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47화 (148/220)

147화 재회 (2)

“세이드, 이 자식. 어디 갔어?!”

“글쎄, 안 보인 지 꽤 됐어. 왜 또?”

“프로토타입들을 전부 훔쳐 들고 나갔어, 이 망할 도둑놈의 새끼가!”

“시제품이어도 네가 만든 것들이 웬만한 무기보다 성능이 좋잖아.”

“입 닥쳐! 내가 만든 무기는 오로지 내가 허락한 녀석들만 쓸 수 있어. 대체 이게 몇 번째야?!”

“그냥 녀석한테 그럴듯한 무기 하나 만들어 줘. 그럼 좀 조용해지겠지. 대체 언제까지 고집부릴 거야?”

“흥, 그 자식한테 소울웨폰을 들려 주라고? 아마 피바람이 불걸?”

“하긴… 그건 좀 무섭네.”

하지만 결국 딘은 알마티 전투를 앞둔 전날, 세이드에게 검 한 자루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 세이드가 들고 있는 장검 ‘바리사다’였다.

“나머지 열쇠 조각은 어디에 있지?”

세이드의 물음에 태일은 대답 없이 가만히 그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준 적이 없었다.

아는 거라고는 어릴 적 50구역을 잠시 떠난 적이 있고, 무슨 일인가를 겪은 뒤 복수에 미쳐 살았다는 사실 정도일까.

“없어, 여기에는.”

“…그걸 믿으라고?”

“세이드, 여기는 우리가 살던 세계가 아니야. 완전히 다르단 말이야.”

“…….”

“열쇠 조각을 가졌다 해도 우리가 손에 넣은 소울은 이쪽 세계에 없어.”

태일의 대답을 들은 세이드가 말없이 바리사다를 거두어 허리춤의 칼집에 집어넣었다.

지금 두 사람이 발 딛고 있는 대륙에는 혁명군이 존재한 적조차 없다.

녀석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긴 이쪽 세계에서, 대륙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모를 리 없었다.

센트럴이 존재하고, 50개의 구역 역시 그대로 존재하지만, 혁명군이 존재하던 세계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여기는 태일과 세이드가 살던 세계와 닮은, 그러나 완전히 다른 세계다.

“…다르지 않아.”

세이드의 목소리는 마치 얼음장 같았다.

“센트럴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전 세계와 다른 형태라 해도, 어찌 되었든 센트럴이 존재한다.

세이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세이드는 센트럴을 부수기 위해 존재하며, 센트럴이 남아 있는 이상, 세이든의 목적 또한 오로지 하나뿐이다.

“난 센트럴을 부순다.”

그 말을 끝으로 세이드는 천천히 뒤돌아서서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그가 태일의 능력을 목격하고 도움을 준 것은 그저 태일의 열쇠 조각을, 숨겨 둔 소울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소울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된 이상, 태일이나 하이퍼루프 따위에 더는 볼일이 없었다.

태일과 함께할 마음도, 태일을 공격할 마음도 없었다.

태일이 그런 세이드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세이드의 발걸음이 멈춰 선다.

“너희들이 나를 공격한 날,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알렉세이 딘은 기억하지 못했고, 클라이드는 말해 주지 않았다.

알렉세이 딘은 사막을 헤맸고, 클라이드는 센트럴의 개가 되었다.

알렉세이 딘은, 클라이드는, 세이드는 어째서 붉은 눈동자를 가진 채 이쪽 세계에 나타났는가.

혁명군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혁명군은 괴멸되었다.”

세이드의 목소리는 그저 담담했다.

“네가 사라지고 난 뒤, 센트럴이 공격해 왔어.”

짐작은 했다. 결국 그리될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세이드의 입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듣게 되자,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 왔다.

“혁명군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모조리 붙잡히거나 살해당했어.”

센트럴과 맞서기 위해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료들이다.

함께 호흡했고, 함께 밥을 먹었으며, 전장에서 서로의 등을 맡겼다.

