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45화 (146/220)

145화 새벽 열차 (5)

“첫째 형, 형은 나중에 뭘 하고 싶어?”

“응?”

당시 질문을 한 게 누구였는지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홉째였던가, 아니면 열째였던가.

그래, 핀잔을 줬던 녀석은 분명 다섯째였지.

“이 바보야, 형이야 당연히 보스가 되는 거지! 형이 제일 강하잖아!”

아니. 마피아 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음악가.”

“…응?”

“난 음악가가 되고 싶어.”

“그게 뭔데?”

평생 50구역에서, 그것도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기에 음악가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만나 본 적 또한 없다.

다만, 원장이 잘난 척 낡아 빠진 바이올린을 켜며 음악가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래.”

그 말을 들은 날부터 민호의 꿈은 음악가가 되었다.

맥박 소리, 심장의 박동 소리, 호흡 소리 등 생명체에게 흘러나오는 온갖 소리들…….

마피아는 소리를 없애는 이들이지만, 음악가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하이퍼루프 객실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방어막을 만든 라이언이 철저히 안도를 지키는 사이, 카츠미는 외부의 공격을 연달아 막아 내며 기절한 레이놀즈를 라이언의 방어막 안으로 밀어 넣었다.

태일, 페이진은 외부의 마피아들을 저격하며 버텨 냈다.

그러나 주변을 포위한 히트맨들의 숫자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뿐이었고, 어느새 하이퍼루프 객실 곳곳이 그을리고 부서졌다.

그러나 그 혼란한 와중에도 민호는 오로지 객실 안, 가장 거대한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휘이이이이!!

쌍둥이가 만들어 낸 거대한 회오리바람, 소울의 장벽.

그 능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바람에 섞인 온갖 소리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장벽 내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일종의 통로와도 같다.

쌍둥이는 그 안에 머무르며 하이퍼루프 주변으로 히트맨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결국 쌍둥이를 막아 내지 못한다면, 히트맨들은 끝도 없이 밀려들 것이다.

‘내가 끝내야 해.’

태풍의 중심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간다.

단단하게 둘러쳐진 무형의 장벽 앞에 이르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집중력이 극한에 이른 이 순간, 시각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쌍둥이가 만들어 낸 소울들은 어지럽게 뒤엉킨 가운데,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크거나 작으며, 높거나 낮고, 느리거나 빠르다.

그처럼 저마다의 리듬으로, 저마다의 가락으로 울리며 거대한 토네이도를 형성해 낸다.

그러나 그 와중에 민호의 귀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미세한, 당장에라도 꺼질 듯 자그마한 소리.

쨍… 쨍… 쨍…….

집중해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이지만, 그 소리는 장엄한 연주 속 불협화음과도 같았다.

거대한 장벽의 약한 고리, 가장 가느다란 한 줄기의 소울이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불협화음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칼끝을 겨눈다.

그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방지긴.”

“죽어 버려.”

별안간 불협화음이 멀어졌다.

화려하고 풍성한 연주가 귓가에 어지럽게 울려 온다.

저마다의 특성을 가진 소리들이 실체화되어 민호의 팔을 마구 베었다.

“크윽……!”

팔 곳곳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진다.

단검을 쥔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린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물러설 곳은 없다. 만약 물러선다면, 사방을 메운 소리들이 민호의 몸뚱어리를 집어삼킨 뒤, 갈가리 찢어발길 것이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딘의 목소리가, 단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치가 바뀌었지만, 규칙은 그대로야.”

“…알고 있어.”

녀석은 지금 민호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자신을 다룰 만한 인물인가.

과연 힘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가.

하긴 단검을 만든 알렉세이 딘 역시 그처럼 오만한 사람이었지.

쨍… 쨍…….

미세한 쇳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고, 숨긴다 해도 결국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거대하고 화려한 변주 속에서 미세하게 울리는 곳을 향해 단검의 궤적을 돌린다.

쨍!

바로 그 소리를 향해 과감하게 딘의 단검을 내리찍는다.

그와 동시에 모든 소리들이 일거에 사라졌다.

태일은 어지러운 전투 속에서 틈틈이 민호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저 녀석…….’

세상에는 가끔 존재한다, 천재라는 녀석들이.

발명품을 숨 쉬듯 만들어 내던 알렉세이 딘, 세상 모든 소울과 교류하던 세연, 오로지 동생을 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센트럴 최악의 연구소를 홀로 부숴 버린 클라이드.

그리고 지금 눈앞의 민호 역시 그중 하나였다.

민호는 눈을 감은 채 어떤 감각만으로 소울의 복잡한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직 서투르지만.’

바람의 흐름이 바뀐 짧은 틈에 민호의 팔이 난도질당했고, 나아가 회오리가 그의 몸을 감쌌다.

자칫하면 민호의 온몸이 분쇄당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민호는 그 짧은 틈에 검의 궤적을 바꾸었다.

민호는 그 위험천만한 순간까지도 바뀐 소울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딜 감히!”

“어림없어!”

그제야 민호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쌍둥이의 표정이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민호는 돌개바람의 한 지점을 향해 단검을 뻗었다.

텅 빈 허공에 불과한 공간, 검 끝이 미친 지점으로부터 공간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민호와 소울 장벽 사이에 거대한 진공 지대가 만들어진다.

어지럽게 휘몰아치던 돌개바람이 바로 그 공간 속으로 흡수되었다.

돌개바람 정가운데 서 있던 쌍둥이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른다.

끼이이이이익!!

폭주하는 회오리바람으로 인해 하이퍼루프 객실 벽면이 통째로 찌그러졌다.

바람이 멎어든다.

