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마지막 회의 (2)
“호오, 살벌한데?”
안도 애슈턴과 해리 애슈턴.
캐피탈 클럽 출신이면서 정치계에서조차 유명해진 부자(父子).
해리는 보수당 의원들을 대표해 센트럴 오더의 발동을 발의했고, 안도는 청년당 최연소 대표가 되어 청년당의 보이콧을 이끌었다.
근 몇 년 사이 가장 뜨거운 두 가지 사건을 일으킨 부자가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낸다.
청년당 의원 유키는 멀찌감치 서서 흥미롭다는 듯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보면 둘이 제법 닮은 거 같은데 말이야.”
의사당을 지나다니던 여인들이 유키를 힐끔거리며 바라본다.
어딘지 불량해 보이는 태도였지만, 유키의 조각 같은 외모 덕분인지 그런 태도조차 매력적으로 보이는 듯했다.
“의원님, 이제 그만 가셔야 합니다.”
유키의 뒤에 서 있던 보좌관 카를로스가 조용히 말했다.
“의원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의결이 시작하기 전까지 모두 만나 보시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흥, 어차피 다 자기들 쪽으로 한 표라도 행사해 달라는 거잖아? 설마 나한테 법안을 발의해 달라고 찾아오는 인간은 없을 테고.”
“…….”
유키는 침묵하는 카를로스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서두를 것 없어. 내 한 표에 무슨 힘이 있다고. 안 그래?”
그렇게 태연하게 대답한 뒤, 다시금 해리와 안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안도는 해리에게 뭐라 쏘아붙인 뒤,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해리 역시 자신의 무리와 함께 발길을 돌렸다.
“뭐야, 시시하게. 그냥 가네? 에이, 저 정도 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주먹질이라도 한 번 시원하게 해 줘야지.”
“의원님, 다들 듣습니다. 부디 체통을…….”
“아, 됐어.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해.”
손을 휘휘 내젓는 와중에 유키의 시선이 안도의 뒤를 따라가는 네 사람에게 닿았다.
의사당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네 사람이었다.
“저 사람들, 복장이 꽤 특이한데.”
“동대륙에서 온 모양입니다.”
잠시 뒤, 경비원들이 넷의 통행을 제지했고, 안도가 자신의 신분증을 내보이며 넷에 대해 설명했다.
“안도 녀석, 무슨 생각으로 동대륙인들을 데려온 거지?”
서대륙 주민들의 모든 정보는 센트럴 아카이브에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동대륙의 경우, 몇몇 고위직을 제외하면 의사당 출입 시 의원의 보증이 필요했다.
안도는 그런 번거로움까지 감수하면서 동대륙인들을 의사당에 들인 것이다.
“오늘 안건이 안건이니만큼 서대륙에서 사절(使節)로 데려오신 게 아닐는지요.”
“설마 내가 그걸 모를까? 안도가 사절을 데려올 거야 당연히 나도 알고 있었지. 난 그저 동대륙 사람들을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게 놀라울 뿐이야. 제인이나 카렌이 사절로 나올 줄 알았거든.”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특히 제인 님은 동대륙에 계시니…….”
“카를로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아, 그, 그게…….”
“됐어. 아버지가 지시하셔서 알아본 거겠지.”
“…….”
오래전, 제인과 유키의 집안 사이에 혼담이 오간 일이 있다.
유력 정치 가문 간의 결합.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제인은 아카데미 졸업 후 멋대로 집을 나가 버렸고, 50구역 LAPD 경관과 약혼까지 해 버렸다.
“하여튼 질리지도 않으신다니까. 나 싫다고 떠난 여자한테 왜 자꾸 매달리는 거야?”
애당초 혼담 자체가 어른들끼리 멋대로 진행한 일이지만, 유키는 자신이 마치 바람맞은 모양새가 되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꽤 날카롭게 반응했다.
카를로스가 한창 자책하며 유키의 눈치를 살피는 찰나, 유키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뭐, 어쨌든 우리도 들어가자고. 여기까지 왔으니 일하는 척은 해야지.”
“네, 의원님.”
카를로스는 기다렸다는 듯 황급히 유키의 옆에 바짝 따라붙었다.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지?”
“네. 의결 전에 의원님과 만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일단 급한 건부터 말씀드리면, 지크 의원님과 만다이크 의원님, 그리고 제리코 의원님과 모랄레스 의원님께서도…….”
“잠깐.”
유키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카를로스의 보고를 중지시켰다.
“그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네, 의원님.”
평소와 다르다.
의결 전에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시답잖은 로비스트나 보좌관을 지망하는 학생들 따위였다.
청년당에서도 존재감이 희미하고 참석률도 낮기에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청년당 의원들은 물론, 보수당 의원들까지도 자신을 찾고 있었다.
게다가 지크와 만다이크는 보수당에서도 중견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처럼 콧대 높은 자들이 먼저 자신에게 만남을 청해 온 것이다.
“여기 오는 길에 아버지한테 연락이 왔다고 했지?”
“아, 네. 의원님께서 받기 싫다고 하셔서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평소 같은 잔소리라 여겼지만, 상황을 보건대 이번 의결과 관련된 내용이 분명했다.
이미 은퇴한 의원의 힘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별안간 유키의 눈이 반짝거렸다.
평소 의회의 의결은 대개 요식에 불과했다.
의결에 들어가기 전, 의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의안별 통과 여부는 미리 결정된다.
미리 정해진 결과가 뒤집히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때껏 표 확보가 안 됐다니…….”
유키의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이거, 재밌어졌잖아?!”
그렇게 한껏 흥이 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갑자기 유키의 시선이 누군가에게 고정되었다.