그러나 정작 그런 동료들의 최후는 너무나 간략하고 무미건조한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너는…….”

“나는 붙잡히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뭐?”

세이드는 지금 바로 이곳에 멀쩡히 살아 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지.”

“…….”

“눈을 떴을 때, 나는 이쪽 세계에 있었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셸터에서 딘과 만났을 텐데, 그 녀석에게도 물어봤나? 녀석은 네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지?”

“…….”

세이드는 태일이 딘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아니, 사실 관심도 없어.”

지극히 세이드다운 태도였다.

그에게 중요한 건 센트럴을 없애 버리는 것뿐이다. 그 외의 것은 세이든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태일은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쪽 세계에서 다른 녀석들을… 만난 적 있어? 딘과 내가 만났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입 끝에 세연의 이름이 맴돈다.

혹시 세연이 어디에 있는지, 여전히 살아 있는지 녀석이라면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이드의 입에서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딘을 빼돌린 사람이 바로 나야.”

“빼돌리다니, 대체 어디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세이드가 뒤돌아서서 냉정한 얼굴로 태일을 바라보았다.

“알렉세이 딘, 그 녀석조차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 * *

혁명군이 전멸하고 모든 것이 끝난 직후.

‘세이드 아저씨.’

너무나도 그리웠던 목소리가 세이드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는 그녀를 볼 수 있다.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

‘아직 아니에요, 아저씨.’

어째서?

나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데.

‘아저씨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요.’

그 목소리에 응답하고 싶었다.

실패했다고, 전부 그르쳤다고, 그러니 그냥 너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이제 모든 게 끝났으니 그저 쉬고 싶다고.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좀 더 나중에… 아저씨가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그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 목소리를 끝으로 세이드의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귓가에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마 단계가 해제됩니다. 코드네임 AD―004. 10… 9… 8… 7…….]

액체로 가득한 공간.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그 좁은 공간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죽었을 텐데. 분명…….’

센트럴 적들에게 포위되어 더는 싸울 수 없게 된 순간, 세이드는 바리사다로 자신의 배를 갈랐다.

무수한 피가 흘렀고,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렇게 의식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 바리사다의 형태가 연기처럼 변하더니, 곧이어 세이드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꿈이었을까?

꿈이라면 어느 쪽이?

죽은 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니. 둘 다 꿈은 아니다.

꿈이라면 오직 하나, 죽은 그녀와의 대화뿐이다.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것은 몸속 바리사다의 존재였다.

어째서인지 몸속에 감도는 그 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여전히 살아 있다.

[6… 5… 4…….]

귓가에 정체 모를 카운트다운이 들려오는 와중에 가만히 손을 움찔거린다.

쿠구구구구…….

세이드의 손에서 형성된 검은 구체가 몸을 둘러싼 액체를 밀어내고, 온 사방을 날뛰며 파동을 만들어 냈다.

[3… 2…….]

파직!

검은 구체의 난동으로 인해 시야의 유리에 금이 갔고, 그 균열은 빠른 속도로 번져 갔다.

[1…….]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직전.

쾅!

쨍그랑!

캡슐이 완전히 부서지며, 세이드의 몸뚱어리가 튕겨 나왔다.

“쿨럭! 쿨럭!!”

정체 모를 액체를 토해 내며 주변을 살폈다.

거대한 창고 형태의 방.

자신이 이제 막 빠져나온 것과 같은 모양의 캡슐이 줄지어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똑바로 서서 손을 뻗었다.

곧이어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검은 기체가 장검 바리사다의 모습을 갖추었다.

“소중히 쓰라고! 내가 영혼을 갈아 만든 무기이니까.”

누가 뭐라 해도 알렉세이 딘의 능력은 진짜였다.

놈의 능력을 오로지 센트럴의 파괴에만 사용했다면 좋았을 터다.

그렇게 알몸으로 검을 소환해 낸 순간, 방 전체에 요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이이이!!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침입자라…….

만약 자신을 말하는 거라면, 표현이 틀렸다.

