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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42화 (143/220)

142화 새벽 열차 (2)

하이퍼루프는 기적 소리는커녕 바람 소리조차 없이 엄청난 속도로 진공 터널 안을 달렸다.

“꿈인가, 이거?”

스치듯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페이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평소라면 한마디 쏘아붙였을 카츠미이지만, 이번만큼은 페이진을 타박할 수 없었다.

아니, 카츠미 자신도 압도적인 속도와 기술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민호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진짜 이런 게 있었다니…….”

“뭐야, 너도 뭔가 알고 있었어?”

“예전에 딘에게 들은 적이 있어. 대륙을 오가는 열차보다 몇 배는 빠른 수단이 있다고.”

민호는 카츠미와 달리 50구역 외부로 나가 본 경험이 있고, 그 덕분에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카츠미가 여전히 50구역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엄청난 기술의 존재를 상상이나 했을까?

50구역 사람들은 레지스탕스, 마피아 조직 등을 만들어 오랫동안 싸워 왔다.

낡아 빠진 공장과 자그마한 가게를 차지하기 위해서 검을 휘두르고, 총을 겨누었다.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했고, 마피아의 무력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자만했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센트럴 기술자들은 꾸준히 기술을 발전시켰다.

알마티의 거대한 터빈과 강력한 장비들, 그리고 하이퍼루프까지.

그런 기술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한심해…….’

카츠미는 주먹을 움켜쥔 채 바깥을 바라보았다.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야 했다.

직접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50구역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뒤쪽에서 태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할 때까지 몇 시간은 걸릴 거야. 바빠질 테니까 좀 쉬어 두는 게 좋아.”

태일은 마치 평소 열차를 이용했던 듯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등을 기대고 있었다.

철컥!

바로 그때, 객실 문이 열리며 웬 여인이 카트 한 대를 밀고 왔다.

승무원은 붉은 눈동자의 메타휴먼이었다.

“음료와 술, 쿠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드시겠습니까?”

그녀가 친절한 목소리로 권해 오자 페이진은 급히 시선을 돌려 카트 쪽으로 다가갔다.

“오, 술도 있나! 얼마지?”

“모두 무료로 제공됩니다.”

카츠미는 마치 어린애같이 구는 페이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음하면 곤란해, 페이진.”

“별걱정을 다하네. 어때? 당주도 한잔할래?”

“됐어. 난 그냥 물 한 잔이면 충분해.”

태일이 물 한 모금을 들이켠 뒤, 승무원에게 물었다.

“혹시 열차에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이번 열차는 특별편으로 오로지 세 분 고객님만을 모십니다.”

“승무원은 몇이나 있지?”

“셋입니다.”

그 와중에 맥주를 들이켠 페이진이 기분 좋게 웃었다.

“으으음, 좋다. 혹시 브랜디 같은 것도 있어?”

“페이진!”

“네. 코냑이 있습니다.”

“오오, 좋아! 한 잔 달라고.”

그런 페이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민호가 승무원에게 물었다.

“도착은 언제지?”

“앞으로 약 다섯 시간 뒤입니다.”

“그동안 객실로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겠어.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가 직접 나가도록 할게.”

“네, 알겠습니다.”

승무원은 민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카트를 끌고 객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니, 왜 그래? 기껏 우리를 위해 준비된 친구들인 거 같은데.”

카츠미는 결국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페이진, 당신 진짜 바보야?”

카츠미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객실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혼란이 계속되는 알마티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메타휴먼에 대한 문제였다.

지하 도시에서 올라온 메타휴먼들은 에너지 광장에 격리되어 있고, 그 외의 메타휴먼은 알마티 시내로 진입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하이퍼루프 안에 승무원으로 탑승하고 있는 메타휴먼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페이진이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주, 설마 센트럴 놈들이 아무 대비도 없이 우리를 기다릴 줄 알았어?”

“……!”

“저 승무원이란 놈들, 센트럴에서 심어 놓은 게 당연하잖아?”

가끔, 아니, 꽤 자주 얼빠진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페이진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난 직감을 가졌고,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그저 어설픈 모습으로 그런 자신의 역량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저런 녀석들만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해. 그냥 우리가 어떤 인간들인지 알아보려는 목적이겠지.”

“…….”

“그런 의미에서 술 한 잔 더 받으러 가 볼까! 꽤 비싼 술들이 준비된 거 같은데.”

페이진이 헤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민호는 다시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한편, 태일은 무표정하게 명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인에게 받은 바로 그 명함이다.

카츠미는 한숨을 내쉬며 태일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뭔가 들은 거 없어?”

하이퍼루프를 준비한 이는 루키우스다.

그가 아무런 설명 없이 센트럴의 첩자를 보란 듯이 심어 두었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러자 태일이 자신이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던 명함을 카츠미에게 건넸다.

명함 앞면에 한 남자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안도 애슈턴.」

그 뒷면에는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이미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어요.」

제인의 글씨다.

알마티 역전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태일 일행은 상대방의 시야에 들어와 있었다.

시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 * *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나면서 열차 밖 풍경이 바뀌었다.

