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램 (1)
애슈턴 가문 후계자의 장녀.
그녀가 태어난 날, 애슈턴 가문의 가주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손녀에게 ‘새끼 양[Lamb]’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가주님께서 저렇게 좋아하시는 모습,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그러게. 가주님이 웃는 모습 자체를 오랜만에 봤는걸.”
“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글쎄 주택 몇 채를 아이 명의로 돌렸다잖아요.”
“어머나, 세상에!”
아기는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엄청난 자산을 얻었고, 축복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열 살이던 안도는 그런 어른들의 사정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생명체에 호기심이 들었을 뿐이다.
‘귀엽다.’
꼬물거리는 아가를 관찰하다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가가 꼼지락거리며 안도의 손가락을 양손으로 꼭 붙잡는다.
한창 부동산이나 증권에 대해 떠들던 어른들조차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램이 안도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그러게. 어머나~ 어쩜 저렇게 귀여울까?”
아가는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륵거리며 웃고 있었다.
‘예쁘다.’
램은 잠들 때까지 안도의 손가락을 놓아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안도는 팔이 저리는 와중에도 꼼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토록 자그마한 아이의 손이, 그 보드라움이 너무나도 신기해 아픈 줄도 몰랐다.
램이 두 살이던 해, 사고가 터졌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불씨가 거대한 불길로 번졌고, 손쓸 틈 없이 집 전체를 뒤덮었다.
그 끔찍한 화마 속에서 램의 부모님은 살아남지 못했다.
운 좋게도 램만큼은 불길 속에서 무사히 구조되었다.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렸지만, 램에게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랬기에 가문 사람들은 대부분 램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아가씨에게 그 엄청난 자산이 전부 상속되었다죠?”
“그렇다네요. 이제 후계는 해리 님인데, 지분은 저 갓난아이 쪽이 더 많네요. 가주님도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가주의 둘째 아들이자 안도의 아버지인 해리 애슈턴, 그리고 가주의 손녀 램.
가문 사람들은 해리와 램을 두고 입방아를 찧어 댔다.
그러나 안도는 이번에도 그저 램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램은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아무런 근심 없이 잠들어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손과 발을 연신 꼼지락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할아버지가 안도에게 다가왔다.
말없이 두 사람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안도에게 조용히 말했다.
“안도, 램은 네 동생이다. 가족이지.”
“네, 할아버지. 알고 있어요.”
“가족은 서로를 지켜 주는 거란다.”
“…네.”
그날, 할아버지는 어째서인지 많이 지쳐 보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가주는 살아남은 손녀에게 더욱 큰 애정을 쏟았고, 램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램은 그런 가주의 보살핌 속에서 장난기 많은 왈가닥 소녀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드넓은 정원에서 친구들을 불러들여 마음껏 뛰놀았고, 손재주가 좋아 온갖 재미난 장난감들을 만들곤 했다.
냉정하고 무뚝뚝한 가주도 손녀 앞에서만큼은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변했다.
애슈턴 가(家) 사람들은 그런 가주의 태도를 살피며 램에게 더없이 친절했다. 아직 어린 그녀에게 아부하기 바빴고, 품위 없이 행동하더라도 결코 그녀를 꾸짖지 않았다.
그토록 사랑받으며 자라 온 램이 안도에게 손을 내민다.
“오빠, 자! 이거, 오빠를 위해 만들었어.”
“…….”
램이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를 상자를 건넸다.
딸칵.
통!
상자를 열자 스프링 달린 피에로 인형이 튀어나온다.
인생이란 그처럼 우스운 장난질과 다르지 않았다.
고아이되 그 누구보다 많이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와 후계자의 자식이되 그 누구보다 외롭게 자란 아이.
화재 사고로 큰아버지 내외가 세상을 떠난 이후, 가장 크게 망가진 이는 안도의 아버지였다.
형의 죽음으로 인해 가문의 후계자가 된 아버지는 자신의 방 안으로 숨어 버렸다.
늘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보였고, 경호원을 제외한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 아들조차도 멀리했다.
웃음이 사라진 저택은 텅 비어 버린 것 같았고,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놀랐지? 응? 그치?”
피에로 인형은 안도를 보며 짓궂게 웃고 있었다.
“…유치해.”
“에이, 방금 조금 놀란 표정이었는데?!”
