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마지막 회의 (1)
“도착했습니다.”
센트럴 제1구역.
센트럴은 가장 강성하던 제국을 무너뜨려 서대륙을 차지한 뒤, 그 제국의 수도를 제1구역으로 만들었다.
한때 제국 수도였던 장소이지만, 당시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역사 시대는 끝났다. 그러니 제국의 흔적은 조금도 남기지 않는다.’
그 상징으로서 집정부는 제국의 심장부를 모조리 갈아엎었다.
“휘유, 대단한데?”
페이진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1구역 정중앙의 검은 첨탑은 수십 년 전 센트럴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첨탑을 중심으로 각 구역을 뜻하는 50개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으며, 장벽과 같은 다섯 개의 거대 건축물이 오각형의 형태로 버티고 서 있었다.
각각의 건축물들은 공중에서 내려다보아야만 그 형태를 온전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카츠미가 그 거대한 규모에 놀란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펜타곤(Pentagon)인가?”
“각 건축물에는 중앙의사당, 대륙의사당, 행정부, 사법부, 군사령부까지 총 다섯 개의 핵심 기관들이 존재하죠.”
“규모가 엄청나네. 저런 정도의 크기라니…….”
“전 대륙의 핵심적인 사무를 처리하는 곳이니까요.”
태일과 민호는 안도의 설명을 들으며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오각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가 갈 곳은 바로 저기, 중앙의사당입니다.”
중앙의사당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으며, 대외적으로 가장 눈이 잘 띄는 흰색을 띠고 있었다.
건물 그 자체가 마치 열려 있는 관문을 연상시킬 정도로 수많은 PAV가 몰려들었고, 열차와 차량의 행렬 역시 끝없이 이어졌다.
의사당은 일종의 비행장이자 열차 플랫폼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군.”
“아마 평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몰릴 겁니다. 이번 의결은 사업가들에게도 중요하니까요. 로비스트들도 많이 몰려들겠죠.”
“…….”
태일은 펜타콘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혁명군을 이끌기 전, 제1구역 중앙의사당에 찾아온 적이 있다.
당시 태일은 로비스트로 위장한 상태였고, 세이드와 함께 의회를 파괴하기 위해 잠입했다.
‘세이드…….’
눈앞의 의사당은 태일이 본 당시의 그대로였다.
그러나 태일은 전혀 다른 입장으로 이곳에 왔다.
당시는 파괴를 위해 이곳에 왔지만, 지금은 파괴를 막기 위해 이곳에 있다.
“앞으로 한 시간 뒤, 의결이 시작될 겁니다. 의사당 안에 들어가서는 부디 행동들을 조심해 주십시오.”
“별걱정을 다하는군. 걱정하지 말라고, 잠자코 있을 테니까.”
“페이진, 여기서 가장 걱정되는 게 바로 당신이야.”
“그건 좀 억울한데…….”
태일이 어깨를 으쓱이는 페이진을 보며 팔짱을 꼈다.
“일단 말투부터 조심해야 해.”
“말투?”
태일이 당연하다는 듯 안도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여기 계신 의원님의 경호원이자 증인으로 온 거야. 지금처럼 반말을 계속해서는 안 되겠지.”
“쯧, 깐깐하게.”
“예의 없는 말투도 안 된다.”
“깍듯이 모시지.”
“페이진.”
카츠미가 눈살을 찌푸리자, 페이진이 조심스레 말을 바꾸었다.
“…모시겠수다.”
카츠미가 어린애처럼 툴툴거리는 페이진을 살짝 노려보며 안도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조심하도록 하죠, 의원님.”
“하긴 지금까지 저희가 너무 격 없게 굴었습니다.”
민호 역시 진중하게 말하자 안도가 빙긋 웃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태일 씨가 말했듯 의사당이 워낙 보수적인데다 보는 시선이 많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PAV가 착륙하기 시작한 가운데, 안도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태일 일행을 바라보았다.
“무기는 두고 내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검문에서 걸릴 테니까요. 의사당에서는, 아니, 1구역에서는 비무장이 원칙입니다.”
“물론 그래야겠죠.”
태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째서인지 실내에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세 사람은 불편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매만지고 있었다.
무장 수준으로 보면, 당장 테러리스트로 오인당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건 좀…….”
“굳이 꼭 그래야 할까요?”
“여기다 뒀다가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이게 어떤 물건인데.”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 모두 각자의 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움켜쥐자 태일은 그만 이마를 감싸 쥐고 말았다. 셋 모두 50구역에서 온 무법자들인 만큼 상식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사람들이었다.
“정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무기를 든 채로는 저 안에 못 들어가.”
태일의 말에 셋은 마지못한 듯 투덜대며 무기를 풀어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런 셋의 모습에 태일은 세 사람을 데리고 의사당에 들어가도 괜찮을지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수많은 이들이 의사당을 찾는다.
언젠가 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품은 젊은 야심가, 의원들에게 로비하여 어떠한 이득을 얻으려는 이해관계자, 매일 같은 행정 업무를 반복하는 공무원, 그리고 의사당을 이끌어 가는 중앙의원.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알아보기 쉬운 이들은 단연 중앙의원일 것이다.
300명의 중앙의원은 제각기 대륙에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과시하듯 많은 부하 직원들을 이끌고 다녔기에 의사당 내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안도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도의 뒤를 따르는 네 사람의 차림새는 주변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마치 찍어낸 듯 양복 차림인 의사당 내부 사람들과 달리 카츠미는 화려한 색상의 무사복을, 페이진은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가죽옷을, 민호는 해진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의사당의 많은 이들이 세 사람을 힐끔거리며 바라보았고, 저희끼리 수군거렸다.
