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37화 (138/220)

137화 혐오의 도시 (1)

“시장님, 에너지 광장 쪽으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지.”

야곱의 말에 루키우스는 용무를 묻지조차 않은 채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루키우스의 얼굴은 피로에 찌들어 있었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야곱은 물론, 루키우스 역시 지난 이틀 동안 눈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한 채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처럼 혹사에 가까운 일정은 야곱과 달리 노쇠한 루키우스에게 큰 부담이었다.

다급히 걷던 루키우스가 잠시 비틀거렸다.

“시장님,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아. 서둘러야지.”

“조금이라도 쉬셔야 합니다.”

“일단 도시의 혼란부터 진정시킨 다음, 쉬도록 하지.”

“…….”

그게 과연 가능할까?

지하 도시가 없어진 지 이제 고작 이틀. 그사이, 알마티에서는 온갖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터졌다.

지상에 올라온 지하 주민들은 사실상 고삐 풀린 망아지와 다르지 않았다.

빚쟁이나 판사, 부자들을 집단으로 두들겨 패는가 하면, 살인과 방화 역시 사방에서 자행되었다.

주거 침입 사건은 셀 수조차 없었고, 도둑질과 강도질 역시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도시 곳곳의 기물들이 파괴되었고, 지상 주민들이 집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지하에서 올라온 자들은 거리 곳곳을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렸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패배자 취급을 받으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분노가 일시에 터져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분노와 증오는 정당하지 못했고, 해소되는 방식 역시 폭력적이었다.

“자네가 고생이 많아, 야곱.”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내가 내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지하 도시에서는 루키우스와 그 휘하의 자경단이 초법적 권한으로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상을 점령한 지금, 자경단원들 일부마저 광기에 휘둘려 린치 행위에 가담하곤 했다.

자경단만으로 사태의 해결이 불가능했기에 바르코와 LAPD 경찰들에게 최소한의 무장을 허락했지만, 감옥은 이미 남은 자리가 없었고, 투입된 LAPD 경찰이 집단으로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시장님께서는 잘하고 계십니다. 시장님이 없었다면 많은 지하 주민들이 희생되었을 겁니다.”

“글쎄, 내 선택이 향후 더 큰 희생을 불러올지도 모르지.”

루키우스는 지쳐 있었고, 자신의 판단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야곱 자신이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고맙군.”

슬쩍 웃어 보인 루키우스가 가까워지는 거대 터빈을 바라보았다.

“에너지 광장이면… 메타휴먼들인가?”

“네. 싸움이 크게 붙어서 소동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경단은?”

“그게…….”

“같이 말려들었군.”

“죄송합니다.”

“분명 카심이 있었을 텐데도 막지 못한 건가?”

“실은 누군가가 카심 씨를 공격한 모양입니다. 그 사건 때문에 흥분한 메타휴먼들이 난동을 피웠다고 합니다.”

루키우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야곱을 돌아보았다.

“카심이 공격당했다고?”

“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

“내가 다쳐도 그런 식으로 반응할 건가?”

진지한 루키우스의 표정을 본 야곱이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메타휴먼들을 통제하고,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카심이다.

그런 카심의 부상이 결코 가벼운 일일 리 없다. 물론 간단히 넘길 사안 역시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시장님.”

“카심과 메타휴먼들은 우리 편이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

야곱 역시 금융 버블을 직접 경험했고, 다름 아닌 자신이 메타휴먼으로 인해 몰락한 장인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그 자신부터도 메타휴먼에 대한 증오를 공유하고 있으며, 인간이면서 메타휴먼들을 보호하는 카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지상 이주’는 메타휴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서장이 이끄는 LAPD의 화력에 의해 엄청난 피가 흘렀을 것이다.

루키우스는 그런 야곱을 엄하게 바라보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카심의 상태는? 의식은 있나?”