그와 동시에 유키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의원님?”
“카를로스, 저기 저 남자.”
유키가 서류 가방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사내를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회색 머리칼에 창백한 얼굴.
그런 사내의 곁에 아직 앳돼 보이는 여인이 따르고 있었다.
“…낯이 익지 않아?”
“예?”
사내는 경비원들의 신분증을 확인받은 뒤, 유유히 의사당 내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 아니야. 하긴 그럴 리가 없지.”
만약 자신이 생각하는 인물이라면, 애당초 의사당 내에서 신분 증명이 될 리 없었다. 아니, 애당초 의회 안에 당당히 들어올 리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남자는… 세이드는 벌써 몇 년 전에 목숨을 잃었다.
유키는 고개를 내저으며 카를로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쁠 거 같은데, 빨리 들어가지.”
“누굴 먼저 만나시겠습니까?”
“아무도 안 만나. 안도의 의원실로 가야겠어.”
* * *
“살라자드 의원 쪽에서 답변이 왔어. 우리 쪽으로 표를 주기로 했소.”
“그럼 남부 지회도 우리 쪽에 합류하는 건가요?”
“글쎄요. 하지만 적어도 이번 의결에서는 우리 쪽에 표를 던져 줄 거예요. 얼마 전, 알마티에서 벌어진 사건에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에요.”
“흥, 워낙 겁이 많은 양반이긴 하죠. 그래도 모처럼 도움이 되는군요.”
“그렇다면 현재까지 확보된 표수가…….”
“총 102표요. 아직 28표가 부족한데.”
“그 102표도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요. 남부 지회 내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요.”
“그건 보수당 쪽도 마찬가지예요. 센트럴 오더에 대해서만큼은 저쪽도 거부감이 원체 심하지 않았습니까.”
“의원 중 최소 30명 이상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캐피탈 클럽 쪽에서 계속 설득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 모양이더군요.”
“탈로스 가문 쪽에서도 계속 작업이 들어오고 있어요. 캐피탈 클럽 소속이면서 대체 무슨 속셈인지, 원.”
“북부 지회 쪽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나?”
의원들은 안도의 의원실에 모여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앞으로 의결까지 채 3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태일은 책상머리의 의원들을 바라보며 새삼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청년당 의원들은 당장 의결 대상인 ‘센트럴 오더’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현재 몇 표가 확보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표를 확보할 수 있을지를 바삐 계산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LAPD의 권한 강화를 협상 선택지로 넘깁시다. 보수당 영감들도 그런 조건이라면 흡족해할 자들이 꽤 많을 거요.”
“흥, 퍽이나. 이번에 우리가 하나를 내주면 다음번에는 우리를 아예 통째로 삼키려 할 거요.”
“그래도 군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낫잖습니까?”
“그러니까 이번 의결에서 이겨야죠. 왜 자꾸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이들에게 과연 센트럴 오더는 어떤 의미일까?
이들에게 센트럴 오더를 막는다는 게 어떤 가치를 지닐까?
의원들은 그저 이번 기회에 보수당을 제압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킬 생각뿐이었다.
“북부 지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쪽은 의원들의 자율에 맡길 거라는군요.”
“무책임하긴! 그건 그냥 방기하겠다는 거잖아!”
“그쪽에서는 나름대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겠지. 북부 표의 30%만 가져와도 승산이 있을 거요. 남은 시간 동안 북부 쪽 의원들과 한 번 더 얘기를 해 봐야 합니다.”
“북부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나 알고 하는 얘깁니까? 놈들은 이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내놓으라고 우리를 떠보는 것뿐이에요.”
청년당 의원들은 그저 한 표라도 더 얻어 내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이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투여되는 자원과 손익까지 철저히 계산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지요. 이번에 북부 지회가 그나마 중립을 표방한 게 누구 덕입니까?”
“흥, 같은 소속이라고 역성드는 건가?”
“뭐요? 말 다 했어요?”
“자자, 그만들 하시오. 시간이 얼마 없어요.”
의원들은 본인의 정치적 욕망에 충실했으며, 회의 자리 안에서도 조금이나마 더 많은 지분을 갖기 위해 얼굴을 붉혔다.
태일의 옆에 서 있던 민호가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건 시간 낭비야.”
카츠미, 페이진 역시 화가 치민 듯 저마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의원들은 센트럴 오더로 인해 피바람이 불 수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 표결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내리는 정치적 판단의 무게를 깨닫지 못한다.
그저 적을 상대할 무기로, 보수당을 누를 수단으로 여길 뿐이다.
“그럼 다들 움직입시다. 각자 담당한 의원들을 다시 만나서 의결 직전까지 설득을 계속해야 해요.”
회의가 끝나갈 때쯤 태일은 가만히 자신의 손에 들린 연설문을 바라보았다.
안도와 그의 비서진이 작성한 초안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원고였다. 사실 이 자리에서 의원들과 함께 연설문의 내용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고급스러운 단어, 어렵고 긴 문장들로 가득한 연설문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한다.
― 존경하는 센트럴 의원님들, 저는 오늘 50개에 이르는 센트럴 구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제언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은 앞으로 있을 증언의 내용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애당초 태일 일행의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럴듯한 말솜씨와 모략, 정치적 뒷거래.
고작 그런 것들로 센트럴의 많은 것들이 결정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연설문을 그대로 읽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듣기 좋은 말로 설득을 해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
태일은 손에 들려 있던 연설문을 구겨 버린 뒤, 의원실 구석의 쓰레기통에 슬쩍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이는 구석진 자리에서 하품을 하고 있던 유키뿐이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