세이드는 침입한 쪽이 아니라, 멋대로 납치되어 들어온 쪽이었으니까.

주변의 소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찰나, 바로 옆 캡슐 속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알렉세이… 딘?”

캡슐 액체 속에 잠든 이는 틀림없이 알렉세이 딘이었다.

딘뿐 아니라 방 안 캡슐에 잠들어 있는 녀석들 모두 낯이 익었다.

평소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은 탓에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했지만, 전부 혁명군에서 함께하던 녀석들이다.

모두가 어떤 영문인지 캡슐 속에 담긴 채 이 방 안에 갇혀 있었다.

그렇다면 모두를 이곳에 가둔 놈들이 누구인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노릇이었다.

애당초 혁명군을 공격해 온 녀석들도, 그들을 납치해 무슨 짓인가 벌일 수 있는 놈들도 오로지 센트럴뿐이니까.

“서둘러!”

“이쪽이다!!”

문 바깥쪽에서 목소리와 함께 요란한 발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러더니 곧이어 문이 열렸다.

순찰용 곤봉에 비상용 권총을 허리춤에 찬 사내들이 문을 열고 들이닥친다.

여러모로 봐도 LAPD나 군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사내들은 알몸으로 칼을 쥐고 있는 세이드의 모습을 보고는 꽤 놀란 듯했지만, 황급히 방 안에 뛰어 들어와 세이드의 주변을 포위했다.

“뭐야? 캡슐을 부수고 나온 거야? 기계 오작동인가?”

“칼은 또 어디서 구한 거야?”

“손 들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곤봉을 치켜든다.

설마 고작 저런 무기로 자신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애초에 지금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가?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물론 센트럴의 개들을 상대로 자비를 베풀 마음은 없었다.

천천히 바리사다를 들어 올린다.

그런 가운데, 바로 옆 캡슐에 담긴 딘이 떠올랐다.

“모두 없애 버리는 건 좀 곤란하겠군.”

적어도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줄 한 놈 정도는 살려 둬야 했다.

“이 녀석, 무기 버려!”

“뭐야, 설마 로보티안인가?”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사내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일단 제압해!”

“너희들 따위가?”

사내들이 곤봉을 치켜들고 마치 개라도 때려잡는 모양새로 달려든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평범한 민간인에 불과했다.

소울을 다룰 줄도 모르는 무능력자.

그런 놈들이 감히 자신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콰쾅!! 쾅!!

“크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악!”

사내들의 몸뚱어리는 보통의 수십 배에 이르는 중력에 압도되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세이드는 느긋하게 자신이 제압한 이들의 숫자를 셌다.

총 열둘.

너무 많은 숫자였다.

“지금부터 나는 단 한 놈만 살려 둘 생각이야. 그러니까 질문에 잘 대답해.”

“너, 이 새끼! 감히 메타휴먼 따위가!”

퍽!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내의 몸이 그대로 터져 산산이 흩어진다.

이제 열하나.

“으, 으아아아아!!”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어 버린 방 안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 고함을 질러 댔다.

“일단 첫 번째 질문. 여기가 어디지?”

“49구역… 49구역 메타휴먼 창고야!”

퍼억!

질문에 대답한 사내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

이제 열.

“말이 짧네.”

49구역, 자신이 최후의 순간에 목숨을 끊은 바로 그곳이다.

49구역에서 마지막까지 센트럴 놈들과 맞섰고, 그곳에서 혁명군은 전멸했다.

한편, 사내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린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이드는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센트럴 장교는 세이드가 그처럼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며 그저 히죽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놈은 목숨처럼 아끼던 여인의 목을 베며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퍽!

바리사다를 슬쩍 비틀자 아내와 아들을 운운하던 사내의 몸이 완전히 부서진다.

이제 아홉.

“질문에만 대답하도록.”

어째서 다시 살아났는가.

‘아저씨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요.’

그래, 꿈속에서 그녀가 알려 주었듯 세이드에게는 아직 할 일이, 복수가 남아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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