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48화 (149/220)

148화 재회 (3)

창고에서 열한 명의 목숨을 거두는 사이, 세이드는 제법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어째서인지 캡슐에서 눈을 뜬 이들을 ‘메타휴먼’이라 부른다.

메타휴먼에게는 이성과 자아가 없으며, 그저 묵묵히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생산’된 메타휴먼들은 곧 50구역 공장 지대에 배치된다.

“생산되었다고? 너희가 나를 만들었다는 거야?”

“저, 저희는 그저 이곳의 경비원에 불과합니다. 메타휴먼의 제조사는 드림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입니다!”

“네 설명에 따르면, 메타휴먼에게는 이성도, 자아도 없어. 그럼 나는 뭐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메타휴먼은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감정이나 자아도 없기에…….”

“그럼 이 방 안에 있는 녀석들도 인형 같은 꼴로 깨어날 거라는 뜻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하나같이 믿기 힘든 말이었다.

인형이 되어 버린 인간들과, 위화감 없이 그런 인간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자들.

“혁명군은 어떻게 됐지?”

“예? 히, 히익!”

세이드가 팔을 살짝 들어 올리자 깜짝 놀란 경비원이 온몸을 덜덜 떤다.

“센트럴에 맞서던 혁명군 말이야.”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레지스탕스나 용병이라면 모를까, 혁명군이라는 자들에 대해서는… 들은 적조차 없습니다.”

2022년 4월. 그때껏 이쪽 세계의 대륙에 혁명군 따위는 존재한 적조차 없었으며, 50구역 공장 지대 역시 여전히 가동되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 전혀 다른 과거.

어찌 되었든 센트럴과 캐피탈 클럽은 건재하다.

그렇다면 세이드가 할 일 역시 자명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캡슐 속에는 담긴 이들은 혁명군들이다. 특히 알렉세이 딘, 그가 인형처럼 노예로 살아가게 둘 수는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언제쯤 깨어나지?”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보통 일주일 이상은… 걸립니다.”

“일주일이라…….”

“그, 그사이 센트럴에서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병력을 보내올 겁니다.”

마지막으로 살려 둔 녀석답게 자신이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제법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겠지.”

잠시 생각하던 세이드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경비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지.”

“뭐든 대답해 드릴 테니 제, 제발 목숨만은…….”

“근방에 캡슐을 옮겨 둘 만한, 안전한 장소가 있나?”

경비원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마, 망가진 메타휴먼들이 옮겨지는 병동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이라면 안전할 겁니다.”

* * *

“세이드,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딘을 빼돌렸다니. 너,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야?”

다급히 묻는 태일을 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메타휴먼에 대해서?

아니면 동료들에 대해서?

그도 아니면 센트럴에 대해서?

한때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겠다고 여겼을 정도로 아끼던 친구였다. 그러나 태일과의 인연은 끊어졌다.

그와 함께 센트럴에 맞서던 시절도 있지만, 결국 태일은 허상과도 같은 민중을 위해 가장 강력한 무기를 포기했다.

그 나약함이 분열을 이끌었고, 혁명군은 붕괴했다.

‘그래, 그게 너의 탓은 아니지.’

혁명군의 붕괴는 태일을 끝까지 믿지 못한 간부들의 탓인지도 모른다.

당장 태일이 사라짐과 동시에 혁명군은 너무도 허무하고, 너무도 빠르게 무너지지 않았던가.

태일의 존재는 그저 단순한 리더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세이드는 이미 한 차례 태일을 죽이려 했고, 결코 다시는 그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고민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혁명군 동지들 상당수가 이쪽 세계로 넘어왔어. ‘메타휴먼’이라는 이름으로.”

“……!”

“혁명군뿐만이 아니야. 우리가 살던 세계의 인간들이 이쪽 세계로 꾸준히 넘어오고 있어.”

태일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채 세이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 태일의 눈동자는 세이드와 달리 검은색을 띠고 있다.

“너는 어째서인지 메타휴먼이 아닌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 넘어온 모양이군.”

“…….”

“그래, 생각해 보면 너는 늘 운이 좋았어.”

동료이자 친구였던 태일과 결국 함께할 수 없던 이유.

센트럴에 대한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세이드에게는 아무것도 없지만, 태일에게는 지켜야 할 게 점차 많아졌다.

동료들 틈에서 웃음이 많아졌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그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도 망설였다.

세이드는 그런 태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딘을 빼돌려 인형 병동으로 옮겨 놓은 사람이 바로 나였어. 대부분은 그런 꼴이지. 기억도, 자아도 모조리 잃은 채로 인형처럼 살아가고 있어.”

어쩌면 알렉세이 딘, 그 녀석이라면 조금이나마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녀석이라면 과거의 기억을 온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껏 찾아낸 녀석들 중 과거를 기억하는 이는 자신뿐이었다.

아니, 눈앞에 한 명이 더 있다.

자신이 죽이려 한 리더 태일이.

고개를 숙인 채 세이드의 말을 듣고 있던 태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괜찮은 거냐?”

그 말을 들은 세이드는 저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그래, 태일은 이런 녀석이었다.

어떻게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걱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나약함으로는 결코 센트럴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모진 말을 뱉어 냈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난 더 이상 네 동료가 아니야.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다.”

“…그렇겠지.”

태일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그런 태일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혁명군이 무너지던 당일까지도 세연은 무사했어.”

녀석이 가장 알고 싶어 할 정보를 건넨 뒤,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찌감치에서 하이퍼루프를 향해 PAV 한 대가 날아들고 있었다.

* * *

“이거… 대단한데?”