“네. 일단 근처 숙소에 방을 마련해 모셨습니다. 얼굴과 몸에 멍 자국이 남았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근처 가게를 습격하던 이들을 제지하다가 변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카심을 공격한 놈들은 잡았나?”

“아직입니다. 지금 찾는 중입니다.”

“놈들을 잡아 오게. 내 손으로 직접 메타휴먼들 앞에서 처형하겠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심이 이끌고 온 메타휴먼들은 지하 주민들에게조차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에너지 광장에서 주둔하는 메타휴먼들에 대한 테러가 지속적으로 자행되었다.

이젠 급기야 메타휴먼들을 이끄는 인간, 카심마저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갈등을 풀기 위해서라도 루키우스가 직접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어느덧 에너지 광장에 도달한 두 사람의 귀에 굉음과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광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본 루키우스가 조용히 지시했다.

“야곱, 카심을 데려와.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시장님.”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야곱이 황급히 거리 반대편으로 내달렸고, 루키우스는 천천히 에너지 광장 쪽으로 들어섰다.

“전부 부숴 버려!”

안드레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가운데, 자경단원들이 빔 소드를 휘두르며 메타휴먼들을 때려 부수고 있다.

“밀고 들어가! 이 망할 폐품들이!”

키리리리릭!! 쾅! 쾅!

메타휴먼의 선두에 선 Z―1077 탱크는 캐터필러로 광장 곳곳을 돌며 거대한 드릴과 망치를 연신 휘둘러 댔다.

탱크의 망치가 한차례 휘둘러질 때마다 자경단원 두셋의 뼈가 으스러졌고, 드릴로 인해 방호복이 찢겨 나갔다.

“물러서지 마!! 전부 부숴! 다시 지하에 처박아 버려!”

탱크는 광기에 사로잡혀 고래고래 소리 질러 대는 안드레이를 향해 드릴을 치켜들었다.

키릭… 키리리릭!

목소리를 잃어 말을 할 수 없지만, 탱크를 비롯한 동료들은 엄연히 감정을 느끼는 생명체이다.

눈앞의 자경단은 과거 LAPD가 사용하던 무기로 무장한 상태였고, 과거 LAPD가 그랬듯 이번에는 자경단원들이 메타휴먼의 팔다리를 부수고 있었다.

즉, 지금 눈앞의 자경단원은 과거의 LAPD와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카심을 공격한 자들을 추적하려는 탱크를 막아섰고, 부상당한 카심을 어디론가 데려가 버렸으며, 지휘관을 잃은 메타휴먼들을 잔혹하게 공격해 왔다.

카심은 틀렸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다.

흥분한 메타휴먼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그사이 광장 곳곳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카심을 돌려받아야 한다.

카심을 공격한 자들의 피를 보아야 한다.

그렇게 혼전이 지속되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고함이 들려왔다.

“멈춰!!”

물론 고작 한 사람의 고함 정도로 진정될 혼란이 아니었다.

“물러서! 멈추고 물러서라!”

그러나 한 사람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자경단 내부에서 명령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안드레이 역시 분하다는 표정으로 부하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탱크는 그 모습을 보며 주변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멈춰. 다들 물러서라.]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카심 님을 돌려받아야 한다.]

어지러운 전파가 오가며 탱크의 명령에 대한 저항의 반응이 전달되었다.

[명령에 따라라. 멈춰라.]

쾅!

탱크는 다시 한번 경고하며 땅을 망치로 내려쳤다.

메타휴먼들은 그런 탱크를 보고는 마지못한 듯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자네가 임시 리더인 모양이군.”

양복 차림의 초췌한 노인이 광장 중앙, 탱크의 앞으로 걸어 나온다.

노인은 서장의 머리통이 박살 난 바로 그 자리에 섰다.

“시장님, 위험합니다!”

안드레이를 비롯한 자경단원들이 노인의 곁을 호위했지만, 괜한 짓이었다.