밋밋한 들판과 호수를 지나쳐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들을 지나쳤고, 곧이어 거대한 고층 빌딩들이 슬슬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도로들이 촘촘해지고,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비쳐 오는 가운데, 표지판의 글씨가 눈에 띄었다.

‘District 9’.

9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하이퍼루프가 도심부에 들어서자 지금껏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맙소사!”

“이게 다 뭐지?”

거대한 고층 빌딩과 도시 곳곳에 둘러쳐진 네온사인들.

알마티 지하 도시처럼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투명한 막.

그리고 공중에 이중 삼중으로 건설된 도로들.

고층 건물 위쪽 공중으로는 아름답게 꾸며 입은 미녀가 홀로그램 형태로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하이퍼루프까지 전해져 왔다.

「NineD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싱그러움을 여러분에게 선물합니다.

당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NineD 프로젝트! 여러분도 함께하세요.」

미녀는 ‘NineD’라는 글자가 새겨진 화장품을 사랑스러운 강아지처럼 꼭 껴안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곧이어 그녀의 옷차림이 바뀌며 이번에는 수저를 들고 나타났다.

「맛없고 퍽퍽한 시리얼! 언제까지나 그런 걸 먹을 거예요, 오빠?

NineD에서 아홉 가지 영양소를 꼭꼭 눌러 담은 시리얼을 발매했다고요. ‘Nine 뉴트리어’.

맛도 영향도 최고랍니다! 지금 당장 구매하세요~」

수저에 한 움큼의 시리얼을 퍼 담더니, 입에 넣지도 않은 채 활짝 웃어 보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그런 홀로그램이 익숙한 듯 시선조차 주지 않고 바삐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그 와중에 뾰족하게 생긴 건축물 위 스테이션에서 수십 대의 기체가 수직으로 날아오른다.

“…저것들은 대체 뭐지?”

“PAV(Personal Air Vehicle)야. 개인용 비행기.”

태일의 설명에 카츠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농담이겠지?! 항공 기술을 개인이 사용한다고?”

카츠미의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장찰용 드론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센트럴에서는 한사코 허가하지 않았다.

그 명분이 바로 항공 기술의 위험성이었다. 추락 위험성과 기술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민간에 상용화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는 아예 수십 대의 비행체가 심지어 사람을 태운 채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긴 대체……!”

그때였다.

어째서인지 9구역에 들어온 뒤로 줄곧 침묵하고 있던 페이진이 조용히 말했다.

“속도가 줄고 있어.”

“무슨……!”

그의 말처럼 하이퍼루프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고, ‘Station 9’이라 쓰여 있는 건축물 안에 들어서더니 급기야 완전히 열차가 멈춰 섰다.

“여긴 의회가 아닐 텐데?”

창밖 스테이션 안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일부러 통행을 제한한 듯 부자연스럽게 조용했다.

민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에서 잠시 내려놓은 소총을 고쳐 잡았다.

카츠미와 페이진 역시 제각기 무기에 손을 갖다 대며 객실 문을 바라보았다.

오로지 태일만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치이이이―

천천히 객실의 문이 열리면서 웬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갓 스무 살은 넘겼을까?

중절모에 회색 양복 차림, 짙은 눈썹에 날렵한 턱은 언뜻 보기에도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어려 보이는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청년의 뒤쪽으로 두 명의 사내가 뒤따르고 있었다.

“여러분이 바로 제인의 친구분들이시군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태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안도 애슈턴이로군.”

“예, 맞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카츠미는 안도가 친절히 인사를 건네는 와중에도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안도 애슈턴의 뒤에 있는 두 명의 사내. 그들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능력자군.”

페이진 역시 경호원들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느새 민호는 소총 대신 딘의 단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그때, 세 사람의 반응을 눈치챈 안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후후,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친구들은 저의 지시가 없는 이상 절대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 말은 반대로 그의 지시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젊군.”

“이래 봬도 청년당의 당수이니까요.”

안도가 느긋하게 웃어 보였지만, 그사이 그의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도무지 그 나이대의 청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우릴 배웅이라도 나온 건가?”

“아, 네. 물론 그런 목적도 있습니다만…….”

안도가 중절모를 벗으며 객실의 네 사람을 번갈아 살폈다.

“아무래도 네 분을 미리 만나 협의를 좀 하고 싶었거든요.”

“협의라…….”

“수많은 히트맨들이 당신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의회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당신들을 노리겠죠.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함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안도가 태일을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카츠미는 입이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으며 안도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환락가에 살면서 센트럴의 젊은이들을 자주 만났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유흥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머저리처럼 보일 뿐이었다.

마피아로서 피비린내 나는 삶을 생각하면, 돈을 펑펑 써 대는 센트럴 청년들은 철없는 어린애일 뿐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안도는 그런 카츠미의 편견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만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풍기는 느낌은 환락가에서 보아 온 멍청이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마치 노회한 모략가처럼 보였고, 훈련된 무사처럼 느껴졌다.

태일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눈을 가늘게 뜬다.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라……. 그렇겠지. 그 말이 맞아.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그러고는 안도가 내민 손을 맞잡지 않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가 진짜 안도라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믿지?”

곧이어 안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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