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44화 (145/220)

144화 새벽 열차 (4)

“도망?! 어디로 말입니까?”

안도가 태일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결이 내일이라고 했잖습니까! 빨리 센트럴로 가야 한단 말입니다! 도망이 아니라 돌파를 해야지!”

태일은 그런 안도를 보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제인과 친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는데…….’

아무 대책도 없이 마피아들의 싸움을 중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제인과 안도는 꼭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안도의 고집과 무관하게 상황은 썩 좋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악!!”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그 직후, 온몸이 난도질당한 듯 상처투성이가 된 경호원의 몸뚱어리가 회오리 속에서 튕겨 나왔다.

“레이놀즈!”

다른 경호원이 만신창이가 된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고함을 내지른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잊지는 않은 듯 철저하게 안도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카츠미가 쓰러진 레이놀즈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크으으윽…….”

“괜찮아! 숨은 붙어 있어. 하지만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해!”

몰아치는 돌개바람 속에서 어느새 인간으로 변한 남매의 모습이 보인다.

금색 머리칼에 투명한 피부.

꼭 닮은 쌍둥이는 몰아치는 바람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안도와 태일을 노려보고 있었다.

쌍둥이를 향해 발터의 권총을 겨누고 있던 페이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녀석들, 어째서 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지?”

페이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신중하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사격수의 시야로, 사격수의 풍경으로 나름의 필드를 펼친다.

그를 통해 하이퍼루프를 노리고 몰려드는 히트맨들의 존재를 감지해 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쪽으로 몰려드는 히트맨들의 기척을 훤히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바로 눈앞에 있는 쌍둥이의 실체만큼은 도무지 잡아낼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대로라면 설사 방아쇠를 당긴다 해도 결코 놈들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딘의 단검을 쥐고 있던 민호가 조용히 말했다.

“저 바람 안쪽 공간은 아공간[Subspace]이야.”

“뭐?”

“전혀 다른 공간이라고. 그 어떤 물리적 힘도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하지만 저 경호원은…….”

레이놀즈는 바람에서 튕겨 나오지 않았던가.

“아공간을 구성하는 벽에 부딪친 것에 불과해.”

만약 레이놀즈가 쌍둥이의 간격 안에 들어가 붙잡혔다면, 그는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채 완전히 찢어발겨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놈들은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거지?”

페이진이 입술을 깨문 채 총구를 돌려 바깥쪽을 겨누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신중하게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키릭.

파아아아앙!!

탄창 없는 권총에서 거대한 굉음과 함께 회색빛의 총탄이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와 함께 조금 전까지 감지되던 기척 하나가 사라졌다.

“너, 어느새 그런 능력을……!”

민호는 페이진의 능력에 놀란 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다시금 시선을 돌려 독수리 남매를 바라보았다.

딘의 단검을 쥔 이 순간, 민호는 눈앞에 휘몰아치는 바람의 형태와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공간의 물리적 성격을 비틀어 버리는 바람, 그 안에서 남매는 차가운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쌍둥이를 둘러싼 바람은 그 어떤 물리적 힘도 흐트려 버릴 것이다.

‘내가 뱀에게 사용한 그 힘이라면……!’

단검의 능력.

딘의 단검은 소울의 반대되는 속성을 구현하여 무력화시킨다.

어둠에 빛으로 대응하듯, 눈앞에 어지러이 펼쳐진 장벽 역시 단검의 힘이라면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단검을 사용하는 민호, 자신의 능력이었다.

“네가 해야 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태일이 천천히 그런 민호 곁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내 능력으로도 저 아공간은 뚫을 수 없어. 물론 저 녀석들도 저 안에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방법은 없겠지만.”

태일이 슬쩍 뒤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거든.”

안도는 다급히 경호원과 함께 곳곳으로 연락을 돌리고 있었다.

“남는 PAV를 전부 수배해! 아니, 이용자들에게 열 배로 배상할 테니, 무조건 내놓으라고 해. 마하급 이상으로만 추려.”

“여분의 포트는 없습니까? 급합니다. 지금 당장 센트럴로 향해야 합니다. 24시간 이내에 도착해야 해요.”