“아니, 전혀.”
“아냐, 아냐. 오빠 눈썹이 약간 움찔했다니까?”
“…….”
“이런 장난은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해.”
“흥, 할아버지도 안 하는 잔소리를 왜 오빠가 하는 거야? 만날 멍한 눈이나 하고서는!”
양손으로 눈꼬리를 좌우로 쫙 벌리며 혀를 쏙 내미는 램의 모습에 안도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램의 그 해맑음이 짜증스러웠다.
“애슈턴 가문에서 낙제생이 배출되는 일만큼은 없어야지 않겠어?”
“흥, 학교 애들은 하나같이 재수 없어.”
“그럼 학교 따위 그만두면 되겠네.”
“응?”
“네가 포기한다면 누가 말리겠어. 안 그래?”
“오빠…….”
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러나 램 역시 안도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설사 그녀가 공부를 포기하더라도 지지할 것이다.
선택권조차 없는 안도와 달리 램에게는 선택할 자유와 그녀를 지지해 줄 할아버지가 있다.
램은 안도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복잡한 지분 관계, 후계 구도, 온갖 음모와 권력 다툼.
성인이 된 안도는 자신과 램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멀어지는 램을 붙잡지 않았다.
“도련님, 조금은 따뜻하게 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장 집사님.”
할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장 집사는 안도와 램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 온 사람이었다.
“두 분은 한 가족입니다.”
“…….”
안도는 아무 말 없이 램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램은 그 해 학교를 자퇴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장 집사는 램에게 여전히 따뜻했다.
할아버지도, 장 집사도, 그리고 램도 안도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교계에서 형의 죽음 이후 모습을 감춘 해리 애슈턴 이야기는 재미난 가십거리였다.
“저택이 마치 흉가처럼 변해 버렸다네요.”
“저런, 불쌍하게도. 형을 잃고 충격이 많이 컸나 보군요.”
“글쎄요. 형이 살해당했다고 믿어서인지, 언제나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있다네요. 겁을 집어먹은 거지요.”
“이런, 이런. 그렇게 심약해서야. 애슈턴 가주께서는 운이 없으시군요. 장남을 잃으셨는데 차남까지 그런 상황이라니. 쯧쯧.”
“그래서인지 방계 쪽에서 호시탐탐 자산을 노리는 모양이에요.”
사교계의 관심은 그대로 어린아이들에게도 전이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장난감을 산처럼 사 모을 수 있는 돈이 쥐어진 아이들.
채 10세가 되기도 전에 자회사들의 사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만화나 연예인 대신 주식과 증권, 회사의 인수 합병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어이, 안도. 애슈턴 가 회사들은 결국 어떻게 되는 거냐? 네 아버지가 물려받지 못하실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
“우리 아버지 얘길 들으니 너희 아버지가 사교 모임에서 사라진 지 꽤 됐다던데, 괜찮은 거야?”
“안도, 너 그러다 너보다 나이도 어린 그 꼬마에게 전부 빼앗길지도 몰라. 조심해야 한다고.”
남의 가정사를 멋대로 헤집어 대는 친구들의 말에 악의는 없었다.
녀석들에게는 애슈턴 가문의 가정사 역시 기업 활동 중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안도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안도는 담담한 얼굴로 조용히 대꾸했다.
“별일 아냐. 아버지도, 나도 아무 문제 없어.”
감정도, 진실도 숨긴다.
또한 참고 버틴다.
안도는 램처럼 학교를 그만둘 수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안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을 지지해 줄 보호자도, 낯선 세상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조력자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목적 없이, 이유도 모른 채 준비된 경로를 따라 걸을 뿐이었다.
상급 학교를 거쳐 마이크로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안도는 할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9구역에 자그마한 회사를 창업했다.
회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9구역 허름한 차고. 그 안에서 안도는 온갖 통신 장치들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의 저택에서 독립해 나와 모처럼 평화를 누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즈음, 드림 코퍼레이션에서 메타휴먼을 만들어 냈고,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다.
메타휴먼을 제작해 세상을 바꾼 인물이 바로 아크 텔로스였다.
“그런 거물께서 이 변두리까지 무슨 일이지?”
마이크로 아카데미에는 언젠가 캐피탈 클럽을 이끌어 갈 공학도들이 몰려든다. 바로 그곳에서 안도는 아크 텔로스를 만났다.