그와 함께 쌍둥이가 소환해 낸 가짜 안도의 목과 희생자들의 주검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한편, 쌍둥이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사람의 형상 대신 독수리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잦아드는 바람 속에서 독수리 한 쌍은 양방향으로 흩어지며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철컥.

“첫째라면 해낼 줄 알았지.”

페이진이 히죽 웃으며 왼쪽 독수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철컥!

탕!!

“어딜 도망가는 거지?”

타탓!

어느새 벽을 발판 삼아 날아오른 카츠미의 그림자가 오른쪽 독수리 머리 위로 드리워진다.

서걱!!

“끼에에에에에엑!!”

몸통에 총알구멍이 뚫리고, 토막 난 독수리의 깃털이 사방에 휘날린다.

“돼, 됐다!”

그 모습을 본 라이언은 탄성을 내질렀지만, 안도는 땅바닥에 뒹구는 동료들의 시신을 보며 그만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의원님, 이제 괜찮습니다. 곧 의원님을 모실 PAV가 이곳으로 도착할 겁니다!”

라이언의 목소리를 들은 태일이 고개를 내저으며 양팔을 펼쳤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야.”

통로를 연결해 증원을 불러오던 쌍둥이는 쓰러뜨렸지만, 여전히 수십에 이르는 히트맨들이 하이퍼루프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가운데 PAV가 안전히 들어올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고작 이 정도로… 하아… 하아…….”

“쿨럭! 젠장… 야, 좀… 움직여 보라고, 첫째.”

“남 말… 하기는.”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은 완전히 지친 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피와 깃털을 흠뻑 뒤집어쓴 가운데,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셋 모두 소울웨폰을 사용하며 너무 많은 힘을 폭발시켰다.

여기서 더 무리하게 움직인다면, 지난번처럼 무기에 잡아먹혀 의식을 잃고 폭주할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더는 사방에 번개가 내리치지 않았지만, 공격을 병행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파츠츠츠츠…….

하이퍼루프 객실 전체가 푸른 전류의 막에 뒤덮이며 꽃봉오리와 같은 형태를 이룬다.

일렉트릭 네트(Electric Net).

촘촘히 드리워진 전류의 그물망은 외부에서 쏘아지는 온갖 탄환들을 막아 내고, 객실 내부는 일시적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세상에…….”

가까스로 안도 주변에 방어막을 유지하고 있던 라이언은 하이퍼루프 객실 전체를 드리운 막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지금껏 본인과 안도, 레이놀즈까지 고작 세 사람을 지키는 것만으로 쩔쩔맸건만, 태일은 더 넓은 범위를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객실 내부의 안전을 확인한 라이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능력을 거두었다.

그제야 라이언의 등 뒤에서 나온 안도는 쌍둥이가 소환한 시신들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가짜 안도는 물론, 안도의 보좌관들까지, 전용기에 오른 이들은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했다.

희생자 중에는 라이언의 동료들도 있었다.

호쾌하던 경호팀장, 자신감 넘치던 막내까지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아직 경호팀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의원님,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어떻게든 센트럴에 가야 합니다.”

안도 애슈턴이 의결 전에 의회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경호하는 것.

라이언 혼자 남았다 해도 임무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막을 펼친 채 상황을 살피던 태일이 조용히 말했다.

“곤란한데. 이래서야 꼼짝도 할 수 없어.”

태일이 쳐 놓은 전류의 그물망에는 온갖 공격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치명적인 공격은 없다. 하지만 잠시도 그물망을 느슨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긴 공격이 이어졌다.

“저 녀석들, 그저 암살이 목적이 아니야.”

태일 일행의 힘을 파악했기 때문인지, 놈들은 섣불리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쉴 틈 없이 공격을 퍼부어 댈 뿐이었다.

마치 발목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라이언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의원님을 의회에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등을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페이진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염병, 고작 당신 한 명 막겠다고 암흑가 히트맨들을 전부 끌어 모은 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의원님은 청년당 당수이시다. 의원들의 헤드(Head)란 말이야. 그런 분이 빠지시면 의결은 보나마나겠지.”

라이언의 말에 태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9구역 LAPD가 지원 올 가능성은 없나?”

안도는 한눈에 보아도 9구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9구역 곳곳에서 쉬지 않고 광고가 나오던 NineD를 ‘자신의 회사’라 할 정도인데다 캐피탈 클럽 소속이기까지 했으니, 그가 바로 9구역의 관리자일 것이다.

“올 거면 벌써 왔을 거요.”

안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LAPD는 지역자치체제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센트럴의 지휘를 받지요.”

“젠장.”

하긴 50구역에서도 LAPD는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청장의 전화 한 통에도 벌벌 떨지 않았던가.

센트럴은 군과 경찰 등 공적인 무력 집단의 지배권을 결코 놓지 않았고, 센트럴의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당연하게도 보수당 쪽 인사였다.

“LAPD 놈들도 한통속이라는 거군.”

“적어도 9구역에 사는 이상 직접 나를 공격하지는 못하겠지만, 방치는 할 수 있겠지요.”

“증원은 없다는 거군.”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태일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좌측 수풀을 바라보았다.

태일뿐 아니라 민호, 카츠미, 페이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안간 좌측에서 거대한 소울의 기척이 느껴진다.

최소 태일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

거대한 소리의 울림에 당황한 민호가 눈을 크게 뜬 채 어두운 수풀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대체.”

곧이어 바로 그 위치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건!”

곧이어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근방 수풀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운석?!”

모두들 당황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적어도 태일은 그 능력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이전 세상에서 동료들에게 버림받던 순간에도 그 능력을 마주했다.

‘코스믹 하울링(Cosmic Howling).’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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