회오리 속 남매는 태일 일행에게 직접 타격을 가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아공간 능력을 사용해 사방에서 히트맨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회오리가 일며 히트맨들이 가세한다.

스무 명이었던 기척은 어느새 서른에 육박하고 있었다.

타탕! 탕!!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소울로 뭉쳐진 탄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탄들 대부분은 하이퍼루프의 벽면에 부딪쳐 소멸하였지만, 그렇게 공격을 막아 낸 하이퍼루프의 차체 역시 멀쩡하지 않았다.

사방이 찌그러지고, 심한 경우 구멍이 나 버렸다.

그 와중에 몇 발의 강력한 탄들이 기어코 벽면을 뚫어 냈고, 급히 사인검을 빼 든 카츠미가 그런 탄들을 연달아 베어 버렸다.

“아무래도 완전히 포위된 거 같은데!”

“의원님, 제 뒤로!”

안도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이 양팔을 들어 올리더니, 마치 거북이 등껍질 같은 소울 장벽을 만들어 자신과 안도의 주변을 감쌌다.

“계획이… 실패한 건가?”

안도는 입술을 깨문 채 머리를 움켜쥐었다.

경호원 단둘만을 데리고 하이퍼루프에 오른 것은 애당초 교란작전이었다.

자신의 행적을 철저히 비밀로 했을 뿐 아니라 경호팀을 대동한 가짜 안도 애슈턴까지 준비했다.

가짜 안도는 전용 항공기를 이용해 센트럴로 향하고 있었다.

만약 히트맨이 자신을 노린다면, 가짜가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공간 능력자 쌍둥이의 능력으로 인해 히트맨 전력은 이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조금 전, 간신히 초고속 PAV 한 대를 수배하는 데 성공했지만, PAV가 이런 난장판 속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애당초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회오리 속에 있던 남매가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소환해 내보였다.

“저, 저건?!”

전문 경호팀과 함께 항공편을 이용해 센트럴로 향하던 가짜 안도.

그의 목이 아공간에 둥둥 떠 있었다.

“이럴 수가!”

곧이어 가짜 안도와 함께 출발한 경호팀원들의 목이 속속들이 소환되어 아공간 안에서 둥실 둥실 떠다녔다.

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A급 경호팀이었다.

그런 경호팀이 너무나 허무하게 당해 버렸다.

보수당 쪽에서 오로지 한 사람, 안도를 잡기 위해 모든 전력을 집중시킨 것이다.

“처음부터… 살아날 방법은 없던 건가.”

안도는 절망한 채 얼굴을 감싸 쥐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안도를 지키던 경호원, 라이언이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님,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어째서인지 동료 경호팀들이 모조리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라이언은 희망을 잃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안도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라이언이 태일 쪽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님, 지금 당신을 지키는 저들 모두 아웃라이어(Outlier)입니다.”

아웃라이어. 능력자들 가운데 그 능력이 평균치를 아늑히 상회하는 인외의 존재.

전설처럼 회자되는 아웃라이어들은 사실상 신에 가까운 힘을 선보이곤 했다.

그리고 라이언이 생각하기에 지금 눈앞의 이들이야말로 틀림없는 아웃라이어들이었다.

타탕! 탕!

난장판 속에서 탄창 없는 권총을 쥔 페이진은 침착하게 자신이 포착해 낸 히트맨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렇게 발사된 총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를 관통했고, 한 발에 한 명씩 정확하게 사살했다.

스각! 팡!!

막야의 보검을 쥔 카츠미는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형태의 칼바람을 무수히 만들어 냈다.

전방을 향해 쏘아진 칼바람들은 히트맨들이 엄폐물로 사용하는 나무 수십 그루를 단박에 베어 버렸고, 그와 함께 숨어 있던 히트맨들의 허리까지 동강 내 버렸다.

그러나 가장 터무니없는 괴물은 태일이었다.

파치치치… 콰콰쾅!!

태일은 필드로 좌표를 잡아 낸 직후, 마치 지휘자처럼 팔을 휘저었다.

그와 함께 사방에 번개가 내리쳤고, 순식간에 네댓 명의 기척이 사라졌다.

“저 사람들이… 정말 인간이라고?”

