 왔다.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싸운 탓에 목이 쉬어 버린 초선 의원들은 다소 지친 얼굴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태일이 천천히 단상 위로 올랐지만, 초라한 차림의 사절은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유키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사실 지금껏 유키가 기다린 건 오로지 태일의 발언이었다.
태일은 청년당 의원들의 회의를 지켜보다가 그 원고를 남몰래 휴지통에 버렸다. 당시 태일이 짓고 있던 표정은 의원들에 대한 혐오와 실망이기에 그런 그의 행동은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자신의 손으로 원고를 버린 사절이라…….’
나중에 버려진 글을 몰래 꺼내 살펴보니, 꽤 솜씨 좋은 작가 쓴 듯 유려한 문체의 연설문이었다.
그러나 태일은 기어코 원고 없이 단상에 올랐다.
“전 50구역에서 왔습니다.”
단상에서 울리는 태일의 목소리에 의원들은 의외라는 듯 사내를 바라보았다.
‘존경하는 의원님들’ 따위의 진부한 표현은 없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조금의 관심도 없을, 그런 사람들의 죽음이죠.”
이 또한 기존 의회 연설문의 문법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는 단상에 서서 연극이 아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의원 몇의 낯빛이 변했다.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와중에 몇몇 의원은 재미있다는 듯 태일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들려 드릴 이야기는 지난 수개월 사이에 제가 직접 겪은 일들입니다.”
태일은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50구역 허름한 집에서 시작되었다.
고아들을 거둬 소울벌룬을 제조하던 마피아 보스 샬롯.
인신매매, 납치 등 온갖 범죄에 개입된 그녀는 센트럴을 혼란에 빠뜨릴 정도의 약물을 제조했다.
“재료를 지원한 이들은 캐피탈 클럽의 드림 코퍼레이션이었고, LAPD 청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았습니다.”
어느새 의원들은 얼빠진 얼굴로 태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함을 질러 대야 할 초선 의원들 역시 입만 뻐끔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태일의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드림 코퍼레이션, LAPD와 같은 조직들이 태일의 입에서 연달아 언급되자, 장내 분위기에 소름 끼치는 침묵이 맴돌았다.
태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샬롯의 죽음 이후 벌어진 마피아 간 전쟁, LAPD 반란과 50구역 의원 살해.
“용병들을 고용해 마피아 전쟁을 촉발시킨 이들 역시 캐피탈 클럽이었고, 의원 살해에는 아크 탈로스가 직접 개입했습니다. 의원들의 살해 장면을 통신 장비로 지켜보고 있었죠.”
“지, 지금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미쳤어?!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그런 거짓말을……!”
의원들 중 몇이 더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러 댔다.
노기에 찬 목소리는 초선 의원들이 자리한 앞자리가 아니라 당의 간부급이 위치한 뒷자리에서 들려왔다.
보수당뿐만이 아니다. 청년당에서도 꽤 이름 있는 자들이 더는 참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탈로스 가문의 이름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의원 중 직간접적으로 탈로스 가문의 후원을 받지 않은 이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저 거짓말쟁이를 끌어내려라! 당장!”
파치치!
대회장 내부가 소란스러워지자 태일의 손 위로 푸른 전류의 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의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레귤러……?!”
“뭣들 하는 거야? 경비원들, 당장 저 괴물을 체포해!”
경비원들이 다급히 몰려드는 찰나.
콰쾅!
번개 한 줄기가 단상 바로 옆에 내리쳤고, 거대한 대리석 단상이 쪼개져 버렸다.
그와 함께 대회장 전체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웃라이어…….’
유키 역시 들은 적이 있다.
능력자 중 1인 군단(軍團)으로 여겨질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괴물들.
번개를 내리친 태일이야말로 바로 아웃라이어였다.
경비원들이 태일을 포위했지만, 감히 직접 달려들지 못했다. 한편, 태일과 함께 들어온 괴상한 차림의 세 사람이 무기조차 들지 않은 채 태일의 곁을 지키고 섰다.
그 와중에 태일은 담담히 말을 이어 갔다.
이야기는 알마티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누군가 알마티 지하 도시에 전력을 차단하고 반란을 유도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직전, 지하 도시 시장을 살해하려는 음모까지 있었습니다.”
지하 도시의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투입된 히트맨, 그리고 지하 도시 주민들을 학살하려다가 오히려 제압당한 알마티 LAPD.
그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유키마저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간단하다.
불법적인 약품 제조와 의원 살해, 도시 반란 유도까지… 대륙에서 일어난 온갖 사건들은 철저히 기획되었다.
“사건들은 오로지 센트럴 오더의 발령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태일의 증언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곧이어 회장 전체가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저건 음모론이오, 음모론!”
“저 미친 괴물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여러분, 저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지요?! 저런 헛소리는 들을 필요 없소!”
몇몇 의원들이 악을 쓰며 고함을 질러 댔지만, 의원 상당수는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유키는 그런 의원들의 반응을 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원님?”
주변을 둘러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카를로스가 그런 유키를 바라보았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유키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카를로스는 놀란 얼굴로 그런 유키를 바라보았다.
유키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차갑게 굳어 있었다.
집사로서, 보좌관으로서 오랫동안 유키를 보아 왔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이었다.
한순간, 유키의 얼굴이 한때 보수당 대표였던 그의 아버지의 얼굴과 겹쳐졌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