아크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자신의 가문이 경영하는 드림 코퍼레이션의 이사가 되었고,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메타휴먼이라는 엄청난 ‘제품’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아크는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공학자가 되었다.
“섭섭하게 그런 말 말라고, 안도. 그저 친구를 만나러 왔을 뿐이야.”
“바로 그 친구라는 녀석이 얼마 전 경고장을 보냈지, 아마?”
“특허권 보호 신청을 넣었을 뿐이야. 메타휴먼을 연구하겠다니, 아무리 너라도 그건 좀 곤란해.”
“전 대륙에 퍼질 인조인간의 안정성을 테스트하자고 주장하는 거야.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잖아?”
“내부적으로 충분히 거쳤어.”
“일부 기종은 감정을 가지거나 욕구까지 느낀다는 얘기가 있어, 아크. 그런데도 정말 괜찮다는 거야? 그 녀석들이 그저 평범한 로봇일 뿐이라고?”
“꽤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오늘 너와 그런 이야기를 하러 온 건 아냐, 안도. 오늘… 널 찾아온 건 이거 때문이야.”
아크가 진지한 얼굴로 웬 물건을 건넨다.
“이건…….”
언뜻 보기에는 옛 유물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기계 석궁이군.”
안도는 가만히 무기를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애슈턴 가는 방산업체로 일가를 꾸려 왔고, 각종 무기를 제조했다.
그랬기에 웬만한 무기에 대해서는 안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무기는 꽤 독특했다.
어설픈 나무 활과는 다르다. 원시적인 화약 장치와 태엽 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특히 태엽 장치는 누군가에게 받은 장난감 상자와 기본 구조가 같았다.
“어디서 얻은 거지?”
“49구역. 펑크 라이더들이 이런 종류의 물건을 들고 다닌다더군.”
“펑크 라이더?”
“49구역의 무법자 놈들이야. 그만한 물건을 만들 만한 기술조차 없는 놈들이지.”
공장에서 제조되었다기에는 조악하고, 펑크 라이더들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제법 기술력이 들어간 물건이다.
석궁을 살피던 안도는 곧 장치에 사용된 부품들이 눈에 익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부품 중 몇 개에 애슈턴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애슈턴 가 소유 공장에서 다루어지는 부품들이지만, 당연하게도 애슈턴 가에서 기계 석궁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뭐라도 짐작 가는 게 있어?”
“글쎄.”
미지근한 안도의 대답에 아크가 팔짱을 낀 채 눈살을 찌푸렸다.
“최근 49구역에 이상한 무기들이 잔뜩 풀리고 있어.”
“이상한 무기?”
“그래. ‘사막여우’라는 녀석이 묘한 무기들을 만들어 유통한 모양이야.”
“…이게 사막여우의 물건이라는 건가?”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평범한 물건이 아닌 건 확실하지. 더구나 애슈턴 가의 문장까지 찍혀 있고 말이야.”
“내가 직접 알아보도록 하지. 이 물건은 내게 맡겨 두는 게 어때?”
“얼마든지. 대신 뭐라도 알아내면 내게 얘기해 줘.”
“그러지.”
그러나 안도는 이미 아크가 가져온 무기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파악한 상태였다.
석궁의 몸체 부분에 희미하게 음각된 글씨, ‘L.A.M.B’.
램의 솜씨였다.
아크가 떠난 뒤, 곧장 할아버지의 저택이 있는 제로 구역으로 향했다.
램이 그런 안도를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이야, 안도 오빠.”
“…램.”
“손에 들린 그거, 내 물건 같은데.”
램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얼굴로 안도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이걸 만들었다고?”
“그래. 내가 만들었는데, 도둑맞았어.”
“49구역에서 이 물건이 유통되고 있었어.”
“도둑맞았다고 말했잖아.”
“램.”
“할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마.”
그건 부탁이 아니었다.
“사실 오빠에게 나쁠 게 없잖아? 내가 마음대로 행동할수록 오빠에게는 좋은 거 아냐?”
“…….”
램 또한 이제는 알고 있었다.
자신과 안도가 어떤 관계인지, 어째서 안도와 친해질 수 없는지.
그날 안도는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램에게 어떤 표정을 보였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 길로 도망치듯 제로 구역을 떠나왔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