미리 하이퍼루프에 배치해 둔 메타휴먼을 통해 확인한 네 사람은 다소 괴짜 같은 인상이었지만,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안도 앞에서 이들이 보이는 힘은 이미 인간의 상상을 아늑히 초월해 있었다.

탄창 없이 저격을 성공시키는 사격수, 원거리의 적을 베어 버리는 검사, 자유자재로 번개를 내리치는 능력자까지.

비현실적인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었다.

바로 그때, 짧은 단검을 쥔 채 남매가 펼친 회오리바람 앞으로 다가가는 민호의 모습이 보였다.

“위, 위험해!!”

안도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며 앞으로 내달리는 민호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끝이 없어. 이 상태는… 오래 유지할 수 없는데…….”

페이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총구를 잠시 내렸다. 그의 온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만큼 소울웨폰의 힘을 무한정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아, 하아……. 조금만… 더!”

카츠미의 눈은 아예 붉게 충혈된 채 히트맨들이 아닌, 자신 안의 무언가와 싸우는 것처럼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끝이… 없군.”

태일 역시 손을 잠시 내린 채 입술을 깨물었다.

남매의 아공간을 통해 히트맨들이 꾸준히 증원되고 있다.

태일의 소울 역시 무한한 건 아니었고, 광범위 능력을 계속해 사용할 수는 없었다. 상대 역시 그것을 노리는 듯 집요하게 몰려들었다.

바로 그때, 민호가 천천히 회오리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단검을 치켜든 민호의 이마에서 땀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태일은 그런 민호를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작 허상에 불과하던 요르문간드의 그림자를 흐트려 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지금 민호의 앞에 있는 바람 장벽은 훨씬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딘의 소울웨폰에 대해 정확한 이해 없이는 쉽게 해체할 수 없다.

그러나 쌍둥이 남매의 장벽을 없앨 수 있는 이는 이 자리에 단 한 명, 민호뿐이었다.

민호는 천천히 회오리바람 앞으로 다가가며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신뿐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눈앞의 장벽을 깰 수 있다.

“젠장, 이번에는 왜 안 된다는 건데?”

“답답하네. 계속 말했잖아. 네 수준으로는 저 벽의 구조를 파해할 수가 없어.”

딘의 목소리가 쌍둥이 남매를 향해 다가가는 민호를 만류하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네가 도우면 되잖아.”

“양심이 없네. 지난번에는 허접한 그림자였지만, 지금은 아니야. 네가 저 벽의 규칙성과 균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단 말이야.”

“규칙성과… 균열…….”

민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다시금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회오리바람 한가운데에서 남매는 그런 민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민호를 차라리 한심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야, 너 저 벽에 부딪치면 진짜 죽어. 아까 경호원은 워낙 육체파에 능력까지 두르고 있어서 살아남은 거라고.”

그러나 민호는 딘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회오리바람과 그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규칙성… 균열…….”

일정하게 흐르는 소울들의 묶음.

그것이 곧 공기의 흐름으로 치환되어 바람을 일으킨다.

수천수만 개의 묶음이 어지럽게 뒤엉켜 공간을 가르고, 바람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무수한 흐름 속에서 유난히 약한 한 줄기가 눈에 띄었다.

“저 정도라면…….”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미약하게 흐르는 한 줄기의 흐름.

어둠을 무너뜨리는 게 빛이라면, 규칙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균열이다.

거대한 장벽도 손톱만 한 균열 하나로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지금 포착해 낸 한 줄기 소울에 균열을 낼 수 있다면, 분명 장벽은 무너진다.

그러나 딘의 목소리는 다시금 민호를 막았다.

“무모한 놈. 원리를 알아채도 잘라 내는 건 다른 문제야. 한 치만 틀어져서 다른 묶음을 건드리면, 네 몸은 완전히 찢겨 버릴 거야.”

“해내야 해.”

딘의 목소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고집불통 같으니.”

“일단 방법은 맞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

“그럼 됐어.”

민호는 딘의 확답을 들은 직후, 곧바로 회오리바람의 가느다란 한 줄기 묶음을 향해 내달렸다.

주변에서 잡음들이 들려왔지만, 지금 이 순간 민호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잘라 내야 할 한 줄기의 소울과 단검을 쥔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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