그나마 태일은 루키우스에게 받은 낡은 양복을 입었기에 그나마 눈에 덜 띄는 편이었다.
주변의 힐끔거리는 시선 속에서 갑자기 빽빽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안도 씨,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습격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 많이 했어요.”
통통하고 키 작은 여인이 안도를 보고는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지간히 걱정한 듯 다급히 말하는 그녀의 콧등에 땀이 맺혀 있다.
“난 괜찮아요, 엔비. 다른 의원들은?”
“보고드린 대로 스물다섯 분 외에는 모두 참여하실 거 같아요. 의원님 습격 이후로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어요.”
“…다행이네요.”
안도에게 엄청난 규모의 히트맨들이 투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암살 음모를 꾸린 쪽에서도 더는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경호원분이신가요? 경호 업체 쪽에 이런 분들이?”
메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태일 일행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를 경호해 주신 분들이에요. 다만, 업체 사람들은 아닙니다.”
“네?! 업체 사람이 아니면,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설명하자면 길어요. 어쨌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의원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쨌든 빨리 의원실로 들어가셔야 해요. 모두 목이 빠지라 의원님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네, 그래야죠.”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안도.”
누군가가 안도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딱, 딱.
그가 짚은 지팡이가 의사당 대리석 바닥과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안도에게 다가오는 노인의 뒤편으로 제법 많은 이들이 따르고 있었다.
얼굴 전체에 자글자글한 주름, 잘 다듬어진 수염, 그리고 독기가 있어 보이는 눈동자.
그러나 한눈에 보아도 그의 얼굴형과 눈매, 입꼬리는 안도와 닮았다.
“…해리 의원님.”
“무사했구나. 네가 습격받았다는 말을 듣고 걱정했다.”
“의원님께서 저를요?”
“당연하지 않으냐. 너는 내 아들이니까.”
안도는 그런 해리의 말에 벌레 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늘 온화하고 사무적이던 안도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마음에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해리 의원님.”
“안도, 너는 내 아들이야. 네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지.”
“하고 싶으신 말씀은 그것뿐입니까?”
안도는 자신의 아버지, 해리 애슈턴을 마치 징그러운 벌레 보듯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도 마주하기 싫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만두거라.”
당장 자리를 떠나려던 안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해리는 무거운 목소리로 안도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맞서는 일 따위 그만두란 말이다. 젊은 놈들은 그저 너를 앞세워 이득을 취하려는 것뿐이야. 그런데 왜 네가 앞장을 선단 말이냐.”
“…….”
“바로 어제만 해도 너는 자칫 죽을 뻔했어. 애슈턴 가의 가주이자 의원인 너를 노릴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자들이야.”
“젊은 놈들이 저를 앞세운다고요?”
“그래. 넌 그들에게 이용당할 뿐이니…….”
“이용을 당하는 건 당신입니다. 코르지가 정말 당신의 원한에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을까요?”
“안도……!”
안도는 천천히 걸어가 해리 앞에 섰다. 그러고는 가만히 얼굴을 그의 귀 옆에 가져다 댔다.
“전 할아버님을 원망합니다. 할아버님은 당신을 죽이거나 감옥에 처박았어야 했어요.”
“너……!”
“그리고 저 자신의 어리석음을 원망합니다. 가주로서 첫 명령은 당신의 해방이 아니라 당신의 살해여야 했습니다.”
“…….”
지팡이를 쥔 해리의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귓속말을 마친 안도가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오늘 의결에서 의원님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하겠습니다.”
안도는 그렇게 해리에게 쏘아붙인 뒤,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겨진 해리는 꽤 오래도록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 * *
“오랜만이군.”
높은 첨탑을 올려다본다.
첨탑을 중심으로 세워진 센트럴의 펜타곤.
균형 잡힌 오각형 설계는 ‘평화’를 의미한다고 했다.
피와 전쟁으로 얼룩졌던 야만의 역사 시대를 끝내고 평화로운 시대를 이끌겠다는 오만의 결과물, 그게 바로 펜타곤이다.
그 얼마나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말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센트럴의 지배하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참하고 끔찍하게 죽어 갔는가.
센트럴 지배층들은 폭력적으로 대륙민들을 억압했고, 절대적인 복종만을 강요했다.
그렇게 펜타곤을 바라보는 와중에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준비가 끝났습니다.”
은회색 머리칼의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배치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네.”
시선을 돌려 중앙의사당 입구 쪽을 바라본다.
때마침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긴 장발에 양복 차림, 신태일이다.
“왔군.”
과거, 바로 이 장소에 그와 함께 왔었다.
당시에는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로 곁에서 함께했고, 죽더라도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
의회를 부수고, 첨탑을 부수고, 센트럴을 부수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양복을 입은 채 의회에 들어왔다.
‘증언’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그들의 제도에 따라 삶을 구걸하기 위해.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분노했던가.
태일이 하이퍼루프에 탄 이유를 알았다면, 히트맨들이 아닌 놈을 죽여 버렸을 것이다.
“대장, 저 사람입니까?”
“…그래. 네가 없애야 할 녀석이야.”
“맡겨 주십시오.”
“잘 알고 있겠지만,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해, 제니.”
“네, 대장.”
다른 세계에서 동료로 있을 당시, 제니는 태일을 대장이라 불렀다.
그 누구보다 태일을 따르던 아이가 바로 제니였다.
그리고 이제 기억을 잃은 제니는 배신자를 살해하기 위한 칼이 되어 태일을 노릴 것이다.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는 옛 동료를 보며 태일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건 분명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같은 것이겠지.
“…가자.”
“네, 대장.”
세이드는 양복을 정돈한 채 서류 가방을 들고 천천히 의회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과거, 태일과 함께 의회에 발을 들이던 바로 그때처럼.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