PAV(Personal Air Vehicle) 내부는 마치 안락한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푹신한 소파와 홀로그램 장치, 심지어 침대와 오락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PAV는 안도와 태일 일행을 태우고 공중에 떠오르는 그 순간까지 기체 내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페이진은 마치 누가 빼앗기라도 할 새라 황급히 오락기 앞으로 달려가 스크린 앞에 앉았다.

그러나 카츠미는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항공 기술은 민간에 개방되지 않는 게 아니었나?”

“그 말이 맞습니다. 공식적으로 이 기체들은 센트럴의 소유이지요.”

“눈 가리고 아웅이군.”

말로는 센트럴 소유라 해도 결국 부자라는 녀석들이 제 마음대로 하늘을 오가고 있지 않은가.

카게구미 가문에서 몇 번이나 개인 항공기 구매 의사를 전할 때마다 센트럴은 온갖 핑계를 댔다.

그러나 군사기밀이니, 기술적 안정성이니 하는 핑계는 전부 헛소리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차별받고 있을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여러분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리에 앉은 안도가 태일, 민호, 페이진, 카츠미를 둘러보며 고개를 숙였다.

민호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의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닐 텐데.”

“맞는 말씀입니다.”

민호의 시선이 창밖 아래쪽을 향했다.

하이퍼루프 객실에 남겨진 라이언이 레이놀즈를 부축하면서 걱정스레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당신 경호원이 많이 걱정하는 것 같던데…….”

라이언은 한사코 안도를 따라오려 했지만, 레이놀즈를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해 결국 남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보니 졸지에 안도의 경호를 태일 일행이 전담하게 된 꼴이었다.

“여러분의 힘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여러분의 힘을 빌리는 게 최선이겠지요. 라이언 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냉정하군.”

“…제 실책입니다.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했어요.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대개 의원이니 대표자이니 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며 쉽게 타인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실책을 순수하게 인정하는 일 역시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안도는 자신의 절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애당초 경호원 주력을 미끼에 붙인 뒤, 자신은 그저 두 명의 경호원만을 대동했을 정도이니,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보다 태일 씨는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썩 좋지 않은데요.”

“…염려는 고맙지만, 괜찮아.”

“대체 아까 그 사람은 누굽니까? 어떻게 혼자 그 많은 히트맨들을 단번에…….”

“미안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이번 일과는 무관한 녀석이야. 우릴 도울 가능성도… 없고.”

“그렇습니까?”

안도의 얼굴에서 언뜻 아쉬움이 스쳤다.

터무니없는 힘으로 단박에 히트맨들을 전멸시킬 정도의 사내다. 그런 전력에 탐을 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카츠미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의회까지 시간 내에 도착할 수는 있겠지?”

“아슬아슬하겠지만, 늦지는 않을 겁니다.”

안도가 테이블을 톡톡, 치자 한가운데에 홀로그램을 통해 PAV의 경로가 표시되며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동 항해 시스템과 현재의 기후 상태를 고려할 때, 예상 도착 일시는 8월 15일 08시 53분입니다.”

“개원은 10시이니,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겁니다.”

안도의 말에 카츠미와 민호는 제각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때까지는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뭐, 또다시 암살 시도가 있지만 않다면… 괜찮겠지.”

틱! 티틱! 틱!

그 와중에 페이진은 지치지도 않는지 오락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네, 나머지 분들은 잠시라도 눈을 붙이시지요. 놈들도 그렇게나 당했으니, 섣불리 공격해 오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안도가 태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안도를 보며 태일이 복잡한 심경을 숨긴 채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의회에서 뭐라 증언할지 미리 상의할 필요가 있겠지.”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알고 있어. 서두르지, 의원님.”

안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패드를 꺼내 들었다.

쿨… 쿨…….

비행이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은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하긴 그렇게 무리해서 전투를 벌였으니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태일과 안도는 조금도 쉴 수 없었다.

“아무래도 표현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수당을 너무 자극하는 발언은 위험해요.”

“적당히 자극적인 것도 좋지 않겠어?”

“의원들은 본능적으로 극단적인 발언을 싫어합니다. 그건 보수당뿐만 아니라 청년당도 마찬가지이죠. 자칫 우리 쪽 표도 잃을 수 있어요.”

“귀찮군.”

“그게 정치이니까요. 그리고 이 표현도 조금 위험합니다. 자칫 LAPD 조직 자체에 대한 정치공세로 보일 수 있어요. 말꼬리를 잡히면 온갖 트집을 잡힐 겁니다.”

“너무 쪼잔하게 구는데.”

“단어 하나,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죽일 듯 몰아붙이는 게 이쪽 바닥입니다. 더구나 이번 의결에서는 더더욱 심하겠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몇 차례나 증언 내용을 수정하고 손봤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 이상이 훌쩍 지나 있었다.

“조금 쉬도록 하죠.”

“…좋은 생각이야.”

“맥주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러지.”

안도가 냉장실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그중 하나를 태일에게 건넸다.

“무려 정당의 대표씩이나 되는 양반이 고생이 많군.”

“뭘요. 그래 봐야 보수당의 위성 정당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걸요.”

그저 보수당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 바로 청년당이었다.

“그런 정당이 보수당에게 반대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죠.”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

“생명을 위협당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목숨을 맡겨 가면서까지… 센트럴 오더를 막으려는 이유를 묻는 거야.”

처음에는 안도의 의도를 의심했다.

혁명가로 살아온 태일에게 있어 의회에서 말로 떠들어 대는 의원들은 그저 입만 산 얼간이들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안도는 나름의 전장을 견뎌 내고 있었다.

적어도 센트럴 오더를 막겠다는 그의 의지만큼은 진심이었다.

“글쎄요. 아마도… 동생 때문인 거 같습니다.”

안도가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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