탱크의 지시가 없는 이상 메타휴먼들은 노인을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노인 역시 그 사실을 아는 듯 별달리 걱정하는 기색 없이 탱크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나의 이름은 루키우스 베르코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지?”

카심을 몇 번인가 찾아온 노인이다.

카심은 늘 루키우스에게 우호적이었고, 따라서 눈앞의 노인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탱크는 한쪽 팔의 드릴을 멈춘 뒤, 고개를 숙여 루키우스와 눈을 맞추었다.

“카심에게 닥친 일에 대해서는 나도 들었네.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네.”

루키우스가 살짝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본 안드레이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시장님, 어째서……!”

“닥치게, 안드레이.”

차갑게 목소리를 높인 루키우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탱크를 바라보았다.

“카심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네. 또한 카심을 공격한 놈들도 지금 추적 중이야. 약속하건대, 반드시 자네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할 거네.”

탱크는 그저 가만히 루키우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차피 탱크는 루키우스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그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눈앞의 노인을 믿을 수 있을까?

노인은 살벌한 무기들을 동료들에게 겨누던 자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죽여.]

[그를 지금 없애야 한다. 내가 하겠다, Z―1077.]

동료들은 루키우스를 죽여야 한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오고 있었다.

그러나 탱크는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지하 쓰레기장에서 분리수거 방식이나, 장비 교체 등에 관해 내리던 결정과는 전혀 다르다.

누군가가 죽고 사는 문제였다.

“그만 싸움을 멈추세.”

루키우스가 다시금 차분하게 말했고, 탱크는 결국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통신 하나가 들려왔다.

[내가 한다.]

키리리리리리리리리!!

거대한 전기 톱날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루키우스를 향해 겨눠진다.

좌측에서 숨죽이고 있던 Y―22845가 제멋대로 루키우스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마, 막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안드레이가 빔 소드를 집어 들었지만, 루키우스가 다급히 그런 안드레이의 팔을 붙잡았다.

“무기를 내려!”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메타휴먼 앞에서도 루키우스는 자경단원들의 무장해제를 명했다.

그 모습을 본 탱크는 다급히 Y―22845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톱날은 당장에라도 루키우스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날아드는 중이었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안드레이의 끔찍한 비명이 울린다.

“안 돼!!”

파지지직!!

푸른 전류가 온 광장을 비춘다.

콰콰콰쾅!!

광장 전체에 푸른 전류의 막이 형성되고, 광장 근처의 풍력 터빈들이 엄청난 기세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갑작스러운 빛에 꼼짝도 못한 사이, 촘촘히 드리워진 전류의 그물망이 Y―22845를 감쌌다.

몇 초간 푸른 섬광에 의해 시야가 차단되었지만, 그사이 탱크는 몸체에 설치된 구식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확실히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장발의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려 Y―22845의 톱날을 막아서고 있었다.

어지럽게 회전하던 전기 톱날이 그대로 멈춰 섰고, Y―22845의 움직임이 가느다란 전류 그물망에 의해 봉쇄되었다.

온몸이 전류에 뒤덮인 Y―22845는 삐걱거리며 온몸을 뒤틀었다. 만약 Y―22845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분명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광장 전체를 메운 푸른빛이 사라지자 모두의 시선이 광장 중앙에 집중되었다.

“미안하다.”

남자는 Y―22845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무언가 타는 냄새와 함께 Y―22845의 몸뚱어리에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른다.

쿵!

전기 톱날이 장착되어 있던 팔이 힘없이 떨어지면서 그의 몸체 역시 앞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이분이 죽게 둘 수는 없어.”

맨몸으로 메타휴먼을 제압한 남자의 등장에 탱크는 물론, 광장의 모두가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쿵!

곧이어 Y―22845가 완전히 부서져 땅바닥에 엎어졌다.

더 이상 어떠한 통신도 없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광장의 모두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싸움을 멈춰라, 다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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